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Wニコル〜誇り高き日本人として
http://archive.mag2.com/0000000699/20090201000000000.html
■1.「日本のどこがそんなにいいんですか」■
英国生まれのC・Wニコルさんは、平成7(1995)年、日本国籍を取得した。その理由を、こう語っている。
日本が私の家であり、もっとも愛する国だからだ。どの国にもまして、私は日本でいちばん多くの時間を過ごしている。家族も友人も世界中にいるけど、私のいちばん親しい人たちはほとんどが日本人だ。日本は私に衣食住を与え、移動を許し、私を守ってくれる。[1,p201]
こう言うと、よく「日本のどこがそんなにいいんですか」と尋ねられる。そう聞くのは、いつも決まって日本人だという。
ニコルさんはケルト系日本人と自称する。ウェールズで生まれたケルト人だからだ。これほどまでに日本を愛するケルト系日本人に、「どこがそんなにいいんですか」と聞く日系日本人。この光景に、現代日本人の精神的な問題が現れている。
■2.「僕もニコルになりたいです」■
ニコルさんは1940(昭和15)年、英国西部のウェールズに生まれた。実父は幼い頃に戦争で亡くなっている。
未亡人となった若く美しい母親に言い寄る男は多かったが、5歳のニコル少年は客のミルクティーにミミズを入れたりして、撃退した。
10歳になった時、母親は背の高い海軍軍人に出合った。ハンサムで男らしく、人を笑わせるのが得意な人で、その人の姓がニコルだった。ニコル少年は「父親にするなら、この人だ」と思った。母親が結婚した後、弁護士に呼ばれ、「お母さんの名前がニコルに変わったのは知っている?」と聞かれた。父親から「養子縁組をしたい」という申¥請が出ていたからだ。
少年は「知っていますとも。僕もニコルになりたいです」と答えた。後にこれを聞いた父親は、男泣きしたという。
かくて私の苗字はニコルとなった。この名前は私の誇りだ。・・・私たちはたがいに選び会った親子だ。父が息子を選び、息子も父を選んだのだ。[1,p12]
「父の自慢の息子になりたい」という一心で、シー・カデット(英国海軍の精神に基づいた青少年育成活動を行う慈善団体)に入った。将来は英国海軍に入隊するという野望を胸に秘めて。学校は嫌いだったが、規律の厳しいシー・カデットの訓練は大好きだった。
■3.「日本人は残忍で恐ろしい国民なの」■
シー・カデットで柔道の手ほどきを受け、ニコル少年はYMCA柔道クラブに通うようになった。指導者は元コマンド、すなわち英国海兵隊特別奇襲部隊の隊員だった人物だった。茶帯で柔道一級の資格を持っていた。
ニコル少年が熱心に柔道クラブに通う姿を見て、母親が言った。なぜおまえはそんなに「中国のレスリング」に熱中するの?
ニコル少年が「柔道は中国ではなくて日本の格闘技だよ」と答えると、母親は激怒した。
日本だって? おまえ、日本のスポーツをやっているの?許しませんよ。いいかい、日本人は残忍で恐ろしい国民なの。戦時中、英国人捕虜にどれだけ残酷なことをしたか、お前は知らないのかい?
ニコル少年が「降参するからいけないんだ。日本の兵士は決して降参しないよ。死ぬまで戦えと言っておくべきだったんだ」と元コマンドの受け売りで口答えすると、母親は息子の頬を思い切り平手で打った。
父親は泣き出した母親を抱きしめながら、ニコル少年にしばらく外に出ていろ、と顎で合図した。あとで、父親は「しばらくこの家で日本の話はしないことだな」とニコル少年を諭した。
■4.初めて出合った日本人■
柔道クラブでは、みなでお金を出し合って、ロンドンから黒帯の先生を招き、3日間の特別講習をしてもらうことになった。「小泉先生」という日本人の中でも一流の黒帯が来てくれるという。
ニコル少年は小泉先生の姿を想像してみた。戦後の映画には日本人の悪役がよく出ていた。それから察するに、ずんぐりとした体型で、太い首が肩につながっていて、脚は太くガニマタ、目は細くつり上がっている。声はうなり声に近いだろう。
皆で駅まで迎えに行って、汽車から出てきた人物を見たとき、これは何かの間違いだと思った。中背で、背筋がしゃんと伸びた引き締まった体つき、よく手入れされた口ひげと洗練された服装、物腰。口から出てくる英語は、この上なく丁寧で非の打ち所がなかった。こんな紳士が本当に黒帯の柔道家なのか。
小泉先生は、第二次大戦のはるか以前、日英同盟があった時代に、講道館から英国に派遣された柔道5段の人物だった。
稽古の第一日目は、正しい並び方やお辞儀の仕方について、たっぷりと講義を受けた。この人は本当に強い柔道家なのか、と皆怪しんだ。
最後に、小泉先生は元コマンド教師に向かって、「見本に軽く乱取りをやってみせましょう。お相手願いできませんか」と丁寧な口調で頼んだ。そしていざ乱取りを始めると、小泉先生は元コマンドの巨体を人形か何かのように易々と投げ飛ばした。10分の間に、彼は何度も投げ飛ばされ、顔は真っ赤、全身汗まみれ、息も絶え絶えっという有様になった。
この一部始終を見ていた、ニコル少年は、思わず唸った。柔道に対する畏敬の念がふつふつと湧き上がってきた。そして、小泉先生という初めて出合った日本人に対しても。この出会いを機に、ニコル少年は、いつか日本に行って武道を学ぼうと決意を固めていった。
■5.母親の日本人への反感を拭い去った金沢先生■
ニコルさんは、22歳で初めて日本を訪れた。母親は日本行きを止めてもムダだと分かってくれたが、反日感情はなかなか捨てなかった。
日本では空手を学んだが、その教師・金沢ヒロカズ先生が、英国を訪問し、両親の住む町の空手クラブで指導をすることになった。ニコルさんはぜひ両親の家に泊まるようにと勧め、金沢先生は喜んでその申¥し出を受け入れた。
