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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의 필사적인 국보 1호 날조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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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이하, 미륵상)의 얼굴이 수리되었으며 그것도 수리 전과 수리 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는 말을 한 사람은 일본 미술사학자 나가이 신이치 교수이다.

고대 조선인이 만든 일본 국보 제1호 미륵상은 오래전부터 여러 논쟁 속에 휘말려 왔다. <일본서기> 등 역사적 문헌은 “신라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하여 이 불상이 신라인의 작품임을 증언하고 있지만 이를 두고 일본쪽 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을 계속 하면서 이 미륵상은 고대조선인이 만든 것이 아님을 필사적으로 연구(?)해 왔다. 그간 일본 학자들 사이에 있어 온 논란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1) 누가 만들었나?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

2) 재질이 무엇이냐? 적송(아까마츠)이냐? 녹나무(구스노키)냐?

그럼 먼저 불상 제작자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자.

광륭사 반가상 제조국 논란

이 미륵상은 일본서기에 신라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했으므로 한국산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일본 학자들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다만, 만든 나라가 신라냐 백제냐에는 이견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홍윤기 교수의 ‘홍윤기의 역사기행<79> 교토 고류지’ 글을 인용해서 정리해본다.

교토대학 사학과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수는 “현존하는 미륵상의 양식은 신라계의 것이며, 신라에서 보내준 불상이라는 것을 전해주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그 밖에 히라노 구니오(平野邦雄) 교수·미스자와 스미오(水澤澄夫) 교수·미즈노 세이치(水野淸一) 교수 등은 “적송 미륵상은 신라에서 보내준 것이며, 한국 국보 제83호인 금동반가상과 똑같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불상이 백제에서 건너왔다는 주장도 있음을 홍윤기 교수는 소개하고 있다.

도쿄대학 건축사학과 오타 히로타로(太田博太郞) 교수와 도쿄교육대학 미술사학과 마치다 고이치(町田甲一) 교수는 공저에서 “미륵상은 광륭사 사찰 기록에 따르면 스이코왕(592∼628) 11년(603)에 백제에서 보냈다”라고 한다. 또한, 고니시 아키오(小西秋雄)도 미륵상은 백제에서 건너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미륵상을 둘러싼 논쟁 중의 하나인 신라산이냐 백제산이냐는 학자마다 주장하는 바가 팽팽히 맞서 좀더 시간이 걸려야 정리될지 모른다. 다만, 아직도 일부 학자들이 일본산이라고 억지스런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 미륵상은 신라 또는 백제 중 한 나라에서 건너간 불상이며 만든 곳이 한반도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여기서 재미난 사실 하나를 소개하겠다. 미륵상의 얼굴 개조 사실을 밝힌 미술사학자 신이치 교수의 경우이다.

이 사람은 1976년 <역사공론> 6월호 ‘아스카불에 보이는 일본과 조선’에서 말하기를 “미륵상은 조선인이 조선 땅에서 만들어 가지고 왔다기보다는 조선인 1세대쯤 되는 사람이 일본 땅에 와서 일본 재료인 적송으로 만든 것 같다”라고 했다가 30년이 지난 2006년 7월 ‘일본·아시아 미술 탐색’에서는 많이 누그러진 자세로 “조선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가져왔다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끝을 흐리고 있다.

일본에는 고대 한반도로부터 건너간 많은 불상과 문화유산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에 대해서 필사적으로 감추거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이유를 달아 “일본 것”으로 둔갑시키고자 하는 일부 학자가 있다.

또 그들은 어정쩡한 표현으로 말 돌리기도 예사다. 가령 “이 미륵상은 신라 불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니라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라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 이런 말꼬리 흐리기 작전에 넘어가면 안 된다.

불상 재질 따라 제조국도 달라

그간 일부 일본 학자들은 ‘광륭사 미륵상’을 일본인이 만든 것으로 둔갑시키려고 상당한 논문을 쏟아냈다. 신이치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런데 광륭사 미륵상을 만든 사람이 고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준 것은 무엇보다도 불상 재료이다.

