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時代の複式は三国時代, 特に新羅の複式で影響をたくさん受けたが,
新羅の複式を土台にして中国の複式を収容した.
1. 制服
制服である綿服は冕旒冠とゴンボックで構成されて, 皇帝が空, 地, ノングサシン, 氏神に祭祀を行う時
あるいは皇帝の婚礼式, 即位式, そして祝賀会の時着た.
ゴンボック(上着)を修復したのだ. 一番表に着る服だ.
ゴンボックすぐ下にバッチョイブヌンヒョンウィだと言う.
厳然に皇帝が着るのだ. 女のはくスカートではない.
中断だと呼ぶ服だ.
皇帝だけではなく貴族や庶民たちもあまねく着たが, 朝鮮時代ツルマキで発展する.
蔽膝は膝を覆うためにこれから垂らす布切れだ.
代代は柄ない絹で作った帯びる.
革帯中にかける.
皮腰巻は表に満ちる.

3. 空腹
中国の使臣を迎える時着た服で, 紫の砲に玉帯を結んで象牙で作ったホールを持つ.
5. 常衣 皇帝も執務から脱した時は庶民のように百苧布だと呼ばれた服を着て布帛台という腰巻をかけた. 百苧布は高麗の基本的な複式で男女上下選り分けるまでもなくあまねく着たが, 長さが長くて広ければポーラして, 長さが狭くて短ければ義だと言う. 頭にはオーガンと呼ばれた黒い件を使って足首を覆わないという履き物をはいた.





12류관은 황제가 쓰던 것으로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황제가 신는 버선과 신발이다.
버선은 말이라고 부르고 신발은 석이라고 부르는데,
석은 바닥이 여러 겹의 가죽이 붙어 있다.
이밖에 제복의 좌우에 여러 패옥을 차고 손에는 규라고 부르는 막대기를 들었다.
2. 조복
황제가 문무백관과 백성들을 대할 때는 항상 조복을 입었다.
초기에는 자황색 포에 속대를 둘렀고, 공민왕 때에는 명나라로부터 사여받은 원유관에 강사포를 착용했다. 고려 황제의 조복을 묘사한 아래 그림은 고려 불화 "미륵하생경변상도"와 "관경변상서품도"이다.

4. 상복
왕의 사무복인 상복은 옅은 누런색 소매가 좁은 옷을 입었고, 자색 비단으로 만든 허리띠를 댔다.
이렇게 소매가 좁은 옷을 착수상포라고 부르는데, 황제의 색인 황색을 상복으로 사용했던 만큼
고려는 상당히 자주성을 표방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의 상복은 지금 남아있지 않지만, 복원된 옷을 통해 고려 황제의 위용을 짐작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