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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独島(竹刀)’を日本固有領土だと言う主張に対する反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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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独島(竹刀)’を日本固有領土だと言う主張に対する反論

が文は.... 近頃いわゆる全世界的によく知られたポータルサイトであるユトブ(You Tube)というサイトに ‘独島(竹刀)が日本の固有領土というのを主張するための動画’が流布して我が国の純粋な若者達を荒てるようにしているようでこれに対する ‘論理的反論根拠’を提供することでうちの青少年たちが日本の奸悪な述策から脱するようにする必要があると思われて簡略するけれどそのヨッゾムだけ整理したのだ....

まず, これ ‘独島(竹刀)問題’は単純な ‘領土の問題ではなく歴史の問題’であるので見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だし, また歴史と言う(のは)人間生活の足跡としてその時代状況による多様な視覚と多様な立場(入場)及びまた他の多様な関連根拠たちが複雑に縛られているものと決まっていなさいというのを認知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ところが, この日本動画はどんな片面のみを持って全体を売り渡しているから ‘歴史的真実’とは距離が遠い一種の ‘ごまかし’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すなわち, このような ‘売渡(罵倒)行為’は責任ある国家は勿論で良心的な学者たちの酔う行動ではない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なので日本政府は両国国民たちの純粋な感情を分離させる無謀な行動を直ちに中止しなければならないし, 日本の良心的な歴史学者たちは日本国民たちが自ら自重するように先に立って善導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正しくこれが韓日両国の永遠な平和と発展の道なのを再認識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とにかく,... 一応思っては ‘もう公開された日本動画に対する反駁論理のみを紹介’するようにする. 先に日本が宣伝する日本動画を見ると,...

“韓国には竹島を描いた古地図は存在するか?: 働いた古地図の比較”という日本動画
http://www.youtube.com/watch?v=P_hWLuCUvwY&feature=player_detailpage

1. 日本動画の骨子

(1). ‘現,独島(竹刀)’で見える両国古地図の比較

1) 韓国側古地図の問題点指摘:
-- 1530年及び 1603年指導に最初で ‘現,独島(竹刀)’が ‘鬱陵島’と仕分けされて描かれる.
-- しかし, ‘現,独島(竹刀)’仮現,鬱陵島すぐ近くに位している
-- も, その形象が ‘現,独島(竹刀)’と違う.
-- そしてその方向も現,鬱陵島の東,西,南,北に配置されていて一貫性がない.
-- 勿論, その後の指導たちにも現,独島(竹刀)を正確にグリーン古地図がゾンヒョオブダ.

2) 日本側古地図に対する説明:
--1656年度指導から ‘現,鬱陵島’, ‘現,独島(竹刀)’ 及び ‘現,オキソム’が仕分けされて描かれる.
--勿論, その相手位置と通りたちが現在に似ているように配置されている.
--も, 二つの島で分けられている ‘現,独島(竹刀)’の形象を正確に描いている.

(2) 日本動画が主張する結論

1) ‘現,独島(竹刀)’を正確に描いている日本古地図があるので ‘現,独島(竹刀)は日本の領土’だ.
2) 韓国古地図は ‘現,独島(竹刀)’を全然描くことができないので韓国側主張は正しくない. [すなわち, 韓国古地図の 傘もは鬱陵島浜辺で 2kmにある 竹島を表現したことだ]

2. 日本動画に対する反駁論理

(1) 公式的に韓国が日本より先に ‘現,独島(竹刀)の存在’が分かっていたし, 結果的に朝鮮政府で日本より先に進んで ‘現,独島(竹刀)’を朝鮮の領土で描いたのだ.

すなわち, 日本では 1656年度にはじめて ‘現,独島(竹刀)’を描いているが, 韓国ではたとえ ‘現,独島(竹刀)’の位置及び方向が違ったりするが, 日本より先に進む 1530年及び 1603年度にもう ‘この鬱陵島と係わる海域に 2個の特別な島だけあったら’を朝鮮政府の公式文書と地図に表現していたのだ. したがってこれは ‘現,独島(竹刀)の位置’に関係なく ‘朝鮮政府が 1530年及び 1603年度に現,独島(竹刀)に対する主権があることを公布したこと’になると思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だ.

