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멀티플레이어라는 말이 굉장히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히딩크는 네덜란드 식의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의
토털 사커를 추구했고..
스쿼드의 융통성을 위해 선수 중 몇몇은
복수의 포지션도 소화 가능하도록 대비했는데..
말그대로 멀티 플레이어다..
당시에는 이것이 무슨 전가의 보도인양..
혹은 히딩크의 마법의 비결인 것처럼..
선전보도되곤 했었다..
일본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제목으로 하고..
갑자기 무슨 멀티플레이어에 대한 이야기냐..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줄로 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본 축구에는 이런 멀티플레이어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은 고도의 전문화, 분업화된 회사 조직문화로..
경계가 매우 분명한 사회이다..
서양 사람이 본 일본인에 대한 저서 제목인 “국화와 칼”처럼..
일본 사회는 각자가 맡은 지위와 책임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존재한다.
마치 깔로 쪼갠 것처럼...
일본어로 “이치닌마에” 즉 1인분의 몫으로..
각자 자기 포지션에서의 임무가 전문화되어서..
딱 자기가 맡은 부분만 책임지고..
설령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해서 일이 어긋나게 되어도..
일단 자기가 맡은 몫을 실수없이 했으면..
그것으로 자신은 OK이고..
또한 주위에서도 그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혹독하다 싶을 정도로.. 냉혹하게 책임을 묻는데..
이런 것이 소위 “전범찾기” 라고 하는 일종의 독특한 일본 문화이다..
물론 이런 문화적, 심리적인 분위기는..
축구라고 하는 스포츠에도 깊게 배어 있다..
비록 미국에서 Baseball을 배웠지만..
일본의 문화에 맞게 독특한 “야큐”라고 하는 스포츠를 형성했듯이...
잉글랜드에서 기원한 서양의 축구를..
일본은 그들 식으로 해석한 축구를 해나가고 있다.
따라서 일본 축구에서도 그들 나름대로..
추구하고 싶은 이상향..
자신들만의 축구에 대한 미의식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짧고 간결한 패스, 패스를 이어서 결정하는 축구..
팀이 하나의 조직이라면..
그에 연동해서.. 팀원들이 하나의 조직체처럼..
일사분란하게 함께 움직이는 축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과거 막부시절부터
사, 농, 공, 상의 위계질서에 의해 통제되는 엄격한 사회였다..
물론 조선 역시 사, 농, 공, 상의 순으로 신분질서가 있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문제는 일본에서의 ‘사’는 무사계급.. 즉 칼을 들고 군림하는 사무라이였다면..
조선에서의 ‘사’는 선비.. 즉 붓으로 글로 통치하는 문반 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막부시절..
무사들이 언제나 칼을 차고 다녔고..
만일 그들에게 물건을 납품하는 상인들이나 공인들이
그들을 속이거나 능멸했을 경우..
차고 있던 칼로서 즉결처분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그 권리를 행사하는 무사는 드물었지만..
칼을 든 무사앞에서 농민과 상민들은 절대 복종을 강요당해야 했다..
일본의 장인기술이 철저한 이유에는..
일본의 제품이 정교하고 불량품이 적은 데에는..
분명 그런 이유도 존재한다..
생각해보라.. 자신의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감히 무사들에게 바치는 공예품을 대충 만들 수 있겠는가..
비록 2차대전이 종료되고 나서..
군국주의적인 색채는 많이 사라졌지만..
조직의 질서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회 조직기제는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것이 바로 회사형 조직이다..
사장을 정점으로..
부장, 과장, 직원들이
하나의 조직 위계질서를 이루어 움직이는 모습은..
단지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
과거의 무사가.. 지금은 회장, 혹은 사장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일본 축구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으로 4-4-2의 형태를..
마치 바둑판의 포진과 같이 유지하면서
하나의 조직체처럼 움직인다..
