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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未事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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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午改革を通じて深深と朝鮮内政に関与するようになった日本は日清戦争に勝利した後朴泳孝(朴泳孝)・キム・ホンジッブ(金弘集)を中心にした親日内閣を作って勢力拡張に力を傾けた. この時フランス・ロシア・ドイツなど 3国は日本の大陸侵略阻止のために, 日清戦争の勝利で日本が占めたラオトン半島[遼東半島]を清国に返還することを要求した, いわゆる ¥"三国干渉¥"で日本の勢力拡張にはどめをかけた. その間日本のガングアブハに内政改革を推進した朝鮮政府は, ロシア工事 K.ベベルと提携して親日勢力の完全除去のために, 1895年 9月 6日王妃の時して陰謀疑いに前内務代わり朴泳孝に対して逮捕領を下げて政界で追い出した.

もう 8月に閔泳煥(閔泳煥)を駐米全権工事(駐美全権公使)で登用した同時に, 親日係であるオユンズング(魚允中)・金嘉猿(金嘉鎭) などを兔職させて李犯陣(李範晋)・李完用(李完用) などの親ロ派を起用して, 第3次キム・ホンジッブ内閣が成立されて, 親米・親ロ勢力が優勢だった.

その上に在韓日本工事Inoueがオで[井上馨]が朝鮮政府に約束した贈与金 300万ウォンを日本政府が提供しないで, 朝鮮政界では排日勢力が増加した. ここに日本側はInoue代わりに武人出身Miuraを在韓日本工事で派遣した. 朝鮮政府は日本の強圧によって制定した新制島を旧制に復旧しようと, 日本人教官が訓練させた 2個大隊の訓練台も解散しようとした. これに対して三浦は明成皇后弑害計画を立てて, 1895年 10月 2日下手人として漢城新報社(韓城新報社)にある浪人(浪人)を利用しようと社長Adachi[安逹]を公使館と呼んで 6,000ウォンの巨事資金を与えて王妃弑害の前衛どおりして, 功徳里(孔徳里) アソゾング(我笑亭)にある興宣大院君を宮廷で護衛する事を担当させた. その外日本軍需肥大と日本人居留地担当警察官及び親日朝鮮人まで動員する計画を立てて, 訓練台の禹範善(禹範善)・イドファング(李斗〓)・イ・ジンホ(李軫鎬) など 3大隊長と私は軍部協版(軍部協辧) 移住回(李周会)を抱きこんだ.

一方政府では軍部の代わり安ギョンス(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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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

갑오개혁을 통하여 깊숙이 조선 내정에 관여하게 된 일본은 청일전쟁에 승리한 뒤 박영효(朴泳孝)·김홍집(金弘集)을 중심으로 한 친일내각을 만들어 세력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이때 프랑스·러시아·독일 등 3국은 일본의 대륙침략 저지를 위해,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이 차지한 랴오둥반도[遼東半島]를 청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한, 이른바 "삼국간섭"으로 일본의 세력확장에 제동을 걸었다. 그동안 일본의 강압하에 내정개혁을 추진한 조선정부는, 러시아공사 K.베베르와 제휴하고 친일세력의 완전 제거를 위하여, 1895년 9월 6일 왕비시해 음모혐의로 전 내무대신 박영효에 대해 체포령을 내려 정계에서 축출하였다.

이미 8월에 민영환(閔泳煥)을 주미전권공사(駐美全權公使)로 등용한 동시에, 친일계인 어윤중(魚允中)·김가진(金嘉鎭) 등을 면직시키고 이범진(李範晋)·이완용(李完用) 등의 친러파를 기용하여, 제3차 김홍집내각이 성립되어, 친미·친러세력이 우세하였다.

더구나 주한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조선정부에 약속한 증여금 300만 원을 일본정부가 제공하지 않자, 조선정계에서는 배일세력이 증가하였다. 이에 일본측은 이노우에 대신 무인 출신 미우라를 주한일본공사로 파견하였다. 조선정부는 일본의 강압에 따라 제정한 신제도를 구제도로 복구하려고, 일본인 교관이 훈련시킨 2개 대대의 훈련대도 해산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우라는 명성황후시해계획을 세우고, 1895년 10월 2일 하수인으로서 한성신보사(韓城新報社)에 있는 낭인(浪人)을 이용하고자 사장 아다치[安達]를 공사관으로 불러 6,000원의 거사자금을 주고 왕비시해의 전위대로 삼아, 공덕리(孔德里) 아소정(我笑亭)에 있는 흥선대원군을 궁중으로 호위하는 일을 담당시켰다. 그 외 일본군수비대와 일본인 거류지 담당경찰관 및 친일조선인까지 동원할 계획을 세우고, 훈련대의 우범선(禹範善)·이두황(李斗璜)·이진호(李軫鎬) 등 3대대장과 전 군부협판(軍部協辦) 이주회(李周會)를 포섭하였다.

한편 정부에서는 군부대신 안경수(安駉壽)를 일본공사관에 보내어 훈련대해산과무장해제, 민영준(閔泳駿)의 궁내부대신 임명을 통고하였다. 일본은 상황이 급변함을 직감하고 명성황후 시해계획을 10월 8일 새벽으로 결행하였다. 흥선대원군을 앞세운 일본인 자객들은, 서대문을 거쳐 우범선·이두황이 지휘한 조선 훈련대와 합류하여 광화문을 통과하였다.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洪啓薰)과 군부대신 안경수가 1개 중대의 시위대 병력으로, 이들의 대궐 침범을 제지하려다 충돌이 일어났다.

흉도(兇徒)들은 궁내부대신 이경직(李耕稙)과 홍계훈을 살해한 다음, 이어서 왕비의 침실인 옥호루(玉壺樓)에 난입하여 왕비를 살해하고, 시체에 석유를 뿌려 불사른 뒤 뒷산에 묻었다. 곧 새로 유길준(兪吉濬)·서광범(徐光範)·정병하(鄭秉夏)·김종한·권형진(權瀅鎭) 등 친일파를 중심으로, 제4차 김홍집내각을 수립하였다. 명성황후시해 현장에는 고종·황태자 및 미국인 교관 다이, 러시아인 기사 사바틴, 그외 많은 조선인이 있어 진상을 낱낱이 목격하여, 사건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자세히 알려졌다.

이에 구미열강이 강경한 태도로 일본인의 사건 관여사실을 주장하고 나서자, 일본은 이의 처리방안으로서 미우라를 해임, 고무라[小村]를 판리공사(辦理公使)로 임명하였다. 한편 미우라 등 관계자 48명을 히로시마[廣島] 감옥에 구치하고, 형식적으로 관련혐의자에 대한 취조를 하였으며, 결국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전원석방시켰다. 결국 을미사변은 항일의병활동의 원인과 아관파천(俄館播遷)의 계기가 되어, 한국은 러시아의 보호국과 같은 지위로 떨어졌고, 일본의 식민지화계획에 차질을 가져왔다.

[출처] 을미사변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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