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본토에 일본인은 없다”
얼토당토않을 것 같은 이 같은 말이 적어도 인류학적인 면에서는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본토에 순순 본토인의 DNA를 가지고 있는 비율이 4.8%에 불과한 것으로 일본 국립유전자협회가 밝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국립유전자협회 공식 홈페이지(www.nig.ac.jp) 전자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 협회 자료에 따르면 호우라이박사는 미토콘드리아 DNA다형으로부터 일본인의 유래를 밝히면서 일본 본토에는 순수 본토인의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4.8%에불과 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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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본토에 본토인DNA 보유비율 4.8%불과
그러나 일본인의 유래와 현대 일본인의 구성을 확인하기 위해 DNA를 분석한 호우라이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재 일본 본토에는 순수 본토인의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며, 대부분은 한반도와 만주와 연해주가 위치해 있는 동북부 대륙에서 건너온 도래인(渡來人)으로 구성돼 있음이 밝혀졌다.
호우라이 박사는 일본인 집단의 유전적 배경을 추리하고 현재 일본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일본의 3집단(본토 일본인, 류큐인, 아이누)과 한국인, 중국인으로 이뤄진 293명의 시료를 채취,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배열 데이터를 분석했다.
자료에 따르면 일본본토에 본토인(죠몽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비율이 4.8%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한반도와 연해주 만주가 위치해 있는 동북부 대륙인이 건너와 일본 만들어"
이것을 인구비로 봤을 때는 상당한 차이 있다. 일본의 총인구수는 1억3000여만명이다. 이중 90%가 본토에 살고 있다. 인구수로 봤을 때 1억1700여만명이라는 숫자가 본토에 살고 있다는 계산이다.
이 같은 현상이 나오게 된 데는 야요이시대 이후(390년 이후) 일본국토의 대분분을 차지하는 본토(本州)에 한국과 동북부 대륙 등지로부터 도래인이 건너와 지금의 일본국가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현대사회에서는 국경을 초월한 결혼 또는 이민 등 종족간 이동을 통해 민족고유의 유전자에 대한 의미는 별로 크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근대 국가가 탄생할 무렵부터 일본 고유민족은 퇴색하고 대부분 한국, 만주 등지의 도래인으로 구성돼있었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일본인 대다수가 한반도 등 대륙 혈통
아키히도 일왕이 고대 천황은 백제왕의 후손이라고 밝혀 ‘한일 간 핏줄 커넥션’이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가운데 일본의 인류유전학 권위자가 현대 일본인의 형성에 한반도 이주민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한국을 방문한 오모토 게이이치 토쿄대 명예교수(67·인류유전학·사진)는 30일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은 유전학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고 밝혔다.
오모토 교수는 문부과학성의 지원 아래 지난해까지 4년 동안 100명의 학자와 함께 수행한 ‘일본인과 일본문화의 기원에 관한 학제적 연구’ 프로젝트 총책임자이다. 그는 성신여대 박경숙 교수, 단국대 김욱 교수 등 국내 유전학자들과도 한일공동연구로 민족집단의 계통 관계를 연구해왔다.
일본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주장이 많았다. 2차대전을 전후로 형성돼 나카소네 전 수상이 지지해온 황국사관(皇國史觀)이 대표적 견해. 이 사관은 일본인이 천황의 통치 아래 형성된 단일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오모토 교수는 “최근 아시아인의 유전자 비교 분석 결과가 나오면서 황국사관은 사실상 해체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본인은 한반도와 일본이 육지로 연결돼 있었던 빙하시대(2만년 전)에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선주민 집단과, 약 2000년 전 한반도와 만주와 연해주 등지의 동북부 대륙에서 수백년에 걸쳐 대량으로 이주한 사람이 섞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는 것이다.
“선주민인 홋카이도의 아이누인, 오키나와의 류큐인 등은 주로 채취수렵 생활을 했다. 그런데 채취수렵시대인 조몬시대(기원전 300년까지) 말기에 화산활동이 증가하면서 날씨가 나빠져 인구가 줄었다. 이 때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서 전쟁을 피해 대량으로 ‘보트피플’이 들어왔다. 대륙에서 온 사람, 즉 도래인(渡來人)과 선주민 사이에 약간의 전쟁은 있었지만, 평화로운 융합이 이루어졌다.”
오모토 교수는 “여러 학자들이 일본인과 한국인 아시아 민족의단백질과 미토콘드리아, Y염색체의 DNA를 분석한 결과 도래인이 전체 일본인의 80%를 차지할 만큼 일본인의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며 “특히 한반도를 통해 온 사람들이 매우 많았으며, 관서지방에는 한반도에서 들어온 사람의 후예로 추정되는 유전형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고말했다. 또한 본토 일본인은 아이누인, 류큐인 등 일본의 선주민보다 한국인과 유전적 거리가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는 것.
“도래인은 논농사 기술과 철기를 갖고 들어와 일본 최초의 농업시대인야요이시대(BC 300년∼AD 300년)를 열었고,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AD 1년 무렵 사람들의 묘지가 있는 야마구치현 도이가하마 인류학박물관에 가면 당시 묻혀 있는 사람들의 머리가 모두 한국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야요이시대에 이어 정치권력이 탄생한 고분문화시대(300년∼700년)에는 백제 등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고분들이 일본에도 많이 들어섰다는 것.
오모토 교수는 “근세에 들어 히데요시의 한반도 침입과 한일합방 때문에 서로 민족감정이 나쁘지만, 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 고대에는 사실상 형제나 다름없었던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관계가 복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모토 교수는 토쿄대에서 인류유전학을 연구했고, 94년 정년 퇴임 뒤에는 쿄토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유전학, 역사, 지질학, 지리학, 민족가요, 예술 분야 전문가와 함께 일본의 뿌리를 찾기 위한 학제간 연구를 해왔다. 또한 올해 9월 일본에서 열릴 국제인류학민족학 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