ただ, この日本動画が問題にしている問題として ‘距離(通り)(93km)問題’と ‘方向問題’があるが, これは近代的な測量概念から出たことであって測量が一般化されなかった古代時期にはそれが絶対的だったと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のだ. すなわち, まず, 日本古地図たちも厳密に言ったら, 正確に 93kmである数もないだろうし, また 1656年度古地図に GPS座標として ‘現,独島(竹刀)’の位置を取ったのではないから古地図に現代的な測量概念を適用することは絶対的な論理ではないというのだ. この話は ‘古代国家たちでの領土の境界問題と言う(のは)多分に両国間の合意(了解)によって二塁語はの’というのを意味するというのだ.

すなわち, 1530年及び 1603年度に朝鮮政府で ‘現,独島(竹刀)’を意識して ‘東国輿地勝覧にしたがって指導に鬱陵島と別個で于山国を表示した’なら, 日本はこの東国輿地勝覧(15世紀)の内容あるいは三国史記のゴチルブギサ(6世紀)を否定しない以上 ‘現,鬱陵島と係わる海域に 2個の特別な島だけあったら’をもう認めていたことなのでたとえその位置と距離(通り)が違うと言っても ‘‘現,独島(竹刀)’島自らの所有権を根本的に否定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のだ.

そしてまた日本が減らず口で ‘鬱陵島海岸で 2kmにある 竹島を 傘もと減らず口非情’するのに, これは不合理説だ. すなわち, おこる 傘もが鬱陵島の東,西,南,北四方に描かれていたことをどんなに説明するはずであり, また朝鮮古地図での相対的縮尺を見る時 2kmと言う(のは)距離は指導に表現されない無效距離(通り)なのを勘案したら, 竹島を 傘もに非情することは減らず口のための減らず口に過ぎないのだ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だ. もしそんな論理を固執したら, 幾多の中国古地図に現われた日本島はもう中国の一部分でガッダバチョは当然だと言うでしょう.

とにかく日本動画で根拠で主張する最大の武器が ‘韓,日古地図たちの方向と距離(通り)及び形象が当たらない’と言うのだが, これは現代的測量概念で言及する時論拠になることであって古代国家たちの間の境界問題を論ずる時こんな資料たちは補助資料に過ぎないので ‘歴史性によってパンダ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すなわち, この動画のみを置いて言ったら, 日本の 1656年度古地図よりは朝鮮の 1530年及び 1603年度古地図が時期的に先に進むので ‘現,独島(竹刀)が朝鮮の領土だったことを逆説的に証明している’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だ.

(2) ‘鬱陵島と係わる海域に 2個の特別な島だけあったら’に対して...

もう上で今度 ‘日本動画に対する反駁論理’は概して提供されたことなのでこれとしてこれ以上論難があってはいけないだろうが, もし ‘歴史の内幕’がよく分からない読者たちが ‘鬱陵島と係わる海域に 2個の特別な島だけあったら’に対して疑問を申し立ててまた進んで ‘日本動画に対する反駁論理を役で無力化’しようと企てるかも知れなくてこれに対してあらかじめ ‘推論された結論’を手短に説明しておこうとする. すなわち, この推論は “朝鮮はどうして鬱陵島の隣に于山国という島を描いて入れるようになったしまたその位置があちらこちらに行ったり来たりしたのか?”という問題になるでしょう. 言い替えれば ‘逆説的に補なら, 朝鮮政府が現,独島(竹刀)の存在が分かったからこんな変な(?) 地図が描かれるようになったことだ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というのだ.

