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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義勇軍が日本の巡視船を撃破、韓国を侵略から救った」 日本民間人虐殺を英雄譚に作り替えた韓国人たち gonbei2 2012/08/26 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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独島(ドクト、日本名:竹島)をめぐり韓日間の緊張が高まり物理的衝突の可能性も大きくなっている。交戦状況までは違っても香港デモ隊が尖閣列島に上陸したように日本右翼団体会員も同じ事をする危険性がかつてより大きいという。政府はこういう状況に備えて2005年、独島危機対応指針を作ったことが分かった。
 日本右翼団体会員たちが独島上陸を試みる場合、海上警察警備艦と独島警備隊員など警察が一線を引き受け軍が後方で支援する役割を担当することになる。独島危機対応指針は日本右翼団体会員など民間人の上陸の試みを含み合計6種類の類型の偶発事態に対する対応手続きと方法等を含んでいると伝えられた。独島警備隊員はもちろん5千トン級海上警察警備艦のサムボン号と海軍艦艇などはこれに伴い、24時間警戒活動を行なっている。だが、独島防備がいつもこのように固かったわけではない。

◇現代版"義兵"、"独島義勇守備隊"
外勢の侵略を受けるたびに国を守って国民の生命を保護するために発揮される我が国だけの独特の底力がある。それは義兵だ。韓国戦争の戦乱の中で独島は危険に瀕していた。日本から絶え間ない威嚇を受けた。去る1952年には日本人たちが独島に不法上陸して島根県隠岐郡竹島と書いた杭を打ち込んだ。独島義勇守備隊は独島に対するこのような日本の侵奪行為を防ぎ、日本の独島所有権主張を遮断するために組織された純粋民間団体であった。
 独島から日本人たちを追放して日本漁船の独島近海不法操業を防ぎ、私たちの土地も守って鬱陵島(ウルルンド)住民たちの生存権も守ることが目的だ。現代版「義兵」である独島義勇守備隊は6.25(朝鮮戦争)が終わる前の1953年4月に組織された。6・25戦争に参加して負傷して特務上佐に転役した鬱陵島出身のホン・スンチル隊長が求心点になった。

ホン隊長は釜山に行って一人の力で独島を守る武器と装備を購入した。これを土台に1953年4月20日鬱陵島青年45人で独島義勇守備隊を組織した。ホン・スンチル隊長下各々15人から成る2組の戦闘隊と鬱陵島補給連絡要員3人、予備隊5人、補給線船員5人などで編成された。これら45人の中で42人がすべて6・25韓国動乱参戦勇士出身だったという。装備は軽機関銃2丁をはじめとしてM1小銃10丁、拳銃2丁、手榴弾50発、0.5トンボート1隻などだった。後ほど迫撃砲などを追加で購入し、義勇守備隊員の中で自分の意志に抜けた人を除き最後まで残った人は隊長ホン・スンチルを含んで全33人だった。

◇日海上保安庁巡視船との"初めての戦闘"
ホン・スンチル隊長は義勇隊を組織するやいなやボートに乗って独島に到着し警備を始めた。義勇隊はその年6月、独島に近づく日本水産高等学校実習船を追い返した。そして翌月、7月12日独島に接近する日本海上保安庁所属巡視船PS9艦を発見し軽機関銃で集中射撃して撃退した。
義勇隊の初の戦闘であった。初めての戦闘で装備の補充を急ぐ必要を悟ったホン・スンチル隊長はまた陸地に出て行ってなんとかM2、2丁と迫撃砲一門を購入した。引き続き8月5日には東島岩壁に"韓国領"と三文字を彫って入れた。今でも独島に行けばこの字が鮮明に残っている。

◇"独島大勝"…日巡視船3隻との交戦
1954年8月23日、独島に接近しようとする日本巡視船を撃退した後、その年11月21日には1,000トン級日本巡視船3隻と航空機1台を銃撃戦の末はね除けた。この戦闘で日本側から16人の死傷者が発生して日本政府が韓国政府に抗議書を送った。ホン・スンチル隊長が残した手記の内容を見れば緊迫した当時の状況を伺うことができる。

