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고다마"라면 신칸센의 최하위 열차로 인지되고 있습니다만, 사실 이 이름 자체는 도카이도선 특급열차의 간판이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2차대전 이전부터 다니던 국제열차급 특급인 전통의 "후지(富士)"나 "사쿠라(櫻)" 도 유명하지만 이 둘은 증기기관 시절의 간판이고, 전후의 가장 빠른 전동열차로서는 "고다마"를 꼽았습니다. 이 이름은 흔히 신칸센의 데뷔와 함께 등장한 것으로 흔히 알지만, 사실 이 이름을 도카이도선 특급의 위상에 만든 열차는 1958년에 데뷔했던 재래線用의 전기동차였습니다. 어찌 본다면 이 열차야말로 현재의 일본철도의 정체성을 결정지은 마스터피스라 할만한 물건입니다.
고다마의 개발은 1956년의 도카이도 본선의 전기화가 완료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초 도카이도선의 전기화는 연합군 군정 하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아무래도 미국에서는 디젤 중심으로 철도가 재편되었기 때문에 전기화에는 매우 부정적이었을 뿐더러, 심지어는 전기화 공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려 했던 경향도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서 일본 관료들은 상당한 돈이 들어갈 전기화 공사를 살금살금 추진했는데, 1956년에 마지막 남은 마이바라(米原)~쿄토 간이 완공되면서 동서 양방향에서 진행되어 오던 전기화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다만, 전기화를 해야 한다고 박박 우기면서 전기화를 한 것까진 좋았지만, 막상 여기에서 어떤 차량을 굴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국철 엔지니어나 경영자들은 별로 깊게 생각하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기존의 전기기관차를 그냥 굴렸다고 합니다. 그것 만으로도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역시 새 술엔 새 그릇이 필요했기 때문에 운용에 대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논쟁은 토카이도 신칸센과도 이어지는 부분이었던 만큼, 상당히 첨예한 분위기로 흘렀는데, 일단 보수파에 가까운 견해였던 기관차 지지파와 시마 히데오(島秀雄)로 대표되는 전동차파로 갈라져 진행이 되었습니다.
일단, 기관차 쪽은 이미 보유하고 있던 기관차나 객차들을 유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용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당시의 전동차는 객차 내부의 승차감이나 정숙성에서 문제가 많으며, 신뢰성 면에서 그리 좋은 물건이 아니어서 500km에 달하는 운행구간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며 성능도 부족하므로 따라서 기관차 견인 열차가 주력이 되어야 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동차 쪽은 기관차로는 고속화/고성능화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동차 위주로 재편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전자가 사실상의 상식적인 발상이었고, 후자는 사실 그리 탄력을 받기 좋은 위치는 아니었지만, 이 문제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한 것은 세 개의 테스트 덕이었습니다. 기관차의 고속화 시험에서, EH10型 기관차로 124km/h까지 내 본 것입니다. 이정도 고속을 밟다 보니 승차감에도 문제가 생길 정도고, 무엇보다 노반(路盤)에 많은 피로를 주었습니다. 둘째는, 당시 개발되었던 モハ90계(현재의 101계)의 장거리 테스트였습니다. 이미 장거리 테스트 자체는 쇼난전차에 의해서 전동차도 100km 이상 다니는데 별 문제가 없음을 입증했지만, 이 테스트를 통해서 더 본격적인 실증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신성능 전동차는 장비 개조와 기어비 변경을 통해서 최고속도 135km/h를 마크하는 기염을 토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다큐의 3000型 SE차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철도기술연구소와 협력해서 개발한 전동차였는데, 고속 테스트를 할 곳이 없어서 도카이도선의 시험선구를 이용해 테스트를 하였습니다. 이 때 테스트에서 145km/h를 내어, 당시 일본 국내 기록을 완전히 갱신해 버렸습니다.
