メインへ

KJCLUB 日韓文化交流へようこそ。

”安倍首相の真珠湾訪問”が『中韓の嘘歴史を破綻させる』凄まじい効果を発揮w

閲覧数 : 447
JA 0 雪猫さん63 2,811,753
安倍晋三首相の米ハワイ・真珠湾訪問は、大東亜戦争で激烈な戦いを繰り広げた主敵が米国だった不動の史実をクッキリと浮かび上がらせる。半面、日本を打ち破り、独立を果たしたと、「抗日戦勝利」なる夢に取り憑かれた韓国と中国の「戦勝国なりすまし」を際立たせる。

 韓国は大日本帝国に併合され、韓国人は帝国軍人として戦った。日本を負かした米国の進駐で、棚ぼた式に日本統治が終わりを迎えた。中国大陸でも、帝国陸海軍の正面は国民党軍で、共産党軍は逃げ回っていた。降伏調印式には当然、中華民国=国民党代表が出席した。

 近代史を不完全燃焼で終えた分、中韓両国は今になって対日嫉妬の炎をたぎらせる。歴史を正視すると、自信や誇りが傷付くので、歴史の捏造・粉飾で傷口を癒やす。

 「戦勝国気分」を味わいたい両国は「歴史づくり」の一環として将来、真珠湾での追悼式典に出席を打診するかもしれない。その際、米国側には是非、「式典は、式典会場外側の観光客ゾーンからながめて」と、中韓への正確な返答を求めたい。

 朝鮮民族は、大東亜戦争(1941~45年)以降、今に至るまで「連合国」を気取ってきたが、近代に入り日本と朝鮮は本格的に戈を交えていない。戦前~戦中~戦後と、まともな対日ゲリラ抗戦も民族蜂起も起きていない。むしろ、1910年に併合された朝鮮は枢軸国・大日本帝国として戦った。国際法上も実態上も連合国詐称は無理スジだ。

 韓国の朴槿恵大統領は、北京で2015年に開かれた「抗日戦争勝利記念」行事に出席したが、韓国の「連合国願望」史は筋金入り。初代大統領・李承晩は長崎県・対馬の「返還」要求と抱き合わせで、領土も画定する「サンフランシスコ講和条約署名国の資格がある」と1949年、米国に訴えた。戦勝国=連合国入りさせろ-とゴネたのだ。

 駐韓米大使は米政府に口添えした。ワケがある。韓国は在日朝鮮人の連合国民扱い=賠償を求めるなど、国際の法・常識を無視する数多の無理難題を吹っ掛けたが、日本は無論、米国もほぼ飲めぬ内容だった。米国は無理難題を押さえ込むべく署名要求を預かり、条約草案で一旦は締結国リストに加えた。

 しかし、韓国は日本と戦っていないと英国が異を唱え、朝鮮戦争(1950~53年休戦)を共に戦っていた米国も英国にならう。米国は《連合国共同宣言》への署名(42年)がないとも指摘したが、韓国は執拗に食い下がった。

 宣言参加国は最終的に47カ国。全物的・人的資源を対枢軸国用戦力に充てる方針に同意していた。間の悪いことに、フィリピン独立準備政府や多くの亡命政府も参加していた上、連合国(United Nations)なる用語が宣言で正式採用された。

 交渉過程で韓国は、日本の講和条約締結を終始妨害し、島根県・竹島の編入すら主張した。結局、韓国が得たのは在朝鮮半島の日本資産のみ。講和会議へのオブザーバー参加も拒絶された。

棚ぼた式でもらった独立

 日本だった朝鮮の人々は、欧州列強の植民地兵のごとく人間の盾にされもせず、日本軍将兵として戦った。朝鮮人の軍人・軍属は24万2千人以上。朝鮮人高級軍人の目覚ましい武勇に触発され、志願兵の競争率は62倍強に沸騰した。2万1000柱の英霊が靖国神社に祭られる。

 国際社会に連合国資格を一蹴されても、韓国は歴史の捏造・粉飾にふけった。韓国の教科書にも載るが、《韓国光復軍》創立73周年の2013年、韓国メディアは講釈した。

 《英軍と連合して1944年のインパール戦闘をはじめ、45年7月までミャンマー(ビルマ)で対日作戦を遂行した》

 韓国光復軍は、中華民国=国民党政権の臨時首都・重慶に在った朝鮮独立を目指す亡命政府もどき「韓国臨時政府」の武装組織で、1940年の創設。だが、動員計画は遅れ、創設1年目の兵力は300人だった。