1951년 고하라 지로(小原次郞) 교수가 발표한 한 편의 논문은 종래의 일본제작설을 일시에 잠재웠다. 그는 ‘上代조각 재료 사적고찰’ (불교예술 13호. 1951년, 일본)이란 논문에서 7, 8세기 일본 불상들은 녹나무인 데 비해 미륵상의 재질은 적송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700여 불상의 나무 재질을 연구한 사람으로 이 분야에서는 최고 권위자이다.

정리해보면 “일본에서는 불상 재료로 적송이 안 쓰인다”가 중요한 결론이다. 고하라 교수 자신은 한국에 두 번이나 방문하여 한국의 소나무 재료를 연구한 결과 이런 결론에 확신을 했다면서 이 책에서 ‘적송=조선’ 등식을 확인해주고 있다.

신이치는 그의 논문에서 미륵상 얼굴 수리 이야기를 비교적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이는 ‘미륵상의 진실’을 밝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얼굴이 개조되어 기쁘다”를 말하고자 함이었다. 미술사학을 전공한 신이치의 ‘미륵상 얼굴성형’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표로 정리한다.


신이치의 주장

- 미륵상은 명치 때에 수리했다.

- 수리 이전에는 분명히 한국인의 얼굴이었다.

- 얼굴 수리 이후 일본인의 얼굴에 가까워 일본인의 사랑을 많이 받게 되었다.

- 얼굴 수리 전에 모양을 본떠 도쿄예술대학에 보관하고 있다.

- 얼굴에 손을 가했다고 해서 문화유산의 가치가 손상된 것은 아니다.



문 제 점

- 정확한 연월일을 밝히지 않았다.

- 어떠한 상태이기에 수리를 하게 되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 얼굴을 완전히 바꾼 것이 잘된 일이라는 것인가?

- 구체적으로 어떻게 본을 떠서 어떤 상태로 보관하고 있는지에 대해 언급이 없다.

-  문화유산 수리 시에는 원형복원이 상식인데도 문화유산의 가치 손상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신이치는 ‘아스카불에 보이는 일본과 조선’이란 논문에서 미륵상이 원만히 수리되었으며 아주 흡족하다고 했다. 그는 분명한 어조로 불상 얼굴 개조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일본 국보 제1호 미륵상은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명치시기에 얼굴 수리를 했다 →일본인에게 사랑받는 얼굴로 바뀌었다. 이런 신이치의 주장을 보면 광륭사 미륵상은 얼굴이 성형 수술된 것이 분명하며, 그것도 한국인의 얼굴에서 일본인의 얼굴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다음 사진을 한번 보자.

오른쪽 사진은 미의 비밀 <美の秘密…二つの彌勒菩薩像>이라는 책에 나오는 수리 전의 미륵상 모습이다. 사진으로 볼 때 얼굴 모습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뺨 부분도 도톰한 게 역력한 한국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왜 얼굴에 손을 댔을까? 만일 얼굴 손상이 있었다면 정확한 손상 정도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피치 못해 복원을 하는 경우에도 이 사진을 토대로 얼굴 손상을 최대한 줄이면서 복원했어야 한다.

이 미륵상에 대한 복원이야기를 다룬 책이 <美の秘密…二つの彌勒菩薩像>이다. 이 책은 1977년 2월11일 nhk 교양 특집 ‘미의 비밀’의 하나로 다룬 내용이다.