이 세 테스트 결과는 동차파를 상당히 고무시켰고, "고다마"型동차 モハ20型의 개발에도 상당한 힘을 실어주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十河총재나 島기사장의 광궤 신선 구상, 이후에 말하는 신칸센을 밀어붙이는데에 있어서도 상당한 기반이 되었고 말입니다.
일단, 착수에 들어가면서 기술적인 베이스는 차근차근 구축되어 갔습니다. 일단 동력기기 등은 モハ90계를 베이스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차량은 직류 전용이었습니다. 전동기는 モハ90계와 동일한 100kW 정격의(지금 기준과는 조금 다른 숫자로, 지금이라면 더 낮은 출력으로 기재되오) MT46A型이라는 물건이었고, 기어비를 다르게 하여 최고속도는 110km/h, 향후 120km/h 증속도 가능하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기록 최고속도는 163km/h로, 당대 최고속 기록을 갱신했었기도 하지만, 실제 영업속도는 상기대로 110km/h 리미트였습니다. 제동 부분에 대해서는 디스크 브레이크를 탑재하였고, 제어방식은 이 당시의 차량들이 다 그렇듯이 저항제어와 계자 제어를 혼합한 방식이었습니다. 차량의 길이는 당시 표준보다 좀 더 긴 20m(표준은 19.5m), 다만 선두차는 21m로 늘렸습니다. 차체 폭은 2946mm로 한계까지 잡아 늘렸고, 중간에 약간의 경사를 주어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확대하였습니다.
외형상으로 독특한 것은, 당시로서는 꽤 첨단에 가까운 본넷型의 선두부를 취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본넷型선두부를 가진 동차라는 건 고다마가 최초는 아니기도 하고,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디자인 경향 격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국식 2축식 객차를 연결한 경량 동차인(그러나 승차감 문제로 실패) 1955년 제작의 GM Aerotrain 같은 동차나( http://www.museumoftransport.org/images/aerotrain.jpg ), Tc型 PP운전을 하는 1957년 데뷔의 Trans Europe Express(TEE) 열차( http://uwacadweb.uwyo.edu/RGodby/trains/Northlander/TEE/Ram%20c.jpg )를 보면 독특하고 잘 리파인 되어 있되, 완전히 독창적인 컨셉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다마 동차의 이 디자인은 어찌되었건 대중적으로 상당한 호소력을 가지긴 했었고, 현재에도 이 "본넷型선두부"는 팬이 많습니다.
이런 디자인은 외형적인 참신함도 있지만, 실용적인 이유도 상당합니다. 우선, 운전대를 높히고, 안전공간을 확보하기 유리하다는 점이 있었습니다. 高운전대에 대해서 일본은 특급형에 대해서 상당히 집착하는 편인데, 통표폐색식(通票閉塞式)에서 쓰기 어렵고, 시야가 좁다는 부담은 있지만, 운전자로서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먼 곳을 볼 경우에 좋으며, 충돌시에 사람이 바로 당하는 일이 줄어든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또, 본넷을 둠으로 인해 그만큼의 충돌 발생시 안전거리가 생기고, 이로 인해서 고속에서도 생존성을 조금 더 높힐 수 있다는 점을 어필(..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할 수 있었습니다. 또, 차량 소음의 중요한 원천인 MG(전동발전기)와 컴프레서를 본넷에 옮겨둠으로 인해 객실의 소음을 경감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었고, 이들의 정비성도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긴 본넷을 두는 방식은 없어지기는 했지만, 배치는 후속 차량에도 이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고다마는 그 외에 자질구레한 혁신들이 더 붙습니다. 일단 차체 구조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인 프레임을 대거 생략하여, 세미 모노코크 구조로 설계를 하였습니다. 1950년대 이전에는, 강재로 만든 프레임을 통해서 필요한 구조강도를 모두 충족하고, 그 위에 지붕이나 벽체를 장식물 처럼 올려놓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화차랑 별 차이가 없는 구조라면 구조인데, 이 방식은 强度面에서 매우 유리하다는 강점이 있지만 중량이 매우 무거워지는 문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실제, 재래식으로 만들어진 미국 풀먼사제 객차들은 객차가 너무 무거워져서 객차가 3축 보기를 쓰는 경우까지 나온 바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경량화를 위해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객차의 각 구조부분이 모두 강도를 분담할 수 있게 해서, 프레임을 가볍고 경량화 하도록 만든 세미 모노코크 구조를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이때 유럽, 아마도 스위스에서 이 기술을 배워 와서 1950년에 ナハ10型 이라는 시제차로 실증을 하였는데, 최초의 영업용 차량에 적용하는 것은 이 モハ20계 "고다마"가 최초였다고 합니다.
