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ギョングチルソングヘサロック 倭国の風俗と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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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에  조선 사신 경섬이 일본에 다녀온 기록인 경칠송 해사록(慶七松海槎錄) 중에서 일본의 풍속과 모습에 대한 글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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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특이한 점들

              일본의 지형과 구성

  1,지형: 앞부분이 뾰족하고 뒷부분이 둥글어 비파(琵琶) 모양과 비슷함.

  2,구획: 8도(八道) 66주(六十六州)로 구성

     ㉠기내도(畿內道): 산성(山城)․하내(河內)․대화(大和)․화천(和泉)․섭진(攝津). 합 5주(五州).

     ㉡동산도(東山道): 근강(近江)․미농(美濃)․비탄(飛彈)․신농(信濃)․상야(上野)․하야(下野)․출우(出羽)․육오(陸奧). 합 8주.

     ㉢산양도(山陽道): 번마(幡摩)․미작(美作)․비전(備前)․비중(備中)․비후(備後)․안예(安藝)․주방(周防)․장문(長門). 합 8주.  

     ㉣산음도(山陰道): 단파(丹波)․단후(丹後)․단마(但馬)․인번(因幡)․백기(伯耆)․출운(出雲)․은기(隱岐)․석견(石見). 합 8주.

     ㉤동해도(東海道): 이하(伊賀)․이세(利勢)․지마(志摩)․미장(尾張)․삼하(三河)․원강(遠江)․준하(駿河)․이두(伊豆)․갑비(甲斐)․상모(相模)․무장(武藏)․안방(安房)․상총(上總)․하총(下總)․상륙(常陸). 합 15주.

     ㉥남해도(南海道): 기이(紀伊)․담로(淡路)․아파(阿波)․찬기(讚岐)․이예(伊豫)․토좌(土佐). 합 6주.

     ㉦서해도(西海道):축전(筑前)․축후(筑後)․풍전(豐前)․풍후(豐後)․비전(肥前)․비후(肥後)․일향(日向)․살마(薩摩)․대우(大隅).합 9주.

     ㉧북륙도(北陸道): 약협(若狹)․월전(越前)․가하(加賀)․능등(能登)․월중(越中)․월후(越後)․좌도(佐渡).

합 7주.

   ㉨기타:1 각 주(州) 아래 군(郡)들이 있음.

          * 대마도 일기도 등 섬은 도(道)에 소속되지 않고 관백의 직할로서 도주(島主)를 둠.  

(Ⅵ)  일본 천황의 역사

  1,시조: 신무천황(神武天皇)

   일본에는 애초에 통일된 국가가 없었고 부족들이 모여서 각자 나라를 만들었다. 중국 주유왕(周幽王)49년(BC393) 협야(狹野,그의 어머니는 하신여왕(河神女王)인 의희(依姬)였다)라는 자가 군대를 일으켜 각 부족을 통일하고 처음으로 국토를 주(州)와 군(郡)으로 분할하고 국도(國都지금왜경 곧 경도)를 정했으며 스스로 신무천황이라고 하여 시조가 되었다. 나이는 1백 2십 7세까지 살았다.  

  2, 7세(七世) 효령천황(孝靈天皇)

  중국 진시황이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을 바다로 보내어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러 보냈는데 서복이 일본의 기이주에 들어와서 1백 8십 9년까지 살다가 죽자 일본 사람들이 그의 사당을 지어 지금까지 제사지냄.  

  3, 64세 안덕천황(安德天皇)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원뢰조(源賴朝3월 24일자 일기에 기술)가 국정을 독단하여 모든 권력이 그의 손에 의하여 좌우되니 천황은 실권이 없이 지금까지도 하늘에 제사나 지내고 부처님이나 모시는 일밖에 하지 않는다. 그리고 천황에게 공급되는 모든 물자는 화천주와 산성주 두 고을에서 받는 세금에서 갈라낸 것이다. 그리고 관백은 매년 설날 딱 한번 여러 부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천황에게 가서 배알할 뿐이며 보통 때는 절대로 서로 만나는 절차가 없었다. 관백이 국정을 총괄한 것이 이때부터이다.

  4,천황의 관속

  천황에게 딸린 관직들은 자손 대대로 같은 봉급을 타먹지만 맡은 임무는 없고,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천황과 그 관속들은 거기에 관여하지 않고 바라만 볼 뿐이다. 그리고 천황의 역사는, 협야천황에서부터 지금까지 1백 9세가 된다고 했다.

  5,관백의 위상

  관백은 모든 권력의 소유자이지마는 그 권력을 아침에 얻었다가 저녁에 잃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권력 싸움이 많다. 그리하여 어떤 경우는 1,2 세까지 존속하는 자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쟁취하였다가 자신의 시대에 망하기도 한다.

  6,관백이하의 직책

  관백이하의 여러 장수들은 식읍(食邑)을 분할해 주어서 각자 그 지방에 나는 물건을 세금으로 거두어 봉급으로 쓴다. 이 식읍은 여러 대 세습하여 받는 경우도 있고 어떤 공적을 세워 새로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식읍이 큰 경우는 주와 군을 차지하여 봉급이 쌀로 백만 석에 이르기도 하고, 작은 경우는 천 석이나 백 석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들이 통치하는 식읍의 경계 안에서는 백성들의 생명도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는데 이들도 자신이 관장하는 땅을 또 그 밑의 부하인 편장(偏將)이나 비장(裨將)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그러면 그들도 역시 그 땅을 자기들의 식읍으로 삼는다.