 米CIA(中央情報局)の前身で抵抗活動を支援するOSS(戦略諜報局)の協力下、朝鮮半島内で潜入破壊活動を考えたが、日本降伏が先になった。そもそも「臨時政府」自体、能力的欠陥が目立ち過ぎ連合・枢軸国双方が承認を拒んだ。

 戦後も米国は、朝鮮を国家でなく日本だったと公認。日本の統治権を取り上げ直接軍政を敷き、光復軍も武装解除した。

 米国は38度線以北に陣取るソ連軍をにらみ(1)統治能力欠如(2)度し難い自己主張や激高しやすい民族性(3)偏狭な民族主義や共産主義の跋扈…など、信頼性を欠く韓国に国家権能を与えたくなかった。現に、「臨時政府主席」の金九は個人資格で“帰国”した。

 韓国は「日帝を打ち負かして独立を勝ち取った」のではない。終戦3年後、半島で統一国家建設をたくらむソ連に対抗した対日戦勝国・米国が長期信託統治を断念。米国に独立を大きく前倒ししてもらった棚ぼた式だった。金も自伝で憂いた。

 《心配だったのは(大東亜)戦争で何の役割を果たしていないため将来、国際関係での発言権が弱くなること》

 独立しても韓国は韓国であり続ける。

 憲法上、韓国が日本と成った日韓併合は存在せず、代わりに併合期の《3・1運動/1919年3月1日》を起点とする建国物語が記される。韓国は3・1を「独立運動」と認定するが、たった2カ月で収束。米国独立時の長期・大規模戦争を思い描くのは誤りで、反日暴動でしかない。

 日本国憲法も“不磨の大典”と誤認識され、信仰対象と化したが、韓国憲法は研磨し過ぎでバーチャル世界に踏み込んだ。前文にはこうある。

 《悠久の歴史と伝統に輝くわが大韓国民は、3・1運動で建立された大韓民国(韓国)臨時政府の法統…を継承》

 朝鮮人が日韓併合期の3・1運動に際し独立を宣言した点は史実。ただ、憲法が宣言をとらえ、建国をうたうのは無茶だ。

 この脚色だと、韓国は大韓帝国の正統後継国家で、日韓併合は史上存在しなくなる。《大韓帝国→大日本帝国→米国軍政→韓国》との正史ではなく《大韓帝国→日本の植民地→臨時政府→韓国》との虚構だ。日韓併合は国際法上合法なのに、朝鮮も大韓帝国も世界地図から消えた哀史を正視できないでいる。

 何よりも、李承晩が大東亜戦争後の1948年に行った独立宣言の正統性まで問われる。

 邦家の命運を外国に委ねる日本の怪しげな憲法でさえ、歴史はデリートしてはいない。

中国の「誇大倍率」

 朝鮮は中国と文化的同質性をもった「小中華」と自讃したが、本家の「中華」とは歴史の捏造・粉飾の「誇大倍率」に、かなりの差がある。習近平国家主席は2014年12月、南京大虐殺記念館での式典において、以下の談話を発表した。

 「抗日戦争に勝利し、中華民族は外国の侵略に対し不屈に抵抗する『叙事詩』を書いた。近代以降、外国の侵略に遭ってきた民族の『屈辱を徹底的に洗い流した』。中華民族としての自信と誇りを著しく増大させた。中国共産党は、民族復興を実現するという正しい道を切り開くべく重要な土台を創造した」

 『叙事詩』と表現する割に歴史を捏造・粉飾し、屈辱ではなく『史実を徹底的に洗い流した』ので、談話は分かり難い。過去の経緯・発言に照らし、こう言いたいのだろう。

 「古い文明を持つ中国だが数世紀の間、先進技術を備えた西洋に圧倒され、特にアヘン戦争敗戦以降は半ば植民地化された。不安定な国情は日本が仕掛けた侵略戦争で極に達し、世界のどの国も体験しえなかった1世紀を迎えた。戦争→領土割譲→革命…。相次ぐ混乱に終止符を打ったのは共産党だった。1949年の建国で『恥辱の世紀』は終わりを告げ、中華民族の再興劇が始まったのだ」

