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 1600년경부터는 페니키아의 틸지역에서 패자(貝紫)에 의한 자색염색이 성행되었고, 중국에서는 서기전 1000년경에 이미 황벽·치자·꼭두서니 등으로 염색을 하였다.
화려한 색채의 의복은 고분벽화의 홍색·자색·녹색·청색·황색·흑색 등에서도 알 수 있다. 백제는 일찍이 품위를 제도화하고 의복색과 색띠로써 구별하게 하였다. 이것은 자색·비색·황색·적색 등 우수한 염색기술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들 염직기술은 일본에 이식되어 463년(개로왕 9)에는 백제의 정안나(定安那)가 하내국(河內國) 도원(桃原)땅에서 하내금(河內錦)을 짜며 금부련(錦部連)의 시조가 되었고, 493년(동성왕 15)에는 가죽 기술자 수류지·노류지 등이 일본 대화의 산변군에 살면서 꼭두서니·자초·소방목 등으로 가죽을 염색하는 방법을 전하였다고 한다.
신라는 염궁(染宮:母11人)·홍전(紅典:母6人)·소방전(蘇芳典:母6人)·찬염전(攢染典:母6人)의 염색담당 부서와 금전(錦典:母23人)의 직물담당 관영공장을 두고 염직물을 전문적으로 생산해내는 한편 관영공장 외에 농민·귀화인·
염직물생산에 투입시켰다.
생산품은 세공·교역·귀족들에게 충당되었다. 신라의 염직기술은 일찍부터 발달하여 209년(내해왕 14) 10월 기록에는 신라왕이 일본에 보낸 금은채색과 능라겸견의 예물목록에서도 유추된다. 514년(법흥왕 1) 법흥왕은 색의 존비제도를 정한 뒤에도 수차 제도를 정비하여 직위에 따라서 자색·비색·청색·황색을 그 순위대로
500년대부터 600년대에 걸친 군관제도에서는 옷깃색으로써 신분을 표시하게 하였다. 사용된 색명은 녹색·자색·비색·적색·황색·흑색·벽색·청색·자백색·청적색·황청색·녹백색·백자색·녹자색·자녹색·황적색·흑적색·벽황색·청백색·백흑색·흑청색등이다.
800년대에는 자황색·멸자색·자자분·금설·황설 등 새롭게 발전된 색명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700∼800년대에는 협힐염·교힐염 등의 방염문양 기술이 발달하고 통일신라 이후에는 더욱 찬란한 염색문화를 성장시켰다.
고려는 사영공장과 관영공장의 도염서에서 염직물을 생산하여 귀족의 수요와 교역품에 충당하였다. 고려는 특히 지치(지치과의 다년초로 여름에 흰 꽃이 핌)로 염색한 자색기술이 우수하였다.
조선시대의 염색은 가내수공업과 농촌수공업과 함께 경공장(京工匠)에서 교역품과 귀족충당의 염색품을 생산하였다. 관노신분의 공장은 점차 양인으로 대체되어 일정한 급료를 받았다.
염색장은 청염장(靑染匠) 30명, 홍염장 20명, 황염장 20명으로 분업화되었다. 설치된 공장이 보여주듯이 조선시대의 색은 오행사상에 근거하여 청색과 홍색이 중심이 된 오방색이 선호되었다.
청색은 쪽으로, 홍색은 수입 소방목과 잇꽃[紅花]으로 염색하였다.
조선시대에 염색되고 명명된 색명들은 대개 자적·대홍·다홍·진홍·심홍·홍·연홍·도홍·은홍·수홍·보라·자색·목홍·반홍·소홍·연지·천홍·황·살구빛·주황·초록·유황·유록·두록·아청·천청·포도색·이청색·반물·남색·옥색 등으로 주로 사용된 기록에 색명이 173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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