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応永の外寇
좌의정 박은이 계하기를,
“좌군 절제사 박실이 대마도에서 패군할 때 호위하던 한인(漢人) 송관동(宋官童) 등 11명이 우리 군사가 패하게 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으므로, 중국에 돌려보내서 우리 나라의 약점을 보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하니, 우의정 이원과 변계량·허조 등은 다 이르기를,
“마땅히 풀어 보내어 사대(事大)의 예를 완전히 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통사를 보내어, 관동 등을 중로(中路)에서 보고 그 소견을 탐문하였다.
○左議政朴訔啓: “左軍節制使朴實 對馬島敗軍時所(護)〔獲〕 漢人 宋官童等十一名, 備知我師見敗之狀, 不可解送中國, 以見我國之弱。” 右議政李原及卞季良、許稠等皆曰: “宜解送, 以全事大之禮。” 上遣通事, 往見官童等于中路, 探問其所見。
2 秀吉との戦い
明史』 320巻 朝鮮伝
「自倭亂朝鮮七載,喪師數十萬,糜餉數百萬,中朝與屬國迄無勝算,至關白死而禍始息。」
七年にわたる朝鮮の倭乱によって、兵数十万と糜餉(戦費)数百万を失い、中国と属国(朝鮮)に勝算はなかったが、関白(秀吉)の死により戦禍は終息に向かった。
3 第二次世界大戦
ソ連とアメリカに占領されながら、日本に勝ったニダ!!
4 GDPで日本を追い越したニダ ← 今ココw
「どんなに現実の状況が負けていても、認めなければ負けたことにならない」 by殿さ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