   7,양전(量田)

  땅을 측량하는데 정(町)과 단(段)의 법을 쓴다. 보통 사람이 두발로 벌려선 사이를 1 보(步)라고 하고 60 보를 1단이라고 하며 10 단을 1 정이라고 한다. 이 1정에서 1년 동안 받는 세금은 등급에 따라 다른데, 상(上)인 밭은 32 두(斗)이고, 중은 20 두이고, 하는 13 두이다. 이는 대체로 그 밭에서 나는 양의 3분의 1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평수길은 국내의 밭을 모두 공지(公地)로 만들고 그 땅에서 나는 곡식을 모두 관청으로 바치게 하였다. 그런데 논은 먼저 보리나 밀을 심어 그것을 수확한 것을 농민이 먹게 하고 보리를 벤 곳에 벼를 옮겨 심는데 벼는 땅의 비옥한 정도나 그해의 풍년 여부를 따라 쌀로 관청에 바친다. 그런데 관청에 바치는 쌀이 정해진 기준에 못 미치면 집안의 재산을 팔든지 아니면 아내나 종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채워야한다.

  8,농민의 생활상과 임무

  농민들은 가을이나 겨울에 남은 쌀겨를 거두어다가 풀의 열매와 섞어 먹고 봄 여름에는 관청에서 농사지을 양식을 약간씩 주어 연명하게 되니 농민의 괴로움은 천하에 견줄 데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농민의 임무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나라에서 10 년 동안을 싸워도 농사에만 전염할 수가 있다. 또 세금 대신 부역에 나가는 일도 없다. 그리고 관공서에서 필요하는 그릇이나 옷 음식 인부와 말 등은 모두 돈이나 은자로 시장에 나가서 사다가 쓰게 한다.

  9, 군대의 신분과 임무

  ㉠군대를 모집하는 방법은 백성 가운데 용맹스럽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자를 뽑는데, 1백 석을 봉급으로 받는 지방 장관은 4 명을 기를 수 있고, 천 석을 받는 장수는 40 명을 기를 수 있다. 그리하여 백만 석 천만 석을 봉급으로 받는 사람은 그 봉급의 정도에 따라 군대의 수를 조절한다. 게다가 물자가 풍부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여 더 많은 군대를 모집할 수 있는 자는 이 기준 수에 적용을 안 받고 많이 모집할수록 좋다. 군대 한 사람의 1 년치 봉급은 25 석을 기준으로 하며 그들에게는 일체 잡역(雜役)을 시키지 않고 또 농사도 안 시킨다. 그리고 각 장수들은 자신이 기르는 군대를 오로지 연습만 시키어 불시의 필요를 대비한다. 그리하여 전쟁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백만 대군도 아침에 명령을 내리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저녁에 모을 수 있다.

  ㉡행군하는 방법을 보면 각 장수들은 각기 자기들만의 특색이 있는 호기(號旗,신호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가 거느린 군대들에게 그 기를 따르게 하며, 각 군대들도 각자 자신의 소속을 표시하는 작은 표기(標旗)를 등에 지고 어떤 자는 기이한 형상의 갑옷을 입어서 상대를 현혹하게 한다. 행진에서 맨 앞에 서는 군대는 반드시 정예군을 기용하는데 이는 선봉이 꺾이면 군대의 사기가 무너지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을 공격할 때는 기를 진 군대가 맨 앞에 서는데 이는 기를 진 군인이 먼저 올라가면 적군이 현혹되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 얼굴에 상처를 입은 자는 상을 주고 등에 상처를 입은 자는 벌을 주며 패전한 장수는 죽이고 식읍도 빼앗을 뿐 아니라 그에게 소속된 군대도 다른 장수에게 편입시켜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온 나라가 다 그를 버리도록 하여 마침내 굶어죽게 함으로써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면 싸우다가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게 한다. 군대는 오래 놀게 되면 스스로 난리를 일으키기 때문에 자꾸 일을 만들어 내어 편하게 살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성을 쌓고 못을 파는 일이 없는 해가 없다.

  ㉢무기는 칼과 창 그리고 조총(鳥銃)을 가장 좋게 여기고 활과 화살 및 말달리는 일은 대단치 않은 기술로 여긴다. 군대를 용병하는 방법은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오자병법을 섞어 쓰면서 스스로 이 세상에 자기들을 대적할 자가 없다고 여긴다.

  ㉣선제(船制)

  수전(水戰)에 있어서는 우리의 전선(戰船)을 가장 두려워하며 우리 배를 감히 못 당한다고 한다. 그러한 그들의 배 모양은 우리 나라 배와 거의 비슷한데 지(鷙,배앞부분?)가 수직으로 되어 있으며 양 옆으로 노를 매우 조밀하게 배치해 놓았다. 노는 한 사람씩 사용하는데 큰 배는 한쪽에 25 개나 또는 30 개의 노가 달려 있다. 그리고 모든 배는 베돛[布帆]을 부착하였고 뱃전은 난간을 만들고 휘장을 둘렀다.

