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본토에 일본인은 없다”
오늘날 일본 열도에 살고 있는 1억2천만명이 넘는 일본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일본의 전국 각지에서 고대유물 발굴 등 고대사 연구가 활발한 가운데 일본인의 기원을 말해주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일본인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학계의 정설로는 일본인은 원래부터 일본에 살던 4.8%미만의 극소수의 원주민과 한반도 등을 거쳐 유입된 대다수의 대륙계 도래인(渡來人)이 섞여 현재의 일본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돼있다.
일본에서는 1만2천년전부터 원시적인 생활을 영위하던 토착민계를 조몬(繩文)인, 기원전 4-5세기경부터 토기, 청동기, 벼농사법 등의 문명과 함께 건너온 도래인계를 야요이(彌生)인으로 부르고 있다.
최근 일본의 한 연구진의 DNA 분석결과에 따르면 현재 일본인의 대다수가 야요이인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와 중국에서 건너온 대륙계 도래인이 일본인들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 대부분도 자신들의 선조가 대륙에서 건너왔을 것이라는데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일본에서 이뤄지고 있는 뿌리 연구의 초점은 일본인의 주류인 야요이인이 과연 어디를 통해 건너왔는지 구체적인 유입 경로를 밝혀내는데 모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야요이인의 원래 고향이 한반도였을 것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 근거로는 ▲후쿠오카(福岡)의 야요이시대 초기 유적지에서 한반도계통 토기가 대량 발견됐으며 ▲일본에서 사용됐던 벼농사용 돌칼이 한반도 남부지방의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같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고대의 항해술 등을 감안할 때 한반도인이나 동북부 대륙(만주와 연해주)사람들이 일단 한반도로 이주해 살다 일본의 규슈(九州) 지방 등으로 건너갔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그렇게 볼 때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은 한국 남쪽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규슈지방 등을 중심으로 일단 정착한 뒤 점차 본토 북부까지 세력을 확대해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도호쿠(東北)대 의학부 연구진은 혼슈(本州) 동북지방에 있는 야요이 중기(BC1-AD1 세기)의 패총에서 출토된 인골을 정밀감정, 한반도계 이주민의 특징을 갖고 있음을 밝혀내 비상한 관심을 끈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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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본토에 본토인DNA 보유비율 4.8%불과
일본인의 유래와 현대 일본인의 구성을 확인하기 위해 DNA를 분석한 호우라이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재 일본 본토에는 순수 본토인의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며, 대부분은 한반도와 만주와 연해주가 위치해 있는 동북부 대륙에서 건너온 도래인(渡來人)으로 구성돼 있음이 밝혀졌다.
호우라이 박사는 일본인 집단의 유전적 배경을 추리하고 현재 일본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일본의 3집단(본토 일본인, 류큐인, 아이누)과 한국인, 중국인으로 이뤄진 293명의 시료를 채취,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배열 데이터를 분석했다.
자료에 따르면 일본본토에 본토인(죠몽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비율이 4.8%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일본인 대다수가 한반도 등 대륙 혈통
아키히도 일왕이 고대 천황은 백제왕의 후손이라고 밝혀 ‘한일 간 핏줄 커넥션’이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가운데 일본의 인류유전학 권위자가 현대 일본인의 형성에 한반도 이주민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한국을 방문한 오모토 게이이치 토쿄대 명예교수(67·인류유전학·사진)는 30일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은 유전학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고 밝혔다.
오모토 교수는 문부과학성의 지원 아래 지난해까지 4년 동안 100명의 학자와 함께 수행한 ‘일본인과 일본문화의 기원에 관한 학제적 연구’ 프로젝트 총책임자이다. 그는 성신여대 박경숙 교수, 단국대 김욱 교수 등 국내 유전학자들과도 한일공동연구로 민족집단의 계통 관계를 연구해왔다.
일본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주장이 많았다. 2차대전을 전후로 형성돼 나카소네 전 수상이 지지해온 황국사관(皇國史觀)이 대표적 견해. 이 사관은 일본인이 천황의 통치 아래 형성된 단일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오모토 교수는 “최근 아시아인의 유전자 비교 분석 결과가 나오면서 황국사관은 사실상 해체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본인은 한반도와 일본이 육지로 연결돼 있었던 빙하시대(2만년 전)에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선주민 집단과, 약 2000년 전 한반도와 만주와 연해주 등지의 동북부 대륙에서 수백년에 걸쳐 대량으로 이주한 사람이 섞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는 것이다.
“선주민인 홋카이도의 아이누인, 오키나와의 류큐인 등은 주로 채취수렵 생활을 했다. 그런데 채취수렵시대인 조몬시대(기원전 300년까지) 말기에 화산활동이 증가하면서 날씨가 나빠져 인구가 줄었다. 이 때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서 전쟁을 피해 대량으로 ‘보트피플’이 들어왔다. 대륙에서 온 사람, 즉 도래인(渡來人)과 선주민 사이에 약간의 전쟁은 있었지만, 평화로운 융합이 이루어졌다.”
오모토 교수는 “여러 학자들이 일본인과 한국인 아시아 민족의단백질과 미토콘드리아, Y염색체의 DNA를 분석한 결과 도래인이 전체 일본인의 80%를 차지할 만큼 일본인의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며 “특히 한반도를 통해 온 사람들이 매우 많았으며, 관서지방에는 한반도에서 들어온 사람의 후예로 추정되는 유전형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고말했다. 또한 본토 일본인은 아이누인, 류큐인 등 일본의 선주민보다 한국인과 유전적 거리가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는 것.
“도래인은 논농사 기술과 철기를 갖고 들어와 일본 최초의 농업시대인야요이시대(BC 300년∼AD 300년)를 열었고,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AD 1년 무렵 사람들의 묘지가 있는 야마구치현 도이가하마 인류학박물관에 가면 당시 묻혀 있는 사람들의 머리가 모두 한국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야요이시대에 이어 정치권력이 탄생한 고분문화시대(300년∼700년)에는 백제 등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고분들이 일본에도 많이 들어섰다는 것.
오모토 교수는 “근세에 들어 히데요시의 한반도 침입과 한일합방 때문에 서로 민족감정이 나쁘지만, 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 고대에는 사실상 형제나 다름없었던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관계가 복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모토 교수는 토쿄대에서 인류유전학을 연구했고, 94년 정년 퇴임 뒤에는 쿄토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유전학, 역사, 지질학, 지리학, 민족가요, 예술 분야 전문가와 함께 일본의 뿌리를 찾기 위한 학제간 연구를 해왔다. 또한 올해 9월 일본에서 열릴 국제인류학민족학 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