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年、日本にアジア太平洋地域インフルエンザ・センターが作られた。
それまでアメリカ、イギリス、オーストラリアにしかなかったセンター
が日本に設置されることになったのは、なぜか。
インフルエンザ・ワクチンは、毎年、WHOの専門家会議で、
データをもとに今年流行しそうなインフルエンザを決定し、
それに基づいて製薬メーカーがワクチンを作っている。
それまで日本はその元になるアジア各国の膨大なデータを収集し
WHOに送付する仕事だけをやっていた。
担当していた根路銘国昭氏は、これだけの仕事をやってるのに、
日本にインフルエンザ・センターがないのはおかしいと
WHOに手紙を書いた。
それに対する返事は
「WHOも国連の安保理と同じで第二次大戦の戦勝国で構成している。
よって日本は入れない。」というものだった。
彼はさらに抗議の手紙を送ったが返事は同じ。
それどころか、WHOに批判的人物として、彼と日本に対し冷淡になったという。
ここで普通の日本人ならどうするだろうか。
なんとか謝罪して、今までどおりの扱いにしてもらおうと努力するか、
そもそも抗議など最初からしないかもしれない。
だが根路銘氏は違った。
なんと、日本が集めていたアジアのデータを1年間、
WHOに送るのをやめたのだ。
インフルエンザの大半はアジアから発生するから、
そのデータがないとワクチンが作れない。
WHOは大騒ぎになったという。
そして翌年、根路銘氏にWHO専門家会議への招待状が来た。
その会議で、日本にアジア太平洋地域のインフルエンザ・センター
を作ることが決定され、彼が初代センター長に就任することに
239 音速の名無しさん 2009/01/28(水) 05:47:43 ID:c82jBkYi0
こうしてインフルエンザセンター長になった根路銘氏だが、
WHOはアメリカの製薬メーカーの意向を受けた学者
が力を持つ世界だった。
1993年フランスで開かれた国際会議で、アメリカが新開発した生ワクチンを、
まず日本で使うべしという議題があがった。
日本は生ワクチンの効果には疑問をもっていて既に使わなくなっていた。
根路銘氏は、「日本を実験台にして、うまくいけば各国で使うつもりだろう」
と感じたという。
その会議には日本の学者も数十人参加していたが誰も反対しなかった。
根路銘氏ひとりが、
「日本は先進国であり、ワクチン政策に君たちの指導を
と反論した。
そこでアメリカの学者に、君たちのデータをOHPで映してほしいと頼んだ。
そして日本のデータと比較すると、日本のワクチンの方
が明らかに効果があるとわかり、
他の学者からも「ネロメの方が正しい」と意見があがった。
こうしてこの議題は流れ、日本人がモルモットにされるのを防いだ。
240 音速の名無しさん 2009/01/28(水) 05:51:31 ID:c82jBkYi0
またジュネーブのWHO本部で12人の専門家によるワクチン決定
の投票において、アメリカのワクチン11票、
日本のワクチン1票でアメリカ製に決まった。
もちろん1票は根路銘氏のものだ。
根路銘氏は科学的に見てこの結果はおかしいと
閉会30分のコーヒーブレイクのときに、
2日間の討議で使った110カ国のデータをつき合わせて
コンピュータにかけた。
するとアメリカ製は日本の半分しか効果がないと出た。
彼はこの結果を見せて、居並ぶ学者たちに
「君たちは政治家か、科学者か。科学者ならこのデータをどう見る」
と問いかけた。
すると議長がテーブルを2回たたいて
「私の判断で採決を取り消します。
ドクターネロメが提案した日本の意見に従います」
と結果をひっくり返した。「まるで映画のようだった」と根路銘氏は言う。
根路銘氏はこうも言っている。
「この会議の後、対立したアメリカの学者とすごく仲良くなった。
日本人同士だとこうはいかない」
ドクター ネロ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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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크타네로메
1993해, 일본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 인플루엔자·센터가 만들어졌다.
그것까지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밖에 없었던 센터 하지만 일본에 설치되게 된 것은, 왠지.
