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原梁氏は何? それで韓国学中央研究員で調査をして見た.
http://people.aks.ac.kr/front/tabCon/lst/lstView.aks?lstId=LST_135_119_0260
南原梁氏(南原梁氏)の詩調ヤングウルや(良乙那)は済州島に耽羅国(耽羅国)を立てたと伝える.
梁氏は皆が済州梁氏で分館されたが, ヤングウルナの子孫ヤングタング(良宕)が光巡使(広巡使)で新羅に入って来ると 559年真興王が官職を下げて ‘良’を ‘梁’で直すようにした.
以後 757年(景徳王 16) 良友量(梁友諒)が新羅王室に功を立てて南原部百(南原府伯)に封ざれると子孫たちが南原(南原)にブンゾックしたと言う.
この時から梁氏は済州と南原に分館されたし, 後に忠州でも分館されて 3敵(三籍)で分けられるようになった.
しかし伝える文献がなくて仙界はわからない.
===ここで分かりたい点は済州島と南原は関係がないか?
済州島は昔の倭寇だが.. ^^
耽羅国は百済が最後の戦闘である バックガング戦闘(白江戦闘)でお腹を運んだ倭寇だ. ^^
JAPFUUUUUの梁世奉の本館は南原梁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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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FUUUUU의 양세봉의 본관은 남원양씨
남원양씨는 무엇? 그래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조사를 해보았다.
http://people.aks.ac.kr/front/tabCon/lst/lstView.aks?lstId=LST_135_119_0260
남원양씨(南原梁氏)의 시조 양을나(良乙那)는 제주도에 탐라국(耽羅國)을 세웠다고 전한다.
양씨는 모두가 제주양씨에서 분관되었는데,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들어오자 559년 진흥왕이 벼슬을 내리고 ‘良’을 ‘梁’으로 고치게 하였다.
이후 757년(경덕왕 16) 양우량(梁友諒)이 신라 왕실에 공을 세워 남원부백(南原府伯)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남원(南原)으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양씨는 제주와 남원으로 분관되었고, 후에 충주로도 분관되어 3적(三籍)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전하는 문헌이 없어 선계는 알 수 없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제주도와 남원은 관계가 없을까?
제주도는 옛 왜구이지만.. ^^
탐라국은 백제가 마지막 전투인 백강 전투(白江戰鬪)에서 배를 운반한 왜구이다. ^^
http://people.aks.ac.kr/front/tabCon/lst/lstView.aks?lstId=LST_135_119_0260
남원양씨(南原梁氏)의 시조 양을나(良乙那)는 제주도에 탐라국(耽羅國)을 세웠다고 전한다.
양씨는 모두가 제주양씨에서 분관되었는데,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들어오자 559년 진흥왕이 벼슬을 내리고 ‘良’을 ‘梁’으로 고치게 하였다.
이후 757년(경덕왕 16) 양우량(梁友諒)이 신라 왕실에 공을 세워 남원부백(南原府伯)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남원(南原)으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양씨는 제주와 남원으로 분관되었고, 후에 충주로도 분관되어 3적(三籍)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전하는 문헌이 없어 선계는 알 수 없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제주도와 남원은 관계가 없을까?
제주도는 옛 왜구이지만.. ^^
탐라국은 백제가 마지막 전투인 백강 전투(白江戰鬪)에서 배를 운반한 왜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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