위 사진 속 미륵상 얼굴 앞에서 100여 년 만에 얼굴수리를 재현해 보이는 사람은 도쿄예술대학 교수 니시무라 코쵸(西村公朝)다. 그러나 이날 방송을 책으로 묶은 원고 어디에서도 불상 얼굴의 손상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신이치는 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명치시대에 이 상(불)은 수리되었으나 그때 수리에 손을 대기 전에 두부(얼굴포함 머리)의 형(型)을 떠놓은 것이 도쿄예술대학에 보존되어있다.(明治時代にこの像は修理されたがそのとき修理の手をくだす前に像の頭部を型にとったものが東京の芸大に保存されている。)

그렇다면 보존되어 있는 수리 전 얼굴형을 공개해야만 얼굴 성형에 대한 의심이 풀릴 것이다.

목조반가상 성형 이유 공개해야

우리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광륭사! 이곳에 가는 목적은 단 한 가지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을 보러 가기 위함이다. 이 불상은 알려진 대로 고대 한국인이 만든 불상이라 더욱 애틋하고 국보 제1호라 더욱 관심을 갖는 불상이다.

이러한 지상 최고의 한국불상이 한국인의 얼굴에서 일본인의 얼굴로 개조되었다는 사실을 ‘광륭사’ 안내책자와 누리집에는 단 한 줄도 밝히지 않고 있다. 국내 인터넷에 올라 와있는 글 그 어디에도 이런 내막을 알리는 내용이 없다.

미륵상에 관한 취재된 글 중에 제주인터넷뉴스 ‘일본속의 한민족 취재(3) - 광륭사’ 장영주 칼럼 기사에는 “교수님의 강의에 미술을 전공하는 일본의 어느 대학생이 목재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감상하다가 너무나 매혹되어 달려가 껴안으려다가 결국 불상의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리는 소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는 구절이 나온다.

이 이야기는 1960년 교토대학의 20세 학생이 일으킨 사건 곧 미륵상이 매우 아름다워 그만 자신도 모르게 껴안다가 미륵상 손가락을 부러뜨린 사실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는 한일수교 전이라 몰랐던 것인지 한국 언론은 보도하고 있지 않다. 다만, 손가락이 부러진 이 사건이 많은 누리꾼 사이에서 대단한 것인 양 인용과 재생산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손가락 부러진 사건은 확연히 얼굴을 개조한 사건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이 중요한 사실 곧 미륵상 얼굴 개조 사실에 대해 여태껏 확인도 안 해보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지금 우리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 도쿄예술대학에 본떠 놓았다는 미륵상의 수리 전 모습을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 수리 전과 수리 후의 모습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과정이 공개되어야 한다.

- 이 미륵상 외에 다른 문화유산도 이렇게 손을 댄 것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

- 광륭사는 미륵상의 얼굴 성형 사실을 분명히 안내책자에 넣어야 한다.



【참고문헌】

1. <美の秘密…二つの彌勒菩薩像>小原二郞 外 5人, 日本放送出版協會, 1982

2. <日本·アヅア美術探索-(世界美術雙書)> 永井信一/中森義宗/小林忠/靑柳 , 2006

3. <飛鳥佛にみる日本と朝鮮> 歷史公論. 1976. 6

4. <古代日本と佛敎の傳來> 永井信一·田村圓澄 外, 雄山閣出版, 1981

5. <半跏像の道> 田村圓澄, 學生社, 1983

6. <秘佛開眼> 西村公朝, 淡交社, 1976

7. <半跏思惟像の硏究> 田村圓澄·黃壽永, 吉川弘文館, 1985

8. <秘佛> 久野建, 學生社, 1978

9. <京都の佛像> 塚本善隆. 淡交社, 1968

10. <定本佛像> 望月信成, 日本放送出版協會, 1971

11. <正倉院の謎> 由水常雄, 學燈社, 2007

12. <반가사유상> 황수영, 1992, 대원사

13. <한국인이 만든 일본 국보> 홍윤기, 문학세계사, 1995

14. 일본 위키피디어: http://ja.wikipedia.org 외 다수 사이트

15. 한국 네이버, 다음 사이트 외 다수

16. <廣隆寺> 광륭사 절 팜프렛, 32쪽 日本 便利堂,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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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에서 미륵상은 신라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했지만

자국의 역사서도 부정하는 비참한 왜구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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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寇の必死的な国宝 1号捏造 w

日本国宝第1号木造弥勒菩薩半連像(以下, 弥勒像)の顔が修理されたしそれも修理の前と修理後の姿が確実に違うというものを言った人は日本美術史学者NagaiShinichi教授だ.