日本人への偏見とは無縁の父親は、ハンサムで礼儀正しい金沢先生とすっかり仲良くなり、わしの「ヒーロー」と呼び始めた。さらに金沢先生の人間的魅力は、母親の心をほぐし、日本人への反感を拭い去った。母親は、自分が今までとんだ誤解をしていたと、周囲の人に言うまでになった。
戦争が生み出した憎しみを、一人の日本人が個人的なつきあいを通じて、拭い去ったのであった。
武道のほかに、ニコルさんは日本にいる間に、もう一つ、心動かされる経験をした。鬱蒼としたブナの森を歩いた時のことである。
樹木の霊気に包まれた私の胸に、かつて経験したことのない不思議な感動がこみあげてきた。私はその場に立ちつくしたまま、頬を伝う涙をぬぐうことも忘れていた。ここはエデンの園なのか。はるか昔のブリテン島で、ケルト人の心を熱くしたのはこの感動だったのだろうか。[1,p212]
■6.「心から愛する日本のために力を尽くそう」■
ニコルさんが、日本で二度目の長期滞在を始めたのは、昭和45(1970)年のことだった。そして昭和55(1980)年に、自然豊かな長野県の黒姫に家を建てて定住した。
しかし、時あたかもバブル期の絶頂で、黒姫でも古い森林は伐採され、川はコンクリートで固められ、湿地はゴミで埋め立てられ、人びとは金儲けに目の色を変えていた。
山、川、野尻湖、それに澄んだ空気が気に入ってこの地に住み着いた私は、この環境の変化に戸惑い、あれほど大好きだった日本がなぜこの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のか、あれほど大好きだった日本人がなぜこの馬鹿げた騒ぎの愚かしさに気づかないのかと大いに悩み、落ち込んだ。[1,p161]
そんな時、生まれ故郷のウェールズから便りが届いた。そこでは、かつて炭坑の町として栄えて、すっかり木々のなくなった谷と丘に新しい森を作ろうという運動が展開されているという。ニコルさんは驚いて、自分の目で見ようと故郷を訪れた。
そして私は喜びと希望に満ちあふれた。そこには確かに若い森があったのだ。人々がボタ山にバケツ一杯の土と苗木を持ち寄り、森を作ったのだ。
このような土地に森がつくれるならば、私も日本でできることがある。もう文句ばかりいうのはやめよう、私も彼らにならって心から愛する日本のために力を尽くそう、と心に決めた。[1,p162]
こうしてニコルさんは黒姫で、見捨てられた田畑や荒れ果てた林などを次々と買い集め、もともとそこにあったはずの木を植え、丹念に手入れをして、森を育てていった。
■7.「森を守るには手をかけなければならない」■
森を守るには、手をか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ニコルさんは言う。
まず下草をはらい間伐を行って発育不全の木をとり除く。これで土壌の養分がすみずみの木々に行き渡るし、地面にも太陽の光が届く。その結果、丈夫でまっすぐな若木の生育が期待できる。草花にも生い茂る場所が与えられ、ラン、ユリ、アネモネ、リンドウ、スミレ、その他さまざまな野生植物が咲き乱れるようになる。
ただし、心がけたいことがある。下草狩りの際、小鳥たちが巣をつくれそうな茂みを残してやることだ。木に絡みつくツル性食物を切る時も、クマや鳥が好きなヤマブドウ、アケビ、サルナシなど実をつける植物は残しておく。・・・
その他の作業としては、池掘りと詰まった水路の清掃。この作業の目的は、カエル、イモリ、水生植物に水生昆虫、さらにサギ、カモ、カワセミといった水鳥の生息環境を整えることにある。また、シジュウカラ、フクロウにように木の開いた大きな「うろ穴」に営巣する鳥のために巣箱を設置し、鳥たちが使っているかどうか常時、観察している。[1,p217]
森とは、かくも多種多様な動植物が共生する場なのである。
■8.「この一人の異邦人はやっと帰るべき故郷を得た」■
ニコルさんは「日本の原生林は日本の国の大切な宝です」と言う。北海道の北の端から南の西表¥島まで、森の動植物の生息地域がきわめて広い範囲にわたっている。生物学的に素晴らしい多様性をそなえ、まさに遺伝子の宝庫である。日本はそうした遺伝子から得られた情報を医学や農業、工業に生かしながら、日本の森のわずか2パーセントに過ぎない原生林を保つ先見の明も持てないのか、と主張する。
それどころか、林野庁は天然混交林をつぶして単一種の針葉樹を植える人員への給与支払いに、多額の税金を投入している。その一方で、安価な外国産木材の輸入に反対し、国家一丸となって将来のために、健全な森を育てよう、という熱意がないことを、ニコルさんは非難した。
また、森を保護するには、レンジャー(監視員)が必要だ。密猟者を取り締まり、見学者を案内し、さらに遭難者の捜索救助活動を担当する。カナダには4千人、アメリカにはその倍のレンジャーがいるが、日本には200人ほどしかいない。ニコルさんはレンジャー養成のための学校創設を環境庁に提案し、実際に有志が設立した学校で、学生たちのフィールドワークを指導するようになった。ニコルさんの育てた森がフィールドワークの現場として活用されている。
ケルト系日本人の年老いたアカオニにとって、森から貰った最高のプレゼントは森との一体感だ。私の死後も森は生き続けてくれる。この一人の異邦人はやっと帰るべき故郷を得た。正真正銘の日本の国民になれたのだ。[1,p220]
■9.「誇り高き日本人として」■
「正真正銘の日本の国民」になれたニコルさんから見ると、現代の日本人は「大切にすべき自ら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いとも簡単に投げ捨てているように見える」。
日本人が最も大切にすべきものの一つに森がある。日本は国土の70パーセントを木に覆われた世界に冠たる森の国である。・・・私は、縄文時代以来、日本の文化的基層は、森との関わりの中で築かれたものだと思っている。・・・人は死んで皆お山、すなわち森に還るというのが、仏教が日本に伝わる以前から人々に根強くある死生観だと思う。・・・