(中略:ホン・スンチルの手記)
◇冷めない"真実論議"
上に記述した内容はホン・スンチル隊長の手記や記録を整理したものだ。政府でもこれを認めて1966年ホン・スンチル隊長に5等勤務功労勲章、残りの隊員らは防衛褒章を各々授けた。また、30年後の1996年にはホン隊長に報国勲章三一章を追叙した。だが、ホン隊長が武器を購入した内容や銃撃戦の部分をめぐり真実攻防が後を絶たない。

「戦時で民間人が銃器を購入できたろうか」「当時、義勇隊が持っていた武器は鬱陵島警察が貸したものだ」「日本巡視船を撃退したのは鬱陵警察署独島巡邏班だ」などの反論がある。実際に監査院は去る2007年、1950年代に活動した独島義勇守備隊生存隊員11人の証言を総合した結果、実際、独島に行って活動した隊員は33人中17人だけで残り16人は独島に行かなかったことが調査されたと明らかにした。

ここに鬱陵警察署所属警察が独島を守ったにもかかわらず、ホン・スンチル隊長の手記を事実と認定して民間人の義勇隊が独島を守ったと認められれば、朝鮮戦争直後、政府が独島を実効支配できていなかったという論理を提供しかねないという主張も提起されている。

独島義勇守備隊の行跡がどれほど誇張されたかは分からない。だが、独島を守ろうと思った心だけは戦乱で国を守ろうと立ち上がった過去の先祖と何が違うだろうか?


ソース:SBSニュース(韓国語) 独島(ドクト)で日本と交戦があったのだろうか?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333542

抵抗しない漁師を全員殺して侵略しただけなのに、また捏造で美化してんのか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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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용군이 일본의 순시선을 격파, 한국을 침략으로부터 구했다」일본 민간인 학살을 영웅담에 다시 만든 한국인들 gonbei2 2012/08/26 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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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드크트, 일본명:타케시마)를 둘러싸 한일간의 긴장이 높아져 물리적 충돌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교전 상황까지는 달라도 홍콩 데모대가 센카쿠 열도에 상륙한 것처럼 일본 우익 단체 회원도 같은 일을 하는 위험성이 일찌기보다 크다고 한다.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2005년, 독도 위기 대응 지침을 만든 것을 알았다.
 일본 우익 단체 회원들이 독도 상륙을 시도하는 경우, 해상 경찰 경비함과 독도 경비대원 등 경찰이 일선을 인수군이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독도 위기 대응 지침은 일본 우익 단체 회원 등 민간인의 상륙의 시도를 포함해 합계6종류의 유형의 우발 사태에 대한 대응 수속과 방법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전해졌다.독도 경비대원은 물론5천 톤급 해상 경찰 경비함의 샘본호와 해군 함정 등은 이것에 수반해,24시간 경계 활동을 행하고 있다.하지만, 독도 방비가 언제나 이와 같이 단단했던 것은 아니다.

◇현대판"의병","독도 의용 수비대"
외세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나라를 지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발휘되는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저력이 있다.그것은 의병이다.한국전쟁의 전란 중(안)에서 독도는 위험하게 직면하고 있었다.일본으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받았다.떠나는1952년에는 일본인들이 독도에 불법 상륙해 시마네현 오키군 타케시마라고 쓴 말뚝을 박았다.독도 의용 수비대는 독도에 대한 이러한 일본의 침탈 행위를 막아, 일본의 독도 소유권 주장을 차단하기 위해서 조직 된 순수 민간 단체였다.
 독도로부터 일본인들을 추방해 일본 어선의 독도 근해 불법 조업을 막아, 우리의 토지도 지켜 울릉도(우르룬드) 주민들의 생존권도 지키는 것이 목적이다.현대판 「의병」인 독도 의용 수비대는6.25(한국 전쟁)가 끝나기 전의1953년4월에 조직 되었다.6·25전쟁에 참가해 부상해 특무상좌에 전 부린 울릉도 출신의 폰·슨틸 대장이 구심점이 된.