  ㉤축성 방법과 모양

  성을 쌓는 데는 험한 지형을 이용하지 않았고 반드시 넓은 들판에 그 땅의 생김새를 따라 넓지는 않지만 높고 견고하게 만들었다. 성은 반드시 겹성을 쌓았는데 때로는 서너 겹을 된 겹성도 있다. 그리고 매 겹마다 참호를 파서 못을 만들었는데 물이 깊고 또 넓어서 배가 통행할 수 있게 했다. 성 안에는 돌로 굴을 만들고 굴 위에는 5,6 층이나 되는 망루(望樓)를 만들었는데 우뚝하게 높이 솟은 데다가 그 안에서 수백 명이 서로 전쟁을 할 수 있는 크기였다. 그리고 나가서 싸우다가 형세가 불리하면 이곳에 들어와 성을 지키다가 기회를 보아 나가서 싸우기도 하고 혹은 여기서 시일을 끌면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단다.

   ㉥궁실의 제도

  궁실은 대개 나무판자로 만들었고 오로지 장관의 집이나 절이나 물자를 많이 저장하는 시장의 가게들은 자기들의 뜻대로 판자나 기와로 지붕을 덥기도 한다. 그리고 금색과 은색 및 푸른색 등으로 조각한 곳을 장식한 것은 부귀빈천을 막론하고 화려하게 꾸미어 스스로 자랑을 삼는다. 집에는 온돌[土床]이 없어서 아주 추운 겨울에도 마루 가운데 난로를 놓아 따뜻한 기운을 유지하게 한다. 창이나 문에는 기둥이 없고 아래 위에 문지방을 만들고, 거기에 홈을 파서 문을 밀어 닫고 열도록 했다.  

  ㉦도시의 거리와 시장 제도

  거리와 골목은 반듯반듯하고 주택이 즐비했으며 시장의 점포에는 많은 물건들이 쌓였다. 중국이나 남만(南蠻) 및 남반(南般) 유구(琉球) 등의 나라와 서로 무역을 하여 통래하지 않는데가 없단다. 관동의 여러 주와 석견 단후 장문 등의 주는 금은이 많이 나오며 중국의 동전(銅錢)을 쓰는 법도 들여와서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장사꾼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나라가 부유하여졌다. 시장의 점포는 그 제도가 중국과 같아서 손님을 끌어들여 객관에 머무르게 하고 술과 음식도 먹여 준 뒤에 그 값을 받는다. 그리하여 여행하는 자는 보따리를 싸서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되며 그곳에 거주하는 자는 물건을 쌓아놓고 기다리면 된다. 음식 같은 물품은 정결하도록 노력하고 나무젓가락을 쓰며 숟가락은 없다. 그릇은 옻칠을 한 목기를 쓰며 때로는 그림이 그려진 사기(沙器)를 쓰기도 한다. 귀한 손님을 접대할 때는 반드시 흰 나무상에 새로 만든 토기(土器)를 쓰는데 모두 금은으로 도색을 하였다. 이러한 그릇은 한번 사용한 뒤에 그 자리에서 깨어버리는데 이는 그 그릇을 다시 쓰지 않으므로 손님을 공경한다는 예절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성씨

  일본에는 원 평 등 귤(源平藤橘) 등 4 성(姓)이 있는데 그 중에 원 평 두 성이 서로 권력을 잡았다. 그런데 평씨가 집권을 하면 관백이라고 부르고 원씨가 집권을 하면 장군이라고 호칭을 한다. 일반 사람들은 정해진 성이 없고 선조들의 성을 이어받지도 않는다. 그리고 길에서 주운 자식이라도 길러서 자식을 삼으면 반드시 성을 이어받게 하는데 때로는 집정관의 성으로 자기 성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이는 자기의 주장(主將)의 성을 따르기도 한다. 그리하여 아침에 원씨 성을 가졌다가도 저녁이면 평씨 성을 가지기도 한다. 그 결과 형제간에도 성이 다른 사람이 있으며 타성간(他姓間)에도 같은 성이 되는 자가 있다. 여러 장간 중에는 미천한 신분에서 올라온 자가 많다. 오래된 집안으로 그 가족성을 대대로 이어받은 자를 옥형(屋形)이라고 하는데 모두 그 집이나 방들을 잘 보존하여 그 모양을 허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나라의 벌열(閥閱, 귀한 가문)과 같은 것이다. 저 가강(家康과) 휘원(輝元)과 의홍(義弘)과 평의지(平義智) 같은 자들을 옥형이라고 일컫는다. 평의지는 저 조그마한 대마도의 도주로서 벼슬로는 가장 낮은 지위이지만 이 나라에서 좌석의 배치는 가장 높은 줄에 놓여 있다. 그리고 평수길은 관백을 지냈어도 옥형에는 차여하지 못했다고 했다.

  ㉨법제도

  관청이나 법이 따로 없다. 그리하여 죄가 무거우면 죽이고 죄가 가벼우면 집안 살림을 빼앗는다든지 또는 먼 섬으로 귀양 보낸다. 때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것이 무르기도 하고 엄격하기도 하여 기분에 좌우되기도 한다. 살인을 했거나 도적질한 자는 모두 죽이고 도적한 물건 값을 따져서 재물을 징수하되 재물이 없으면 그 아내와 자식도 몰수하여 갚도록 한다. 또 살인자가 혹 즉시 잡히지 않고 오랜 뒤에 자수하게 되면 용기가 있다고 해서 죄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발탁하여 벼슬을 주기도 한다.