その森に対する意識が全く希薄になり、森を愛さぬばかりか、平気で原生林を破壊したりする日本人が出現していることが私には不可解でならない。[1,p224]
日本人が忘れ去りつつある、もう一つ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が武士道精神である。
私は日本の武士道に憧れる一方、父や父祖からは騎士道精神を叩き込まれて育った。この二つに共通するものは、自己犠牲の精神と勇気であり、それは私自身の願っている生き方である。それにしても、日本人のモラル・バックボーンであり続けた武士道的精神がどこかに消え失せてしまったのはなぜだろう。[1,p225]
ニコルさんが愛する日本人とは、森と心を通わせ、自己犠牲と勇気の精神を持って生きる人々なのだ。
私は、これからも誇り高き日本人として精いっぱい生きていきたいと思っている。
誇り高き日本人とし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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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높은 쪽 일본인으로서
C·W니콜~자랑 높은 쪽 일본인으로서
http://archive.mag2.com/0000000699/20090201000000000.html
■1.「일본의 어디가 그렇게 좋습니까」■
영국 태생의 C·W니콜씨는, 헤세이 7(1995) 년, 일본국적을 취득했다.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본이 나의 집이며, 가장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어느 나라보다 더, 나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족이나 친구도 온 세상에 있지만, 나의 가장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일본인이다.일본은 나에게 의식주를 주고 이동을 허락해, 나를 지켜 준다.[1,p201]
이렇게 말하면, 자주(잘) 「일본의 어디가 그렇게 좋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다.그렇게 (듣)묻는 것은, 언제나 정해지고 일본인이라고 한다.
니콜씨는 켈트족계 일본인과 자칭 한다.웨일즈에서 태어난 켈트족인이기 때문이다.이 정도까지 일본을 사랑하는 켈트족계 일본인에, 「어디가 그렇게 좋습니까」라고 (듣)묻는 일본계 일본인.이 광경에, 현대 일본인의 정신적인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2.「나도 니콜이 되고 싶습니다」■
니콜씨는 1940(쇼와 15) 년, 영국 서부의 웨일즈에서 태어났다.친아버지는 어릴 적에 전쟁으로 죽는다.
미망인이 된 젊고 아름다운 모친에게 구애하는 남자는 많았지만, 5세의 니콜 소년은 손님의 밀크티에 지렁이를 넣거나 하고, 격퇴했다.
10세가 되었을 때, 모친은 키가 큰 해군군인에 만났다.핸섬하고 남자답고, 사람을 웃기는 것이 자신있는 사람으로, 그 사람의 성이 니콜이었다.니콜 소년은 「부친으로 한다면,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모친이 결혼한 후, 변호사에 불려 「엄마의 이름이 니콜로 바뀐 것은 알고 있어?」라고 (들)물었다.부친으로부터 「양자 결연을 하고 싶다」라고 하는 신청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알고 있으면도.나도 니콜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후에 이것을 (들)물은 부친은, 북받쳐 욺 했다고 한다.
격이라고 나의 성씨는 니콜이 되었다.이 이름은 나의 자랑이다. ···우리는 서로 선택해 만난 부모와 자식이다.아버지가 아들을 선택해, 아들도 아버지를 선택했던 것이다.[1p12]
「아버지의 자랑의 아들이 되고 싶다」라고 하는 일심으로, 시·사관 후보생(영국 해군의 정신에 근거한 청소년 육성 활동을 실시하는 자선단체)에게 들어왔다.장래는 영국 해군에 입대한다고 하는 야망을 가슴에 품어.학교는 싫었지만, 규율이 엄격한 시·사관 후보생의 훈련은 정말 좋아했다.
■3.「일본인은 잔인하고 무서운 국민이야」■
시·사관 후보생으로 유도의 초보를 받아 니콜 소년은 YMCA 유도 클럽에 다니게 되었다.지도자는 원커멘드, 즉 영국 해병대 특별 기습 부대의 대원이었던 인물이었다.다대로 유도 일급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니콜 소년이 열심히 유도 클럽에 다니는 모습을 보고, 모친이 말했다.왜 너는 그렇게 「중국의 레슬링」에 열중하는 거야?
니콜 소년이 「유도는 중국이 아니라 일본의 격투기야」라고 대답하면, 모친은 격노했다.
일본도? 너, 일본의 스포츠를 하고 있는 거야?허락하지 않아요.좋겠어, 일본인은 잔인하고 무서운 국민이야.전시중, 영국인 포로에게 얼마나 잔혹한 일을 했는지, 너는 모르니?
