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衝撃 ! 35年間 GDP 55% 収奪した日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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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歪曲動画 日本のAbe信條政府が前後 ‘日本が平和国家としてアジアの繁栄と平和に貢献して国際社会の国家建設に積極寄与した’と言う内容の広報ユティユブ映像を製作, 外務省と駐米・在韓日本大使館ホームページに掲示してアメリカ放送を通じて広告している. 動画にはソウル地下鉄 1号線開通式姿(左側写真)と浦項製鉄所の姿(右側)が登場してまるで日本がこれら事業を積極支援したという誤った印象を与えている. 連合ニュース
日本が駐米・在韓日本大使館ホームページに引き続きアメリカ CNNを通じて “日本が第2次世界大戦後アジア経済に寄与した”と言う論理を盛った動画を広報しながら日本の歴史歪曲に対する論難が拡散している. ‘独島は日本地’という減らず口と ‘日本軍慰安婦は人身売買犠牲者’というすぎ去った事歪曲も足りなくて ‘日本援助でアジアが発展した’と言う現代史に対する荒唐な論理まで現わす ‘3種身知らず’だ. Abe信條(安倍晋三) 総理が歴史を逆に使う大大的な挑発を進行していることを見せてくれる.

2. 何らの根拠ない ‘植民地近代化論’
日 支配受けた東南アジア・北はどうして発展できなかったか

3. 統計でもう確認した日帝の収奪
1931年組,先人極貧層 543万名… 4人の中 1名ずつ

4. 1965年請求権協定資金が援助か
当然賠賞金…漢江の奇蹟は私たち努力結果

5. 経済発展土台は日本ではないアメリカの援助
1962〜71年公共 61%・商業借款 42% 美 提供

6. 日, 6・25戦争を経済財でも機会で利用
トヨタなど起死回生…6・25 収益 40億ドル越して


日本のこのような虚構的歴史観が国際社会に伝えて, 来る 4月 29日Abe総理の史上初アメリカ上・下院立会い演説で繰り返され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憂慮の声が大きくなっている. アメリカにはAbe総理がアジア平和と経済開発の伝道師という誤った認識も広がっている. 1965年韓・日請求権協定による 5億ドル支援が賠償ではなく援助という論理は日本が ‘65年体制’で回帰する退行的歴史認識を見せてくれる代表的事例に指摘される. 李命撰北東アジア歴史財団研究委員は 30日文化日報との電話通話で “日本の援助を通じる韓国発展論は日本が賠償ではなく経済援助と主張しながら資金を支援した 1965年韓・日請求権協定当時認識で帰ったこと”と言った.

1. 植民地近代化論’の延長線= 日本がまき散らそうとする歴史歪曲の根は ‘植民地近代化論’だ. 日本が主張する ‘小農社会では’ ‘組,ソンゾングチェでは’ ‘組,羨望国では’は実際甲申の変や高宗の光武改革, 東学革命など各種改革運動が厳然に存在したという点で虚構だ. ‘資本主義萌芽では’を土台にした内在的発展では(キム・ヨンソップ展延世大教授)ももう学界でよほど認められている状況だ. 何よりまったく同じな日帝殖民支配や占領にあった北朝鮮と東南アジア国々が韓国位の経済を成すことができないことも ‘殖民至近対話では’の最大虚点だ. 李命撰委員は “同じ殖民支配を受けた北朝鮮はどうして住む事ができないと問えば返事することができる日本学者は誰もいない”と “各国が前後にどのようにしたのかが経済位を決めるから”と言った.

2. 日製収奪が一番アックドック= 近代化どころかむしろ収奪・搾取が制度化されたことが日帝の殖民支配だった. 異系型国民大韓国学縁旧ソ専任研究員などが昨年末編著した ‘数字で見た植民地組,線’に沿えば日帝の収奪による組,善意状況は血なまぐさかった. 1931年極貧層である細民(細民)・窮民(窮民)は 543万人で, 全体人口の 26.7%に達した. 4人の中 1名ずつだ. 直接税でも 1930年の場合組,先人は 1号当たり平均 11ウォン79銭9里で, 日本人(103ウォン4銭9里)に比べて 9分の 1 位に低かった. 組,線に対する苛酷な搾取を意味する.