또, 최초로 고정 창문을 설치한 열차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전까지의 객차나 동차들은 창문을 열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서, 환기와 냉방을 창문에 의존했었습니다. 실내 냉방은 당연히 선풍기에 의존하는 방식이었고, 아주 고급 열차에나 에어컨을 설치했었습니다. 창문을 열 수 있다는건 매력적이긴 하지만, 대신 사고 위험도 있고, 창틀 사이로 물이 새들어 가는 등의 이유로 인해 부식이나 고장을 초래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또, 소음 차단 면에서도 단점이 많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고다마는 과감하게 모조리 고정 2중 창문을 만들어 붙이고, 모든 차량에 에어컨을 설치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모험이긴 했는데, 일단 성공하긴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차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바닥 소음을 막기 위한 특수한 구조를 채용하였다고 합니다. 이게 아마 モハ20계/151계가 시작이자 끝인 방식이라고 하는데, 이른바 2중 바닥 구조라고 해서 방송국 스튜디오에 쓰이는 방식을 취했다고 합니다. 바닥에 고무 바를 대어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耐水합판과 코르크版, 그리고 비닐 바닥재를 설치하여 中孔層을 만든 다음 여기에 유리섬유를 충진하는 방식인데, 이를 통해서 단열과 소음 차단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소음은 확실히 잡았고, 단열 효과(바닥에서 올라오는 열-_-)도 달성하는데 성공하지만, 이후에는 이런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예가 없다고 합니다. 화재시 큰일이 되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나...-_-
그 외에 풍동 실험을 통해서 만든 쿨러 실외기 케이스나, 자동문 설치, 차량 중간에 설치되어 있는 입환작업용의 관통창 및 간이제어기(45km/h제한으로 역행과 브레이킹을 할 수 있다고 하오), 라디오 중계 안테나 설치(...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무도 안할 짓이지만) 등의 기술적인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영업적인 면에서, 고다마 호 특급은 좀 정체가 애매한 "비즈니스 특급"이라는 이름을 걸고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전통의 객차 특급에 비해서 거주성이 좋지 못하다는 점도 있고(바닥 소음이나 팬터 소음, 승차감 같은), 그때까지 전동차로는 "준급(準急;보통 보다 위, 급행 보다는 아래의 등급. 현재는 일본에서도 몇 대 안남은 등급)" 이상의 영업사례가 없었기에 좀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었으며, 또 기존 기관차 견인 특급열차를 기반으로 하는 기관차 지지파들의 반대를 피해가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도달시간 면에서는 당대의 다른 특급보다 1시간 정도 빠른 6시간 30분을 끊었다고 합니다. 이 것 자체의 파급효과도 좀 있긴 하지만, 국철 내부에서도 상당한 메리트가 있었는데, 도쿄-오사카를 하루 안에 왕복시킬 수 있게 되어서 확보해야 하는 차량 수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량의 구성은 4량 1유니트 방식으로, クハ26型, モハ20型(팬터그래프 부착), モハシ21型, サロ25型으로 구성이 1개의 유니트를 구성하고, 이 유니트 2개를 연결하여 8량 1편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전에 올렸던 차량 형식명 규칙을 보았다면 따로 설명을 안봐도 되겠지만.... Tc-M"-M-T 의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T차는 2등차(현재의 그린車)로 구성되어 있고, 앞서 이야기했던 입환용의 간이제어기와 관통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 M차인 モハシ21型은, 간이식당차가 절반, 나머지 절반은 보통실로 되어 있는 좀 독특한 구조였습니다. 좌석은 모두 2+2 배열로 되어 있고, 크로스시트로 되어 있습니다.