니콜 소년이 「항복하기 때문에 안 된다.일본의 병사는 결코 항복하지 않아.죽을 때까지 싸우라고 해야 했었어」라고 원커멘드의 소매로 말대답하면, 모친은 아들의 뺨을 마음껏 손바닥에서 쳤다.
부친은 울기 시작한 모친을 꼭 껴안으면서, 니콜 소년으로 해 장미구외에 나와 있어라, 라고 턱으로 신호했다.나중에, 부친은 「당분간 이 집에서 일본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니콜 소년을 설득해 .
■4.처음으로 만난 일본인■
유도 클럽에서는, 모두로 돈을 서로 내고, 런던에서 흑대의 선생님을 불러, 3일간의 특별 강습을 받게 되었다.「코이즈미 선생님」이라고 하는 일본인 중(안)에서도 일류의 흑대가 와 준다고 한다.
니콜 소년은 코이즈미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전후의 영화에는 일본인의 악역이 잘 나와 있었다.그리고 헤아리는에, 땅딸막한 체형으로, 굵은 목이 어깨로 연결되어 있고, 다리는 굵고 가니마타, 눈은 가늘게 오르고 있다.소리는 신음해 소리에 가까울 것이다.
모두가 역까지 맞이하러 가서, 기차로부터 나온 인물을 보았을 때, 이것은 무엇인가의 실수라고 생각했다.중키로, 등골이 반듯하게 성장한 긴장된 몸매, 자주(잘) 손질 된 콧수염과 세련된 복장, 언행.구로부터 나오는 영어는, 이 이상 없고 정중하고 트집잡을 데가 없었다.이런 신사가 정말로 흑대의 유도가인가.
코이즈미 선생님은, 제2차 대전의 아득한 이전, 영일 동맹이 있었던 시대에, 코우도관으로부터 영국에 파견된 유도 5단의 인물이었다.
연습의 제일 일째는, 올바른 줄서는 방법이나 인사의 방법에 대해서, 충분히강의를 받았다.이 사람은 정말로 강한 유도가인가, 라고 모두 수상히 여겼다.
마지막으로, 코이즈미 선생님 (은)는 전 커멘드 교사로 향하고, 「견본에 가볍게 유도에서 자유 대련을 해 보입시다.상대 소원 할 수 없습니까」라고 정중한 어조로 부탁했다.그리고 막상 유도에서 자유 대련을 시작하면, 코이즈미 선생님은 원커멘드의 거체를 인형이나 무엇인가와 같이 역들과 휙 던졌다.10 분의간에, 그는 몇번이나 휙 던져져 얼굴은 빨강, 전신 땀투성이, 숨도 끊어져 끊어져 라고 하는 모양이 되었다.
이 자초지종을 보고 있던, 니콜 소년은, 무심코 신음소리를 냈다.유도에 대한 외경의 생각이 부글부글솟구쳐 왔다.그리고, 코이즈미 선생님이라고 하는 처음으로 만난 일본인에 대해서도.이 만남을 기회로, 니콜 소년은, 언젠가 일본에 가서 무도를 배우려고 결의를 굳히고 갔다.
■5.모친의 일본인에게의 반감을 지워 없앤 카나자와 선생님■
니콜씨는, 22세에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다.모친은 일본행을 멈추어도 소용없다고 알아 주었지만, 반일 감정은 좀처럼 버리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가라테를 배웠지만, 그 교사·카나자와 히로카즈 선생님이, 영국을 방문해, 부모님이 사는 마을의 가라테 클럽에서 지도를 하게 되었다.니콜씨는 꼭 부모님의 집에 묵도록(듯이)와 권해 카나자와 선생님은 기뻐해 그 신해 출을 받아 들였다.
일본인에게의 편견과는 무연의 부친은, 핸섬하고 예의 바른 카나자와 선생님과 완전히 사이가 좋아져, 나의 「히어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한층 더 카나자와 선생님의 인간적 매력은, 모친의 마음을 풀어, 일본인에게의 반감을 지워 없앴다.모친은, 자신이 지금까지응이다 오해를 하고 있었다고, 주위의 사람에게 말하기까지 되었다.
전쟁이 낳은 미움을, 한 명의 일본인이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서, 지워 없앤 것이다.
무도 외에, 니콜씨는 일본에 있는 동안에, 하나 더, 감동받는 경험을 했다.울창으로 한 브나의 숲을 걸었을 때의 일로이다.
수목의 영기에 싸인 나의 가슴에, 일찌기 경험한 적이 없는 이상한 감동이 울컥거려 왔다.나는 그 자리에 서 개?`한 채로, 뺨을 타는 눈물을 닦는 일도 잊고 있었다.여기는 에덴 동산인가.하루카 옛 브리텐섬에서, 켈트족인의 마음을 뜨겁게 한 것은 이 감동이었던 것일까.[1,p212]
■6.「진심으로 사랑하는 일본을 위해서 힘을 다하자」■
니콜씨가, 일본에서 두번째의 장기 체재를 시작한 것은, 쇼와 45(1970) 년의 일이었다.그리고 쇼와 55(1980) 년에, 자연 풍부한 나가노현의 흑희에 집을 세워 정주했다.
그러나, 시 마치 버블기의 절정에서, 흑희에서도 낡은 삼림은 벌채되어 강은 콘크리트로 굳힐 수 있어 습지는 쓰레기로 매립할 수 있어 사람들은 돈벌이에 눈빛을 바꾸고 있었다.