古代朝鮮人が作った日本国宝第1号弥勒像はずいぶん前から多くの論争の中に巻き込まれて来た. <日本書紀> など歴史的文献は “新羅から送ったこと”と言ってこの仏像が新羅人の作品なのを証言しているがこれを置いて日本側学者たちは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言い訳を続きながらこの弥勒像は古代朝鮮人が作ったのではではなければを死に物狂いで研究(?)して来た. その間日本学者たちの間において来た論難は次の二つで要約して見られる.

1) 誰が作ったか? 朝鮮人なのか? 日本人なのか?

2) 材質が何なのか? 積送(アカマツ)なのか? くすのき(グスノ−キ)か?

それでは先に仏像製作者に対する論争をよく見よう.

広隆寺半連像製造国論難

が弥勒像は日本書紀に新羅から送ったことだと言ったので韓国産なのが明らかだ. したがって日本学者たちの論争は無意味だ. ただ, 作った国が新羅かバックゼニャには異見がある. この点に対してはホン・ユンギ教授の ‘ホン・ユンギの歴史紀行<79> 京都故類だ’ 文を引用して整理して見る.

京都大学史学科UedaMasaaki(上田正昭) 教授は “現存する弥勒像の様式は新羅係の物であり, 新羅で送ってくれた仏像というのを伝える記録が見えている”と証言した. その他にHiranoグニオ(平野邦雄) 教授・ミス者と染みます(水沢澄夫) 教授・みずのセイチ(水野清一) 教授などは “積送弥勒像は新羅で送ってくれたことであり, 韓国国宝第83号の金銅半連像とまったく同じだ”と明らかにした.

しかしこの仏像が百済から渡って来たという主張もあることをホン・ユンギ教授は紹介している.

東京大学建築史学科誤打ヒロタで(太田博太郎) 教授と東京教育大学美術史学科町田Koichi(町田甲一) 教授は共著で “弥勒像は広隆寺査察記録によればスイコ王(592〜628) 11年(603)に百済で送った”と言う. また, 小西アキオ(小西秋雄)も弥勒像は百済から渡って来たと主張している.

が弥勒像を取り囲んだ論争中の一つである新羅山なのか百済山かと言う学者ごとに主張するところがきりきりに対立してもうちょっと時間がかかると整理されるかも知れない. ただ, まだ一部学者たちが日本産だと故意な主張をしているがこの弥勒像は新羅または百済の中一国で渡った仏像で作った所が韓半島というのが定説で固まった.

ここで面白い実は一つを紹介する. 弥勒像の顔改造事実を明らかにした美術史学者Shinichi教授の場合だ.

が人は 1976年 <逆船頭では> 6月号 ‘飛鳥ドルに見える日本と朝鮮’で言うのを “弥勒像は朝鮮人が朝鮮地で作って持って来たよりは朝鮮人 1世代頃なる人が日本地へ来て日本材料である積送で作ったようだ”と言ってから 30年がすぎた 2006年 7月 ‘日本・アジア美術探索’ではたくさん和らいだ姿勢に “朝鮮で作られて日本に持って来たという人が多い”と言葉を濁ごしている.

日本には古代韓半島から渡った多くの仏像と文化遺産がある. ところでこんな事実に対して死に物狂いで隠すとか常識的に理解できない理由をつけて “仕事をしたこと”で遁甲させようとする一部学者がある.

また彼らはいかがわしい表現で言いかえたり例事だ. 加令 “この弥勒像は新羅仏像だと見られるのではなくてないと思うことができないのでもいやなので…” 何がどうだということなのか… こういう言葉尻曇る作戦に移ってはいけない.