  ㉩사람들의 사회생활

  사람들은 의협심을 숭상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조금만 불평이 있으면 거침없이 칼을 뽑아들고 거리낌 없이 죽여 버린다. 그리고 남의 의심을 받을 만한 잘못을 저질렀으면 자신의 배를 칼로 찔러 스스로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제할 때에는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부부가 같이 살아도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으며 부자간에 같이 있어도 칼을 풀어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공적과 명예를 위해서는 부자간에도 서로 모함하고 형제간에도 적을 삼는다. 그래서 아들을 낳아 10 살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양자를 주어 함께 살지 않는다. 술에 취하면 취한 틈을 타서 가끔 칼을 뽑아 싸우기 때문에 함부로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손님을 접대할 때에도 반드시 밥을 먼저 먹고 식사 후에 술을 권하되 서너 잔을 넘지 않게 하며 아무리 좋은 날이나 명절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잔치를 열어 즐기는 일이 없다.

  ㉪혼인 예절

  혼인 방법은 남자보다 여자가 먼저 가는데 불을 타넘어서 문으로 들어가 남편과 서로 만난다. 배다른 어머니나 형의 처나 첩은 아버지나 형이 죽으면 전계(傳係)라고 일컬으며 자신이 데리고 산다. 이와 같이 새나 짐승 같은 행동을 말로 하려니 입이 더러워진다. 천황의 아들은 그 친족에게 장가가야하고, 관백의 아들은 여러 장관들의 집으로 장가간다. 그런데 천황의 아들은 장자만이 장가를 갈 수 있는데 이는 집안을 계승하기 위함이고, 그 나머지 자식들은 시집도 장가도 가지 못한다. 이는 지위가 낮은 다른 집안에 혼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발과 복식

  남자는 머리를 깎는데 뒤통수에 털을 조금만 남기어 종이끈으로 묶는다. 여자는 머리를 늘어뜨리는데 신분이 천한 자는 머리 꼭대기에 묶어 올려서 마치 우리 나라의 남자의 머리 모양과 같다. 눈썹을 뽑고 이빨을 물들이며 연지와 분으로 얼굴에 바른다.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여자는 눈썹도 뽑지 않고 이도 염색하지 않으며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머리를 꾸미지 않는다. 발에는 짚신을 신는데 혹시 여행을 가게 되면 남녀 모두 도롱이와 삿갓을 쓴다. 옷은 띠와 속옷이 없고 아롱진 무늬의 길고 넓은 옷을 입어서 팔다리와 몸을 감싼다. 천황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천한 사람도 똑같은 모양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면 칼과 신발을 다 버리고 빠른 걸음으로 앞에 나와서 두 손을 땅에 대고 무릎을 꿇어 엎드리는 것이 예의다. 절하고 꿇어앉는 절차는 없다.

  남자는 늘 대중소 3 가지의 검(劒)을 차고 다니는데 대검은 남을 죽이는데 쓰고 중검은 방어하는데 쓰며 소검은 자살하는데 쓴다. 이 나라 풍속에는 용맹스러운 것을 가장 숭상하여 칼과 창을 쓰는 것을 가장 좋게 여기며 전쟁 준비를 가장 힘쓴다. 문학과 교육을 등한히 해서 근래에 문학으로 동호인을 만든 자가 천여 명에 이르자 나라 사람들이 비웃으며 말하기를 ‘일본군이 강하다는 것은 온 세상이 아는 일인데 만일 문학과 교육만 힘쓴다면 군대가 해이해져서 도로 약한 나라가 될 지 모른다’고 하고 배척하여 못하게 했다.

  ㉬불교와 중

  중들은 문자를 조금 익혔기 때문에 여러 장군들의 서기(書記) 임무는 모두 중들에게 맡겼는데 그 결과 중은 장로(長老)라고 하여 존경을 받는다. 이 나라는 불교를 숭상하여 사찰이나 신궁이 도시 가운데도 연달아 있고 중들이 주민들과 서로 섞여서 사는데 이들은 민간도 아니고 군대도 아니기 때문에 부역도 세금도 없어서 편히 살고 즐기는 자는 중보다 나은 것이 없다. 사람이 죽어 3일이 지나면 시체를 섶에 올려놓고 불로 태우는데 시체가 다 타면 재를 작은 궤짝에 담아다가 절에 가져다가 장사 지내고 작은 팻말을 세워 표를 해 둔다. 그리고 상갓집에는 흰옷을 입고 여러 가지 반찬이 없이 소식(素食)을 하며 중에게 불경을 외게 한다. 40 일이 지나면 상을 끝내고 평상시로 돌아간다.

  ㉭포로들에게 얽힌 일화

  일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강항(姜沆)이라는 사람이 포로로 잡혀온 뒤 5 년 동안 머리도 깎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방안에 조용히 들어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짓는 일만 하며 일본 사람과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송상현(宋象賢)의 첩은 절개를 지켜 정조를 빼앗기지 않고 죽음으로 맹세하니 일본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여 집을 지어 살게 하고 우리 나라에서 포로로 잡혀간 여자들에게 그 여자를 호위하게 하고 심부름을 들게 하였다. 그러다가 유정(惟政,서산대사)이 사신으로 들어왔을 때에 그 들은 돌아갔는데 이 이야기는 먼 곳까지 소문이 나서 아름다운 일로 일컬어져 왔다.