산, 카와, 노지리호, 거기에 맑은 공기가 마음에 들어 이 땅에 정착한 나는, 이 환경의 변화에 당황해, 그토록 정말 좋아했던 일본이 왜 이와 같이 되어 버렸는지, 그토록 정말 좋아했던 일본인이 왜 이 바보스러운 소란의 어리석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와 많이 고민해, 침체했다.[1p161]
그런 때, 태어난 고향의 웨일즈로부터 소식이 전해졌다.그곳에서는, 일찌기 탄갱의 마을로서 번창하고, 완전히 나무들이 없어진 골짜기와 언덕에 새로운 숲을 만들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니콜씨는 놀라고, 자신의 눈으로 보려고 고향을 방문했다.
그리고 나는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차 넘쳤다.거기에는 확실히 젊은 숲이 있었던 것이다.사람들이 보타산에 물통 한 잔의 흙과 묘목을 추렴해, 숲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토지에 숲을 만들 수 있다면, 나도 일본에서 가능하는 일이 있다.이제(벌써) 불평만 하는 것은 그만두자, 나도 그들을 모방해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본을 위해서 힘을 다하자, 라고 마음으로 결정했다.[1,p162]
이렇게 해 니콜씨는 흑희로, 버림받은 전답이나 몹시 황폐해진 숲등을 차례차례로 사모아야 본전 거기에 있었음이 분명한 나무를 심어 열심히 손질을 하고, 숲을 기르고 갔다.
■7.「숲을 지키려면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된다」■
숲을 지키려면 ,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니콜씨는 말한다.
우선 그늘의 잡초를 지불해 간벌을 실시해 발육 부전의 나무를 제거한다.이것으로 토양의 양분이 구석구석의 나무들에 널리 퍼지고, 지면에도 태양의 빛이 닿는다.그 결과, 튼튼하고 곧바로어린 나무의 생육을 기대할 수 있다.풀꽃에도 무성한 장소가 주어져 런, 백합, 아네모네, 용담, 제비꽃, 그 외 다양한 야생 식물이 흐드러지게 피게 된다.
다만, 유의하고 싶은 것이 있다.그늘의 잡초 사냥때, 작은 새들이 둥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수풀을 남겨 줄 것이다.나무에 관련되어 붙는 틀성 음식을 자를 때도, 곰이나 새를 좋아하는 야마브드우, 아케비, 사르나시 등 열매를 붙이는 식물은 남겨 둔다. ···
그 외의 작업으로서는, 지굴와 찬 수로의 청소.이 작업의 목적은, 개구리, 영원, 수생식물에 수생곤충, 또한 백로, 카모, 물총새라고 하는 물새의 생식 환경을 정돈하는 것에 있다.또, 박새, 후크로우에 같게 나무가 연 큰 「속이 빈 것구멍」에 영소하는 새를 위해서 둥우리 상자를 설치해, 새들이 사용하고 있는지 어떤지 상시, 관찰하고 있다.[1p217]
숲이란, 쓰는 것도 다종 다양한 동식물이 공생하는 장소인 것이다.
■8.「이 한 명의 이방인은 겨우 돌아가야 할 고향을 얻었다」■
니콜씨는 「일본의 원생림은 일본의 나라의 중요한 보물입니다」라고 한다.홋카이도의 북쪽의 구석에서 남쪽의 이리오모테섬까지, 숲의 동식물의 생식 지역이 극히 넓은 범위에 걸쳐서 있다.생물학적으로 훌륭한 다양성을 갖추어 확실히 유전자의 보고이다.일본은 그러한 유전자로부터 얻을 수 있던 정보를 의학이나 농업, 공업에 활용하면서, 일본의 숲의 불과 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원생림을 유지하는 선견지명도 가질 수 없는 것인지, 라고 주장한다.
그 뿐만 아니라, 임야청은 천연 혼교림을 부수어 단일종의 침엽수를 심는 인원에게의 급여 지불에, 고액의 세금을 투입하고 있다.그 한편, 염가의 외국산 목재의 수입에 반대해, 국가 하나가 되어 장래를 위해서, 건전한 숲을 기르자, 라고 하는 열의가 없는 것을, 니콜씨는 비난 했다.
또, 숲을 보호하려면 , 레인저(감시원)가 필요하다.밀렵자를 단속해, 견학자를 안내해, 한층 더 조난자의 수색 구조 활동을 담당한다.캐나다에는 4천명, 미국에는 그 배의 레인저가 있지만, 일본에는 200명 정도 밖에 없다.니콜씨는 레인저 양성을 위한 학교 창설을 환경청에 제안해, 실제로 유시가 설립한 학교에서, 학생 들의 현지조사를 지도하게 되었다.니콜씨가 기른 숲이 현지조사의 현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켈트족계 일본인이 연로한 아카오니에 있어서, 숲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선물은 숲과의 일체감이다.나의 사후도 숲은 살아 나가 준다.이 한 명의 이방인은 겨우 돌아가야 할 고향을 얻었다.진짜의 일본의 국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1,p220]
■9.「자랑 높은 쪽 일본인으로서」■
「진짜의 일본의 국민」이 될 수 있었던 니콜씨가 보면, 현대의 일본인은 「소중히 해야 할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아주 간단하게 내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인이 가장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의 하나에 숲이 있다.일본은 국토의 70퍼센트를 나무에 덮인 세계에 으뜸가는 숲의 나라이다. ···나는, 죠몽 시대 이래, 일본의 문화적 기반은, 숲과의 관계 중(안)에서 쌓아 올려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죽어 모두 산, 즉 숲에 환라고 하는 것이, 불교가 일본에 전해지기 이전으로부터 사람들에게 뿌리 깊게 있는 사생관이라고 생각한다. ···
그 숲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희박하게 되어, 숲을 사랑바보 리카, 아무렇지도 않게 원생림을 파괴하거나 하는 일본인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불가해해서 견딜 수 없다.[1p224]
일본인이 잊어 떠나고 있는, 또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무사도 정신이다.
