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토 명예교수
나이토 명예교수 ‘외무성 주장 반박’ 논문 내
“17세기 영유권설 근거 없고 러일전쟁 때 편입 시도도”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명기하는 이유 중 하나로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기) 관련 내용을 충실히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월부터 홍보용 소책자 형태로 등장한 외무성의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포인트’는 그만큼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일본의 권위있는 독도 연구가 중 한 사람인 나이토 세이추(사진) 시마네대 명예교수는 최근 영남대 독도연구소 발행의 <독도연구> 제 4집에 게재한 ‘다케시마 문제의 문제점- 일본 외무성 다케시마 비판’이라는 논문을 통해 외무성 주장의 논리적 허점을 낱낱히 지적했다.
외무성은 제 1항목에서 “나가구보 세키스키의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1779년 초판) 등 울릉도와 다케시마를 한반도와 오키제도 사이에 정확하게 기재하는 지도가 다수 존재한다”는 점을 들어 옛날부터 다케시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나이토 교수는 이에 대해 “나가구보 세키스이의 지도에는 분명히 울릉도와 다케시마가 기재돼 있지만 다른 나라 비슷하게 취급해 채색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삼국통람도해>(1785년)의 부록 <삼국접양도>에는 다케시마에 대해 ‘조선의 것’이라는 주석을 다는 등 조선 영토임을 분명히 했고, 에도시대의 관찬지도(정부지도)에도 다케시마는 나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일본은 울릉도로 건너 갈 때의 정박장이나 어채지로 다케시마를 이용해, 늦어도 17세기 중엽에는 다케시마의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외무성의 주장도 “근거에 대한 아무런 기술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17세기 중엽 영유권설’의 구체적인 증거로 1618년 돗도리번 주민 2명이 번주를 통해 막부로부터 울릉도 도해면허를 받았다는 부분도 “1618년은 공식문서에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또 ‘1905년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해 다케시마 영유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항목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관리들이 조선 쪽에 강치잡이 대하원(독도 이용 청원)을 내려고 했던 업자를 유인해 영토편입 대하원을 내게하는 공작을 펼쳐, 러일전쟁을 위해 독도를 편입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 일본의 양심세력 -
日평론가 오마에 "독도, 한국이 실효지배"
(도쿄=연합뉴스) 이홍기 특파원 =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씨가 우익성향의 시사잡지 사피오(SAPIO) 최근호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현상유지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해 관심을 끌고 있다.오마에 씨는 "최강 국가 일본의 설계도"라는 칼럼에서 영토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 "현재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곳은 한국으로, 시마네(島根)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만들거나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를 명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오마에 씨는 "영토는 당사자 간의 대화나 유엔의 중재로 해결된 전례가 없다"며 "유일한 수단인 전쟁은 수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양국이 불필요한 마찰을 지양하고 "어업과 해저 자원을 공동 개발하는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 폭소 W
그러나 그는 일본 정부가 공식 입장으로 한국의 실효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불법 점거"로 규정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계속하되 불필요하게 한국을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결론으로 제시했다.
사피오는 일본내 극우 세력의 입장을 대변해오고 있는 주간지로, 민감한 영토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의 입장을 거드는 듯한 견해가 실린 것은 드문 일이다.
"독도는 조선 땅" 일제강점기 日 교과서 발견"
"독도는 조선 땅" 일제강점기 日 교과서 발견
경상대 허종화 명예교수, 일본 소학교용 부도책 공개
일본(분홍색)과는 달리 회청색으로 표시돼 독도(붉은 점선 안)와 울릉도, 한반도가 조선땅임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일제강점기의 소학교용 역사부도 모습.
최근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자국 중등교과서에 명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독도가 한국 땅으로 명백히 구분돼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 소학교용 부도책이 공개돼 주목을 받고 있다.
경상대 허종화(식품공학과) 명예교수는 20일 오후 진주시청에서 일제강점기인 지난 1939년 일본의 도쿄학습사가 발간한 컬러본 소학국사회도(小學國史繪圖)를 제시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박했다.
허 명예교수는 "이 책자 본문 40쪽의 러·일전쟁 당시 해전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대마도 등 일본 땅은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으나 한반도와 독도, 울릉도는 회청색으로 표시돼 있다"며 "이는 일본인 스스로 독도를 조선땅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컬러로 제작된 80쪽 분량의 이 역사부도책은 1928년 초판이 제작된 뒤 나온 수정판으로, 소학교(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수업에 사용됐고 당시 도쿄제국대 교수가 감수했다고 허 명예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최근 중학교 사회교과 신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명기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을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선규 기자

*클라프로트(J. Klaproth)의 ‘삼국 총도’- 제작연도:1832년
클라프로트(1783-1835)는 베를린 태생의 역사학자 및 언어학자로 대부분의 서구 언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능통한 당대 제일의 동양학 관계 학자 였다.
그는 베를린, 페테스부르크(현재 레닌그란드), 모스크바 등의 도서관에 소장된 동양학 관계자료의 정리를 책임맡을 만큼 권위있는 학자로 한국어의 기초도 익힌 적이 있다. 파리의 국립 동양어 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있으면서 [아시아 역사지도첩](1826년)과 [아시아의 제언어](1823년)등을 저술하였고. 1832년에는 영국왕실의 동양학 서적 번역기금을 얻어 일본에 살던 중국계 학자 임지평의[삼국통람도설]을 번역하였고 거기에 ‘삼국총도’ 및 ‘조선팔도 지도’를 별도로 첨가하였다.
이지도가 본래 1785년도에 중국과 일본의 자료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는 점과 1832년에는 당대 동양햑의 권위자 클라프로트가 주석을 첨가하여 동양 3국에 관한 저서에 첨부되었다는 사실은 이 지도의 중요성을 입증시켜 준다. 임자평의 [삼국통람도설]을 번역한 클라프로트는 그 책 안에 부록 지도첩으로 ‘삼국총도’ 및 ‘조선팔도지도’를 첨가했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문자로 명기하고 있으므로 독도문제에서 상당히 중요한 자료이다.
독도는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된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한국의 영토를 침탈하고 식민지 지배권을 확보했다면서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학살, 40년간에 걸친 수탈과 고문.투옥, 강제징용, 심지어 위안부까지 동원했던 그 범죄의 역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결코 일본의 파렴치함을 용납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