  대체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용기와 무예만 일삼아서 인륜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절의(節義)를 지키는 사람을 보면 감탄하여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것으로 보아 천리의 본성을 역시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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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칠송 해사록 倭國의 풍속과 모습

1607년에  조선 사신 경섬이 일본에 다녀온 기록인 경칠송 해사록(慶七松海槎錄) 중에서 일본의 풍속과 모습에 대한 글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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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특이한 점들

              일본의 지형과 구성

  1,지형: 앞부분이 뾰족하고 뒷부분이 둥글어 비파(琵琶) 모양과 비슷함.

  2,구획: 8도(八道) 66주(六十六州)로 구성

     ㉠기내도(畿內道): 산성(山城)․하내(河內)․대화(大和)․화천(和泉)․섭진(攝津). 합 5주(五州).

     ㉡동산도(東山道): 근강(近江)․미농(美濃)․비탄(飛彈)․신농(信濃)․상야(上野)․하야(下野)․출우(出羽)․육오(陸奧). 합 8주.

     ㉢산양도(山陽道): 번마(幡摩)․미작(美作)․비전(備前)․비중(備中)․비후(備後)․안예(安藝)․주방(周防)․장문(長門). 합 8주.  

     ㉣산음도(山陰道): 단파(丹波)․단후(丹後)․단마(但馬)․인번(因幡)․백기(伯耆)․출운(出雲)․은기(隱岐)․석견(石見). 합 8주.

     ㉤동해도(東海道): 이하(伊賀)․이세(利勢)․지마(志摩)․미장(尾張)․삼하(三河)․원강(遠江)․준하(駿河)․이두(伊豆)․갑비(甲斐)․상모(相模)․무장(武藏)․안방(安房)․상총(上總)․하총(下總)․상륙(常陸). 합 15주.

     ㉥남해도(南海道): 기이(紀伊)․담로(淡路)․아파(阿波)․찬기(讚岐)․이예(伊豫)․토좌(土佐). 합 6주.

     ㉦서해도(西海道):축전(筑前)․축후(筑後)․풍전(豐前)․풍후(豐後)․비전(肥前)․비후(肥後)․일향(日向)․살마(薩摩)․대우(大隅).합 9주.

     ㉧북륙도(北陸道): 약협(若狹)․월전(越前)․가하(加賀)․능등(能登)․월중(越中)․월후(越後)․좌도(佐渡).

합 7주.

   ㉨기타:1 각 주(州) 아래 군(郡)들이 있음.

          * 대마도 일기도 등 섬은 도(道)에 소속되지 않고 관백의 직할로서 도주(島主)를 둠.  

(Ⅵ)  일본 천황의 역사

  1,시조: 신무천황(神武天皇)

   일본에는 애초에 통일된 국가가 없었고 부족들이 모여서 각자 나라를 만들었다. 중국 주유왕(周幽王)49년(BC393) 협야(狹野,그의 어머니는 하신여왕(河神女王)인 의희(依姬)였다)라는 자가 군대를 일으켜 각 부족을 통일하고 처음으로 국토를 주(州)와 군(郡)으로 분할하고 국도(國都지금왜경 곧 경도)를 정했으며 스스로 신무천황이라고 하여 시조가 되었다. 나이는 1백 2십 7세까지 살았다.  

  2, 7세(七世) 효령천황(孝靈天皇)

  중국 진시황이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을 바다로 보내어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러 보냈는데 서복이 일본의 기이주에 들어와서 1백 8십 9년까지 살다가 죽자 일본 사람들이 그의 사당을 지어 지금까지 제사지냄.  

  3, 64세 안덕천황(安德天皇)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원뢰조(源賴朝3월 24일자 일기에 기술)가 국정을 독단하여 모든 권력이 그의 손에 의하여 좌우되니 천황은 실권이 없이 지금까지도 하늘에 제사나 지내고 부처님이나 모시는 일밖에 하지 않는다. 그리고 천황에게 공급되는 모든 물자는 화천주와 산성주 두 고을에서 받는 세금에서 갈라낸 것이다. 그리고 관백은 매년 설날 딱 한번 여러 부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천황에게 가서 배알할 뿐이며 보통 때는 절대로 서로 만나는 절차가 없었다. 관백이 국정을 총괄한 것이 이때부터이다.

  4,천황의 관속

  천황에게 딸린 관직들은 자손 대대로 같은 봉급을 타먹지만 맡은 임무는 없고,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천황과 그 관속들은 거기에 관여하지 않고 바라만 볼 뿐이다. 그리고 천황의 역사는, 협야천황에서부터 지금까지 1백 9세가 된다고 했다.

  5,관백의 위상

  관백은 모든 권력의 소유자이지마는 그 권력을 아침에 얻었다가 저녁에 잃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권력 싸움이 많다. 그리하여 어떤 경우는 1,2 세까지 존속하는 자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쟁취하였다가 자신의 시대에 망하기도 한다.

  6,관백이하의 직책

  관백이하의 여러 장수들은 식읍(食邑)을 분할해 주어서 각자 그 지방에 나는 물건을 세금으로 거두어 봉급으로 쓴다. 이 식읍은 여러 대 세습하여 받는 경우도 있고 어떤 공적을 세워 새로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식읍이 큰 경우는 주와 군을 차지하여 봉급이 쌀로 백만 석에 이르기도 하고, 작은 경우는 천 석이나 백 석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들이 통치하는 식읍의 경계 안에서는 백성들의 생명도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는데 이들도 자신이 관장하는 땅을 또 그 밑의 부하인 편장(偏將)이나 비장(裨將)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그러면 그들도 역시 그 땅을 자기들의 식읍으로 삼는다.