나는 일본의 무사도를 동경하는 한편, 아버지나 조상에서는 기사도 정신을 주입해져 자랐다.이 둘에 공통되는 것은, 자기희생의 정신과 용기이며, 그것은 나 자신이 바라고 있는 삶의 방법이다.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인의 모랄·신념으로 계속 된 무사도적 정신이 어디엔가 사라져 없어져 버린 것은 왜일 것이다.[1,p225]
니콜씨가 사랑하는 일본인과는, 숲과 마음을 다니게 하며 자기희생과 용기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앞으로도 자랑해 높은 쪽 일본인으로서 힘껏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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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본의 어디가 그렇게 좋습니까」■
영국 태생의 C·W니콜씨는, 헤세이 7(1995) 년, 일본국적을 취득했다.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본이 나의 집이며, 가장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어느 나라보다 더, 나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족이나 친구도 온 세상에 있지만, 나의 가장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일본인이다.일본은 나에게 의식주를 주고 이동을 허락해, 나를 지켜 준다.[1,p201]
이렇게 말하면, 자주(잘) 「일본의 어디가 그렇게 좋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다.그렇게 (듣)묻는 것은, 언제나 정해지고 일본인이라고 한다.
니콜씨는 켈트족계 일본인과 자칭 한다.웨일즈에서 태어난 켈트족인이기 때문이다.이 정도까지 일본을 사랑하는 켈트족계 일본인에, 「어디가 그렇게 좋습니까」라고 (듣)묻는 일본계 일본인.이 광경에, 현대 일본인의 정신적인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2.「나도 니콜이 되고 싶습니다」■
니콜씨는 1940(쇼와 15) 년, 영국 서부의 웨일즈에서 태어났다.친아버지는 어릴 적에 전쟁으로 죽는다.
미망인이 된 젊고 아름다운 모친에게 구애하는 남자는 많았지만, 5세의 니콜 소년은 손님의 밀크티에 지렁이를 넣거나 하고, 격퇴했다.
10세가 되었을 때, 모친은 키가 큰 해군군인에 만났다.핸섬하고 남자답고, 사람을 웃기는 것이 자신있는 사람으로, 그 사람의 성이 니콜이었다.니콜 소년은 「부친으로 한다면,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모친이 결혼한 후, 변호사에 불려 「엄마의 이름이 니콜로 바뀐 것은 알고 있어?」라고 (들)물었다.부친으로부터 「양자 결연을 하고 싶다」라고 하는 신청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알고 있으면도.나도 니콜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후에 이것을 (들)물은 부친은, 북받쳐 욺 했다고 한다.
격이라고 나의 성씨는 니콜이 되었다.이 이름은 나의 자랑이다. ···우리는 서로 선택해 만난 부모와 자식이다.아버지가 아들을 선택해, 아들도 아버지를 선택했던 것이다.[1p12]
「아버지의 자랑의 아들이 되고 싶다」라고 하는 일심으로, 시·사관 후보생(영국 해군의 정신에 근거한 청소년 육성 활동을 실시하는 자선단체)에게 들어왔다.장래는 영국 해군에 입대한다고 하는 야망을 가슴에 품어.학교는 싫었지만, 규율이 엄격한 시·사관 후보생의 훈련은 정말 좋아했다.
■3.「일본인은 잔인하고 무서운 국민이야」■
시·사관 후보생으로 유도의 초보를 받아 니콜 소년은 YMCA 유도 클럽에 다니게 되었다.지도자는 원커멘드, 즉 영국 해병대 특별 기습 부대의 대원이었던 인물이었다.다대로 유도 일급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니콜 소년이 열심히 유도 클럽에 다니는 모습을 보고, 모친이 말했다.왜 너는 그렇게 「중국의 레슬링」에 열중하는 거야?
니콜 소년이 「유도는 중국이 아니라 일본의 격투기야」라고 대답하면, 모친은 격노했다.
일본도? 너, 일본의 스포츠를 하고 있는 거야?허락하지 않아요.좋겠어, 일본인은 잔인하고 무서운 국민이야.전시중, 영국인 포로에게 얼마나 잔혹한 일을 했는지, 너는 모르니?
니콜 소년이 「항복하기 때문에 안 된다.일본의 병사는 결코 항복하지 않아.죽을 때까지 싸우라고 해야 했었어」라고 원커멘드의 소매로 말대답하면, 모친은 아들의 뺨을 마음껏 손바닥에서 쳤다.
부친은 울기 시작한 모친을 꼭 껴안으면서, 니콜 소년으로 해 장미구외에 나와 있어라, 라고 턱으로 신호했다.나중에, 부친은 「당분간 이 집에서 일본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니콜 소년을 설득해 .
■4.처음으로 만난 일본인■
유도 클럽에서는, 모두로 돈을 서로 내고, 런던에서 흑대의 선생님을 불러, 3일간의 특별 강습을 받게 되었다.「코이즈미 선생님」이라고 하는 일본인 중(안)에서도 일류의 흑대가 와 준다고 한다.
