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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에 대마도의 소유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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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세종조의 기록에 의하면 대마도는 경상도 계림땅이었다.
- 동국여지승람에도 대마주(州)가 옛날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일인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기록이 있다.
- 1436넌 대마도주인 소우 사다모리가 식량 사정이 어려웠던 대마도 구제를 위해
대마도를 조선의 한 고을로 편입시켜 달라는 상소를 올려 경상도 예속시키면서
그를 태수로 봉한 사실이 있다.
- 그 뿐 아니라 그의 아들 소우 시게요시에게는 조선 관직인 종일품판중추원사 겸 대마주도제사로 임명한 사실이 있으며, 이 외에도 대마도의 유력자들에게 조선의 관직인 만호직을 주었으며 우리 나라의 한 고을로 취급해왔다.

원광대 나종우 교수(원광대 사학과·한일관계사)는
“세종원년(1419년) 대마도 정벌 때 근거로 삼은 것은 ‘대마도는 본래 우리땅’이라는 태종의 교유문이었다는 게 세종실록에 기록 돼 있다” 며 “일본의 역사 자료에도 대마도가 조선 땅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나 교수는 “13세기 일본의 사서 ‘진대’ 에 신라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을 비롯해
“1723년 대마도의 대학자 등정방이 편찬한 ‘대주편련락’이라는 책에도 ‘대마도는
고려국의 목(행정구역)이다는 대목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일본 고사기에서 대마도를 지칭하는 진도(쓰시마)는 ‘한반도에 가는 배가
머무는 곳’, 일본서기에 나오는 한향지도는 ‘한국의 섬’ 이란 뜻이라고 추가 설명했다.

그렇다면 대마도는 언제부터 일본 땅에 편입 됐을까.
나 교수는 그 시점을 임진왜란으로 꼽았다.
“농경사회였던 조선이나 일본 모두에게 척박한 땅인 대마도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조선에서는 대마도 주민에게 식량을 대 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 곳 통치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이 임란 때 대마도를 한국 침략의 거점으로 이용하며
가치를 알아보고 자기네 영토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마도가 확실하게 일본 영토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은 1950년대 초 라는게 정설.

나 교수에 따르면 임란 이후 양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 대마도 영토분쟁은 일어
나지 않았다.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싹튼 민족의식은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18일 대마도 반환을 최초로 주장하게 만들었고 일본이 이에 즉각 반박하면서
대마도에 대한 양국의 관심이 본격화 됐다.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에서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3년동안 학자들에게 ‘대마도 연구’를 집대성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 ‘대마도=일본땅’ 이라는 논리적 근거를 완성했다는 것.
나 교수는 “1965년 한일협정때는 다른 중대사안에 밀려 거론조차 하지 못했고 그
이후에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응하느라 한국정부는 대마도 문제는 거론조차
못했다”며 아쉬워 했다.

나 교수는 “일본은 시끄러울때 마다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그들과 똑같이 한다면 감정적 대응밖에 안 된다. 하지만 대마도는 부산에서 불과 5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우리땅이다(대마도~후쿠오카는 147km). 우리는 만주만 잃어 버린 게
아니라 대마도도 잃었다”며 “대마도는 언젠가는 되 찾아야 할 땅이라는 생각을 갖고
정부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13세기 일본의 사서 ‘진대’ 에 신라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을 비롯해 “1723년 대마도의 대학자 등정방이 편찬한 ‘대주편련락’이라는 책에도 ‘대마도는 고려국의 목(행정구역)이다는 대목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일본 고사기에서 대마도를 지칭하는 진도(쓰시마)는 ‘한반도에 가는 배가 머무는 곳’, 일본서기에 나오는 한향지도는 ‘한국의 섬’ 이란 뜻이라고 추가 설명했다.

 

 

1949년 오늘, 이승만은 日에 대마도를 요구했었다.

 

당황한 일본, 미국에 도움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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歴史書に対馬島の所有権記録..