 「恥辱の世紀」、あるいは「恥辱の百年」は1840年のアヘン戦争~1945年の抗日戦勝利~1949年の中華人民共和国建国までを指す。

 「抗日戦勝利」の大ウソは後で暴くとして、まずは「抗日戦勝利」を強調したいがため、「屈辱の世紀」を認めた結果、発覚してしまった大ウソを突く。

 中国は南シナ海に「九段線」なる破線を勝手に引き、破線内を「中国の海」と宣言し、「支配は2千年も続いている」との理屈を振りかざし、人工島=軍事基地建設を強行する。

 「海洋の支配権」は国際法や国際慣行上の様々な要件を満たさねば、認められない。「歴史的支配権」にせよ、「他国の黙認」「他国が知り得る継続的権利行使」などの証明が不可欠。けれども、中国が権利を主張する南シナ海は、他国と係争案件を多く抱え、「黙認」はおろか「否認」されている有り様だ。

 「他国が知り得る継続的行使」に至っては「中国は2千年前より活動。島々を発見・命名し、資源を調査し、開発し、主権の権利を継続的に行使してきた最初の国家」と威張るが、中国以外に知る国はあるまい。


 アヘン戦争開戦に反対した英国の政治家ウィリアム・グラッドストンの議会演説を思い出した。清国側に正義があったか否かは議論が分かれるが、支那人の本質を見事に看破している。

 「なるほど支那人には愚かしい大言壮語と高慢の習癖があり、それも度を越すほど。でも、正義は異教徒にして半文明な野蛮人たる支那人側にある」

 国際法や国際慣行上の要件を満たそうと、これでもかと「継続的」を連呼する。あら、不思議。そうなると「屈辱の百年」の間も南シナ海を支配していたことに…。

 中国が主張する九段線の内側は南シナ海(358万平方キロ)の9割近くを占める。「屈辱の百年」で自国の領土さえ満足に統治できなかった支那が、大洋を支配していたとは、よほど強大な海軍力を有していたのだろうか。

 アヘン戦争中、清国軍のジャンク船が英海軍艦に吹き飛ばされるシーンを描いた絵は余りに有名だが、小欄の幻覚だったようだ。

 2014年9月、習氏は「抗日戦争勝利記念日」にあたり、共産党・政府・軍の幹部を前に重要講話を行った。

 「偉大な勝利は永遠に中華民族史と人類の平和史に刻まれる」

 頭が混乱した小欄はインターネット上で、東京湾に投錨した米戦艦ミズーリの上甲板において、1945(昭和20)年9月に撮られた写真を探していた。大日本帝国政府全権・重光葵外相らが、降伏文書署名に使った机の向こうに、連合軍将星がズラリと並ぶ一枚を思い出したためだ。

 米国▽英国▽ソ連▽豪州▽カナダ▽フランス▽オランダ▽ニュージーランドに混じり、中華民国(国民党)軍の軍服は確認したが、共産党系軍人は見い出せなかった。

 そのはずで、地球上に中華人民共和国なる厄介な国が現れるのは降伏調印後、中国大陸を舞台に国民党と共産党の内戦が始まり、共産党が勝って国民党を台湾に潰走させた前後。降伏調印後4年以上もたっていた。

 1937年に勃発した支那事変が大東亜戦争へと拡大する中、精強な帝国陸海軍と戦ったのは専ら国民党軍で、国共内戦時に国民党軍の損害は既に甚大であった。これが共産党系軍勝利の背景だ。

避戦に徹した共産党軍

 支那事変~大東亜戦争中、共産党系軍は一部が遊撃(ゲリラ)戦に臨んだが、帝国陸海軍と国民党軍の戦闘を可能な限り傍観し、戦力温存に専心。同じく帝国陸海軍から逃げ回った国民党軍の「退嬰的戦法」をはるかに凌駕した。

 実際、初代国家主席・毛沢東は「力の7割は共産党支配地域拡大、2割は妥協、1割が抗日戦」と指導。帝国陸軍が中華民国の首都・南京を陥落(1937年)させると、祝杯の大酒を仰いでいる。

 従って「偉大な勝利」は有り得ない。「永遠に中華民族史と人類の平和史に刻まれる」べきは、非戦ならぬ徹底した「避戦」であった。

 「避戦」は、毛が練り上げた《持久戦論》の重要要素だった。が、持久戦論は図らずも、共産党系軍が最後まで日本に勝てなかった動かぬ証拠を歴史に刻んでしまう。持久戦論は以下の前提に立つ。

