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별칭은 ‘행복한 스케이터’이다. 김세열 코치가 김연아의 전담코치 자리를 지금의 브라이언 오서 코치에게 넘기면서 오서 코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연아를 행복한 스케이터로 만들어주세요”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이 별칭의 시작이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담대함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김연아 선수는 그동안 ‘행복한 스케이터’ 혹은 ‘감동을 주는 스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아직까지는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다”고 한다.
2004년 14살의 나이로 갑자기 세계 피계무대에 등장해 한국 피겨, 아니 세계 피겨의 역사를 혼자서 새로 쓰고 있는 김연아 선수의 지난날을 <시사서울>이 되짚어봤다.
세계 피겨 역사를 혼자 쓰고 있는 “끝을 볼 수 없는 스케이터”
고모가 버리려던 스케이트화 우연히 신어본 게 피겨 시작 계기
김연아는 1990년 9월 5일 경기도 부천시에서 태어났다. 피겨스케이팅을 처음 시작한 것은 7살이던 1996년. 피겨스케이팅 팬이던 김 선수의 어머니는 고모가 버리려던 스케이트화를 신고 좋아하는 김연아의 손을 잡고 빙상장을 찾았고, 김연아를 지켜본 코치들은 “유난히 팔다리가 길고 재능이 있다”며 ‘될성부른 떡잎’으로 점찍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국동계체전 등 각종 국내 피겨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김연아는 2002년 4월 첫 출전한 국제대회(13세 이하 부문)와 이듬해 11월 열린 대회에서 연거푸 1위를 거두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2003년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2004년 국제무대에 주니어로 데뷔한 그는 첫 출전한 ISU(국제빙상연맹)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2위와 1위를 차지한데 이어 결승인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2위를 기록하면서 대한민국 피겨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김연아’라는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킨 무대는 2006년 3월에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였다. 여기에서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큰 점수 차이로 1위를 차지했고, 2005-2006시즌에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고난도의 3회전 플립+3회전 토룹 연속 점프를 모두 성공시킨 것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김연아는 2006년 11월 5일 자신의 시니어 데뷔무대인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3위에 입상했고, 11월 19일 열린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시니어대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어서 12월 17일 러시아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아사다 마오를 12점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제는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힘네세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