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ホーチミン台湾人”説…中国で「韓国に毒された」の声
中国のニュースサイト、環球網が22日、台湾には「ベトナム建国の父とされる
ホーチミン大統領は台湾出身だった」との説があると伝えた。
同記事に対する書き込みには「韓国に毒された」、
「やめとけよ。だんだん韓国人に似てきたぜ」などの意見が多く寄せられた。
■「胡愛国」時代にすり替えはあったのか
ベトナムは中国文化の影響を強く受け、人名も中国風のものが一般的。
ホーチミンの漢字表¥記は胡志明。
ただし、フランスの植民地時代、中国の影響を払拭する意図で漢字使用はやめ、
現在に至っている。
ホーチミン台湾人説を出したのは、台湾人学者の胡俊熊氏。
2008年11月に出版した『ホーチミン出生考』で、国際共産主義陣営が
革命家の伝説を作るために、人物を差し替えたと主張した。
ホーチミンはフランスからの独立運動を推進するに当たり、阮必成、
阮愛国、阿三、胡光、陳民先、李瑞、宋文など、さまざまな氏名を使った。
胡俊熊氏は、「阮愛国は1932年に死亡し、約10年後に別の人物が阮愛国として、
独立・革命運動を進めるようになった」と主張した。
■病死説も出た空白の10年間
阮愛国は1931年6月に香港で逮捕され、32年に釈放されてシンガポールに渡った。
シンガポールでもすぐに逮捕され、香港に送り返された。
その後、阮愛国は姿を消し、「病死説」も出た。
しかし、1941年6月6日になり「全国同胞に呼びかける書」を発表¥し、
ベトナムの独立・革命の舞台に姿を再びあらわした。
姿を消していた期間、ホーチミンはソ¥連にいたとされるが、胡俊熊氏は
「影響力が大きかった阮愛国の名を使うため、別人物を“接ぎ木”した」と主張した。
さらに、ホーチミンは中国語を使いこなすことができたが、
胡俊熊氏は「ベトナム出身にしては、中国語のレベルが高すぎる」と指摘。
1929年から32年まで上海に潜伏した時にともに活動した同志だった客家系台湾人の
胡集璋が、胡愛国の死亡後、胡愛国になりかわったと主張した。
しかし、当時は革命家がかなり長期にわたって姿を消すことは珍しくなかった。
胡俊熊氏は、中国語でホーチミンが著した「獄中日記」に客家系中国人が使う語彙が
見られることを「すでに胡愛国に入れ替わった客家系台湾人の胡集璋の著作である証拠」
としたが、「問題の語彙はベトナム人の中国語でもよくある言葉で、証拠にはならない」などの
反論があり、胡俊熊氏の主張は、台湾でも広く受け入れられているわけではない。
胡愛国はもともと、中国語を使いこなしていたとの証拠もあるという。
なぜか多い、韓国非難の書き込み
環球網が同記事について設けた書き込み欄では「韓国に毒された」、「違うよ、韓国人だよ」、
「台湾と韓国の論争になるな」、「台湾人もやめとけよ。だんだん韓国人に似てきたぜ」などの
意見が目立つ。
また、「ベトナムは中国の属国だっからどうでもよい」、「ベトナム人の祖先は中国人だ」、
「安南(ベトナム中部以北の中国語古地名)は昔から中国の一部分だ」などの主張がある。
サーチナ 2009/07/24(金) 18:17
http://news.searchina.ne.jp/disp.cgi?y=2009&d=0724&f=national_0724_035.shtml
大変だ!台湾人が朝鮮人に似てきた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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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이다!대만인이 조선인을 닮아 왔어!
◆“호치민 대만인”설…중국에서 「한국에 독 되었다」의 소리
중국의 뉴스 사이트, 환구망이 22일, 대만에는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호치민 대통령은 대만 출신이었다」라는 설이 있다고 전했다.
동기사에 대한 기입에는 「한국에 독 되었다」,
「그만둬야.점점 한국인을 닮아 왔다구」등의 의견이 많이 전해졌다.
■「호애국」시대에 바꿔치기는 있었는가
베트남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인명도 중국풍의 것이 일반적.
호치민의 한자표기는 호지명.
다만, 프랑스의 식민지 시대, 중국의 영향을 불식하려는 의도로 한자 사용은 그만두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호치민 대만인설을 낸 것은, 대만인 학자의 호웅씨.
2008년 11월에 출판한 「호치민 출생고」로, 국제 공산주의 진영이
혁명가의 전설을 만들기 위해서, 인물을 갈아넣었다고 주장했다.
호치민은 프랑스로부터의 독립 운동을 추진하는데 임해, 완힛세이,
완아이코쿠, 아산, 호 히카루, 친민처, 리서, 송문 등, 다양한 이름을 사용했다.
호웅씨는, 「완애국은 1932년에 사망해, 약 10년 후에 다른 인물이 완애국으로서
독립·혁명 운동을 진행시키게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병사설도 나온 공백의 10년간
완애국은 1931년 6월에 홍콩에서 체포되어 32년에 석방되고 싱가폴에 건넜다.
싱가폴에서도 곧바로 체포되고 홍콩에 돌려 보내졌다.
그 후, 완애국은 자취을 감추어, 「병사설」도 나왔다.
그러나, 1941년 6월 6일이 되어 「전국 동포에게 호소하는 책」을 발표해,
베트남의 독립·혁명의 무대에 모습을 다시 나타냈다.