 《日本は軍事・経済力ともに東洋一で速戦速勝できない。だが、日本は国土が小さく、人口も少なく、資源も乏しい。寡兵をもって、広大な中国で大兵力に挑んでいる。一部の大都市/幹線道路を占領しうるに過ぎず、長期戦には耐えられぬ。敵後方で遊撃戦を展開し、内部崩壊を促せば、最後に勝利する》

 持久戦論によると、戦争は3つの段階を踏む。

 (1)敵の進攻⇔自軍の防御(1937~38年)

 (2)彼我の対峙 敵の守勢⇔自軍の反攻準備期間(1938~43年)

 (3)自軍の反攻⇒敵の退却⇒殲滅(1943~45年)

 ところが、(3)段階の頃、帝国陸軍は50万の兵力で対中戦争最大の作戦《大陸打通作戦》を実行し、戦略目的達成はともかく、作戦通りの地域を占領した。結局、支那派遣軍は終戦時点でも100万以上の兵力を有し、極めて優勢だった。

 第二次世界大戦におけるわが国の戦死者240万の内、中国戦線での戦死は46万人。日本敗北は毛が主唱する遊撃戦の戦果ではない。米軍の原爆を含む圧倒的軍事力がもたらしたのである。

 ところで、安倍首相の真珠湾訪問を前にバラク・オバマ米大統領は声明を出した。

 「最も激しく戦った敵同士が最も緊密な同盟国になれる」

 「戦っていない」中韓両国とはお友達になれないとの理屈になるが、「戦っていた」としてもお友達にはなれそうにない。

http://www.sankei.com/premium/news/161212/prm1612120005-n1.html





9:<丶`∀´>(´・ω・`)(`ハ´  )さん@\(^o^)/:2016/12/12(月) 07:43:04.07 ID:hqsNDPX2.net
歴史まで背乗りってのがもうね



16:<丶`∀´>(´・ω・`)(`ハ´  )さん@\(^o^)/:2016/12/12(月) 08:07:38.64 ID:ru5AQF9E.net
何を今更なw



17:<丶`∀´>(´・ω・`)(`ハ´  )さん@\(^o^)/:2016/12/12(月) 08:09:10.04 ID:XwH9l08Y.net
まあ韓国が僭称国であるのはあきらか。
共産党中国も同様。




21:<丶`∀´>(´・ω・`)(`ハ´  )さん@\(^o^)/:2016/12/12(月) 08:30:10.20 ID:7wGGI+zN.net
韓国は在韓日本人財産を没収して韓国側の請求権と相殺しているんだから慰安婦古事記に10億円払うのもおかしいな話なんだよな



日米戦争は共産党が起こし、日中戦争は共産党が煽った

何が平和だよ、大ウソつきのアカ連中w


翻訳を見る

&#x201d;아베 수상의 진주만 방문&#x201d;가&#x300e;중한의 거짓말 역사를 파탄시키는&#x300f;굉장한 효과를 발휘 w

아베 신조 수상의 미국 하와이・진주만 방문은, 대동아전쟁으로 격렬한 싸움을 펼친 주적이 미국이었던 부동의 사실을 쿠키리와 떠오르게 한다.반면, 일본을 깨어, 독립을 완수했다고, 「항일 전승리」되는 꿈에 취해 홀린 한국과 중국의「전승국이든지 끝내」를 두드러지게 한다.

 한국은 대일본 제국에 병합 되어 한국인은 제국 군인으로서 싸웠다.일본을 이긴 미국의 진주로, 선반식에 일본 통치가 마지막을 맞이했다.중국 대륙에서도, 제국육지 해군의 정면은 국민당군에서, 공산당군은 도망쳐 다니고 있었다.항복 조인식에는 당연, 중화 민국=국민당 대표가 출석했다.

 근대사를 불완전 연소로 끝낸 만큼, 중한 양국은 지금에 와서 대일 질투의 불길을 끓어오르게 한다.역사를 정시 하면, 자신이나 자랑이 손상되므로, 역사의 날조・겉치레로 상처를 유.

 「전승국 기분」를 맛보고 싶은 양국은「역사 만들기」의 일환으로서 장래, 진주만에서의 추도 식전에 출석을 타진할지도 모른다.그 때, 미국 측에는 부디, 「식전은, 식전 회장 외측의 관광객 존으로부터 바라 봐」와 중한에의 정확한 대답을 요구하고 싶다.

