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서구 문명을 재빨리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한 원인 중의 하나로 서양에서 건너온 박래품에 대한 이상적 호기심을 들 수 있다. 관념적인 면에서 볼 때에 서양 문화는 기독교이고, ‘물건’ 으로써 생각해 보면 뭔가를 만드는 ‘기술’이다. 일본인은 유신 이래 문어의 흡반(吸盤)처럼 서구 문화에 달라붙어 놀랄 만한 힘으로 그것을 빨아들였으나, 기독교는 끝내 큰 세력을 구축할 수 없었다. 사비에르는 인도에서 한 달 동안 만 명이나 세례를 주었지만, 일본에서는 2년 반 동안에도 천 명의 신자를 만들지 못했다. 오죽 혼이 났으면 사비에르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겠는가. 그와 반대로 한국은 서양 문화의 ‘모노’를 만드는 기술보다는 ‘기독교’와 같은 정신 문화를 더 많이 받아들였다.
차스키의 도구애는 일본인의 관광 여행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그들이 찾아가는 나라의 역사나 풍습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나라 사람이 무엇들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추상적인 물음보다도 그들은 거기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을 산다. 물건이 필요해서라기보다 그 나라에서 물건을 삼으로써 그 이미지, 그 풍속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오미야게’ 문화이다. 일본인에게 있어서 오미야게를 산다는 것은 바로 그 지방, 그 나라를 배우고 이해하는 방법이다. 오미야게를 사서 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바로 자기가 여행하고 돌아온 체험담을 대신해 주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이해도 ‘물건’으로 하고 표현도 물건으로 하는 것이다.
한 지방의 풍물, 풍속, 정신, 복잡다단한 인정심을 그 지방에서 나오는 상징적인 토산물 하나로 모두 압축시켜 손안에 들고 오는 그 ‘오미야게’야말로 ‘축소지향’의 대표적인 문화가 아니겠는가? 매년 고시엔 에서 고교 야구가 열리고 전국에서 선수들이 모여드는데, 그들이 돌아갈 때에는 고시엔 야구장 흙을 한 움큼씩 넣어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다. 그것 역시 ‘오미야게’문화의 현대적 유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쇠를 가지고 일본이 세계에서 제일 잘 드는 일본도(日本刀)를 만들고 있을 때,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제일 크고 잘 울리는 에밀레종을 만들었다.
칼로 쌓아 올린 역사의 그 그늘에는 반드시 누군가 그 칼에 잘려 피를 흘려야만 한다. ‘주판’으로 돈을 버는 역사에서 반드시 빼앗기고 손해를 본 사람의 눈물과 배고픔이 넘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종’은 아무것도 빼앗지 않는다. 그 울림은 오직 생명 같은 감동을 줄 뿐이다. 그러므로 종이나 고토로 얻은 승리와 영광은 만인의 것이다. 아무도 그것 때문에 피를 흘리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고토를 타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거기에는 함께 어울리는 융합이 있다. 이 희열의 공감, 칼이나 주판과 달리 나눌수록 오히려 그 공감이 풍부하고 강하게 되는 힘 위에 나라의 번영을 쌓아야 한다.
에도 바쿠후 말기에 가와이 게이노스케가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자네들은 사무라이가 되지 말고 상인이 되거라.’ 그 충고 때문인지 지금의 일본인은 모두 조금씩 상인이 된 것 같다. 문화인도 정치가도, 과학자도……. 그리고 ‘해 돋는 나라’는 ‘엔이 솟아오르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의 말이 생각난다. 이 지구상에는 기아 지대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아프리카며, 또 하나는 일본이다. 전자는 물질적인 기아고, 후자는 정신적인 기아다.
온 세계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은 사무라이의 칼이 아니라, 료안지와 같은 아름다운 세키테이다. 그런 정원을 만들고 맑고 고요한 다실 문화를 낳은 일본인, 설사 역사를 피로 씻은 사무라이 사회의 살육이 있었다 해도 그것을 속죄하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꽃의 문화를 만들어 낸 일본인…… 그러한 일본인들은, 일본의 역사 속에서 한번도 그 주인이 되지 못했다. 칼을 가진 자와 주판을 가진 자만이 역사를 지배했던 것이 일본의 비극이었다. 이제부터 ‘군사 대국’,’경제 대국’이 아니라 ‘문화 대국’의 새 차원으로 역사를 이끌어가야만 확대지향도 제 빛을 차지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일본인의 축소지향력은 정원을 만들고 다도(茶道)와 화도(華道)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트랜지스터를, 전자 탁상 계산기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