   7,양전(量田)

  땅을 측량하는데 정(町)과 단(段)의 법을 쓴다. 보통 사람이 두발로 벌려선 사이를 1 보(步)라고 하고 60 보를 1단이라고 하며 10 단을 1 정이라고 한다. 이 1정에서 1년 동안 받는 세금은 등급에 따라 다른데, 상(上)인 밭은 32 두(斗)이고, 중은 20 두이고, 하는 13 두이다. 이는 대체로 그 밭에서 나는 양의 3분의 1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평수길은 국내의 밭을 모두 공지(公地)로 만들고 그 땅에서 나는 곡식을 모두 관청으로 바치게 하였다. 그런데 논은 먼저 보리나 밀을 심어 그것을 수확한 것을 농민이 먹게 하고 보리를 벤 곳에 벼를 옮겨 심는데 벼는 땅의 비옥한 정도나 그해의 풍년 여부를 따라 쌀로 관청에 바친다. 그런데 관청에 바치는 쌀이 정해진 기준에 못 미치면 집안의 재산을 팔든지 아니면 아내나 종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채워야한다.

  8,농민의 생활상과 임무

  농민들은 가을이나 겨울에 남은 쌀겨를 거두어다가 풀의 열매와 섞어 먹고 봄 여름에는 관청에서 농사지을 양식을 약간씩 주어 연명하게 되니 농민의 괴로움은 천하에 견줄 데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농민의 임무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나라에서 10 년 동안을 싸워도 농사에만 전염할 수가 있다. 또 세금 대신 부역에 나가는 일도 없다. 그리고 관공서에서 필요하는 그릇이나 옷 음식 인부와 말 등은 모두 돈이나 은자로 시장에 나가서 사다가 쓰게 한다.

  9, 군대의 신분과 임무

  ㉠군대를 모집하는 방법은 백성 가운데 용맹스럽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자를 뽑는데, 1백 석을 봉급으로 받는 지방 장관은 4 명을 기를 수 있고, 천 석을 받는 장수는 40 명을 기를 수 있다. 그리하여 백만 석 천만 석을 봉급으로 받는 사람은 그 봉급의 정도에 따라 군대의 수를 조절한다. 게다가 물자가 풍부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여 더 많은 군대를 모집할 수 있는 자는 이 기준 수에 적용을 안 받고 많이 모집할수록 좋다. 군대 한 사람의 1 년치 봉급은 25 석을 기준으로 하며 그들에게는 일체 잡역(雜役)을 시키지 않고 또 농사도 안 시킨다. 그리고 각 장수들은 자신이 기르는 군대를 오로지 연습만 시키어 불시의 필요를 대비한다. 그리하여 전쟁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백만 대군도 아침에 명령을 내리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저녁에 모을 수 있다.

  ㉡행군하는 방법을 보면 각 장수들은 각기 자기들만의 특색이 있는 호기(號旗,신호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가 거느린 군대들에게 그 기를 따르게 하며, 각 군대들도 각자 자신의 소속을 표시하는 작은 표기(標旗)를 등에 지고 어떤 자는 기이한 형상의 갑옷을 입어서 상대를 현혹하게 한다. 행진에서 맨 앞에 서는 군대는 반드시 정예군을 기용하는데 이는 선봉이 꺾이면 군대의 사기가 무너지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을 공격할 때는 기를 진 군대가 맨 앞에 서는데 이는 기를 진 군인이 먼저 올라가면 적군이 현혹되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 얼굴에 상처를 입은 자는 상을 주고 등에 상처를 입은 자는 벌을 주며 패전한 장수는 죽이고 식읍도 빼앗을 뿐 아니라 그에게 소속된 군대도 다른 장수에게 편입시켜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온 나라가 다 그를 버리도록 하여 마침내 굶어죽게 함으로써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면 싸우다가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게 한다. 군대는 오래 놀게 되면 스스로 난리를 일으키기 때문에 자꾸 일을 만들어 내어 편하게 살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성을 쌓고 못을 파는 일이 없는 해가 없다.

  ㉢무기는 칼과 창 그리고 조총(鳥銃)을 가장 좋게 여기고 활과 화살 및 말달리는 일은 대단치 않은 기술로 여긴다. 군대를 용병하는 방법은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오자병법을 섞어 쓰면서 스스로 이 세상에 자기들을 대적할 자가 없다고 여긴다.

  ㉣선제(船制)

  수전(水戰)에 있어서는 우리의 전선(戰船)을 가장 두려워하며 우리 배를 감히 못 당한다고 한다. 그러한 그들의 배 모양은 우리 나라 배와 거의 비슷한데 지(鷙,배앞부분?)가 수직으로 되어 있으며 양 옆으로 노를 매우 조밀하게 배치해 놓았다. 노는 한 사람씩 사용하는데 큰 배는 한쪽에 25 개나 또는 30 개의 노가 달려 있다. 그리고 모든 배는 베돛[布帆]을 부착하였고 뱃전은 난간을 만들고 휘장을 둘렀다.