이후 이 동차가 "츠바메(제비)"와 "하토(비둘기)" 라는 특급에도 채용되고, 차량 역시 12량 편성으로 확대되면서, 당시의 차량 명칭 정비와 함께 151계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증비 과정에서 특이한 것은, 대량의 2등차를 연결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중간에 2등차를 연결한 차량과, 한쪽 Tc를 포함해 한쪽으로 몰아놓은 차량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전자는 8량 편성 차를 개조한 것으로 일찌감치 철수시켰던 모양이고, 이후 151계 동차라고 하면 한쪽 선두차가 2등차인 "クロ151"型이 달린 그 녀석을 주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건 그리 특별한게 없고(2등 동력차 추가, 半食半客의 モハシ150型 1兩이 빠지고, 완전한 식당차인 サシ151계가 추가된 정도), 저 2등 선두차 クロ151型 정도가 매우 눈에 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녀석이야 말로 당시 최고의 럭셔리 카(객차를 제외하면)가 아닐까 싶은 물건입니다. 첨부한 畵像중 아래 것을 보면 1+1좌석인 걸 알 수 있는데, 이게 그 クロ151입니다.
좌석은 그야말로 이발소 의자를 넘는 럭셔리 좌석인데, 창쪽으로 45도 돌릴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리클라이닝도 가능하고, 종아리 받침대도 달려있는 물건입니다. 승무원에게 이야기를 하면 전화기를 가져다 주는데, 그걸 써서 자리에서 전화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 칸을 "팔러 카(Parlor Car; 응접실 차)"라고 부르는데, 저 좌석을 쓰려면 승차권에 특급권까지 사고서도, 별도로 팔러 카 요금까지 냈어야 한다고 합니다. 당시 요금이 1,800엔이라는데, 지금으로 환산하면 1만엔이라던가.-_- 워낙 비싸다보니 이후 1+2인가 2+2 좌석으로 개조당해 없어졌다고 합니다.
또 クロ151에는 운전석 뒤쪽에 컴파트먼트가 1실 있었다고 합니다. 4인용 좌석에, 테이블까지 비치되어 있는 좌석인데, 이게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쓰는 사람은 관료들이나 국회의원 같은 "귀빈" 한정이었다던가... 일본은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에 죽치고 있는게 아니라, 뻔질나게 지역구 가서 얼굴 비치고 다녀야 한다고 하는데(우리도 비슷하긴 합니다), 당시로서는 이 컴파트먼트가 상당히 유용했었다는 모양입니다.
생산량은 モハ20계로는 8량짜리 3편성이 생산된 이래, 1963년까지 151계 전체 151량이 제조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조에츠(上越)선 특급 "토키" 용으로 동력차 편성비 등이 조정된 161계로 9량이 만들어지고, 1965년 이후에는 181계로 모두 개조되거나, 신조되어 총 합계는 230량이라고 합니다. 181계는 고출력 모터로의 교체, 제어기 교체 등이 부수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일본 철도에서는 가히 시대의 명차 대접을 받는 물건에 모형도 의외로 여럿 나온 바 있는데, 정작 차량 자체는 국철 말기에 이리저리 사용되고 개조되거나 폐차되거나 하여 선두차 2량만 현재 남아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재래線用차량이다 보니 신칸센의 산파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칸센에 치이고 운영난에 밟혀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만, 그야말로 세월무상이군요…
P.S.1:
이 녀석의 파생형 161계는 1편성과 예비차량을 만든 직후 181계가 등장해서 그 존재 의미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161계 전부가 순식간에 181계로 개조되어, 형식 폐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신성능 전동차 최초의 계열 폐지였다고 하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