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주관한 ‘마셜제도 해외추도순례’가 유족 17명이 참가한 가운데 8월17일부터 22일까지 마셜제도 마주로 섬에서 진행됐다.
●식량 끊기자 日軍 ‘식인’자행
1945년 식량보급이 끊기자 일본군이 한국인을 살육한 ‘인육사건’이 발생한 밀리 섬까지는 뱃길로 12시간. 비행기로 14시간이 걸려 이곳 마주로 섬까지 왔지만 일행은 밀리 섬을 향해 선상위령제를 지내는 것으로 위로를 삼아야 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바다를 향해 울부짖은 음성은 멀리 가지 못하고 국화꽃과 함께 찰랑이는 바닷물에 묻혀버렸다. 유족 대표로 추도순례에 참가한 정진영(66)씨는 “아버지는 ‘인육사건’이후 일본군에 저항하다가 총살을 당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의 흙이라도 만져보고 싶었는데….”라며 울먹였다.
윤진민(66)씨는 “그동안 오고싶어도 올 방도가 없었는데 이제 소원 하나 풀었다.”면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아버지의 영혼도 어서 모셔오고 싶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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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셜제도와 한국인 강제징용
남태평양에 위치한 마셜제도는 태평양전쟁 막판까지 격전지였다.1944년 2월과 3월 사이 약 1만 9000명의 전몰자가 발생했다. 강제 동원된 한국인도 4000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이 밀리 섬에 대한 기록을 거의 남겨놓지 않아 현재까지 사건의 진상이나 정확한 피해규모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