3. 1965年請求権協定資金は賠賞金= 日本が今度動画で 1965年韓・日請求権協定以後提供した無想 3億ドル(当時為替で計算すれば約 1080億ウォン)と有償 2億ドル(約 720億ウォン)を功績開発援助(ODA)で規定しているがやっぱり歪曲だ. 1951年サンフランシスコ講和條約でアメリカなど承前国が経済的状況などを理由で日本に対する賠償請求権をあきらめたが, 第4条に “ピシックミングックの請求権は日本との特別な協議の対象になる”と明示した. この権利によって政府は 1965年日本との請求権協定に出たことののため当然当時サポート資金は賠賞金になる. 外交部関係者は “政府は一番(回)も公式文書に韓・日請求権協定以後持ちこんだ日本資金を ODAで表記したことがないし, ‘漢江の奇跡’は日本支援ではない私たちのリーダーシップなどによる結果”と言った.

4. 韓国経済発展の土台はアメリカ援助= 実は韓国経済発展の土台は日本ではなくアメリカの援助だった. 1962〜1971年 10年間韓国に入って来た海外公共次官は総 11億9300万ドルなのに, この中アメリカから来た公共次官が 7億2300万ドルだった. 全体の半分を干すことは 61%だった. ここに国際開発銀行(IBRD) など国際金融機構が 1億6600万ドル(14%)を提供したし, 日本の支援金は全体の 2%である 2億5600万ドルに過ぎなかった. 民間企業の借入金である商業借款を含んでもアメリカが 13億5800万ドル(42%)で一番多かった.

5. 日本賠償額は収奪額に比べれば ‘すずめのなみだ’= 日本が 35年の殖民支配で得た収奪額に比べれば賠賞金は法外に足りない. 1910〜1945年植民地組,善意国内総生産 550億円の中で 55%が日本に流出されたという主張(ユンギョングロの前漢城大教授)もある. 一方日本が植民地開発のために持ちこんだと主張した資金は 70億円に過ぎなかった. 強制徴兵・徴用及び日本軍慰安婦など人跡収奪まで勘案すればその数字は天文学的だ.

6. 前後日本, 寄与より収益がもっと多かった= 前後日本は賠償にもけち臭かったのみならずむしろこれを経済再建の機会に悪用した. 特に 1950年 6・25戦争は当時極甚な不況で破産危機に追われた日本大企業たちには起死回生の機会だった. 自動車業社トヨタとMatsushita伝記, シャープ, 日立などが回生した. 当時日本が韓国戦で積いだ外貨収益は総 40億ドルに達するのに, 1965年韓・日請求権協定で支給した賠賞金 3億ドル(有償次官除外)の 13倍だ. また日本は韓国と東南アジア国家に賠賞金支給を通じて日本企業進出の足場を用意したし, 結局現在の対日貿易赤字構図を固着化した ‘原罪’でも自由ではない. 陽気号(日本学) 聖公会大教授は “日本の有償次官は日本企業らが進出するための誘い水になった”と “日本がアジアを食わしたのではなく, アジアの人々が日本を食わす構造が形成された”と言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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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 35년간 GDP 55% 수탈한 일본 !

▲ 왜곡 동영상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가 전후 ‘일본이 평화국가로서 아시아의 번영과 평화에 이바지하고 국제사회의 국가건설에 적극 기여했다’는 내용의 홍보 유튜브 영상을 제작, 외무성과 주미·주한 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미국 방송을 통해 광고하고 있다. 동영상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식 모습(왼쪽 사진)과 포항제철소의 모습(오른쪽)이 등장해 마치 일본이 이들 사업을 적극 지원했다는 잘못된 인상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주미·주한 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 이어 미국 CNN을 통해서까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뒤 아시아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논리를 담은 동영상을 홍보하면서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억지와 ‘일본군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라는 과거사 왜곡도 모자라 ‘일본 원조로 아시아가 발전했다’는 현대사에 대한 황당한 논리까지 드러내는 ‘3종 몰지각’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역사를 거꾸로 쓰는 대대적인 도발을 진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아무런 근거 없는 ‘식민지 근대화론’
日 지배 받은 동남아·北은 왜 발전 못했나

