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平洋戦争に日本軍に入隊したアメリ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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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에 일본군에 입대한 미국인
来栖良, Ryo Kurusu, 쿠르스 료 - Son of Saburo Kurusu, 来栖 三郎
DKim http://online4kim.net/xe/21107 2011.11.11 02:33:07 44320 0 来栖 良(くるす りょう、1919年1月8日 - 1945年2月17日)は、日本の陸軍軍人。最終階級は陸軍技術少佐。戦闘機操縦者(空中勤務者)。経歴
外交官である父三郎と、アメリカ人である母アリスの三兄弟の長男としてアメリカのシカゴに生まれ育つ。アメリカ滞在時は、「ベア」の愛称で呼ばれていた。1927年(昭和2年)に帰国し、暁星中学校を経て、1937年(昭和12年)に横浜高等工業学校に入学。高工時代はラグビー部のキャプテンを務めていた。1940年(昭和15年)3月に同校機械科を繰上げ卒業し、翌4月に川西航空機に入社した。
その白人の血が色濃く出た混血の容貌ゆえに、普段から強い偏見やいじめに遭っていたが、高工時代や陸軍将校時代はその人柄の良さも相まり、周りから容貌について揶揄されることは無く、本人も弱音を漏らす事は少なかった。また、その日本人離れしたハーフの端正で色白な容貌と185cmの長身から、待合茶屋の芸妓達からは大変な人気があり、満州出張時には現地のロシア人ホステスから同じロシア人と間違われたり、フランスを旅行している最中には、現地人から俳優になるよう誘われたこともあったという。
学校卒業のため徴兵され、1941年(昭和16年)1月に陸軍第8航空教育隊に入営。高工時代に航空工学を専攻していたこともあり、陸軍航技見習士官採用試験を受験、合格。陸軍航空技術学校を経て、3月に航技見習士官となり第1航空技術研究所附、同年6月、陸軍航技少尉に任官した。当時、陸軍は航空エンジニアとテスト・パイロットを融合させた、エンジニア・パイロットの育成をしており、同じ横浜高工出身で航技将校であり、既にエンジニア・パイロットであった親友の畑俊八技術大尉の薦めもあり来栖はこれに志願、特別操縦学生として1943年(昭和18年)12月、熊谷陸軍飛行学校にて92期操縦学生らと共に操縦訓練を受け1944年(昭和19年)1月に卒業。その素質から戦闘分科のエンジニア・パイロットとして多摩飛行場(福生飛行場)の陸軍航空審査部飛行実験部戦闘隊に配属される。
航空審査部では黒江保彦や神保進などといった、名立たるエース・パイロット達と肩を並べ各種実験の職務にあたり、そのアメリカ生まれの語学力を活かし、B-29の英語マニュアルの翻訳も行っていた。
事故死
1945年(昭和20年)2月17日、関東地方攻撃に16日から初襲来したアメリカ海軍第58任務部隊の艦載機の迎撃に四式戦闘機「疾風」にて参加し交戦、帰還し小型機1機の撃墜を報告。二度目の迎撃時、自身の乗機である「疾風」が駐機している場所まで誘導路上を歩いていたところ、疾風の手前の準備線に位置する、同じく迎撃の為に急発進した梅川亮三郎中尉操縦の一式戦闘機「隼」のプロペラに接触、頭を刎ねられ即死した。地上での接地体勢の「隼」の操縦席からは、来栖は死角に入っていたため存在を確認する事ができなかったこともあり、幾ら操縦暦14年半の超ベテラン操縦者である梅川中尉であっても避けられなかった事故であり、落ち度が無かったとされ不問に処された。
事故直後、来栖の家族には、不慮の事故による死亡では気の毒だという陸軍の配慮もあって、「迎撃戦闘時に被弾負傷、帰還後に死亡」と伝えられ、これが大本営の公式発表とされ、来栖少佐の戦死を報道する当時の新聞各社の記事や、戦後の靖国神社遊就館内での展示内容においても同様となっている。
しかしながらこの戦死の状況に関して、戦後、加賀乙彦著作にて出版された来栖一家を描いた小説にて、来栖良少佐は「千葉県八街市上空での迎撃戦後にパラシュートで降下、着地したところ、農民からアメリカ軍のパイロットと間違えられ、竹槍で刺殺された」との記述が実名でなされていたため、この捏造とも言える誤った事柄が事実と間違えられ広まってしまっている。
「加賀乙彦#小説かノンフィクションか」も参照 死後、告別式・部隊葬が来栖家家族と審査部の将官以下軍属工員一同が列席した上で審査部格納庫にて行われた。墓碑には父三郎によって “In peace, sons bury their fathers. In war, fathers bury their sons.”(平和な時は、息子が父を葬り、戦争の時は、父が息子を葬る)というヘロドトスの言葉が刻まれた。
戦後のエピソードとしては、進駐軍が長野県軽井沢にある来栖家の別荘を訪問し、とある将校が軍服姿の良の写真を見て、母アリスに対し「戦死したのは気の毒だが、これも日本軍の犠牲だね」と語りかけたところ、アリスは「息子が祖国の為に戦い戦死したことを誇りに思います」と答えた。その将校は黙って写真を再度見て「いい男だ」とだけ述べて立ち去ったという。
