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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ぜ "KOREA"になっただろうか? 東北公正が崩れる歴史的実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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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という名称が高句麗で始まってどんなに中国の東北公正を崩す決定的証拠になったのか歴史的事実を土台で要約して上げます.

1. 高句麗と高麗: 同じ名前を共有した歴史

私たちは高句麗と高麗を別個の国で学びやすいが, 実際では同じ国号を共有した歴史です. 高句麗は長寿王時代から自ら国号を "高麗"と減らして呼んだし, カンゲト大王陵碑や中国の歴史書にも "高麗"に記録されています.

後代歴史学者たちが混線を阻むために先に進んだ国に "と" 者を付けただけ, 当代人たちには皆同じな "高麗"でした. 918年太祖王健が新しい国を建てる時, 高句麗の力強い伝統性と領土的権利を受け継ぐために意識的に昔の名前である "高麗"をそのまま持って来て国の名前にしました.

2. "KOREA" 発音が全世界で広がった過程

王健がアイデンティティで三隠 "高麗"という国号は国際的な交易と外交ネットワークに乗って全世界に刻印されました.

碧瀾渡を尋ねて来たアラブ(ペルシア) 商人たちが高麗の発音を "カリ", "カルリ", "コライ" などで受けて少なくて地中海とアラビア半島全域にまき散らしました. この発音が西洋商人たちと宣教師たちに伝わったし, マルコフォールへの東方見聞録には "カオリ(Caoli)"というイタリア式発音に記録されました. この表記たちが中世ヨーロッパの羊皮紙を経って今日全世界が使う "KOREA"で固まったのです.

3. 国際社会が認めた高句麗-高麗の継勝

"高麗が高句麗を受け継いだ"と言う事実は韓国だけの主張ではなく当代東アジアの公式外交文法でした.

  • 宋の国の記録: 高麗を訪問した宋の国使臣ソグングが著わした公式報告書 "高麗道警"には "この国は昔の臭くて(高句麗)の後裔で風俗と人皆そうだ"と明確に記録されています.

  • キタイとの外交一番勝負: 高麗を侵攻したキタイ君やっぱり "高麗が高句麗の地を占めているから出しなさい"と侵攻名分を立てたが, これはキタイさえ高麗を高句麗の嫡統後継者に認めたことを見せてくれます. ソ・ヒはこの論理を逆利用して "私たち国号が高麗なので高句麗地は元々私たちの"と言いながら江東 6株を確保しました.

4. 人と血管につながった連結の輪

高句麗の流民たちが立てたまた他の国である 渤海がキタイによって滅亡すると, 渤海の最後の王世子対光県を含めた数十万名医高句麗係流民たちが大挙高麗に亡命しました.

太祖王健はこれらを排斥しないでワングシ性を下賜して高麗の中心部に定着させたし, 軍事組職で吸収しました. すなわち, 高句麗 → 渤海 → 高麗につながる過程は単純に領土の変化ではなく, 高句麗の民たちが韓半島の高麗に完全に融合された歴史的事実を証明します.

東北公正が崩れる理由 中国は高句麗と渤海が満洲にあったので中国の地方政権だったという "東北公正" 論理を広げています. しかし高句麗で渤海で, 渤海の流民がまた高麗につながりながら名前と人, そして国際的認証まで皆韓半島で繋がれました.

中国がこの連結足を切ろうと思っても, 現在全世界が韓国を呼ぶ名前と同時に私たちがパスポートに刻んで通う **"KOREA"**という五つ字自体が高句麗-高麗-朝鮮-大韓民国につながった歴史的伝統性の一番確かな証拠だから東北公正は決して成功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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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KOREA"가 되었을까? 동북공정이 무너지는 역사적 사실


"KOREA"라는 명칭이 고구려에서 시작되어 어떻게 중국의 동북공정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는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1. 고구려와 고려: 같은 이름을 공유한 역사

우리는 고구려와 고려를 별개의 나라로 배우기 쉽지만, 실제로는 같은 국호를 공유한 역사입니다. 고구려는 장수왕 시절부터 스스로 국호를 "고려"라고 줄여 불렀으며, 광개토대왕릉비나 중국의 역사서에도 "고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대 역사학자들이 혼선을 막기 위해 앞선 나라에 "고" 자를 붙였을 뿐, 당대인들에게는 모두 같은 "고려"였습니다. 918년 태조 왕건이 새 나라를 세울 때, 고구려의 강력한 정통성과 영토적 권리를 계승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옛 이름인 "고려"를 그대로 가져와 나라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2. "KOREA" 발음이 전 세계로 퍼진 과정

왕건이 정체성으로 삼은 "고려"라는 국호는 국제적인 교역과 외교 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에 각인되었습니다.

벽란도를 찾아온 아랍(페르시아) 상인들이 고려의 발음을 "카리", "컬리", "코라이" 등으로 받아 적어 지중해와 아라비아 반도 전역에 퍼뜨렸습니다. 이 발음이 서양 상인들과 선교사들에게 전해졌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카오리(Caoli)"라는 이탈리아식 발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표기들이 중세 유럽의 양피지를 거쳐 오늘날 전 세계가 사용하는 "KOREA"로 굳어진 것입니다.

3. 국제 사회가 인정한 고구려-고려의 계승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사실은 한국만의 주장이 아니라 당대 동아시아의 공식 외교 문법이었습니다.

  • 송나라의 기록: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저술한 공식 보고서 "고려도경"에는 "이 나라는 옛 구려(고구려)의 후예이며 풍속과 사람 모두 그러하다"고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 거란과의 외교 단판: 고려를 침공한 거란군 역시 "고려가 고구려의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내놓으라"며 침공 명분을 세웠는데, 이는 거란조차 고려를 고구려의 적통 후계자로 인정했음을 보여줍니다. 서희는 이 논리를 역이용해 "우리 국호가 고려이므로 고구려 땅은 원래 우리 것"이라며 강동 6주를 확보했습니다.

4. 사람과 핏줄로 이어진 연결고리

고구려의 유민들이 세운 또 다른 나라인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하자, 발해의 마지막 세자 대광현을 비롯한 수십만 명의 고구려계 유민들이 대거 고려로 망명했습니다.

태조 왕건은 이들을 배척하지 않고 왕씨 성을 하사하며 고려의 중심부에 정착시켰고, 군사 조직으로 흡수했습니다. 즉, 고구려 → 발해 → 고려로 이어지는 과정은 단순히 영토의 변화가 아니라, 고구려의 백성들이 한반도의 고려로 완전히 융합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합니다.

동북공정이 무너지는 이유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가 만주에 있었으므로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는 "동북공정"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에서 발해로, 발해의 유민이 다시 고려로 이어지며 이름과 사람, 그리고 국제적 인증까지 모두 한반도로 연결되었습니다.

중국이 이 연결 다리를 끊으려 해도, 현재 전 세계가 한국을 부르는 이름이자 우리가 여권에 새기고 다니는 **"KOREA"**라는 다섯 글자 자체가 고구려-고려-조선-대한민국으로 이어진 역사적 정통성의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에 동북공정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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