 조선 민족은, 대동아전쟁(1941~45년) 이후, 곧 도달할 때까지「연합국」를 뽐내 왔지만, 근대에 석양책과 조선은 본격적으로 과를 섞지 않았다.전쟁 전~전시중~전후와 착실한 대일 게릴라 항전도 민족 봉기도 일어나지 않았다.오히려, 1910년에 병합 된 조선은 추축국・대일본 제국으로서 싸웠다.국제법상도 실태상도 연합국 사칭은 무리 스지다.

 한국의 박근 메구미 대통령은, 북경에서 2015년에 열린「항일 전쟁 승리 기념」행사에 출석했지만, 한국의「연합국 욕구」사는 국건한 신념.초대 대통령・이승만은 나가사키현・대마도의「반환」요구와 얼싸안게 한으로, 영토도 확정하는「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서명국의 자격이 있다」와 1949년, 미국에 호소했다.전승국=연합국 들어가 시켜라-와 고네의 것이다.

 주한미 대사는 미 정부에 조언 했다.이유가 있다.한국은 재일 조선인의 연합국민 취급=배상을 요구하는 등, 국제의 법・상식을 무시하는 많은 생트집을 과장했지만, 일본은 물론, 미국도 거의 마실 수 없는 내용이었다.미국은 생트집을 누를 수 있도록 서명 요구를 맡아, 조약 초안으로 일단은 체결국 리스트에 가세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 싸우지 않았다고 영국이 반대 의견을 내세워 한국 전쟁(1950~53 연차 휴가전)을 모두 싸우고 있던 미국도 영국을 모방한다.미국은《연합국 공동선언》에의 서명(42년)이 없다고 지적했지만, 한국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선언 참가국은 최종적으로 47개국.전물적・인적자원을 대추축국용 전력에 충당할 방침으로 동의 하고 있었다.사이의 나쁜 것에, 필리핀 독립 준비 정부나 많은 망명 정부도 참가하고 있던 후, 연합국(United Nations) 되는 용어가 선언으로 정식 채용되었다.

 교섭 과정에서 한국은, 일본의 강화 조약 체결을 시종 방해해, 시마네현・타케시마의 편입조차 주장했다.결국, 한국이 얻은 것은 재북선반도의 일본 자산만.강화 회의에의 옵서버 참가도 거절되었다.

선반식에서 받은 독립

 일본이었던 조선의 사람들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병과 같이 인간의 방패로 되어도 하지 않고, 일본군장병으로서 싸웠다.조선인의 군인・군속은 24만 2천명 이상.조선인 고급 군인의 눈부신 무용에 촉발 되어 지원병의 경쟁률은 62배강에 비등했다.2만 1000기둥의 영령이 야스쿠니 신사에 제사 지내진다.

 국제사회에 연합국 자격을 일축 되어도, 한국은 역사의 날조・겉치레에 빠졌다.한국의 교과서에도 실리지만, 《한국 광복군》창립 73주년의 2013년, 한국 미디어는 야담 했다.

 《영군과 연합 해 1944년의 인 펄 전투를 시작해 45년 7월까지 미얀마(버마)에서 대일 작전을 수행한 》

 한국 광복군은, 중화 민국=국민당 정권의 임시 수도・쥬우케이에 있던 조선 독립을 목표로 하는 망명 정부도 물러나「한국 임시 정부」의 무장 조직으로, 1940년의 창설.하지만, 동원 계획은 늦어 창설 1년째의 병력은 300명이었다.

 미 CIA(중앙정보국)의 전신으로 저항 활동을 지원하는 OSS(전략 첩보국)의 협력하, 한반도내에서 잠입 파괴 활동을 생각했지만, 일본 항복이 먼저 되었다.원래「임시 정부」자체, 능력적 결함이 너무 눈에 띄어 연합・추축국 쌍방이 승인을 거절했다.

 전후도 미국은, 조선을 국가가 아니고 일본이었다고 공인.일본의 통치권을 채택해 직접 군정을 깔아, 광복군도 무장해제 했다.

 미국은 38 도선 이북에 진을 치는 소련군을 노려봐(1) 통치 능력 결여(2) 구제할 길 없는 자기 주장이나 격앙하기 쉬운 민족성(3) 편협한 민족주의나 공산주의의 발호… 등, 신뢰성이 부족한 한국에 국가 권능을 주고 싶지 않았다.실제로, 「임시 정부 주석」의 김구는 개인 자격으로“귀국”했다.

