고려시대 서희
1차 거란 침공 - 거란군 80 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한 소손녕 장군을 격퇴 ww
문관출신이며 병관어사(兵官御事), 즉 현재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지위를 지낸 서희는 거란군 총사령관 소손녕과 직접 담판을 하기 위하여 거란군 주둔지 봉산군으로 갔다.
서희가 소손녕이 머무는 장막으로 가자, 거란군은 "먼저 대국의 귀인에게 절을 올리는 예를 갖추어라!"라며 위협적으로 서희를 압박하였다. "뭘 꾸물거리고 있는가? 어서 절을 올려라!"라고 하자, 서희는 크게 노하면서 "무슨 말인가? 신하가 임금을 대할 때 뜰에서 절하는 것은 예법에 있는 일이나, 양국의 대신이 대면하는 좌석에서 절을 하는 예는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숙소로 돌아가 움직이지 않았다.
소손녕이 내심 서희의 인품을 비범하게 여기며, 결국 뜰에서 서로 마주 절을 한 뒤에 동서로 마주 앉았다. 결국 소손녕이 서희를 압박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비상식적인 예를 고집했으나 오히려 서희가 기선을 먼저 제압하게 되었다. 홀로 거란군 진영 내에서 담판을 하는 결코 대등하지 않은 불리한 상황이지만, 만약 서희가 먼저 기세에 눌려 굽히고 들어갔다면 협상 내내 소손녕에게 끌려다녔을 것이다.
서서히 협상이 진행되자 소손녕은 "너희 나라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의 옛 땅은 우리 거란의 것이다"라고 하며 침략명분을 밝히자, 서희는 "그렇지 않소. 우리 고려는 바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요. 그래서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부르고 서경을 국도로 정한 것이오."라고 하며 오히려 "땅의 경계를 가지고 말하자면 오히려 귀국의 동경이 우리 영토 안에 들어와야 하거늘 어찌 우리가 침범했다는 말을 하시오?"했다. 이는 전쟁의 침략 명분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역사적 연고권 논쟁이었다. 고구려의 역사적 연고권 논쟁인 명분 싸움에선 서희가 보기좋게 승리하였다.
그러자 소손녕은 다음으로 "고려는 거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도 어째서 바다건너 송나라와만 교류하고 있는가?"라고 본색을 드러냈다. 즉, 거란은 거란과 송과의 전면전이 발생시 배후에 있는 고려의 침입이 두려워 먼저 고려가 송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실질적인 거란의 침략목적이었다. 소손녕의 말을 통해 이와 같은 거란의 속마음을 간파한 서희는 "고려와 거란 양국의 국교가 통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여진이란 핑계거리를 만들어낸다음 "만일 우리가 여진을 쫓아내고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여 그곳에 성과 보를 쌓아 길을 통할 수만 있다면 어찌 귀국과 국교를 통하지 않겠소?"라 하며, 서희의 애초 목적은 거란군의 철수였으나 오히려 이 담판기회를 통해 고구려의 옛땅 회복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결국 서희는 거란과의 협상에 성공하며, 서경이북땅을 잃으며 항복하는 것이 아닌, 강동 6주의 땅을 거꾸로 얻어냄과 동시에 소손녕은 서희에게 낙타 10두, 말 100필, 양 1000마리와 비단 500필을 선물로 주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