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1월 미국·중국·영국 등 3대 연합국 수뇌들은 카이로 회담에서 일본 패전 후 연합국정책을 담은 ‘카이로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고 일본이 1894년 청·일전쟁으로 빼앗은 타이완과 팽호도,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빼앗은 모든 영토, 폭력과 탐욕으로 빼앗은 모든 다른 지역에서 일본을 축출할 것을 약속했다.
이어서 연합국은 1945년 7월26일 포츠담에서 카이로선언의 모든 조항의 이행과, 일본의 주권은 혼슈·홋카이도·규슈·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될 것임을 공약했다.
일본은 1945년 8월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9월2일 항복문서에 조인하면서 포츠담선언의 내용을 일본정부와 그 승계자가 성실히 수행할 것을 확약했다. 이에 카이로선언은 포츠담선언과 일본 항복문서를 통해 일본에 구속력을 갖게 됐다.
연합국은 1945년 9월2일 국제법상의 기관으로서 연합국최고사령부(SCAP)를 설치, 구 일본제국이 1894년 1월1일 이후 빼앗은 모든 영토를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연합국은 한반도를 일본에서 제외해 반환시키고,1946년 1월29일에는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 제677호 제3항에서 제주도·울릉도·독도를 한국영토로 판정, 주한 미군정에 이관시켰다. 한국이 독립하면 즉각 인계인수하도록 한 것이다(지도 (1) 참고).
연합국최고사령부는 1946년 6월22일 SCAPIN 제1033호를 발표, 독도와 그 12해리 수역에 일본 어부들의 접근을 막으며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거듭 명백히 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그해 12월12일 국제연합 총회는 당시의 영토(독도 포함)와 주권을 승인했다. 독도도 다른 영토와 함께 대한민국 주권에 속한 영토로 공인받은 것이다.
2.‘연합국의 구일본 영토처리에 관한 합의서’-독도는 한국 영토
연합국은 일본을 1952년 독립시키기로 하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과 강화조약을 체결키로 했다.1950년에는 강화조약의 ‘준비작업’으로 ‘연합국의 구일본 영토처리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 합의했다. 이것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본문 해석이 모호하거나, 차이가 발생할 경우 지침(조약법에 대한 빈협정)이 되므로 매우 중요한 합의였다.
‘연합국의…합의서’는 제3조에서 “연합국은 대한민국에 한반도와 그 주변의 한국 섬들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이양하기로 합의했으며, 그 섬에는 제주도·거문도·울릉도·독도를 포함한다.”고 규정했다(지도 (2) 참조). 만일 강화조약 본문에 모호한 점이 생기면 준비작업인 이 합의서가 해석 기준이 되는 것이다.
연합국은 이미 1946 년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분명히 했으며 1952 년 까지 영토가 없었던 것은
일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