これに対する推論はすぐ三国史記から出発している. すなわち, 三国史記に確かに新羅将軍ゴチルブ(6世紀)が于山国を征伐してその彊域を新羅に編入したと言ったのだ. そして, その于山国の位置は確かに東海にあった島であることと知られたが, しばらく忘れてから朝鮮朝に入って東国輿地勝覧を編纂しながら朝鮮全地域を古代の歴史地名たちと一つ一つ対照して地名の再配置作業をしながら問題が発生されたのだ. すなわち, 初めには東海にある現,鬱陵島がゴチルブが征伐した于山国であることで漠然と分かって来たが, 現,鬱陵島を詳らかにいくら探索して見てもどうしても于山国の跡を全然見つ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しまた現,鬱陵島で肉眼に遠くバラダボイは ‘現,独島(竹刀)’を調査して見てもやっぱりこの島は初めから無人島だったことなのでどうしても于山国では認め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だ. それで朝鮮政府で東海のそのどこでも ‘ゴチルブの于山国’を捜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当時東海の中でその位置が確かな現,鬱陵島の横にそのまま一応于山国を描いて入れるようになったことだというのだ.

すなわち, この話は ‘現,鬱陵島と係わる近所の海域には現,鬱陵島と現,独島(竹刀) だけが存在していたら’を確認した朝鮮政府ではその所在地が確かな ‘現,鬱陵島’ の隣に島一つをもっと描いて入れてそれを一応 ‘傘も’と名付けるようになったことだが, おこる ‘ゴチルブの 傘もではなさが命脈した現,鬱陵島’とまた ‘ゴチルブの 傘もではない現,独島(竹刀)’を並んで描いて入れることでこの近所海域に ‘2個の島’ だけがあることを表現するようになったことだというのだ. それで朝鮮王朝実録を見れば ‘2個の島’という文具がよく登場するようになるのに, 結局朝鮮王朝実録どこにもオヌソムが明らかに于山国だと確定される記録がないということは朝鮮政府が.../‘現,鬱陵島’と ‘現,独島(竹刀)’という ‘二つの島’/...を .../‘現,鬱陵島’と ‘歴史上の于山国’という ‘二つの島’/...で代替させることで ‘歴史上の于山国’を捜すことができないことを隠そうと ‘于山国’を ‘現,鬱陵島’の東,西,南,北の位置に来て行った配置して一般に知らせるようになったことだというのだ.

すなわち, 朝鮮政府ではその頃 ‘現,鬱陵島が歴史上の于山国ではない’をもう分かっていたことなのでどんな島も存在しない ‘現,鬱陵島の西,南,北位置’にまるで ‘傘もという島があることのように 虚記’したことだが, これはこれ ‘鬱陵島と係わる海域に現,鬱陵島と現,独島(竹刀)という 2個島だけあったら’が分かったからこんな 虚記が可能だったしまた一応一般にも通用することができたことだ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だ. これをスィブゲイヤギすれば, たとえその位置や形象などが違ったりするが, 朝鮮政府で言う ‘傘も’は ‘現,独島(竹刀)’と見られるというのだ. それで筆者はこれを ‘鬱陵島と係わる海域に 2個の特別な島だけあったら’という話題として表現したのだ. すなわち, この話題の中には近代測量概念ではない古代歴史概念が解けて交ぜているのだ. このような歴史関係を日本人たちが考慮しないで負け惜しみを言って無視したら, 日本人たちは ‘先祖(歴史)がいない人種’になる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3. 結論

したがって ‘日本動画に対する反駁論理’を整理すれば,...

1) 提示している韓国高地も(1530年及び 1603年)は時期的に日本高地も(1656年)より先に進んで ‘現,独島(竹刀)’が朝鮮の領土なのを ‘2個の島’で表現して描いている.
2) 古代国家の彊域の範囲はおよそ,現代国家の測量概念と違い歴史性でその根拠を捜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 ‘現,独島(竹刀)’は歴史的[三国史記, 東国輿地勝覧など]で古代から韓国に属したことが明らかだ.
3) 朝鮮政府で ‘現,鬱陵島海域には現,鬱陵島と現,独島(竹刀) だけが存在するということ’をもう分かって便宜上これを ‘2個の島’と言ったことなので ‘傘もを現,独島(竹刀)で見ること’が可能だ.