 한국은「일제를 패배시키고 독립을 차지한」것은 아니다.종전 3년 후, 반도에서 통일 국가 건설을 꾀하는 소련에 대항한 대일 전승국・미국이 장기 신탁통치를 단념.미국에 독립을 크고 앞당김 받은 선반식이었다.돈도 자전으로 슬픔.

 《걱정이었던 것은(대동아) 전쟁으로 무슨 역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장래, 국제 관계로의 발언권이 약해지는 것 》

 독립해도 한국은 한국으로 계속 된다.

 헌법상, 한국이 일본과 완성된 한일합방은 존재하지 않고, 대신에 병합기의《3・1 운동/1919년 3월 1일》를 기점으로 하는 건국 이야기가 기록된다.한국은 3・1을「독립 운동」라고 인정하지만, 단 2개월에 수습.미국 독립시의 장기・대규모 전쟁을 마음에 그리는 것은 잘못으로, 반일 폭동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국 헌법도“불마의 대전”와 오인식 되어 신앙 대상화했지만, 한국 헌법은 너무 연마하고 버추얼 세계에 발을 디뎠다.전문에는 이렇게 있다.

 《유구의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한국) 임시 정부의 법통…를 계승 》

 조선인이 한일합방기의 3・1 운동에 즈음해 독립을 선언한 점은 사실.단지, 헌법이 선언을 파악하고 건국을 노래하는 것은 터무니 없다.

 이 각색이라고, 한국은 대한제국의 정통 후계 국가에서, 한일합방은 사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대한제국→대일본 제국→미국 군정→한국》라는 마사시는 아니고《대한제국→일본의 식민지→임시 정부→한국》와의 허구다.한일합방은 국제법 카미아이법인데, 조선이나 대한제국도 세계 지도로부터 사라진 애사를 정시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승만이 대동아전쟁 후의 1948년에 간 독립선언의 정통성까지 추궁 당한다.

 국가의 운명을 외국에 맡기는 일본의 수상한 헌법조차, 역사는 데리트 하고 있지는 않다.

중국의「과대 배율 」

 조선은 중국과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코나카화」와 자찬 했지만, 본가의「중화」와는 역사의 날조・겉치레의「과대 배율」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습긴뻬이 국가 주석은 2014년 12월, 난징대학살 기념관에서의 식전에 대하고, 이하의 담화를 발표했다.

 「항일 전쟁에 승리해, 중화 민족은 외국의 침략에 대해 불굴에 저항하는『서사시』를 썼다.근대 이후, 외국의 침략을 당해 온 민족의『굴욕을 철저하게 씻어 흘린 』.중화 민족으로서의 자신과 자랑을 현저하게 증대시켰다.중국 공산당은, 민족 부흥을 실현한다고 하는 올바른 길을 열 수 있도록 중요한 토대를 창조한 」

 『서사시』라고 표현하는 비교적 역사를 날조・겉치레해, 굴욕은 아니고『사실을 철저하게 씻어 흘린』의로, 담화는 알기 어렵다.과거의 경위・발언에 비추어, 이렇게 말하고 싶겠지.

 「낡은 문명을 가지는 중국이지만 수세기의 사이, 선진 기술을 갖춘 서양에 압도 되어 특히 아편 전쟁 패전 이후는 반식민지화 되었다.불안정한 국정은 일본이 건 침략전쟁으로 극히에 이르러, 세계의 어느 나라도 체험할 수 없었던 1 세기를 맞이했다.전쟁→영토 할양→혁명 ….잇따르는 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공산당이었다.1949년의 건국으로『치욕의 세기』는 마지막을 고해 중화 민족의 재흥극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

 「치욕의 세기」, 있다 있어는「치욕의 백년」는 1840년의 아편 전쟁~1945년의 항일 전승리~1949년의 중화 인민 공화국 건국까지를 가리킨다.

 「항일 전승리」의 대거짓말은 다음에 폭로한다고 하여, 우선은「항일 전승리」를 강조하고 싶지만 모아 두어「굴욕의 세기」를 인정한 결과, 발각되어 버린 대거짓말을 찌른다.