仏像ジャジーに付いて製造国もドル

その間一部日本学者たちは ‘広隆寺弥勒像’を日本人が作ったことで遁甲させようと相当な論文をこぼし出した. Shinichiもその中の一つだ.

ところで広隆寺弥勒像を作った人が古代朝鮮人という事実を裏付けてくれたことはなによりも仏像材料だ.

1951年告げなさい支路(小原次郎) 教授が発表した一篇の論文は従来の和製作説を一遍に寝かせた. 彼は ‘上代切れ材料史蹟考察’ (仏教芸術 13号. 1951年, 日本)と言う(のは)論文で 7, 8世紀日本仏像たちはくすのきであるところ比べて弥勒像の材質は積送というのを明かした.

彼は 700余仏像の木材質を研究した人でこの分野では最高権威者だ.

整理して見れば “日本では仏像材料で積送が使われない”が重要な結論だ. と言いなさい教授自分は韓国に二回も訪問して韓国の松材料を研究した結果こんな結論に確信をしたとしながらこの本で ‘積送=朝鮮’ 等式を確認してくれている.

Shinichiは彼の論文で弥勒像顔修理話を比較的正確で率直に表現した. しかしおこる ‘弥勒像の真実’を明らかにしようとする意図ではなく “顔が改造されて嬉しい”を言おうとするだった. 美術史学を専攻したShinichiの ‘弥勒像顔成形’ 話を次のように切符で整理する.


Shinichiの主張

- 弥勒像は明治の時に修理した.

- 修理以前には確かに韓国人の顔だった.

- 顔修理以後日本人の顔に近くて日本人の愛をたくさん受けるようになった.

- 顔修理の前に模様を倣って東京芸術大学に保管している.

- 顔に手を加えたと言って文化遺産の価値が損傷されたのではない.



問題点

- 正確な年月日を明らかにしなかった.

- どんな状態だから修理をするようになったのか明らかにしなかった.

- 顔を完全に変えたのがよくできた事だというのか?

- 具体的にどんなに本をとってどんな状態で保管しているかに対して言及がない.

-  文化遺産修理時には原型復元が常識なのに文化遺産の価値損傷がないということは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




Shinichiは ‘飛鳥ドルに見える日本と朝鮮’と言う(のは)論文で弥勒像が円満に修理されたしとても充分だと言った. 彼は明らかな口調で仏像顔改造事実に対して次のような結論を下す.

日本国宝第1号弥勒像は韓国人の顔をしていた →明治時期に顔修理をした →日本人に愛される顔に変わった. こんなShinichiの主張を見れば広隆寺弥勒像は顔が成形手術されたことが明らかであり, それも韓国人の顔で日本人の顔に変えておいたというのだ. 次の写真を一度見よう.

右側写真は微意秘密 <美の秘密…二つの彌勒菩薩像>という本に出る修理の前の弥勒像姿だ. 写真で見る時顔姿に大きい問題がなさそうだ. 頬部分も厚目なことがありありな韓国人の姿だ. ところでどうして顔に手を出しただろうか? もし顔損傷があったら正確な損傷位を明らか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してピッチできなくて復元をする場合にもこの写真を土台で顔損傷を最大限竝びながら修復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が弥勒像に対する復元話を取り上げた本が <美の秘密…二つの彌勒菩薩像>である. この本は 1977年 2月11日 nhk 教養特集 ‘微意秘密’の一つで扱った内容だ.

上の写真の中弥勒像顔の前で 100余年ぶりに顔修理を再現して見せる人は東京芸術大学教授ニシムだとコチョ(西村公朝)だ. しかしこの日放送を本で縛った原稿どこでも仏像顔の損傷島に対しては言及がない.

Shinichiは上の論文で次のように明らかにした.