니콜 소년은 코이즈미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전후의 영화에는 일본인의 악역이 잘 나와 있었다.그리고 헤아리는에, 땅딸막한 체형으로, 굵은 목이 어깨로 연결되어 있고, 다리는 굵고 가니마타, 눈은 가늘게 오르고 있다.소리는 신음해 소리에 가까울 것이다.
모두가 역까지 맞이하러 가서, 기차로부터 나온 인물을 보았을 때, 이것은 무엇인가의 실수라고 생각했다.중키로, 등골이 반듯하게 성장한 긴장된 몸매, 자주(잘) 손질 된 콧수염과 세련된 복장, 언행.구로부터 나오는 영어는, 이 이상 없고 정중하고 트집잡을 데가 없었다.이런 신사가 정말로 흑대의 유도가인가.
코이즈미 선생님은, 제2차 대전의 아득한 이전, 영일 동맹이 있었던 시대에, 코우도관으로부터 영국에 파견된 유도 5단의 인물이었다.
연습의 제일 일째는, 올바른 줄서는 방법이나 인사의 방법에 대해서, 충분히강의를 받았다.이 사람은 정말로 강한 유도가인가, 라고 모두 수상히 여겼다.
마지막으로, 코이즈미 선생님 (은)는 전 커멘드 교사로 향하고, 「견본에 가볍게 유도에서 자유 대련을 해 보입시다.상대 소원 할 수 없습니까」라고 정중한 어조로 부탁했다.그리고 막상 유도에서 자유 대련을 시작하면, 코이즈미 선생님은 원커멘드의 거체를 인형이나 무엇인가와 같이 역들과 휙 던졌다.10 분의간에, 그는 몇번이나 휙 던져져 얼굴은 빨강, 전신 땀투성이, 숨도 끊어져 끊어져 라고 하는 모양이 되었다.
이 자초지종을 보고 있던, 니콜 소년은, 무심코 신음소리를 냈다.유도에 대한 외경의 생각이 부글부글솟구쳐 왔다.그리고, 코이즈미 선생님이라고 하는 처음으로 만난 일본인에 대해서도.이 만남을 기회로, 니콜 소년은, 언젠가 일본에 가서 무도를 배우려고 결의를 굳히고 갔다.
■5.모친의 일본인에게의 반감을 지워 없앤 카나자와 선생님■
니콜씨는, 22세에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다.모친은 일본행을 멈추어도 소용없다고 알아 주었지만, 반일 감정은 좀처럼 버리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가라테를 배웠지만, 그 교사·카나자와 히로카즈 선생님이, 영국을 방문해, 부모님이 사는 마을의 가라테 클럽에서 지도를 하게 되었다.니콜씨는 꼭 부모님의 집에 묵도록(듯이)와 권해 카나자와 선생님은 기뻐해 그 신해 출을 받아 들였다.
일본인에게의 편견과는 무연의 부친은, 핸섬하고 예의 바른 카나자와 선생님과 완전히 사이가 좋아져, 나의 「히어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한층 더 카나자와 선생님의 인간적 매력은, 모친의 마음을 풀어, 일본인에게의 반감을 지워 없앴다.모친은, 자신이 지금까지응이다 오해를 하고 있었다고, 주위의 사람에게 말하기까지 되었다.
전쟁이 낳은 미움을, 한 명의 일본인이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서, 지워 없앤 것이다.
무도 외에, 니콜씨는 일본에 있는 동안에, 하나 더, 감동받는 경험을 했다.울창으로 한 브나의 숲을 걸었을 때의 일로이다.
수목의 영기에 싸인 나의 가슴에, 일찌기 경험한 적이 없는 이상한 감동이 울컥거려 왔다.나는 그 자리에 서 개?`한 채로, 뺨을 타는 눈물을 닦는 일도 잊고 있었다.여기는 에덴 동산인가.하루카 옛 브리텐섬에서, 켈트족인의 마음을 뜨겁게 한 것은 이 감동이었던 것일까.[1,p212]
■6.「진심으로 사랑하는 일본을 위해서 힘을 다하자」■
니콜씨가, 일본에서 두번째의 장기 체재를 시작한 것은, 쇼와 45(1970) 년의 일이었다.그리고 쇼와 55(1980) 년에, 자연 풍부한 나가노현의 흑희에 집을 세워 정주했다.
그러나, 시 마치 버블기의 절정에서, 흑희에서도 낡은 삼림은 벌채되어 강은 콘크리트로 굳힐 수 있어 습지는 쓰레기로 매립할 수 있어 사람들은 돈벌이에 눈빛을 바꾸고 있었다.
산, 카와, 노지리호, 거기에 맑은 공기가 마음에 들어 이 땅에 정착한 나는, 이 환경의 변화에 당황해, 그토록 정말 좋아했던 일본이 왜 이와 같이 되어 버렸는지, 그토록 정말 좋아했던 일본인이 왜 이 바보스러운 소란의 어리석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와 많이 고민해, 침체했다.[1p161]
그런 때, 태어난 고향의 웨일즈로부터 소식이 전해졌다.그곳에서는, 일찌기 탄갱의 마을로서 번창하고, 완전히 나무들이 없어진 골짜기와 언덕에 새로운 숲을 만들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니콜씨는 놀라고, 자신의 눈으로 보려고 고향을 방문했다.