朝鮮王朝実録世宗朝の記録によれば対馬島は慶尚道ギェリムタングだった.
- 東国輿地勝覧にも大麻株(州)が昔の桂林に属していたがいつ一人の巣窟になったのかわからないという記録がある.
- 1436お前は大麻逃走である小雨サダモリが食糧事情が貧しかった対馬島救済のために
対馬島を朝鮮の一村で編入させてくれという上訴を申し上げて慶尚道隷属させながら
彼を太守に封じた事実がある.
- それだけではなく彼の息子小雨Shigeyoshiには朝鮮官職であるゾングイルプムパンズングツワンサかたがた大麻主導祭祀で任命した事実があり, この外にも対馬島の顔役たちに朝鮮の官職である万戸職を与えたし我が国の一村で扱って来た.

円光大ナゾングウ教授(円光大史学科・韓日関係詞)は
“世宗元年(1419年) 対馬島征伐の時の根拠にしたことは ‘対馬島は本来われらの領土’という太宗のギョユムンだったというのが世宗実録に記録されている” と “日本の歴史資料にも対馬島が朝鮮地という記録が残っている”と付け加えた.

や教授は “13世紀日本の史書 ‘賑貸’ に新羅人たちが住んだ”と言う記録を含めて
“1723年対馬島の碩学登頂部屋が編纂した ‘デズピョンリョンラック’という本にも ‘対馬島は
高麗国の首(行政区域)載せるという書き入れ時がある”と説明した.
や教授は日本古事記で対馬島を指称する進度(対馬)は ‘韓半島へ行く倍加
とどまる所’, 日本書紀に出るハンヒャングジドは ‘韓国の島’ であるという意味だと追加説明した.

それなら対馬島はいつから日本地に編入になっただろうか.
や教授はその時点を壬辰の乱で指折った.
“農耕社会だった朝鮮や日本皆に不毛で油気がない地である対馬島は面倒な存在だった.
朝鮮では対馬島住民に食糧をまかなわ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からその所統治に大きい関心を
傾けなかった. そうする中日本が壬乱の時の対馬島を韓国侵略の拠点で利用して
価値を調べて自分の領土で見做し始めた.”

しかし対馬島がはっきりと日本領土で認められ始めた時点は 1950年代初と言うのが定説.

や教授に注げば壬乱以後両国は友好的な関係を長続き, 対馬島領土紛争は日本語
出なかった.しかし日帝強点期を経りながら芽ぐんだ民族意識は李承晩大統領が
1948年 8月18日対馬島返還を最初に主張するようにしたし日本がここに直ちに駁しながら
対馬島に対する両国の関心が本格化された.

1952年 1月 18日李承晩大統領は ‘隣接海洋の主権に対する大統領宣言’で対馬島領有権を主張した. ここに日本政府は 3年間学者たちに ‘対馬島研究’を集大成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積極支援, ‘対馬島=日本の領土’ という論理的根拠を完成したということ.
や教授は “1965年韓日協定時は他の重大事案に滞って挙論さえできなかったし彼
以後には日本の独島領有権主張に対応するために韓国政府は対馬島問題は挙論さえ
できなかった”と惜しんだ.

や教授は “日本はうるさい時度に独島は自分の地だと主張する. 私たちが
彼らとまったく同じくしたら感情的対応しかならない. しかし対馬島は釜山でわずか 50km
しか落ちないわれらの領土だ(対馬島‾福岡は 147km). 私たちは満洲だけ忘れてしまったの
なく対馬島も失った”と “対馬島はいつかは取り戻さなければならない地という考えを持って
政府で積極的な関心を持ってくれてほしい”と言った.


“13世紀日本の史書 ‘賑貸’ に新羅人たちが住んだ”と言う記録を含めて “1723年対馬島の碩学登頂部屋が編纂した ‘デズピョンリョンラック’という本にも ‘対馬島は高麗国の首(行政区域)載せるという書き入れ時がある”と説明した. 私教授は日本古事記で対馬島を指称する進度(対馬)は ‘韓半島へ行くお腹がとどまる所’, 日本書紀に出るハンヒャングジドは ‘韓国の島’ であるという意味だと追加説明した.

 

 

1949年今日, 李承晩は 日に対馬島を要求した.

 

荒てた日本, アメリカに助け要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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