자취을 감추고 있던 기간, 호치민은 소련에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호웅씨는
「영향력이 컸던 완애국의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딴사람물을“꿰매어 잇기목”했다」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호치민은 중국어를 잘 다룰 수 있었지만,
호웅씨는 「베트남 출신으로서는, 중국어의 레벨이 너무 높다」라고 지적.
1929년부터 32년까지 샹하이에 잠복 했을 때에 함께 활동한 동지였던 하카계 대만인의
호집장이, 호애국의 사망 후, 호애국에든지 색다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는 혁명가가 꽤 장기에 걸쳐 자취을 감추는 것은 드물지 않았다.
호웅씨는, 중국어로 호치민이 저술한 「옥중 일기」에 하카계 중국인이 사용하는 어휘가
볼 수 있는 것을 「벌써 호애국에 바뀐 하카계 대만인의 호집장의 저작인 증거」
(으)로 했지만, 「문제의 어휘는 베트남인의 중국어라도 자주 있는 말로, 증거는 되지 않는다」등의
반론이 있어, 호웅씨의 주장은, 대만에서도 넓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호애국은 원래, 중국어를 잘 다루고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고 한다.
왠지 많은, 한국 비난의 기입
환구망이 동기사에 대해 마련한 기입란에서는 「한국에 독 되었다」, 「달라, 한국인이야」,
「대만과 한국의 논쟁이 되지 말아라」, 「대만인도 그만둬야.점점 한국인을 닮아 왔다구」등의
의견이 눈에 띈다.
또, 「베트남은 중국의 속국이다 로부터 아무래도 좋다」, 「베트남인의 조상은 중국인이다」,
「아난(베트남 중부 이북의 중국어 코치명)은 옛부터 중국의 일부분이다」등의 주장이 있다.
서치나 2009/07/24(금) 18:17
http://news.searchina.ne.jp/disp.cgi?y=2009&d=0724&f=national_0724_035.shtml
중국의 뉴스 사이트, 환구망이 22일, 대만에는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호치민 대통령은 대만 출신이었다」라는 설이 있다고 전했다.
동기사에 대한 기입에는 「한국에 독 되었다」,
「그만둬야.점점 한국인을 닮아 왔다구」등의 의견이 많이 전해졌다.
■「호애국」시대에 바꿔치기는 있었는가
베트남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인명도 중국풍의 것이 일반적.
호치민의 한자표기는 호지명.
다만, 프랑스의 식민지 시대, 중국의 영향을 불식하려는 의도로 한자 사용은 그만두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호치민 대만인설을 낸 것은, 대만인 학자의 호웅씨.
2008년 11월에 출판한 「호치민 출생고」로, 국제 공산주의 진영이
혁명가의 전설을 만들기 위해서, 인물을 갈아넣었다고 주장했다.
호치민은 프랑스로부터의 독립 운동을 추진하는데 임해, 완힛세이,
완아이코쿠, 아산, 호 히카루, 친민처, 리서, 송문 등, 다양한 이름을 사용했다.
호웅씨는, 「완애국은 1932년에 사망해, 약 10년 후에 다른 인물이 완애국으로서
독립·혁명 운동을 진행시키게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병사설도 나온 공백의 10년간
완애국은 1931년 6월에 홍콩에서 체포되어 32년에 석방되고 싱가폴에 건넜다.
싱가폴에서도 곧바로 체포되고 홍콩에 돌려 보내졌다.
그 후, 완애국은 자취을 감추어, 「병사설」도 나왔다.
그러나, 1941년 6월 6일이 되어 「전국 동포에게 호소하는 책」을 발표해,
베트남의 독립·혁명의 무대에 모습을 다시 나타냈다.
자취을 감추고 있던 기간, 호치민은 소련에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호웅씨는
「영향력이 컸던 완애국의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딴사람물을“꿰매어 잇기목”했다」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호치민은 중국어를 잘 다룰 수 있었지만,
호웅씨는 「베트남 출신으로서는, 중국어의 레벨이 너무 높다」라고 지적.
1929년부터 32년까지 샹하이에 잠복 했을 때에 함께 활동한 동지였던 하카계 대만인의
호집장이, 호애국의 사망 후, 호애국에든지 색다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는 혁명가가 꽤 장기에 걸쳐 자취을 감추는 것은 드물지 않았다.
호웅씨는, 중국어로 호치민이 저술한 「옥중 일기」에 하카계 중국인이 사용하는 어휘가
볼 수 있는 것을 「벌써 호애국에 바뀐 하카계 대만인의 호집장의 저작인 증거」
(으)로 했지만, 「문제의 어휘는 베트남인의 중국어라도 자주 있는 말로, 증거는 되지 않는다」등의
반론이 있어, 호웅씨의 주장은, 대만에서도 넓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호애국은 원래, 중국어를 잘 다루고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고 한다.
왠지 많은, 한국 비난의 기입
환구망이 동기사에 대해 마련한 기입란에서는 「한국에 독 되었다」, 「달라, 한국인이야」,
「대만과 한국의 논쟁이 되지 말아라」, 「대만인도 그만둬야.점점 한국인을 닮아 왔다구」등의
의견이 눈에 띈다.
또, 「베트남은 중국의 속국이다 로부터 아무래도 좋다」, 「베트남인의 조상은 중국인이다」,
「아난(베트남 중부 이북의 중국어 코치명)은 옛부터 중국의 일부분이다」등의 주장이 있다.
서치나 2009/07/24(금) 18:17
http://news.searchina.ne.jp/disp.cgi?y=2009&d=0724&f=national_0724_035.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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