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인이 와서 지어주었군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왜구들 kkkkkkk
그리고 왜국왕의 거주지 실체.

7세기말 倭의 아스카시대 기요미하라 궁 복원모형
일본에서 궁궐에 기와를 사용하는 것은 694년,
694~710년 일본 후지와라쿄(藤原京)의 왜왕이 살던 판개궁(판자로 지붕을 얹었다는 궁이라는 의미) 건물
일본왕 shotoku의 초가집이 있던 장소 그리고 일본서기 기록 출처 - 일본서기
1.仁德 元年 1월 3일(431),仁德이 즉위하였다.
황후를 존중하여皇太后라 하였다. 難波에 室을
만들었는데 高津宮이라 하였다.
궁전은 漆도 하지 않고 나무나 기둥에 장식도
하지 않았으며 "지붕의 茅"의 끝도 절단하여
간추리지 않았다.
2.仁德 4년 3월 21일(434) 이날부터 옷이나
신은 해어져 떨어지게 될 때까지 사용하고
음식물은 썩지 않으면 버리지 아니하여
(中略)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궁전의
울타리는 망가져도 만들지 않고 "지붕의 茅"는
파손되어도 잇지 않았다.(下略)
3.皇極 2년 4월 28일(643), 權宮(臨時居處)에서
옮겨서 飛鳥에 있는 "檜나무 껍질"로 이은
新宮으로 옮겼다.
4.齊明 元年 是冬(655), 飛鳥 所在의 "나무껍질"로
이은 宮이 화재를 입었다. 그래서 飛鳥의 川原宮으로
還去하였다.
5.齊明 元年 10월 13일(655), 小墾田
(奈良縣 高市郡 飛鳥)에 궁궐을 지어
"瓦家"로 하려고 하였다. 深山廣谷에
있는 궁전 건축용 재료는 썩은 것이 많아서
宮을 짓는 것을 중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