3. 통계로 이미 확인한 일제의 수탈
1931년 조,선인 극빈층 543만명… 4명중 1명꼴

4. 1965년 청구권협정 자금이 원조인가
당연히 배상금…한강의 기적은 우리 노력 결과

5. 경제 발전 토대는 일본 아닌 미국의 원조
1962∼71년 공공 61%·상업차관 42% 美 제공

6. 日, 6·25전쟁을 경제재건 기회로 이용
토요타 등 기사회생…6·25 수익 40억달러 넘어


일본의 이 같은 허구적 역사관이 국제사회에 전파되고, 오는 4월 29일 아베 총리의 사상 첫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에는 아베 총리가 아시아 평화와 경제개발의 전도사라는 잘못된 인식도 퍼지고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5억 달러 지원이 배상이 아니라 원조라는 논리는 일본이 ‘65년 체제’로 회귀하는 퇴행적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지적된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30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본의 원조를 통한 한국발전론은 일본이 배상이 아니라 경제원조라고 주장하면서 자금을 지원했던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당시 인식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1. 식민지 근대화론’의 연장선= 일본이 퍼뜨리려는 역사 왜곡의 뿌리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일본이 주장하는 ‘소농사회론’ ‘조,선정체론’ ‘조,선망국론’은 실제 갑신정변이나 고종의 광무개혁, 동학혁명 등 각종 개혁운동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점에서 허구다. ‘자본주의 맹아론’을 바탕으로 한 내재적 발전론(김용섭 전 연세대 교수)도 이미 학계에서 상당히 인정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똑같은 일제 식민지배나 점령을 당한 북한과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만큼의 경제발전을 이뤄내지 못한 것도 ‘식민지근대화론’의 최대 허점이다. 이명찬 위원은 “같은 식민지배를 받은 북한은 왜 못 사느냐고 물으면 답할 수 있는 일본 학자는 아무도 없다”면서 “각국이 전후에 어떻게 했느냐가 경제발전 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 일제 수탈이 가장 악독= 근대화는커녕 오히려 수탈·착취가 제도화된 것이 일제의 식민지배였다. 이계형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이 지난해 말 편저한 ‘숫자로 본 식민지 조,선’에 따르면 일제의 수탈로 인한 조,선의 상황은 참혹했다. 1931년 극빈층인 세민(細民)·궁민(窮民)은 54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6.7%에 달했다. 4명 중 1명꼴이다. 직접세에서도 1930년의 경우 조,선인은 1호당 평균 11원79전9리로, 일본인(103원4전9리)에 비해 9분의 1 정도로 낮았다. 조,선에 대한 가혹한 착취를 의미한다.

3. 1965년 청구권협정 자금은 배상금= 일본이 이번 동영상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이후 제공한 무상 3억 달러(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약 1080억 원)와 유상 2억 달러(약 720억 원)를 공적개발원조(ODA)로 규정하고 있지만 역시 왜곡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미국 등 승전국이 경제적 상황 등을 이유로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포기했지만, 제4조에 “피식민국의 청구권은 일본과의 특별한 협의의 대상이 된다”고 명시했다. 이 권리에 따라 정부는 1965년 일본과의 청구권 협정에 나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당시 지원 자금은 배상금이 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정부는 한 번도 공식 문서에 한·일 청구권협정 이후 들여온 일본 자금을 ODA로 표기한 적이 없으며, ‘한강의 기적’은 일본 지원이 아닌 우리의 리더십 등에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

4. 한국경제 발전의 토대는 미국 원조= 사실 한국경제 발전의 토대는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원조였다. 1962∼1971년 10년간 한국에 들어온 해외 공공차관은 총 11억9300만 달러인데, 이 중 미국에서 온 공공차관이 7억2300만 달러였다. 전체의 절반을 넘은 61%였다. 여기에 국제개발은행(IBRD) 등 국제금융기구가 1억6600만 달러(14%)를 제공했고, 일본의 지원금은 전체의 2%인 2억5600만 달러에 불과했다. 민간기업의 차입금인 상업차관을 포함해도 미국이 13억5800만 달러(42%)로 가장 많았다.

5. 일본 배상액은 수탈액에 비하면 ‘새발의 피’= 일본이 35년의 식민지배에서 얻은 수탈액에 비하면 배상금은 턱없이 모자란다. 1910∼1945년 식민지 조,선의 국내총생산 550억 엔 중 55%가 일본에 유출됐다는 주장(윤경로 전 한성대 교수)도 있다. 반면 일본이 식민지 개발을 위해 들여왔다고 주장한 자금은 70억 엔에 불과했다. 강제징병·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등 인적수탈까지 감안하면 그 숫자는 천문학적이다.

6. 전후 일본, 기여보다 수익이 더 많았다= 전후 일본은 배상에도 인색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경제재건의 기회로 악용했다. 특히 1950년 6·25전쟁은 당시 극심한 불황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던 일본 대기업들에는 기사회생의 기회였다. 자동차업체 토요타와 마쓰시타 전기, 샤프, 히타치 등이 회생했다. 당시 일본이 한국전으로 벌어들인 외화 수익은 총 40억 달러에 달하는데,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지급한 배상금 3억 달러(유상차관 제외)의 13배다. 또 일본은 한국과 동남아 국가에 배상금 지급을 통해 일본 기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고, 결국 현재의 대일 무역적자 구도를 고착화한 ‘원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양기호(일본학)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의 유상차관은 일본 기업들이 진출하기 위한 마중물이 됐다”면서 “일본이 아시아를 먹여 살린 게 아니라, 아시아인들이 일본을 먹여 살리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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