  ㉤축성 방법과 모양

  성을 쌓는 데는 험한 지형을 이용하지 않았고 반드시 넓은 들판에 그 땅의 생김새를 따라 넓지는 않지만 높고 견고하게 만들었다. 성은 반드시 겹성을 쌓았는데 때로는 서너 겹을 된 겹성도 있다. 그리고 매 겹마다 참호를 파서 못을 만들었는데 물이 깊고 또 넓어서 배가 통행할 수 있게 했다. 성 안에는 돌로 굴을 만들고 굴 위에는 5,6 층이나 되는 망루(望樓)를 만들었는데 우뚝하게 높이 솟은 데다가 그 안에서 수백 명이 서로 전쟁을 할 수 있는 크기였다. 그리고 나가서 싸우다가 형세가 불리하면 이곳에 들어와 성을 지키다가 기회를 보아 나가서 싸우기도 하고 혹은 여기서 시일을 끌면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단다.

   ㉥궁실의 제도

  궁실은 대개 나무판자로 만들었고 오로지 장관의 집이나 절이나 물자를 많이 저장하는 시장의 가게들은 자기들의 뜻대로 판자나 기와로 지붕을 덥기도 한다. 그리고 금색과 은색 및 푸른색 등으로 조각한 곳을 장식한 것은 부귀빈천을 막론하고 화려하게 꾸미어 스스로 자랑을 삼는다. 집에는 온돌[土床]이 없어서 아주 추운 겨울에도 마루 가운데 난로를 놓아 따뜻한 기운을 유지하게 한다. 창이나 문에는 기둥이 없고 아래 위에 문지방을 만들고, 거기에 홈을 파서 문을 밀어 닫고 열도록 했다.  

  ㉦도시의 거리와 시장 제도

  거리와 골목은 반듯반듯하고 주택이 즐비했으며 시장의 점포에는 많은 물건들이 쌓였다. 중국이나 남만(南蠻) 및 남반(南般) 유구(琉球) 등의 나라와 서로 무역을 하여 통래하지 않는데가 없단다. 관동의 여러 주와 석견 단후 장문 등의 주는 금은이 많이 나오며 중국의 동전(銅錢)을 쓰는 법도 들여와서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장사꾼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나라가 부유하여졌다. 시장의 점포는 그 제도가 중국과 같아서 손님을 끌어들여 객관에 머무르게 하고 술과 음식도 먹여 준 뒤에 그 값을 받는다. 그리하여 여행하는 자는 보따리를 싸서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되며 그곳에 거주하는 자는 물건을 쌓아놓고 기다리면 된다. 음식 같은 물품은 정결하도록 노력하고 나무젓가락을 쓰며 숟가락은 없다. 그릇은 옻칠을 한 목기를 쓰며 때로는 그림이 그려진 사기(沙器)를 쓰기도 한다. 귀한 손님을 접대할 때는 반드시 흰 나무상에 새로 만든 토기(土器)를 쓰는데 모두 금은으로 도색을 하였다. 이러한 그릇은 한번 사용한 뒤에 그 자리에서 깨어버리는데 이는 그 그릇을 다시 쓰지 않으므로 손님을 공경한다는 예절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성씨

  일본에는 원 평 등 귤(源平藤橘) 등 4 성(姓)이 있는데 그 중에 원 평 두 성이 서로 권력을 잡았다. 그런데 평씨가 집권을 하면 관백이라고 부르고 원씨가 집권을 하면 장군이라고 호칭을 한다. 일반 사람들은 정해진 성이 없고 선조들의 성을 이어받지도 않는다. 그리고 길에서 주운 자식이라도 길러서 자식을 삼으면 반드시 성을 이어받게 하는데 때로는 집정관의 성으로 자기 성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이는 자기의 주장(主將)의 성을 따르기도 한다. 그리하여 아침에 원씨 성을 가졌다가도 저녁이면 평씨 성을 가지기도 한다. 그 결과 형제간에도 성이 다른 사람이 있으며 타성간(他姓間)에도 같은 성이 되는 자가 있다. 여러 장간 중에는 미천한 신분에서 올라온 자가 많다. 오래된 집안으로 그 가족성을 대대로 이어받은 자를 옥형(屋形)이라고 하는데 모두 그 집이나 방들을 잘 보존하여 그 모양을 허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나라의 벌열(閥閱, 귀한 가문)과 같은 것이다. 저 가강(家康과) 휘원(輝元)과 의홍(義弘)과 평의지(平義智) 같은 자들을 옥형이라고 일컫는다. 평의지는 저 조그마한 대마도의 도주로서 벼슬로는 가장 낮은 지위이지만 이 나라에서 좌석의 배치는 가장 높은 줄에 놓여 있다. 그리고 평수길은 관백을 지냈어도 옥형에는 차여하지 못했다고 했다.

  ㉨법제도

  관청이나 법이 따로 없다. 그리하여 죄가 무거우면 죽이고 죄가 가벼우면 집안 살림을 빼앗는다든지 또는 먼 섬으로 귀양 보낸다. 때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것이 무르기도 하고 엄격하기도 하여 기분에 좌우되기도 한다. 살인을 했거나 도적질한 자는 모두 죽이고 도적한 물건 값을 따져서 재물을 징수하되 재물이 없으면 그 아내와 자식도 몰수하여 갚도록 한다. 또 살인자가 혹 즉시 잡히지 않고 오랜 뒤에 자수하게 되면 용기가 있다고 해서 죄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발탁하여 벼슬을 주기도 한다.