 중국은 남지나해에「구단선」되는 파선을 마음대로 당겨, 파선내를「중국의 바다」라고 선언해, 「지배는 2 천년도 계속 되고 있는」와의 도리를 내세워, 인공섬=군사기지 건설을 강행한다.

 「해양의 지배권」는 국제법이나 국제 관행상의 님 들인 요건을 채우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역사적 지배권」이든, 「타국의 묵인」「타국이 파악하는 계속적 권리행사」등의 증명이 불가결.그러나, 중국이 권리를 주장하는 남지나해는, 타국과 계쟁 안건을 많이 안아「묵인」는 커녕「부인」되고 있는 상태다.

 「타국이 파악하는 계속적 행사」에 이르러「중국은 2 천년 전보다 활동.섬들을 발견・명명해, 자원을 조사해, 개발해, 주권의 권리를 계속적으로 행사해 온 최초의 국가」와 잘난체 하지만, 중국 이외에 아는 나라는 있다 매.


 아편 전쟁 개전에 반대한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그랏드스톤의 의회 연설을 생각해 냈다.청나라 측에 정의가 있던지 아닌지는 논의가 나뉘지만, 시나인의 본질을 보기 좋게 간파 하고 있다.

 「그렇구나 시나인에는 어리석은 호언 장담과 고만의 버릇이 있어, 그것도 번을 넘는 만큼.그렇지만, 정의는 이교도로 해 반문명인 야만인인 시나인 측에 있다 」

 국제법이나 국제 관행상의 요건을 채우려고, 이것이라도일까하고「계속적」를 연호한다.어머나, 신기하다.그렇게 되면「굴욕의 백년」의 사이도 남지나해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에 ….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의 안쪽은 남지나해(358만 평방 킬로)의 9할 가깝게를 차지한다.「굴욕의 백년」로 자국의 영토마저 만족하게 통치할 수 없었던 시나가, 대양을 지배하고 있었다고는, 상당히 강대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 것일까.

 아편 전쟁중, 청나라군의 정크선이 사카에 해군함에 날려 버려지는 씬을 그린 그림은 너무 유명하지만, 소란의 환각이었던 것 같다.

 2014년 9월, 습씨는「항일 전쟁 승리 기념일」에 해당해, 공산당・정부・군의 간부를 앞에 두고 중요 강화를 실시했다.

 「위대한 승리는 영원히 중화 민족사와 인류의 평화사에 새겨지는 」

 머리가 혼란한 소란은 인터넷상에서, 도쿄만에 투묘 한 미 전함 미저리의 상갑판에 대하고, 1945(쇼와 20) 년 9월에 찍힌 사진을 찾고 있었다.대일본 제국 정부 전권・시게미츠 마모루 외상외가, 항복문서 서명에 사용한 책상의 저 편으로, 연합군 장성이 즐비와 대등한 한 장을 생각해 냈기 때문이다.

 미국▽영국▽소련▽호주▽캐나다▽프랑스▽네델란드▽뉴질랜드에 섞여, 중화 민국(국민당) 군의 군복은 확인했지만, 공산당계 군인은 찾아&A 수 없었다.

 그럴 것이고, 지구상에 중화 인민 공화국 되는 귀찮은 나라가 나타나는 것은 항복 조인 후, 중국 대륙을 무대에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시작되어, 공산당이 이겨 국민당을 대만에 패주시킨 전후.항복 조인 후 4년 이상이나 지나 있었다.

 1937년에 발발한 중일전쟁이 대동아전쟁으로 확대하는 중, 정강인 제국육지 해군과 싸운 것은 오로지 국민당군에서, 국공 내전시에 국민당군의 손해는 이미 심대였다.이것이 공산당계군승리의 배경이다.

피전에 철저한 공산당군

 중일전쟁~대동아전쟁중, 공산당계군은 일부가 유격(게릴라) 전에 임했지만, 제국육지 해군과 국민당군의 전투를 가능한 한 방관해, 전력 온존에 전심.같은 제국육지 해군으로부터 도망쳐 다닌 국민당군의「퇴영적 전법」를 아득하게 능가했다.

 실제, 초대 국가 주석・모택동은「힘의 7할은 공산당 지배 지역 확대, 2할은 타협, 1할이 항일전」와 지도.제국 육군이 중화 민국의 수도・난징을 함락(1937년) 시키면, 축배의 대주를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위대한 승리」는 있을 수 없다.「영원히 중화 민족사와 인류의 평화사에 새겨지는」나무는, 비전 되지 않는 철저히 한「피전」에서 만났다.