同時に, 古代指導を理解するにおいてもこのような多様で根源的(歴史的)である処理方式がたくさんあることをてんから崩し潰してしまって単純な見掛論理(現代測量概念) 万を立てて純粋な国民を惑わそうとする日本政府や日本の御用学者たちは ‘千年の約束’を守る良心を取り戻してほしいところ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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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독도(죽도)’를 일본 고유 영토라고 하는 주장에 대한 반론

‘현,독도(죽도)’를 일본고유영토라고 하는 주장에 대한 반론

이 글은.... 요즈음 소위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포털싸이트인 유투브(You Tube)라는 싸이트에 ‘독도(죽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동영상’이 유포되어 우리나라의 순진한 젊은이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이에 대한 ‘논리적 반론근거’를 제공함으로서 우리 청소년들이 일본의 간악한 술책에서 벗어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져서 간략하나마 그 욧점만 정리한 것이다....

우선, 이 ‘독도(죽도)문제’는 단순한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또 역사란 인간생활의 발자취로서 그 시대상황에 따른 다양한 시각과 다양한 입장 및 또 다른 다양한 관련근거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인지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일본동영상은 그 어느 한면만을 가지고서 전체를 매도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눈속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이러한 ‘매도행위’는 책임있는 국가는 물론이고 양심적인 학자들이 취할 행동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므로 일본정부는 양국국민들의 순수한 감정을 이간시키는 무모한 행동을 즉각 중지하여야 하며, 일본의 양심적인 역사학자들은 일본국민들이 스스로 자중하도록 앞장서서 선도하여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일 양국의 영원한 평화와 발전의 길임을 재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일단 여기서는 ‘이미 공개된 일본동영상에 대한 반박논리만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먼저 일본이 선전하는 일본동영상을 보자,...

“한국에는 타케시마를 그린 고지도는 존재할까?: 일한 고지도의 비교”라는 일본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P_hWLuCUvwY&feature=player_detailpage

1. 일본동영상의 골자

(1). ‘현,독도(죽도)’로 보이는 양국 고지도의 비교

1) 한국측 고지도의 문제점 지적:
-- 1530년 및 1603년 지도에 최초로 ‘현,독도(죽도)’가 ‘울릉도’와 구분되어서 그려진다.
-- 하지만, ‘현,독도(죽도)’가 현,울릉도 바로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 또한, 그 형상이 ‘현,독도(죽도)’와 다르다.
-- 그리고 그 방향도 현,울릉도의 동,서,남,북에 배치되어 있어 일관성이 없다.
-- 물론, 그 이후의 지도들에도 현,독도(죽도)를 정확하게 그린 고지도가 전혀없다.

2) 일본측 고지도에 대한 설명:
--1656년도 지도부터 ‘현,울릉도’, ‘현,독도(죽도)’ 및 ‘현,오끼섬’이 구분되어 그려진다.
--물론, 그 상대 위치와 거리들이 현재와 비슷하게 배치되어 있다.
--또한,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는 ‘현,독도(죽도)’의 형상을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

(2) 일본동영상이 주장하는 결론

1) ‘현,독도(죽도)’를 정확하게 그리고 있는 일본고지도가 있으므로 ‘현,독도(죽도)는 일본땅’이다.
2) 한국고지도는 ‘현,독도(죽도)’를 전혀 그리지 못하고 있으므로 한국측 주장은 옳지 못하다. [즉, 한국고지도의 우산도는 울릉도해변에서 2km에 있는 竹島를 표현한 것이다]

2. 일본동영상에 대한 반박논리

(1) 공식적으로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현,독도(죽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조선정부에서 일본보다 앞서서 ‘현,독도(죽도)’를 조선의 영토로 그렸던 것이다.