그 유기적인 움직임의 추구가
패스를 중심으로 팀이 움직이는 축구미학으로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일본 축구의 특징이 포지션의 전문화와 철저한 분업이라는 것은
이미 위에서부터 누차 말해 온 것이지만..
그 특징이 일본 축구에게 분명한 장점으로도 작용하지만..
또한 단점, 한계로도 존재한다는 점을 이하에서 설명하고 싶다.
우선 일본 축구의 장점부터 말해보겠다..
한국 축구에 비해, 일본 축구의 가장 큰 장점은..
포지션의 대형과 간격 유지가 철저하다는 것에 있다.
한마디로 한국이 임기응변의 축구라면,
일본은 철저한 계획적인 플랜에 의한 축구이다.
물론 일본 축구의 공격 형태에서 가장 득점에 크게 의존하는 것은..
역시 세트 플레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일본과의 대결에서 명심해야할 것은..
차라리 슛을 허용할 지언정,
골 에어리어 부근에서의 파울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쉽게 코너킥 찬스를 주는 일도 피해야 하고..
이것만 확실히 해도, 일본 득점력의 절반을 지워버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일본 득점의 절반 이상은 세트 플레이에 의한 득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세트 플레이의 찬스가 나오지 않을때..
기본적으로 일본이 전개하는 공격 방식은..
미들에서의 짧은 패스를 기본으로 정면을 노리다가..
수비가 가운데로 집중하면..
패스를 사이드로 벌려서
짤라먹는 땅볼 크로스에 이은 슛,
혹은 다이렉트 크로스에 이은 헤딩을 노리는 형식이 그 기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본 선수들이 결코 개인 능력으로 드리블을 걸어..
돌파를 시도하는 횟수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무리한 드리블을 걸어 돌파하다가
공을 뺏기게 되면..
그 선수 자신의 책임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며..
(전범취급 받는다..-_-)
또한 패스를 통해 찬스를 노리는 것보다..
무리한 드리블은
체력적인 부담도 커지므로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 플레이는 될 수 있으면 자제하는 반면..
그 활동력의 부족문제를
선수들 간의 간격과 포진의 일정함..
위치선정의 정확성으로 커버한다.
예를 들어 한 선수가 공을 잡으면..
그 주위에 있는 선수들은
공을 잡은 선수가 패스를 내주기 편한 방향으로
이동해서 볼을 받아주는데..
이것은 일본 축구의 최대의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이것은 한국 축구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측면 돌파를 시도한다고 하면..
수비수가 한명 혹은 두명이 그 선수를 둘러싼다..
그 경우 같이 공격하는 동료가 최소 한 명 혹은 그 이상이..
볼을 가진 동료에게 신속히 접근해서 볼을 받아주고..
한편 볼을 넘겨준 선수는
재빨리 다시 공을 받기 쉬운 공간 장소로 이동해주면서..
상대진영을 허물어야 하는데..
(결국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면..결과적으로 2대 1패스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공을 가진 선수가 있으면..
이렇게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 벗어나기 보다는..
그 선수 혼자서 어떻게든 해결해 나오도록
멍하니 서서 구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즉.. 피상적으로 경기를 보는 사람은
일본의 패싱 능력이 한국보다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일본의 패싱 능력이 한국보다 좋은 것이 아니라..
패스 받기 좋은 공간으로 이동해서 받아주는 움직임이 좋은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그것이 적기 때문에..
공격하는 선수가 패스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있는 공간도.. 선수도..
선택권이 매우 제약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팀의 경기를 보면서..
공을 잡고 있는 선수가 나라고 가정하고서..
패스해줄 선수를 찾아도..
TV화면상으로 보기에도
있어야 할 공간에 아군이 없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백패스를 돌려야 하고..
경기가 답답해지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목격했을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일본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공격을 할때나 수비를 할때나..
4-4-2의 형태를 일정하게 간격 유지하도록
경기 내내 신경쓰고..
공을 잡은 아군이 있을 경우..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 공을 잡은 선수를
도와주기 위한 움직임을 많이 보여줌으로써..
