メインへ

KJCLUB 日韓文化交流へようこそ。

南京事件の主犯は朝鮮人

閲覧数 : 313
JA 0 ginryoso 2,811,753
南京大虐殺の主犯が韓国人とは…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07/10/2009071001476_0.jpg
(1937年の南京大虐殺当時、中国人捕虜を殺害しようとしている日本軍 /朝鮮日報DB)

「南京大虐殺をやらかした 日本軍のうち40%が韓国人だった。」
「髷頭の朝鮮人らは、子供たちさえも見逃してはやらなかったそうだ。」

中国の代表¥的なウェブサイトに、荒唐無稽な文章が上がっている。

日本軍が1937年12月から1938年2月まで30万人の中国人捕虜と市民を虐殺した「南京大虐殺」当時、
日本軍の相当数が日本人ではなく韓国人だったという流言飛語が流布しているのだ。

現在、百度(Baidu)や新浪、Googleチャイナ等の掲示板サイトには、こんな内容の文章が数十¥件上がっている。
代表¥的なものは、

「中国人が忘れてはならぬ歴史、南京大虐殺の韓国人」(百度・2006年10月17日)、
「歴史事実: 南京大虐殺で日本軍より残忍だった韓国人」(Googleチャイナ・2008年10月3日)だ。

これらの文章は、

▲当時、松井石根が率いる第15師団所属の「朝鮮人部隊」が虐殺の先頭に立ち、日王の表¥彰まで受けた。

▲松井は後日、東京の極東国際軍事裁判でこの事実を証言した。

▲中国侵略に加担した日本軍250万人のうち韓国国籍者は160万人だった。

▲裁判の結果、韓国出身の戦犯148人が有罪を宣告され、23人が死刑になった、としている。


これだけではない。

「韓国人は日本人よりも残酷に民間人を虐殺・強姦したという現地人らの証言がある。」
「韓国人は日本に積極的抵抗もせず、猟犬の役割をするばかりだった。」
「日本の敗戦後、10万人の朝鮮人がこれを悲観して自殺した。」という主張もある。

内容が類似したこれらの文章に対しては、

「韓国も日本も、元来行動が似た種族だ。」
「やっぱり高麗棒子か。」というコメントまで書き込まれている。

東北アジア歴史財団・政策企画室の南サング研究委員は、

「一言で言えば歴史的根拠の無い流言飛語であり、歴史捏造だ」と語った。

まず時代的状況が全く合わない。韓国人が日本軍に動員されたのは1938年4月(陸軍)と1943年(海軍)の志願兵制度を通じてであり、
徴兵制が実施されたのは1944年だという。

陸軍志願兵制度で1938年〜1943年に動員された韓国人は全部で17,364人に過ぎなかった。
日本軍部は反乱を憂慮して、韓国人を主力にした部隊を編成せず、日本人部隊に分散配置した。

したがって韓国人が40%を占める部隊や韓国人3万人で構¥成された部隊が、
1937年12月の南京大虐殺に参加したというのは有り得ないことになる。

南委員は、「軍事裁判や南京戦犯裁判で、韓国人が南京大虐殺の戦犯判定を受けた例は一件も無い」とした。

裁判でB・C級戦犯として判決を受けた韓国人は148人だが、
彼らは1942年8月以降に強制動員されて東南アジアに勤務した捕虜監視員(129人)と通訳16人、
フィリピン方面の軍人3人だけだった。

1925年から1938年4月まで日本軍の「第15師団」は存在すらしなかった。<中略>

いったい誰が、こうした文章を作って流布させているのだろうか?

百度に掲載された文章には、それを窺わせる内容がある。

「歴史的にも自慢すべき点が無いこの民族(韓国人)は、世界に何らの貢献もしていない。」
「韓国は最も成功した時期を迎えている。 … 中国は韓国企業に対して、
安い労働力だけでなく潜在力が大きい輸出市場を提供しており、韓国は韓流を通じて経済的利益を得ることが重要な戦略になった。」

南委員は、

「文章を書いたのは、歴史に対する知識は若干あるが専攻者ではなく、
韓国企業進出と韓流に対する反発で嫌韓感情を持っているインターネット利用者と見られる」と語った。

中国ネチズンの嫌韓感情拡散によって反射利益を得る個人や集団である可能¥性も大きいという。

これらの文章は、日本右翼に「責任の多くは韓国人にあった」というとんでもない免罪符を与え、
ネット上で拡大再生産される場合には実態をよく知らない人々が事実として受け入れる危険性がある、
と南委員は指摘した。 韓中関係にとって地雷になる可能¥性があるという意味だ。

▽ソ¥ース:朝鮮日報(韓国語)(2009.07.10 16:00)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10/2009071001603.html

******************************************************************************************

日本軍に編入された、「旧朝鮮軍」と、「動員によらず、日本軍に参加した朝鮮人」を、無視ですかw


判りやすい詭弁ですね?w

 
翻訳を見る

남경 사건의 주범은 조선인

난징대학살의 주범이 한국인이란…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07/10/2009071001476_0.jpg
(1937년의 난징대학살 당시 , 중국인 포로를 살해하려고 하고 있는 일본군 /조선일보 DB)

「난징대학살을이든지 빌려준 일본군중 40%가 한국인이었다.」
「곡두의 조선인등은, 아이들마저도 놓치고는 주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웹 사이트에,황당 무계인 문장이 오르고 있다.