즉, 일본에서는 1656년도에 비로소 ‘현,독도(죽도)’를 그리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비록 ‘현,독도(죽도)’의 위치 및 방향이 다르긴 하지만, 일본보다 앞서는 1530년 및 1603년도에 이미 ‘이 울릉도와 관련된 해역에 2개의 특별한 섬만 있었음’을 조선정부의 공식문서와 지도에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는 ‘현,독도(죽도)의 위치’에 관계없이 ‘조선정부가 1530년 및 1603년도에 현,독도(죽도)에 대한 주권이 있음을 공포한 것’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일본동영상이 문제로 삼고 있는 문제로서 ‘거리(93km)문제’와 ‘방향문제’가 있겠지만, 이는 근대적인 측량개념에서 나온 것이지 측량이 일반화되지 않은 고대시기에는 그것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우선, 일본고지도들도 엄밀하게 말한다면, 정확하게 93km일 수도 없을 것이며, 또한 1656년도 고지도에 GPS좌표로서 ‘현,독도(죽도)’의 위치를 찍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지도에다가 현대적인 측량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절대적인 논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말은 ‘고대국가들에서의 영토의 경계문제란 다분히 양국사이의 합의(양해)에 의해서 이루어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1530년 및 1603년도에 조선정부에서 ‘현,독도(죽도)’를 의식해서 ‘동국여지승람에 따라서 지도에 울릉도와 별개로 우산국을 표시하였다’면, 일본은 이 동국여지승람(15세기)의 내용 혹은 삼국사기의 거칠부기사(6세기)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현,울릉도와 관련된 해역에 2개의 특별한 섬만 있었음’을 이미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므로 비록 그 위치와 거리가 틀리다고 하더라도 ‘‘현,독도(죽도)’섬 자체의 소유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가 없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일본이 억지로 ‘울릉도해안에서 2km에 있는 竹島를 우산도이라고 억지비정’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즉, 이는 우산도가 울릉도의 동,서,남,북 사방에 그려져 있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또한 조선고지도에서의 상대적 축척을 볼 때 2km란 거리는 지도에 표현되지 않는 무효거리임을 감안하다면, 竹島를 우산도로 비정하는 것은 억지를 위한 억지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논리를 고집한다면, 수많은 중국고지도에 나타난 일본섬은 이미 중국의 한 부분으로 갖다바쳐야 마땅하다 할 것이다.

어쨌든 일본동영상에서 근거로 주장하는 최대무기가 ‘한,일 고지도들의 방향과 거리 및 형상이 맞지 않다’는 것이지만, 이는 현대적 측량개념에서 언급할 때 논거가 되는 것이지 고대국가들 사이의 경계문제를 논할 때 이런 자료들은 보조자료에 불과한 것으로 ‘역사성에 의해서 판다되어야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이 동영상만을 두고 말한다면, 일본의 1656년도 고지도 보다는 조선의 1530년 및 1603년도 고지도가 시기적으로 앞서므로 ‘현,독도(죽도)가 조선의 영토였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울릉도와 관련된 해역에 2개의 특별한 섬만 있었음’에 대해서...

