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만나는 명소중에는 설화가 현세에도 이어지는 곳들이 있다.
그러한 장소는 역사적 사실성은 뒤로 하더라도 다수의 공감과 지역민의 정서속에서
"전설은 현실"로 인정 되고 또 하나의 지역문화로써 지역의 아이덴티로 발전, 진화 시킨다.
그러나 전설 같은 현실을 잘 보존하고 널리 알리며 다시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역사를 심어 주는
교육의 장은 얼마나 될까?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고, 때로는 우리 조상들의 자랑스런 역사를 제대로 자랑하지 않는,
그래서 소중한 문화재와 역사를 빛낸 실존했던 인물들에 대한 자료마저도
소홀히 하거나 관리부족으로 인해 소멸되고 사장시키는,
자긍심의 부재와 가치 불감증을 앓고 있는 곳을 보면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한숨이 나오곤 했다.
그런 관점에서 영암의 왕인박사 유적지는 특별한 배움을 준 영암의 명소로 내게 각인 된 곳이다.
백제의 학자였던 왕인박사의 탄생 설화부터 잘 정리 해 두었고 지방기념물20호로 지정해 관리를 한다.
하기에 아직도 미묘한 갈등과 골 깊은 민족감정을 지닌 일본에서도 그를 기리는 축제가 이어져 오고,
매년 왕인박사 유적지를 찾는 일본 관광객의 숫자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단다.
구림마을 동쪽 문필봉 기슭에 평온하고 아늑한 터에 마련 된 왕인박사 유적지를 찾은 날은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였다.
새파란 하늘 빛과 몽실하게 피어있는 하얀 구름이 고즈녁한 기념관 뜰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문화해설사님이 기다리는 천인천자문 기념조형물 앞으로 갔다.
배의 형상을 표현 했다고도 하지만,
5세기초 우리의 선진문물과 천자문을 일본에 전하여 아스카 문명을 꽃피우게 한,
왕인박사의 천자문을 형상화 해 후세들의 귀감이 되고자 세워 놓은
왕인박사 유적지를 대표하는 조형물이다.
외국까지 나아가 문자와 문화를 전한 왕인박사의 인류공동번영의 업적과,
천인천자문 조형물에 대한 의미가 적힌 안내문을 열심히 들여다 보는 아이의 마음에도
왕인박사가 품었던 소통과 상생의 정신이 깃들었기를 ...
왕인박사의 정신을 알리고 세계평화의 디딤돌로 삼기 위해,
한국, 중국,일본의 명사 1000명이 육필로 천자문 한자씩을 지극정성으로 쓰고,
이것을 영암의 석공들이 돌에 새겨 만들었다는 천인천자문 조형물.
글자 모양은 제각각 다르지만 저 속에 담긴 "세계 평화와 인류 공동번영"의 염원은 모두 같았을 것이다.
자랑스러움과 감동이 일었다.
왕인박사와 관련 된 전시물이 있는 전시관이자,
왕인박사 유적지로 들어서는 문 역활도 하는 영월관 전경이다.
이곳은 부근 일대에 흩어져 있는 왕인박사의 유적지들의 사진과 설명문,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담은 그림과 유물들도 함께 전시 되어 있다.
전시관 입구에 있는 왕인박사 석상을 복원해 놓은 부조가
이 곳 왕인박사 유적지를 찾은 손님들을 맞는다.
당시 발달한 백제문화를 알 수 있도록 전시물들이 잘 정리 되어 있다.
백제의 왕과 귀족, 평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왕인박사가 먼 타국까지 발달한 백제문화와 천자문을 비롯한 논어,
그리고 문자를 전달하고 가르친 자랑스런 우리 선조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전시실 입구에 있는 왕인박사의 영정이 걸개 그림으로 걸려 있다.
"해신의 바다와 수많은 흰 파도를 넘고 넘어서 여덟 섬나라에는 글이 전해졌노라"
여덟 섬나라에서 글이 없슴은 캄캄한 암흑의 세계였을 것이고 ,
글을 전해 받았을때는 비로서 세상의 빛을 발견 했던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광명의 세상을 일본에 전한 왕인박사.
더구나 같은 땅도 아닌, 멀고 먼 타국에 까지 글과 문화를 전달하고자 했던
왕인박사의 뜻이 새겨진 글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서 일본 관광객들이 이 먼 영암까지 발길을 하는 것은 당연함이라 생각 했다.
"귀국의 문화는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로 시작되는 천황의 감사 표현이
결코 인사치례의 형식적 발언만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영면하신 김대중대통령과 함께 한 사진을 보며
역사란, 왜곡을 하고자 해서 쉽게 왜곡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들도 이젠 깨달았기를 바래 본다.
지금도 일본에서 왕인박사를 기리는 축제를 한단다.
일본에서 하는 "왔소 축제"의 사진이 재미있고 축제 이름또한 흥미로웠다.
전시실인 영월관의 뒷출구로 나오면 왕인박사 유적지로 들어선다.
새파란 가을하늘 아래 왕인박사의 동상이 보인다.
이곳에서 부터 왕인박사 석상이 있는 곳까지의 등산로는 서해안 최고의 노을을 감상 할 수 있다고 한다.
왕인박사 동상 양쪽에는 왕인박사가 일행들과 함께 일본으로 가는 상황부터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 그리고 문화를 전파하는 과정을 조각으로 해 두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왕인박사의 가묘와 책을 쌓아두고 공부를 했다는 책굴,
그리고 이 물을 마시면 성인을 낳는다는 전설속의 샘으로써 지금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성천이 있는 입구의 홍살문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산책하듯 돌아 보면서 흥미로운 왕인박사의 탄생 과정을 돌아보는
조용한 분위기속 아름다운 조경으로 꾸며져 있다.
왕인박사 축제때 걸어 두었던 등이 누각에 둘러쳐져 가을바람에 흔들린다.
넓은 왕인박사 유적지를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는 곳으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도 있다.
시원하게 뿜어 올려지는 분수에는 어느새 왕인박사의 뜻처럼 고운 무지개가 걸렸다.
하늘이 연못속에서 자신을 반추하고 있듯 우리 또한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와 선조들의 업적을
반추하며 살아야 하는 것임을 연못은 말 없이 전해 주었다.
드 없이 푸른 하늘 아래 청정한 영암의 가을은 왕인박사의 삶을 생생하게 들려 주고,
우리들은 영암의 자랑인 왕인박사에 점점 매료 되었다.
서로 함께 사는 삶, 상생과 서로를 이어주는 소통의 의미를 실천한 왕인박사는
험난한 뱃길을 뚫고서 달려 갔던 일본에서 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함께 했던 일행들을 통해 일본에는 발전된 백제의 문화를 전했다.
진정한 상생과 소통을 침략이 아닌 평화와 공동번영을 꿈꾸고 실천했던
문화전달자 왕인박사의 진면목을 배울 수 있었던 왕인박사 유적지는 아이들과 동행하면 좋은 여행지였다.
넓은 유적지 곳곳을 도는 동안 햇살은 늬웃해지고 소슬한 바람결을 타고
벌써 물기를 털어 낸채 색물이 든 나뭇닢들이 팔랑팔랑 나부낀다.
방문 기념 선물로 받았다는 천인천자문 책을 한아름 들고 오느라 땀방울이 송글히 맺힌 지인의 머리위에
나뭇닢 하나가 살픗이 내려 앉으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왕인박사 유적지 너른 마당에는 이미 가을 기운이 그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