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금속활자와 더불어 ‘한민족 3대 발명품’ 중 하나라는 ‘온돌’이 우리의 안방을 넘어 세계를 달구고 있다.
수천년 동안 세계에서 오직 한국인만이 사용해 온 우리 고유의 온돌(구들)이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문화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최근 우리나라가 제안한 온돌 관련 신규 국제표준안 7건이 국제표준기구 기술위원회(ISO/TC) 회원국 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어 국제표준안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온돌의 세계화가 시작된 것이다.
온돌(ondol)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옥스퍼드 사전 등에도 ‘한국의 바닥 난방장치’라고 설명되어 있다.
기원전 5000년쯤의 신석기 유적에서 처음 그 모습을 보이는 온돌은 고조선을 거쳐 서기 4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그려져 있다. 최근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성터에서도 온돌 유적이 발굴돼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임을 또 한 번 입증했다. 중국이 자국 문화의 일부로 편입시키려고 무척 노력할 정도로 온돌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가치는 매우 크다.
온돌은 참으로 놀라운 과학적 발명품이다. 온돌의 원리는 열의 전도를 이용한 복사 난방 방식으로 작동된다. 한번 뜨거워지면 잘 식지 않는 돌의 특성을 이용해 추운 겨울에는 장작불로 돌을 달구어 따뜻하게 지내고 더운 여름에는 돌의 차가운 성질을 이용해 시원하게 생활한 것이 바로 우리 조상의 지혜다.
대체로 온돌을 구성하는 구들과 아궁이는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지만 굴뚝은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북방지역은 열도 빼앗기지 않고 서북풍이 역류하지 않도록 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신 남방지역은 북방지역보다 훨씬 따뜻한 기후로 굴뚝에 대한 의미를 두지 않고 지었다
한국의 온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미국건축가
현대식 서양 난방의 창시자. 미국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
1914년, 라이트는 제국호텔(Imperial Hotel)을 설계하기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호텔 설계를 의뢰한 일본 왕족의 초대를 받고 신기한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그때 라이트는 그 방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안락함을 경험하고 “이 방이 왜 이렇게 안락한가”라고 물었다.
이에 ‘한국식 방(Korean Room)’이라는 답과 함께 그 원리를 설명 듣고 크게 감명 받아, 당시 그가 설계하던 제국호텔의 욕실에 한국의 온돌을 적용했다. 또한, 미국으로 돌아온 후 여러 채의 주택에 한국의 온돌을 적용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고돈 하우스’라는 것이다. 라이트는 ‘고돈 하우스’의 바닥에 온수 파이프를 깔고 그 위를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라이트가 경험한 한옥은 도대체 어떻게 일본에 지어진 것일까? 그 강의를 들은 후 늘 궁금하던 차에 어느날 뜻하지 않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목원대학교 김정동 교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라이트가 경험하고 탄복한 바로 그 집이 경복궁의 동궁인 ‘자선당(資善堂)’이라는 것이 아닌가!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라는 일본인이 1914년 경복궁의 자선당을 일본으로 가져다가 자신의 집에 옮겨 놓고 미술관으로 사용했다.
이 건물은 1923년 발생한 지진으로 불 타고 화강암으로 월대만 남게 되었다. 그 후 이 월대는 그 동안 오쿠라 호텔의 경내에 방치되어 오다가 김정동 교수가 발견하고 1996년 한국으로 반환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라이트의 자서전을 뒤져보면 나온다. 그의 자서전 ‘An Autobiography’에서 세 페이지에 걸쳐 한국의 온돌에 대한 그의 경험과 이에 대한 적용 사례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1914년 겨울, 라이트는 제국호텔 설계를 시작하기 위해 호텔 설계를 의뢰한 도쿄에 있는 ‘바론 오쿠라(Baron Okura)’의 집으로 저녁초대를 받았다.
당시 일본의 보편적인 난방은 ‘히바치(hibachi)’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흰 재 밑에 몇 개의 숯 막대를 채워서 둥근 그릇에 담아 방바닥에 두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이 그 주변에 둘러 앉아 이따금씩 그 위에 잠깐 손을 올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추위를 쫓았다. 그러나 이러한 난방 방식은 항상 만족스럽지 못했다.
라이트 일행은 추위에 떨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쿠라의 저녁초대에 응했다. 오쿠라는 일본 황궁 주변에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저녁식사 장소는 너무 추워 식사를 할 수 없어서 라이트는 겨우 먹는 시늉만 했고, 저녁식사 후, 라이트는 “한국식 방 (Korean room)”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안내 되었다.
이 방은 약 12피이트에 24피이트(약 3.6미터에 7.3미터) 넓이와 7내지 8피이트(약 2.1내지 2.4미터)의 높이를 가지고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고, 벽은 아주 평평했으며 연노랑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날씨가 바뀐 것이다.
갑자기 봄이 된 듯 했다. 라이트 일행의 몸은 따뜻해져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어디에도 난방을 위한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난방이 아니라 기후가 변한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자연 친화적인 난방이 아닌가! 오쿠라는 바닥 밑에서 불을 넣는 온돌의 원리를 설명했다. 밑으로부터의 난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쾌적했다.
이를 경험한 라이트는 즉시 제국호텔의 욕실 바닥에 전기를 이용한 온돌을 적용했다. 이렇게 함으로서 타일로 된 바닥은 항상 따뜻하게 되었다. 따뜻한 욕실 바닥을 맨발로 들어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보기 흉한 모든 전기 난방기들은 모두 제거될 수 있었다. 또한 바닥을 따뜻하게 함으로서 보다 낮은 온도로 보다 쾌적한 난방이 가능해졌다. 인공적인 공간에 보다 건강한 자연적인 기후가 만들어진 것이다.
라이트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 그 후 그가 설계한 30채 이상의 건축물에 ‘개량 온돌’을 적용했다. 라이트는 바닥을 데우는 난방방식을 가장 이상적인 난방방식으로 보고 태양열보다 좋은 난방이라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