  ㉩사람들의 사회생활

  사람들은 의협심을 숭상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조금만 불평이 있으면 거침없이 칼을 뽑아들고 거리낌 없이 죽여 버린다. 그리고 남의 의심을 받을 만한 잘못을 저질렀으면 자신의 배를 칼로 찔러 스스로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제할 때에는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부부가 같이 살아도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으며 부자간에 같이 있어도 칼을 풀어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공적과 명예를 위해서는 부자간에도 서로 모함하고 형제간에도 적을 삼는다. 그래서 아들을 낳아 10 살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양자를 주어 함께 살지 않는다. 술에 취하면 취한 틈을 타서 가끔 칼을 뽑아 싸우기 때문에 함부로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손님을 접대할 때에도 반드시 밥을 먼저 먹고 식사 후에 술을 권하되 서너 잔을 넘지 않게 하며 아무리 좋은 날이나 명절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잔치를 열어 즐기는 일이 없다.

  ㉪혼인 예절

  혼인 방법은 남자보다 여자가 먼저 가는데 불을 타넘어서 문으로 들어가 남편과 서로 만난다. 배다른 어머니나 형의 처나 첩은 아버지나 형이 죽으면 전계(傳係)라고 일컬으며 자신이 데리고 산다. 이와 같이 새나 짐승 같은 행동을 말로 하려니 입이 더러워진다. 천황의 아들은 그 친족에게 장가가야하고, 관백의 아들은 여러 장관들의 집으로 장가간다. 그런데 천황의 아들은 장자만이 장가를 갈 수 있는데 이는 집안을 계승하기 위함이고, 그 나머지 자식들은 시집도 장가도 가지 못한다. 이는 지위가 낮은 다른 집안에 혼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발과 복식

  남자는 머리를 깎는데 뒤통수에 털을 조금만 남기어 종이끈으로 묶는다. 여자는 머리를 늘어뜨리는데 신분이 천한 자는 머리 꼭대기에 묶어 올려서 마치 우리 나라의 남자의 머리 모양과 같다. 눈썹을 뽑고 이빨을 물들이며 연지와 분으로 얼굴에 바른다.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여자는 눈썹도 뽑지 않고 이도 염색하지 않으며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머리를 꾸미지 않는다. 발에는 짚신을 신는데 혹시 여행을 가게 되면 남녀 모두 도롱이와 삿갓을 쓴다. 옷은 띠와 속옷이 없고 아롱진 무늬의 길고 넓은 옷을 입어서 팔다리와 몸을 감싼다. 천황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천한 사람도 똑같은 모양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면 칼과 신발을 다 버리고 빠른 걸음으로 앞에 나와서 두 손을 땅에 대고 무릎을 꿇어 엎드리는 것이 예의다. 절하고 꿇어앉는 절차는 없다.

  남자는 늘 대중소 3 가지의 검(劒)을 차고 다니는데 대검은 남을 죽이는데 쓰고 중검은 방어하는데 쓰며 소검은 자살하는데 쓴다. 이 나라 풍속에는 용맹스러운 것을 가장 숭상하여 칼과 창을 쓰는 것을 가장 좋게 여기며 전쟁 준비를 가장 힘쓴다. 문학과 교육을 등한히 해서 근래에 문학으로 동호인을 만든 자가 천여 명에 이르자 나라 사람들이 비웃으며 말하기를 ‘일본군이 강하다는 것은 온 세상이 아는 일인데 만일 문학과 교육만 힘쓴다면 군대가 해이해져서 도로 약한 나라가 될 지 모른다’고 하고 배척하여 못하게 했다.

  ㉬불교와 중

  중들은 문자를 조금 익혔기 때문에 여러 장군들의 서기(書記) 임무는 모두 중들에게 맡겼는데 그 결과 중은 장로(長老)라고 하여 존경을 받는다. 이 나라는 불교를 숭상하여 사찰이나 신궁이 도시 가운데도 연달아 있고 중들이 주민들과 서로 섞여서 사는데 이들은 민간도 아니고 군대도 아니기 때문에 부역도 세금도 없어서 편히 살고 즐기는 자는 중보다 나은 것이 없다. 사람이 죽어 3일이 지나면 시체를 섶에 올려놓고 불로 태우는데 시체가 다 타면 재를 작은 궤짝에 담아다가 절에 가져다가 장사 지내고 작은 팻말을 세워 표를 해 둔다. 그리고 상갓집에는 흰옷을 입고 여러 가지 반찬이 없이 소식(素食)을 하며 중에게 불경을 외게 한다. 40 일이 지나면 상을 끝내고 평상시로 돌아간다.

  ㉭포로들에게 얽힌 일화

  일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강항(姜沆)이라는 사람이 포로로 잡혀온 뒤 5 년 동안 머리도 깎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방안에 조용히 들어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짓는 일만 하며 일본 사람과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송상현(宋象賢)의 첩은 절개를 지켜 정조를 빼앗기지 않고 죽음으로 맹세하니 일본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여 집을 지어 살게 하고 우리 나라에서 포로로 잡혀간 여자들에게 그 여자를 호위하게 하고 심부름을 들게 하였다. 그러다가 유정(惟政,서산대사)이 사신으로 들어왔을 때에 그 들은 돌아갔는데 이 이야기는 먼 곳까지 소문이 나서 아름다운 일로 일컬어져 왔다.

  대체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용기와 무예만 일삼아서 인륜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절의(節義)를 지키는 사람을 보면 감탄하여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것으로 보아 천리의 본성을 역시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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