이제 위에서 이번 ‘일본동영상에 대한 반박논리’는 대체로 제공된 것이므로 이로서 더 이상 논란이 없어야 할 것이지만, 혹시 ‘역사의 내막’을 잘 모르는 독자들이 ‘울릉도와 관련된 해역에 2개의 특별한 섬만 있었음’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또 나아가서 ‘일본동영상에 대한 반박논리를 역으로 무력화’하려고 획책할지 몰라서 이에 대해 미리 ‘추론된 결론’을 간략히 설명해 두고자 한다. 즉, 이 추론은 “조선은 왜 울릉도 옆에다가 우산국이라는 섬을 그려 넣게 되었었고 또 그 위치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였는가?”라는 문제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역설적으로보면, 조선정부가 현,독도(죽도)의 존재를 알았었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지도가 그려지게 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추론은 바로 삼국사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즉, 삼국사기에 분명히 신라장군 거칠부(6세기)가 우산국을 정벌하고서 그 강역을 신라에 편입하였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우산국의 위치는 분명히 동해에 있었던 섬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동안 잊혀졌다가 조선조에 들어서서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면서 조선 전지역을 고대의 역사지명들과 하나하나 대조하여 지명의 재배치작업을 하면서 문제가 발생되었던 것이다. 즉, 처음에는 동해바다에 있는 현,울릉도가 거칠부가 정벌한 우산국일 것으로 막연하게 알아왔었었는데, 현,울릉도를 자세히 아무리 탐색해 보아도 아무래도 우산국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가 없었고 또한 현,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멀리 바라다보이는 ‘현,독도(죽도)’를 조사해 보아도 역시 이 섬은 아예 무인도였던 것이어서 아무래도 우산국으로는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정부에서 동해바다의 그 어느곳에서도 ‘거칠부의 우산국’을 찾지 못했었으므로 당시 동해바다속에서 그 위치가 확실한 현,울릉도의 옆에다가 그냥 일단 우산국을 그려넣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이말은 ‘현,울릉도와 관련된 부근의 해역에는 현,울릉도와 현,독도(죽도) 만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한 조선정부에서는 그 소재지가 확실한 ‘현,울릉도’ 옆에다가 섬 하나를 더 그려넣고서 그것을 일단 ‘우산도’라고 명명하게 된 것인데, 이는 ‘거칠부의 우산도가 아님이 명맥한 현,울릉도’와 또한 ‘거칠부의 우산도가 아닌 현,독도(죽도)’를 나란히 그려 넣음으로서 이 부근 해역에 ‘2개의 섬’ 만이 있음을 표현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2개의 섬’이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결국 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어느섬이 분명하게 우산국이라고 확정되는 기록이 없다는 것은 조선정부가.../‘현,울릉도’와 ‘현,독도(죽도)’라는 ‘두 개의 섬’/...을 .../‘현,울릉도’와 ‘역사상의 우산국’이라는 ‘두 개의 섬’/...으로 대체시킴으로서 ‘역사상의 우산국’을 찾지 못한 것을 감추려고 ‘우산국’을 ‘현,울릉도’의 동,서,남,북의 위치에다가 왔다갔다 배치해서 일반에게 알리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즉, 조선정부에서는 그 당시 ‘현,울릉도가 역사상의 우산국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어서 그 어떤 섬도 존재하지 않는 ‘현,울릉도의 서,남,북 위치’에 마치 ‘우산도라는 섬이 있는 것처럼 虛記’한 것이지만, 이는 이 ‘울릉도와 관련된 해역에 현,울릉도와 현,독도(죽도)라는 2개 섬만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虛記가 가능하였었고 또 일단 일반에게도 통용될 수가 있었던 것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쉽게이야기하면, 비록 그 위치나 형상 등이 틀리긴 하지만, 조선정부에서 말하는 ‘우산도’는 ‘현,독도(죽도)’라고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를 ‘울릉도와 관련된 해역에 2개의 특별한 섬만 있었음’이라는 화두로서 표현한 것이다. 즉, 이 화두속에는 근대 측량개념이 아닌 고대 역사개념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관계를 일본인들이 고려하지 않고 억지를 써서 무시한다면, 일본인들은 ‘조상(역사)이 없는 인종’이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3. 결론

따라서 ‘일본동영상에 대한 반박논리’를 정리하면,...

1) 제시하고 있는 한국고지도(1530년 및 1603년)는 시기적으로 일본고지도(1656년)보다 앞서서 ‘현,독도(죽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2개의 섬’으로 표현하여 그리고 있다.
2) 고대국가의 강역의 범위는 근,현대국가의 측량개념과 달리 역사성에서 그 근거를 찾아야 하는데, ‘현,독도(죽도)’는 역사적[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등]으로 고대로부터 한국에 속했었음이 분명하다.
3) 조선정부에서 ‘현,울릉도 해역에는 현,울릉도와 현,독도(죽도) 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서 편의상 이를 ‘2개의 섬’이라고 한 것이므로 ‘우산도를 현,독도(죽도)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아울러, 고대지도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다양하고 근원적(역사적)인 접근방식이 많이 있음을 아예 뭉개버리고서 단순한 겉보기논리(현대측량개념) 만을 내세워서 순진한 국민들을 현혹시킬려는 일본정부나 일본의 어용학자들은 ‘천년의 약속’을 지키는 양심을 되찾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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