인플루엔자·백신은, 매년, WHO의 전문가 회의에서,
데이터를 기초로 금년 유행할 것 같은 인플루엔자를 결정해,
거기에 기초를 두어 제약 메이커가 백신을 만들고 있다.
그것까지 일본은 그 바탕으로 되는 아시아 각국의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WHO에 송부하는 일만을 하고 있었다.
담당하고 있던 네로메 쿠니아키씨는, 이만큼의 일을 하고 있는데,
일본에 인플루엔자·센터가 없는 것은 이상하면
WHO에 편지를 썼다.
그에 대한 대답은
「WHO도 유엔의 안보리와 같고 제2차 대전의 전승국으로 구성해 있다.
따라서 일본은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한층 더 항의의 편지를 보냈지만 대답은 같다.
그 뿐만 아니라, WHO에 비판적 인물로서 그와 일본에 대해 냉담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보통 일본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어떻게든 사죄하고, 지금까지 대로의 취급으로 해 주려고 노력하는지,
원래 항의 등 최초부터 하지 않을 지도 모르다.
하지만 네로메씨는 달랐다.
무려, 일본이 모으고 있던 아시아의 데이터를 1년간,
WHO에 보내는 것을 그만두었던 것이다.
인플루엔자의 대부분은 아시아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그 데이터가 없으면 백신을 만들 수 없다.
WHO는 큰소란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해, 네로메씨에게 WHO 전문가 회의에의 초대장이 왔다.
그 회의에서, 일본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인플루엔자·센터
(을)를 만드는 것이 결정되어 그가 초대 센터장으로 취임하는 것에
239 음속의 무명씨 2009/01/28(수) 05:47:43 ID:c82jBkYi0
이렇게 해 인플루엔자 센터장이 된 네로메씨이지만,
WHO는 미국의 제약 메이커의 의향을 받은 학자
하지만 힘을 가지는 세계였다.
1993년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 회의에서, 미국이 신개발 한 생 백신을,
우선 일본에서 사용할 것이라고 하는 의제가 올랐다.
일본은 생 백신의 효과에는 의문을 갖고 있어 이미 사용하지 않게 되어 있었다.
네로메씨는, 「일본을 실험대로 하고, 잘 되면 각국에서 사용할 생각일 것이다」
(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회의에는 일본의 학자도 수십명 참가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네로메씨 혼자가,
「일본은 선진국이며, 백신 정책에 자네들의 지도를 (이)라고 반론했다.
거기서 미국의 학자에, 자네들의 데이터를 OHP로 비추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리고 일본의 데이터와 비교하면, 일본의 백신의 분
하지만 분명하게 효과가 있다 라고 알아,
다른 학자로부터도 「네로메가 올바르다」라고 의견이 올랐다.
이렇게 해 이 의제는 흘러 일본인이 몰모트로 되는 것을 막았다.
240 음속의 무명씨 2009/01/28(수) 05:51:31 ID:c82jBkYi0
또 제네바의 WHO 본부에서 12명의 전문가에 의한 백신 결정
의 투표에 대하고, 미국의 백신 11표,
일본의 백신 1표로 미국제로 정해졌다.
물론 1표는 네로메씨의 것이다.
네로메씨는 과학적으로 보고 이 결과는 이상하면
폐회 30 분의 커피 타임 때에,
2일간의 토의에서 사용한 110개국의 데이터를 사귀게 해
컴퓨터에 걸쳤다.
그러자(면) 미국제는 일본의 반 밖에 효과가 없으면 나왔다.
그는 이 결과를 보이고, 늘어서는 학자들에게
「자네들은 정치가인가, 과학자인가.과학자라면 이 데이터를 어떻게 본다」
(이)라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면) 의장이 테이블을 2회 쳐
「 나의 판단으로 채결을 취소합니다.
드크타네로메가 제안한 일본의 의견에 따릅니다」
(와)과 결과를 뒤집었다.「마치 영화같았다」라고 네로메씨는 말한다.
네로메씨는 이렇게도 말한다.
「이 회의의 뒤, 대립한 미국의 학자와 몹시 사이가 좋아졌다.
일본인끼리라면 후배일까 있어」
그것까지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밖에 없었던 센터 하지만 일본에 설치되게 된 것은, 왠지.