그리고 나는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차 넘쳤다.거기에는 확실히 젊은 숲이 있었던 것이다.사람들이 보타산에 물통 한 잔의 흙과 묘목을 추렴해, 숲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토지에 숲을 만들 수 있다면, 나도 일본에서 가능하는 일이 있다.이제(벌써) 불평만 하는 것은 그만두자, 나도 그들을 모방해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본을 위해서 힘을 다하자, 라고 마음으로 결정했다.[1,p162]
이렇게 해 니콜씨는 흑희로, 버림받은 전답이나 몹시 황폐해진 숲등을 차례차례로 사모아야 본전 거기에 있었음이 분명한 나무를 심어 열심히 손질을 하고, 숲을 기르고 갔다.
■7.「숲을 지키려면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된다」■
숲을 지키려면 ,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니콜씨는 말한다.
우선 그늘의 잡초를 지불해 간벌을 실시해 발육 부전의 나무를 제거한다.이것으로 토양의 양분이 구석구석의 나무들에 널리 퍼지고, 지면에도 태양의 빛이 닿는다.그 결과, 튼튼하고 곧바로어린 나무의 생육을 기대할 수 있다.풀꽃에도 무성한 장소가 주어져 런, 백합, 아네모네, 용담, 제비꽃, 그 외 다양한 야생 식물이 흐드러지게 피게 된다.
다만, 유의하고 싶은 것이 있다.그늘의 잡초 사냥때, 작은 새들이 둥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수풀을 남겨 줄 것이다.나무에 관련되어 붙는 틀성 음식을 자를 때도, 곰이나 새를 좋아하는 야마브드우, 아케비, 사르나시 등 열매를 붙이는 식물은 남겨 둔다. ···
그 외의 작업으로서는, 지굴와 찬 수로의 청소.이 작업의 목적은, 개구리, 영원, 수생식물에 수생곤충, 또한 백로, 카모, 물총새라고 하는 물새의 생식 환경을 정돈하는 것에 있다.또, 박새, 후크로우에 같게 나무가 연 큰 「속이 빈 것구멍」에 영소하는 새를 위해서 둥우리 상자를 설치해, 새들이 사용하고 있는지 어떤지 상시, 관찰하고 있다.[1p217]
숲이란, 쓰는 것도 다종 다양한 동식물이 공생하는 장소인 것이다.
■8.「이 한 명의 이방인은 겨우 돌아가야 할 고향을 얻었다」■
니콜씨는 「일본의 원생림은 일본의 나라의 중요한 보물입니다」라고 한다.홋카이도의 북쪽의 구석에서 남쪽의 이리오모테섬까지, 숲의 동식물의 생식 지역이 극히 넓은 범위에 걸쳐서 있다.생물학적으로 훌륭한 다양성을 갖추어 확실히 유전자의 보고이다.일본은 그러한 유전자로부터 얻을 수 있던 정보를 의학이나 농업, 공업에 활용하면서, 일본의 숲의 불과 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원생림을 유지하는 선견지명도 가질 수 없는 것인지, 라고 주장한다.
그 뿐만 아니라, 임야청은 천연 혼교림을 부수어 단일종의 침엽수를 심는 인원에게의 급여 지불에, 고액의 세금을 투입하고 있다.그 한편, 염가의 외국산 목재의 수입에 반대해, 국가 하나가 되어 장래를 위해서, 건전한 숲을 기르자, 라고 하는 열의가 없는 것을, 니콜씨는 비난 했다.
또, 숲을 보호하려면 , 레인저(감시원)가 필요하다.밀렵자를 단속해, 견학자를 안내해, 한층 더 조난자의 수색 구조 활동을 담당한다.캐나다에는 4천명, 미국에는 그 배의 레인저가 있지만, 일본에는 200명 정도 밖에 없다.니콜씨는 레인저 양성을 위한 학교 창설을 환경청에 제안해, 실제로 유시가 설립한 학교에서, 학생 들의 현지조사를 지도하게 되었다.니콜씨가 기른 숲이 현지조사의 현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켈트족계 일본인이 연로한 아카오니에 있어서, 숲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선물은 숲과의 일체감이다.나의 사후도 숲은 살아 나가 준다.이 한 명의 이방인은 겨우 돌아가야 할 고향을 얻었다.진짜의 일본의 국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1,p220]
■9.「자랑 높은 쪽 일본인으로서」■
「진짜의 일본의 국민」이 될 수 있었던 니콜씨가 보면, 현대의 일본인은 「소중히 해야 할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아주 간단하게 내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인이 가장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의 하나에 숲이 있다.일본은 국토의 70퍼센트를 나무에 덮인 세계에 으뜸가는 숲의 나라이다. ···나는, 죠몽 시대 이래, 일본의 문화적 기반은, 숲과의 관계 중(안)에서 쌓아 올려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죽어 모두 산, 즉 숲에 환라고 하는 것이, 불교가 일본에 전해지기 이전으로부터 사람들에게 뿌리 깊게 있는 사생관이라고 생각한다. ···
그 숲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희박하게 되어, 숲을 사랑바보 리카, 아무렇지도 않게 원생림을 파괴하거나 하는 일본인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불가해해서 견딜 수 없다.[1p224]
일본인이 잊어 떠나고 있는, 또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무사도 정신이다.
나는 일본의 무사도를 동경하는 한편, 아버지나 조상에서는 기사도 정신을 주입해져 자랐다.이 둘에 공통되는 것은, 자기희생의 정신과 용기이며, 그것은 나 자신이 바라고 있는 삶의 방법이다.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인의 모랄·신념으로 계속 된 무사도적 정신이 어디엔가 사라져 없어져 버린 것은 왜일 것이다.[1,p225]
니콜씨가 사랑하는 일본인과는, 숲과 마음을 다니게 하며 자기희생과 용기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앞으로도 자랑해 높은 쪽 일본인으로서 힘껏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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