일본군이 1937년 12월부터 1938년 2월까지 30만명의 중국인 포로와 시민을 학살한 「난징대학살」당시 ,
일본군의 상당수가 일본인은 아니고 한국인이었다라고 하는유언 비어가 유포하고 있다.

현재, 백번(Baidu)이나 신랑, Google 차이나등의 게시판 사이트에는, 이런 내용의 문장이 수십건 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중국인이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 난징대학살의 한국인」(백번·2006년 10월 17일),
「역사 사실: 난징대학살로 일본군보다 잔인했던 한국인」(Google 차이나·2008년 10월 3일)이다.

이러한 문장은,

▲당시 , 마쓰이 이와네가 인솔하는 제15 사단 소속의 「조선인 부대」가 학살의 선두에 서, 일왕의 표창까지 받았다.

▲마츠이는 후일, 도쿄의 극동 국제 군사재판으로 이 사실을 증언했다.

▲중국 침략에 가담한 일본군 250만명 중 한국 국적자는 160만명이었다.

▲재판의 결과, 한국 출신의 전범 148명이 유죄가 선고되어 23명이 사형이 되었다, 로 하고 있다.


이만큼은 아니다.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잔혹하게 민간인을 학살·강간했다고 하는 현지인등의 증언이 있다.」
「한국인은 일본에 적극적 저항도 하지 않고, 사냥개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일본의 패전 후, 10만명의 조선인이 이것을 비관해 자살했다.」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내용이 유사한 이러한 문장에 대해서는,

「한국이나 일본도, 원래 행동이 닮은 종족이다.」
「역시 고려봉자인가.」라고 하는 코멘트까지 써지고 있다.

토호쿠 아시아 역사 재단·정책 기획실의 남상 연구 위원은,

「한마디로 말하면역사적 근거가 없는유언 비어이며, 역사 날조다」라고 말했다.

우선 시대적 상황이 전혀 맞지 않는다.한국인이 일본군에동원된 것은1938년 4월(육군)과 1943년(해군)의 지원병 제도를 통해서여,
징병제가 실시된 것은 1944년이라고 한다.

육군 지원병 제도로 1938년~1943년에동원된 한국인은 전부 17,364명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 군부는 반란을 우려하고, 한국인을 주력으로 한 부대를 편성하지 않고, 일본인 부대에 분산 배치했다.

따라서 한국인이 40%를 차지하는 부대나 한국인 3만명으로 구이루어진 부대가,
1937년 12월의 난징대학살에 참가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게 된다.

남 위원은, 「군사재판이나 난징 전범 재판으로, 한국인이 난징대학살의 전범 판정을 받은 예는 한 건도 없다」라고 했다.

재판으로 B·C급 전범으로서 판결을 받은 한국인은 148명이지만,
그들은 1942년 8월 이후에 강제 동원되어 동남아시아에 근무한 포로 감시원(129명)과 통역 16명,
필리핀 방면의 군인 3명 뿐이었다.

1925년부터 1938년 4월까지 일본군의 「 제15 사단」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중략>

도대체 누가, 이러한 문장을 만들어 유포시키고 있는 것일까?

백번에 게재된 문장에는, 그것을 엿보게 하는 내용이 있다.

「역사적으로도 자랑해야 할 점이 없는 이 민족(한국인)은, 세계에 아무런 공헌도 하고 있지 않다.」
「한국은 가장 성공했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 중국은 한국 기업에 대해서,
싼 노동력 뿐만이 아니라 잠재력이 큰 수출 시장을 제공하고 있어, 한국은 한류를 통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 되었다.」

남 위원은,

「문장을 쓴 것은, 역사에 대한 지식은 약간 있지만 전공자가 아니고,
한국 기업 진출과 한류에 대한 반발로 혐한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터넷 이용자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 네티즌의 혐한감정 확산에 의해서 반사 이익을 얻는 개인이나 집단인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이러한 문장은, 일본 우익에 「책임의 상당수는 한국인에게 있었다」라고 하면 그리고도 없는 면죄부를 주어
넷상에서 확대 재생산 되는 경우에는 실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사실로서 받아 들이는 위험성이 있는,
(와)과 남 위원은 지적했다. 한나카노세키계에 있어서 지뢰가 되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의미다.

▽소스:조선일보(한국어)(2009.07.10 16:00)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10/2009071001603.html

******************************************************************************************

일본군에 편입된, 「 구조선군」이라고, 「동원에 의하지 않고, 일본군에 참가한 조선인」을, 무시입니까 w


알기 쉬운 궤변이군요?w

 

いいね・コメントにはログインが必要です。

コメント ( 8 )

投稿一覧

2,811,753

  1. KO 255 propertyOfJapan
  2. KO 20 Jumong8
  3. KO 255 morort
  4. KO 255 morort
  5. KO 255 morort
  6. JA 255 竹島先住民
  7. KO 255 propertyOfJapan
  8. KO 255 morort
  9. JA 255 竹島先住民
  10. KO 255 amateras16
  11. 閲覧数 : 85
    KO 255 avenger
  12. KO 255 jap6cmwarotaZ
  13. 閲覧数 : 110
    JA 255 milet
  14. KO 255 cris1717
  15. KO 255 amateras16
  16. 5 閲覧数 : 113
    JA 255 dom1domko
  17. 閲覧数 : 92
    JA 255 sonhee123
  18. JA 255 bluebluebluu
  19. KO 255 avenger
  20. KO 255 jap6cmwarot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