인플루엔자·백신은, 매년, WHO의 전문가 회의에서,
데이터를 기초로 금년 유행할 것 같은 인플루엔자를 결정해,
거기에 기초를 두어 제약 메이커가 백신을 만들고 있다.
그것까지 일본은 그 바탕으로 되는 아시아 각국의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WHO에 송부하는 일만을 하고 있었다.
담당하고 있던 네로메 쿠니아키씨는, 이만큼의 일을 하고 있는데,
일본에 인플루엔자·센터가 없는 것은 이상하면
WHO에 편지를 썼다.
그에 대한 대답은
「WHO도 유엔의 안보리와 같고 제2차 대전의 전승국으로 구성해 있다.
따라서 일본은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한층 더 항의의 편지를 보냈지만 대답은 같다.
그 뿐만 아니라, WHO에 비판적 인물로서 그와 일본에 대해 냉담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보통 일본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어떻게든 사죄하고, 지금까지 대로의 취급으로 해 주려고 노력하는지,
원래 항의 등 최초부터 하지 않을 지도 모르다.
하지만 네로메씨는 달랐다.
무려, 일본이 모으고 있던 아시아의 데이터를 1년간,
WHO에 보내는 것을 그만두었던 것이다.
인플루엔자의 대부분은 아시아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그 데이터가 없으면 백신을 만들 수 없다.
WHO는 큰소란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해, 네로메씨에게 WHO 전문가 회의에의 초대장이 왔다.
그 회의에서, 일본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인플루엔자·센터
(을)를 만드는 것이 결정되어 그가 초대 센터장으로 취임하는 것에
239 음속의 무명씨 2009/01/28(수) 05:47:43 ID:c82jBkYi0
이렇게 해 인플루엔자 센터장이 된 네로메씨이지만,
WHO는 미국의 제약 메이커의 의향을 받은 학자
하지만 힘을 가지는 세계였다.
1993년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 회의에서, 미국이 신개발 한 생 백신을,
우선 일본에서 사용할 것이라고 하는 의제가 올랐다.
일본은 생 백신의 효과에는 의문을 갖고 있어 이미 사용하지 않게 되어 있었다.
네로메씨는, 「일본을 실험대로 하고, 잘 되면 각국에서 사용할 생각일 것이다」
(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회의에는 일본의 학자도 수십명 참가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네로메씨 혼자가,
「일본은 선진국이며, 백신 정책에 자네들의 지도를 (이)라고 반론했다.
거기서 미국의 학자에, 자네들의 데이터를 OHP로 비추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리고 일본의 데이터와 비교하면, 일본의 백신의 분
하지만 분명하게 효과가 있다 라고 알아,
다른 학자로부터도 「네로메가 올바르다」라고 의견이 올랐다.
이렇게 해 이 의제는 흘러 일본인이 몰모트로 되는 것을 막았다.
240 음속의 무명씨 2009/01/28(수) 05:51:31 ID:c82jBkYi0
또 제네바의 WHO 본부에서 12명의 전문가에 의한 백신 결정
의 투표에 대하고, 미국의 백신 11표,
일본의 백신 1표로 미국제로 정해졌다.
물론 1표는 네로메씨의 것이다.
네로메씨는 과학적으로 보고 이 결과는 이상하면
폐회 30 분의 커피 타임 때에,
2일간의 토의에서 사용한 110개국의 데이터를 사귀게 해
컴퓨터에 걸쳤다.
그러자(면) 미국제는 일본의 반 밖에 효과가 없으면 나왔다.
그는 이 결과를 보이고, 늘어서는 학자들에게
「자네들은 정치가인가, 과학자인가.과학자라면 이 데이터를 어떻게 본다」
(이)라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면) 의장이 테이블을 2회 쳐
「 나의 판단으로 채결을 취소합니다.
드크타네로메가 제안한 일본의 의견에 따릅니다」
(와)과 결과를 뒤집었다.「마치 영화같았다」라고 네로메씨는 말한다.
네로메씨는 이렇게도 말한다.
「이 회의의 뒤, 대립한 미국의 학자와 몹시 사이가 좋아졌다.
일본인끼리라면 후배일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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