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는 RAA였다. Recreation & Amusement Association의 약자로 오락 및 위락 협회 즉 日本女子를 미군(米軍)의 오락과 위락으로 제공하는 단체라는 의미이다. RAA 간부들은 皇宮 앞에서 선서식을 갖고 “新日本 재건과 일본 여성의 순결을 지킬 초석 사업임을 자각, 멸사봉공의 결의를 다진다”고 선언하고 ‘천황폐하 만세’ 삼창까지 했다. 그러나 일본 여성의 순결을 지킨다는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나 미혼未婚, 기혼旣婚을 불문하고 모든 일본여자들이 賣春에 발벗고 아니 옷벗고 나섰다.
1970 년 한국에는 未成年 賣春이 없었다. 1990 년대 日本에서 원조교제가 수입 되면서 한국에서 미성년 매춘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미성년 매춘은 번창일로에 있지, 세대가 바뀌면서 줄어 들지도 않았다.
일본은 난잡한 성 개방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나라이다. 일본이 만든 상품 중에서도 가장 추잡하고 성공한 상품이 성(性)이다. 이런 자신들의 더러운 반인륜적인 행동을 타당화하기 위해 ‘색을 밝힌다는 것은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이 자연적인 욕구다’라고 애써 변명한다.
日本史는 곧 賣春史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모든 문물을 받아 들이면서도 그것만은 자신들 스스로 개발, 발전시킨 것이다. 일본의 매춘사는 中國倭가 이주 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2차 대전 당시 日本은 조선인, 중국인, 기타 국가들의 소녀들을 종군 위안부로 강제 연행 하면서 자국의 여자 수십만은 本土의 賣春婦로 만들었다. 이것은 2차 대전의 배경을 설명하는 책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왜구(倭寇), 임진왜란 등으로 누천년 우리나라의 國富를 빼앗아 수백 년간 자신들을 살찌운 일본은 그것도 모자라 자국의 여자들 까지 상품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에서 賣春의 역사는 그야말로 오래 되었다고 한다. 그저 유구한 전통을 발전 시키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2 차 대전 전후에 부모가 자식의 손을 잡고 매춘소굴에 팔아 넘기는 것은 일본에서 공공연히 벌어졌던 풍속이다.
서양인이 일본을 맨 처음 방문한 1543 년 부터 시작된 일본민족과의 생물학적 교배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확대되어 갔다. 처음 400 년간 일본민족에게 유전자를 제공한 유럽 국가는 특정되어 있지 않았다. 일본을 오가며 무역하던 유럽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다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 순간 미국(米國)과 유럽 각국은 일본민족에게 각별한 애정을 느끼리라 본다. 우리의 유전자가 저 민족에게 이식 되었구나 하고 말이다.
메이지(明治) 이후 공개장소 에서의 집단섹스를 금지시키는 대신 매춘조직을 거대화 하기 시작했다. 이들 매춘부의 상당수가 서양인들을 상대했다. 중세부터 개별적으로 해온 일본민족 개량 사업이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자, 국가 주도로 더욱 확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울러 국가 재원까지 챙기는 이점이 있었다. 어쩌면 한민족 에게서 더욱 떨어져 나간다는 생각에서 일본민족 개량 사업에 그토록 필사적으로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패전 이후 미군(米軍)이 일본에 진주 하면서 메국은 列島의 일본민족에게 유전자를 제공하는 주류국가로 떠올랐다. 일본은 한국 전쟁에서 미국의 병참기지이자, 미군의 휴양기지로서 그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미군의 휴양기지란 매춘시설이다. 매춘은 전후 일본의 최대국책 사업이다. 여기서 벌어들인 달러가 오늘날의 일본 경제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賣春으로 벌어들인 달러가 오늘날 세계 일본사 전공자들의 연구비로 제공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