폰 대장은 부산에 가서 한 명 힘으로 독도를 지키는 무기와 장비를 구입했다.이것을 토대로1953년4월20일 울릉도 청년45인으로 독도 의용 수비대를 조직 했다.폰·슨틸 대장하 각각15인으로부터 완성되는2조의 전투대와 울릉도 보급 연락 요원3인, 예비대5인, 보급선 선원5인등에서 편성되었다.이것들45인 중(안)에서42인이 모두6·25한국 동란 참전 용사 출신이었다고 한다.장비는 경기관총2정을 시작으로 해M1소총10정, 권총2정, 수류탄50발,0.5톤보트1척 등이었다.잠시 후에 박격포등을 추가로 구입해, 의용 수비 대원중에서 자신의 의지에 빠진 사람을 제외해 끝까지 남은 사람은 대장 폰·슨틸을 포함해 전33인이었다.

◇일 해상보안청 순시선과의"첫 전투"
폰·슨틸 대장은 의용대를 조직 하자 마자 보트를 타고 독도에 도착해 경비를 시작했다.의용대는 그 년6월, 독도에 가까워지는 일본 수산 고등학교 실습선을 되돌려 보냈다.그리고 다음달,7월12일독섬에 접근하는 일본해 카미호 야스청소속 순시선PS9함을 발견해 경기관총으로 집중 사격해 격퇴했다.
의용대의 첫 전투였다.첫 전투로 장비의 보충을 서두를 필요를 깨달은 폰·슨틸 대장은 또 육지에 나와 가서 어떻게든M2,2정과 박격포 한 집안을 구입했다.계속8월5일에는 히가시지마 암벽에"한국령"와 서푼자를 조각해 넣었다.지금도 독도에 가면 이 글자가 선명히 남아 있다.

◇"독도 대승"…일 순시선3척과의 교전
1954년8월23일, 독도에 접근하려고 하는 일본 순시선을 격퇴한 후, 그 년11월21일에는1,000톤급 일본 순시선3척과 항공기1대를 총격전 끝에 쳐 없앴다.이 전투로 일본측으로부터16인의 사상자가 발생해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항의서를 보냈다.폰·슨틸 대장이 남긴 수기의 내용을 보면 긴박한 당시의 상황을 물을 수 있다.

(중략:폰·슨틸의 수기)
◇식지 않는"진실 논의"
상에 기술한 내용은 폰·슨틸 대장의 수기나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정부에서도 이것을 인정해1966년 폰·슨틸 대장에게5등 근무 공로 훈장, 나머지의 대원등은 방위 포장을 각각 하사했다.또,30년 후의1996년에는 폰 대장에게 보국 훈장31장을 추 서술했다.하지만, 폰 대장이 무기를 구입한 내용이나 총격전의 부분을 둘러싸 진실 공방이 끊이지 않는다.

「전시에 민간인이 총기를 구입할 수 있었을까」 「당시 , 의용대가 가지고 있던 무기는 울릉도 경찰이 빌려 준 것이다」 「일본 순시선을 격퇴한 것은 울릉 경찰서 독도 순찰반이다」등의 반론이 있다.실제로 감사원은 사라지는2007년,1950연대에 활동한 독도 의용 수비대 생존 대원11인의 증언을 종합 한 결과, 실제, 독도에 가서 활동한 대원은33인중17인만으로 남아16인은 독도에 가지 않았던 것이 조사되었다고 분명히 했다.

여기에 울릉 경찰서 소속 경찰이 독도를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폰·슨틸 대장의 수기를 사실이라고 인정해 민간인의 의용대가 독도를 지켰다고 인정되면, 한국 전쟁 직후, 정부가 독도를 실효 지배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는 논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독도 의용 수비대의 행적이 얼마나 과장되었는가는 모른다.하지만, 독도를 지키려고 한 마음만은 전란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일어선 과거의 선조와 무엇이 다를까?


소스:SBS 뉴스(한국어) 독도(드크트)에서 일본과 교전이 있 것일까?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333542

저항하지 않는 어부를 전원 죽여 침략했을 뿐인데, 또 날조로 미화하고 있어인가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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