 「피전」는, 털이 가다듬은 《지구전론》의 중요 요소였다.하지만, 지구전론은 뜻밖에, 공산당계군이 끝까지 일본에 이길 수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증거를 역사에 새겨 버린다.지구전론은 이하의 전제에 선다.

 《일본은 군사・경제력 모두 동양1으로 속전속승 할 수 없다.하지만, 일본은 국토가 작고, 인구도 적고, 자원도 부족하다.적은 병력을 가지고, 광대한 중국에서 대군력에 도전하고 있다.일부의 대도시/간선도로를 점령할 수 있는에 지나지 않고, 장기전에는 견딜 수 있지 않다.적후방에서 유격전을 전개해, 내부 붕괴를 재촉하면, 마지막에 승리하는 》

 지구전론에 의하면, 전쟁은 3개의 단계를 밟는다.

 (1) 적의 진공⇔자군의 방어(1937~38년)

 (2) 피아의 대치적의 수세⇔자군의 반공 준비 기간(1938~43년)

 (3) 자군의 반공⇒적의 퇴각⇒섬멸(1943~45년)

 그런데 , (3) 단계의 무렵, 제국 육군은 50만의 병력으로 대 중국 전쟁 최대의 작전《대륙타통작전》를 실행해, 전략 목적 달성은 차치하고, 작전대로의 지역을 점령했다.결국, 시나 파견군은 종전 시점에서도 100만 이상의 병력을 가져, 지극히 우세했다.

 제이차 세계대전에 있어서의 우리 나라의 전사자 240만중, 중국 전선으로의 전사는 46만명.일본 패배는 털이 주창 하는 유격전의 전과는 아니다.미군의 원폭을 포함한 압도적 군사력이 가져왔던 것이다.

 그런데, 아베 수상의 진주만 방문을 앞두고 바라크・오바마 미 대통령은 성명을 냈다.

 「가장 격렬하게 싸운 적끼리가 가장 긴밀한 동맹국이 될 수 있는 」

 「싸우지 않은」중한 양국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도리가 되지만, 「싸우고 있던」라고 해도 친구로는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http://www.sankei.com/premium/news/161212/prm1612120005-n1.html





9:<주`∀´>(´・ω・`)(`하 ´  )씨@\(^o^)/:2016/12/12(월) 07:43:04.07 ID:hqsNDPX2.net
역사까지 키타기는의가 이제(벌써)



16:<주`∀´>(´・ω・`)(`하 ´  )씨@\(^o^)/:2016/12/12(월) 08:07:38.64 ID:ru5AQF9E.net
무엇을 이제 와서w



17:<주`∀´>(´・ω・`)(`하 ´  )씨@\(^o^)/:2016/12/12(월) 08:09:10.04 ID:XwH9l08Y.net
뭐한국이 참칭국인 것은 아키라인가.
공산당 중국도 마찬가지.




21:<주`∀´>(´・ω・`)(`하 ´  )씨@\(^o^)/:2016/12/12(월) 08:30:10.20 ID:7wGGI+zN.net
한국은 주한 일본인 재산을 몰수해 한국측의 청구권으로 상쇄하고 있기 때문에 위안부 고사기에 10억엔 지불하는 것도 이상한데 이야기야



일·미 전쟁은 공산당이 일으켜, 중일 전쟁은 공산당이 부추겼다

무엇이 평화로워, 대거짓말쟁이의 아카 무리 w


いいね・コメントにはログインが必要です。

コメント ( 1 )

投稿一覧

2,811,753

  1. KO 255 propertyOfJapan
  2. KO 20 Jumong8
  3. KO 255 morort
  4. KO 255 morort
  5. KO 255 morort
  6. JA 255 竹島先住民
  7. KO 255 propertyOfJapan
  8. KO 255 morort
  9. JA 255 竹島先住民
  10. KO 255 amateras16
  11. 閲覧数 : 79
    KO 255 avenger
  12. KO 255 jap6cmwarotaZ
  13. 閲覧数 : 109
    JA 255 milet
  14. KO 255 cris1717
  15. KO 255 amateras16
  16. 5 閲覧数 : 109
    JA 255 dom1domko
  17. 閲覧数 : 89
    JA 255 sonhee123
  18. JA 255 bluebluebluu
  19. KO 255 avenger
  20. KO 255 jap6cmwarot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