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 유래
최명환 |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자원센터 연구교수
대표적인 해초류로 우리나라 서남 연안에서 널리 양식되고 있는 김에 대한 문헌상 기록과 함께, 전남 광양에서 처음으로 편발을 만들어 김을 양식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김여익의 이야기와 ‘김’이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을 알아보자.
- 서남 연안에서 널리 양식되는 보라털과의 해초 ‘김’-
‘김’은 보라털과의 해초이다. 몸의 길이는 30cm 정도이며, 가 장자리는 밋밋하나 주름이 져 있다. 검은 자주색 또는 붉은 자 주색을 띠고 바닷속 바위에 이끼처럼 붙어 자라는데, 우리나라 의 경우 서남 연안에서 많이 나며 널리 양식한다.
김을 지칭하는 다른 말로 감태(甘苔)?청태(靑苔)?해의(海衣)?석태(石苔) 등이 있다. 김에 대한 문헌상 기록으로는 《삼 국유사》가 최초이며, 신라시대부터 김을 먹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후로는 조선시대 초기 경상남도 하동에서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경상도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 승람》에는 전남 광양에서 토산물로 채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 문헌상 기록은 ‘삼국유사’가 최초 -
경상남도 하동지역의 이야기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280 년 전 한 할머니가 섬진강 어구에서 조개를 채취하고 있던 중 에 김을 먹어 보았더니 의외로 맛이 좋아, 그 후 대나무를 물속 에 박아 세워 인공으로 김을 착생시킨 데서 김 양식이 시작되었 다고 한다. 또한 정문기(鄭文基)의 《조선의 수산》에는 200여 년 전 전라남도 완도에서 ‘방렴(防廉)’이라는 어구에 김이 착상한 것을 발견하고는 편발을 만들어 양식한데서 비롯되었다고 기록 하고 있다. 한편, 전라남도 광양에서는 ‘김시식지(전라남도기념 물113호)와 함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김 양식이 시작되 었다고 한다. 김 양식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해의(海衣)라고 부 르던 자연산 돌김[石苔] 뿐이었다. 흔히 이 돌김을 양식하게 된 것이 일본 사람들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360여 년 전 광양 (光陽)의 김씨(金氏) 성을 가진 사람이 양식하는 방법을 개발했 고, 그렇기 때문에 ‘해의’를 그 사람의 성을 따서 ‘김’이라 불렀 다고 한다.
- 광양 김씨 집안에 둘째 아들로 태어난 김여익 -
광양 김씨 집안에 의하면, 1608년 8월 1일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몽해리에서 김식(金湜)의 다섯 아들 중 둘째 아들로 태 어난 김여익(金汝翼 : 1606~1686)이라는 분이 31세 되던 해에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났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그는 의병 을 모아 서울로 가던 중 청주(淸州)에 이르렀을 때 이미 왕이 청 나라에 항복했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 왔다. 고 향에 되돌아온 그는 나라가 망한 지경에 선조들을 볼 낯이 없다 며 고향을 떠나 전라남도 보성(寶城)의 회천(會泉 : 당시의 지 명은 장흥도호부의 동백동)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3여 년을 머물렀다. 회천에서 머무르는 동안 광양의 태인도(太仁島) 가 숨어 살만한 곳이란 이야기를 듣고 35세 되던 3월(1643년) 모든 가족들을 이끌고 태인도로 들어가 터전을 잡았다.
- 태인도에서 해의를 발견, 양식법과 건조법을 개발하다. -
그는 태인도에서 20여 년을 살다가 55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54년 뒤에 세운 비문에 ‘시식해의(始殖海衣)’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고 한다. 이 비문은 당시 광양현감으 로 있던 ‘허담(許?)’이라는 분이 쓴 것으로 현재 비는 없어졌 으나, 그 비문이 남아 전해오고 있다. 이 비문을 쓴 것이 갑오년 (甲傲年)이므로 1714년(肅宗40)에 해당한다.
태인도에 사는 여익의 후손들에 의해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 하면, 하루는 그가 섬 앞의 바다에 나갔는데 바닷가에 떠밀려 온 밤나무 가지에 그동안 보지 못한 해초가 붙어 있었다. 이를 뜯어 맛을 보니 부드럽고 단맛이 나므로 이를 가져와 어부들에 게 물어 보았다. 어부들은 완도(莞島) 등지 바깥섬 돌에 붙어 자라는 해의 같다고 말을 해 주었다. 이듬해 가을 밤나무와 소 나무, 대나무 등의 가지를 베어다 마을 앞 애기섬(兒島) 주변 개펄에 꽂아놓고 관찰을 하였다. 생각했던 것처럼 해의가 붙어 자랐다. 그는 해의를 키우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해의와 유사한 자연산 감태(甘苔)?매생이?파래 등은 이미 건조 방법 이 개발되어 있었을 때이므로, 해의를 건조하는 방법에 대해서 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짚을 엮어서 ‘발장’을 만들고, 그 위에 해의를 고루 펴서 말린 뒤에 떼어내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 ‘광양 땅에 사는 김씨가 만든 음식’에서 ‘김’이라는 이름 유래 -
이처럼 해의의 양식법과 건조법을 개발, 태인도 주민들은 앞 을 다투어 이를 양식하고 해의를 하동(河東) 시장에 내다 팔았 다. 이곳 사람들은 처음 보는 해산물이라 그 이름을 몰라 ‘태인 도 김씨가 만든 것’이라고 부르다가 몇 년 뒤에는 ‘김’이라고만 부르고 한자로는 소해의(小海衣)라고 썼다고 한다.
또한 광양 김은 왕실에 바치는 특산물로 인기가 높았는데, 하 루는 임금이 광양 김을 반찬삼아 수라를 맛있게 드신 후 음식 의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중 한 신하가 “광양 땅에 사는 김 아무개가 만든 음식입니다.”라고 아뢰자, 임금이 “그럼 앞으로 이 바다풀을 그 사람의 성을 따서 김으로 부르도 록 하여라.”라고 하여 김이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