패스가 원활하게 돌수 있도록 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경기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본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보다..
패스의 능력이 좋다.. 라고 착각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패스가 이어지지 않고 답답해지는 경기가 되는 이유는..
선수가 패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변에서 볼 가진 동료를 도와주려는 움직임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패스 축구로 쉽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을..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축구로..
체력은 체력대로 소모하면서..
찬스는 찬스대로 만들 수 없는 비효율적인 축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 축구의 문제점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일본 축구의 장점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런 일본 축구의 단점도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일본의 가장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였던..
나카타 히데토시는..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서..
결국 1대 1에서의 개인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절대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일본 축구 선수중..
가장 오랫동안 유럽에서 활약하면서..
세계축구의 흐름을 직접 경험한 베테랑 선수가..
자신의 선수생활이 거의 끝나갈 때쯤에서야..
축구의 진실에 비로소 접근했다고 할 수 있다..
패스를 통해 잇는 축구로는..
강팀을 상대로 어느 정도 내용상 대등하게 맞서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전시 효과로는 가능할 것이지만..
공격시에..득점을 하기위한 마지막 최후의 저지선을 뚫기 위해서는..
결국 1대 1에서 개인 능력이 없이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축구의 경우..
1대 1에서의 개인 능력이 높았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공격수들이 그런 도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일본 축구가 아시아의 보통 상대들에게..
비교적 안정적인 성적을 내는 이유는..
단지 패스를 잇는 축구만으로..
개인기에 의한 돌파가 아니어도..
그것만으로 상대에게서 득점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 두 번의 세트 플레이의 찬스를 살리는 것만으로도..
다만.. 세계적인 레벨의 팀들에게서는
일본의 패스를 잇는 축구가..
아시아의 팀들에게서와 같이 경쟁력의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그들은 일본 이상의 패스 능력,
공간 이해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에 더하여..
1대 1에서의 개인 능력,
혹은 체격, 높이, 체력, 골 결정력 등 모든 요소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강팀을 이길 수 있는 요소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고..
그럴 경우 일본은 특징이 없는 매우 평범한 팀으로..
비춰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강팀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일본 팀은..
뚜렷한 특징이나 무기가 없는 개성없는 팀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축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즉..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장점은 그대로 유지하되,
상대가 가진 장점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ACL에서 감바 오사카가 서울을 상대하는 방식에서..
일본 클럽인 감바도..
전방에서의 압박을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 예전의 J클럽들에게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이었고..
오히려 감바가 적절한 압박과 미들에서의 잔 패스보다는..
역습에 이어 최전방의 레안드로에게 단순하게 연결해서..
쉽게 득점을 올렸고..
그에 반해 서울쪽이.. 지나치게 패스를 통해 만들어가는 일정한 패턴만을..
답답하게 고집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으며..
결국 그 날의 결과 또한 감바 쪽의 승리가 되고 말았는데..
이것은 일본 축구도 기존의 축구 스타일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날의 축구는 감바가 기존의 K의 팀들이 사용하던 수법을 사용했다면..
서울은 오히려 기존의 J의 클럽들이 자주 사용하던 식으로..
게임을 전개하였기 때문이다.
서울의 플레이 스타일을 잘 연구하고.. 그 약점을 발견한 후..
K의 방식을 잘 이용한 감바의 작전의 승리였던 것이다.
또한 한국 축구의 목표가
절대 일본 축구가 되어서도 안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비록 일본의 축구에서 한국 축구에서 부족한 부분을 일부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참고로 개선했을때.. 발전이 있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세계에는 우리가 표본으로 삼아야 할 보다 많은 우수한 팀들이 존재하고..
또 일본 축구자체에 그 장점 못지 않은 단점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적극성과 공격적인 모습 속에..
좀더 전술적인 움직임을 통한
형태를 만들어가는 공격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축구도 지금보다 한단계 더 올라서게 될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장황하지만..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_^
사커라인 knvb11글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