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은 아니고
칼럼을 가져왔다
일본축구 때려잡는 법은 이미 나와 있다. 하지만...
이번 ACL 8강전 두 경기 포함 조별예선에서의 만남까지 총 4차례 전북-세레소의 맞대결을 보고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한국대표팀의 전력을 100으로 환산했을 때 전북은 80-85정도의 팀이라면 역시 일본대표팀을 100으로 봤을 때 세레소는 70-75정도 되는 팀이라는 것. 주요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도 전북이 세레소에 비해 앞서 있었다.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전북과 세레소를 놓고 보기엔 전북이 손해 보는 건 맞다. 하지만 굳이 이런 비교를 하는 것은 무게감에선 차이가 있더라도 일본대표팀과 세레소의 일치하는 그 축구 스타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정점에 있다는 성인 국가대표팀이 추구하는 방향에 맞춰 J리그 클럽들은 물론 초-중-고-대학교 축구팀 모두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는 건 이미 90년대 초중반부터 보여준 일본축구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때문에 4차례 맞대결을 통해 ‘전북의 한국축구’가 ‘세레소의 일본축구’ 잡는 방식은 조광래호 출범 이후 유독 일본만 만나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대표팀 축구와 맞물려 국내 축구팬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더불어 ACL 무대에서 전체적으로 K리그가 J리그를 사냥 혹은 학살하는 분위기임에도 이에 편승하지 못하는 조광래호의 행보는 또한 리그팬들의 불만을 사기 충분하다.
물론 전북과 세레소는 2승 2패씩 나눠가졌다. 하지만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면 양 팀이 최정예멤버로 맞불을 놓은 것은 세 차례였고 거기서 전북은 2승 1패를 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3경기 모두 경기 내용에서 전북이 우세(홈 2경기)하거나 대등(어웨이 1경기)했다는 점이다. 홈-어웨이 가리지 않고 고유의 팀 컬러인 ‘한국형 축구’를 들고 나왔고 놀랍게도 오사카 원정에서마저 지극히 공격적인 축구를 펼쳤다. 최전방부터 강력하게 프레싱을 걸었고 모든 포지션에서 일본 선수들과 일대 일로 맞서는 상황을 자주 연출했다. 바로 이게 핵심이다. 대표급이건 리그용이건 전반적으로 한국 선수들에 비해 개개인의 역량이 떨어지기에 조직력에 목숨을 거는 일본 선수들에겐 일대 일의 대결은 쥐약과도 같은 상황이다. 게다가 양쪽 박스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터프하지만 정상적인 몸싸움과 명백한 거친 파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한국 공격수, 수비수들의 신체접촉은 일본 선수들의 육체적-정신적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즉, 한일전에선 우리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상대의 장점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속된 말로 ‘장땡’인데 가장 최근에 이 두 가지 요소의 조화에 성공한 사람은 허정무 전(前)대표팀 감독이었고, 이 조화가 빛을 발한 경기가 작년 5월 말 사이타마에서 열렸던 한일전이었다. 반면 조광래 감독 취임 이후 한국대표팀이 치른 총 3차례의 한일전을 돌이켜보면 우리 고유의 색깔을 감독이 추구하는 색깔로 바꾸는 시도까지는 괜찮은데 정작 상대의 장점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대표적인 게 혼다 게이스케다. 허정무 체제 하에선 지극히 한심해 보이던 존재가 조광래 체제 하에선 펄펄 날고 있다. 오죽하면 국내 축구팬들이 “조광래가 혼다 빅리그 보내려고 안달하는 모양!”이라 푸념할까. 자신의 패싱축구 철학을 주입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상대에 강점에 대한 대비를 안 하는 인상을 주는 현재의 조광래 감독이다. 특히 한일전이 심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무대에 섰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전통적 ‘한국형 축구’의 한계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해야 한다. 우월한 피지컬을 전제로 한 강력한 전(全)방위적 압박, 호쾌한 양 측면 돌파 위주의 스피디한 공격, 그리고 각 포지션별 일대 일 싸움에서의 우위 혹은 대등함이 아시아에선 경쟁력이 월등하다지만 과연 세계무대서도 그럴까? 월드컵에서 8강급 전력이 되는 팀들만 하더라도 한국의 그 압박을 무난히 헤쳐 나온다. 양 측면 공격은 스피디한 맛은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 돌파가 되지 않고 크로스의 정확도는 속된 말로 ‘안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 전반적으로 한 수 아래인지라 8강급 정도 되는 팀의 선수들과 일대 일로 맞서는 상황은 한국선수들에겐 쥐약이다. 일대 일에서 공격수들은 좀처럼 상대를 뚫지 못하고 수비수들은 상대에게 쉽게 뚫린다.
때문에 일본축구가 한국축구를 상대할 때 그러하듯 이번엔 우리가 세계무대에선 그런 팀들을 상대로 철저히 조직력으로 맞서야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 이르면 일대 일에서 밀리니 고배를 드는 건 매번 우리다. 아직까지 각 연령별 세계대회에서 한국축구가 보여주는 명백한 한계다. 때문에 조광래 감독은 현재 한국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전력의 최대치인 원정 월드컵에서의 16강 전력을 8강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물리력으로 대표되는 한국축구 전통의 장점을 어느 정도(혹은 상당 부분) 포기하면서까지 패싱력과 창의력을 주입하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포지션 파괴, 한층 더해진 무브먼트의 양과 질에 대한 부담감 등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고 수많은 선수들이 감독 입맛에 따라 대거 대표팀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소집 때마다 반복하니 전체적으로 팀에 짜임새가 없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내가 조광래 감독이 지금 보여주는 대표팀 축구를 완전 지지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감독의 새로운 시도와 그를 위한 실험 자체는 존경하고 지지하지만 실험을 한다면서 정작 국내파 재목들에 대한 기회 부여에 인색한 반쪽짜리 실험으로 일관하는 모습, 경기 중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한 모습 등은 매번 대표팀 경기를 접할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든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돌아봤을 때 조광래호가 현재까지 걸어온 길이 전체적으론 나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대표팀이 고유의 팀 컬러를 바꾸는 커다란 진통을 겪으면서 유독 문제가 되었던 상대는 일본 하나였을 뿐 나머지 상대들과의 대결에선 한창 새롭게 입히는 색깔로도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였던 점은 아직 우리가 조광래 감독에 인내심을 가져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