明治時代にこの賞(火)は修理されたがあの時修理に手を出す前に豆腐(顔含み頭)義理の兄(型)を外しておいたことが東京芸術大学に保存している.(明治時代にこの像は修理されたがそのとき修理の手をくだす前に像の頭部を型にとったものが東京の芸大に保存されている。)

それなら保存している修理の前顔型を公開すればこそ顔成形に対する疑心が晴れるでしょう.

木造半連像成形理由公開すると

韓国人たちがたくさん尋ねる広隆寺! こちらへ行く目的はただ一種類日本国宝第1号木造弥勒菩薩半連像を見に行くためだ. この仏像は知られたとおり古代韓国人が作った仏像だからもっと切なくて国宝第1号だともっと関心を持つ仏像だ.

このような地上最高の韓国仏像が韓国人の顔で日本人の顔に改造されたという事実を ‘広隆寺’ 案内パンフレットとヌリジブにはただ1行も明らかにしていない. 国内インターネットに上がって来ている文そのどこにもこんな内幕を知らせる内容がない.

弥勒像に関する取材された文の中に済州インターネットニュース ‘日本の中の韓民族取材(3) - 広隆寺’ サラ・チャンコラム記事には “教授の講義に美術を専攻する日本のどの大学生が木材弥勒菩薩半連思惟像を鑑賞している途中あまりにもひかれて駆け付けて抱えこもうとしたが結局仏像の指一つを折る騷動を起こしたと言う” と言う句節が出る.

が話は 1960年京都大学の 20歳学生が起こした事件すなわち弥勒像が非常に美しくてつい自分も分からなく抱えこんでいる途中弥勒像指を折った事実を言う. 日本ではこれを特筆大書した. 残念ながら当時は韓日修交の前だから分からなかったことか韓国言論は報道していない. ただ, 指が折れたこの事件が多いヌリクンの間ですごいことであるように引用と再生産が無限に繰り返されている.

しかし指折れた事件は確実に顔を改造した事件に比べれば取るに足りない事だ. それなのにこの重要な暮すすぐ弥勒像顔改造事実に対して今まで確認もしないことは何を言うか? 今私たちはこれに対して次のように思う.

- 東京芸術大学に倣っておいたという弥勒像の修理の前姿を公開するのが当然だ.

- 修理の前と修理後の姿に対する十分な説明と過程が公開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 この弥勒像外に他の文化遺産もこんなに手を出したのがあったら明らか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 広隆寺は弥勒像の顔成形事実を確かに案内パンフレットに入れなければならない.



【参考文献】

1. <美の秘密…二つの彌勒菩薩像>小原二郎 外 5人, 日本放送出版協会, 1982

2. <日本・アヅア美術探索-(世界美術双書)> 永井信一/中森義宗/小林忠/青柳 , 2006

3. <飛鳥仏にみる日本と朝鮮> 歴史公論. 1976. 6

4. <古代日本と仏教の伝来> 永井信一・田村円澄 外, 雄山閣出版, 1981

5. <半跏像の道> 田村円澄, 学生社, 1983

6. <秘仏開眼> 西村公朝, 淡交社, 1976

7. <半跏思惟像の研究> 田村円澄・黄寿永, 吉川弘文館, 1985

8. <秘仏> 久野建, 学生社, 1978

9. <京都の仏像> 塚本善隆. 淡交社, 1968

10. <定本仏像> 望月信成, 日本放送出版協会, 1971

11. <正倉院の謎> 由水常雄, 学燈社, 2007

12. <半連思惟像> 黄スイミング, 1992, 大源寺

13. <韓国人が作った日本国宝> ホン・ユンギ, 文学世界史, 1995

14. 日本ウィキピデ−オ: http://ja.wikipedia.org 外多数サイト

15. 韓国ネイバー, 次サイト外多数

16. <広隆寺> 広隆寺お寺パンフレット, 32ページ 日本 便利堂,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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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書紀¥"で弥勒像は新羅から送ったことだと したが

自国の歴史にも否定する惨めな倭寇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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