외교관이던 아버지인 쿠르스 사부로와 미국인 어머니인 앨리스와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란 쿠르스는 1927년에 일본으로 귀국하여 1937년에 요코하마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해 럭비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1940년에 고교 기계과를 졸업한 그는 카와니시 항공기 회사에 입사했다. 그 후 일본육군에 소집되어 1941년 1월에 육군 제 8 항공교육대에 배치되었는데, 입대 전부터 백인을 연상케하는 이국적인 용모에 푸른 빛이 도는 눈동자로 인해 강한 편견과 따돌림을 겪기도 했지만 입대 후 그의 인품과 인격에 의해 이러한 행위는 없어졌다고 한다. 그는 의지가 매우 강했으며 백인의 피가 섞여 있었기에 당시 미국 백인들보다 키가 커 185cm에 달하는 장신이었기에 게이샤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만주로 출장시 쿠르스는 현지의 러시아인 호스티스로부터 같은 러시아인으로 오해받기도 했으며 프랑스에 여행중일 땐 현지인으로부터 배우로 나서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쿠르스는 공고시절 항공공학을 전공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바로 두각을 드러내어 1941년에 육군기술 견습사관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3월에 항공견습사관으로 제 1 항공기술연구소로 배치되어 항공소위로 임관했다. 그 후 육군항공기술학교, 육군비행학교를 거쳐 타마비행장의 육군항공 심사부에 배속되어 쿠로에 야스히코와 함께 항공기 시험에 참여했다. 그는 미국에서 익힌 영어를 바탕으로 B-29의 영어 매뉴얼을 번역해 내기도 했다. 그는 임관 중에 포획한 미군 전투기인 머스탱의 테스트 파일럿으로도 나섰는데 시험비행 도중, 아군기로 착각한 미군의 그루먼 전투기에 영어로 회답하며 안심시킨 후 격추시킨 적도 있었다. 1944년 2월 17일, 칸토지구로 내습한 미해군 함재기의 반격시 자신의 애기였던 4식 전투기 하야테(疾風)를 대기장소로 유도신호를 받고 움직이던 쿠르스는 갑자기 급발진한 우메카와 중위의 1식 전투기 하야부사의 프로펠러와 접촉하면서 머리가 끼여 즉사하고 말았다. 지상에서 대기중이던 쿠르스는 사각에 위치하여 우메카와의 하야부사의 폭격기를 아니 보고 베테랑 조종사였던 우메카와도 갑작스런 급발진을 막을 수 없었다. 때문에 이 사고는 예기치 않은 불상사라고 여겨져 우메카와의 처분은 불문에 붙여졌다. 사고직후 쿠르스의 가족에게는 불의의 사고란 것을 알리면 망신이라고 생각한 육군은 그가 귀환도중 적기의 반격으로 장렬히 전사했다고 알렸다. 이것은 대본영의 공식발표로 이어져 쿠르스 대위의 전사는 당시 외교관인 아버지를 둔 혼혈장교의 장렬한 전사라는 보도에 신문사의 화제가 되었고 전후 야스쿠니 신사에도 같은 내용이 게재되었다. 이 죽음에 대해 전후 소설가였던 카가 오토히코(加賀乙彦)는 자신의 소설에서 쿠르스 대위가 치바 상공에서 미군기에 격추된 직후 낙하산으로 탈출했는데 현지 농민들에게 미군으로 오인받아 죽창으로 살해당했다고 묘사해 한 동안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오가기도 했다. 쿠르스는 사후 소좌계급이 주어졌는데 그의 장례는 부대장으로 이루어져 심사부의 장관이하 모든 군속들까지 참석하여 항공심사부의 격납고에서 장례식이 이루어졌다. 쿠르스의 묘비에는 아버지 사부로에 의해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명언인 <In peace, sons bury their fathers. In war, fathers bury their sons - 평화일 때는 자식이 아버지를 묻고 전시엔 아버지가 자식을 묻는다>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전후 미군 진주군이 나가노 현의 가루이자와에 있던 쿠르스 가의 별장을 방문했을 때 한 미군장교가 일본군복을 입은 쿠르스의 사진을 보고는 모친인 앨리스에게 <전사는 유감이지만 이것도 일본군의 희생일 뿐>이라고 말하자 앨리스는 <자식이 조국을 위해 전사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머쓱해진 미군장교는 다시 사진을 한 번 쳐다보고는 <멋진 사나이다>라고 말하면서 물러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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