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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寧王陵参拜した日本王子

書き始めに引用したとおり 2001年 12月23日明仁日王が “ガンム天皇の生母は百済武寧王の子孫”と言い放った内容は韓国と日本だけではなく世界多くの国にまで話題を催した. 朝鮮王朝末期の栄親王妃(英親王妃)だった故(故) 異邦者(李方子) 女史は在世に “日本王室でもスンニュンを飲む”と言った. “今の天皇もスンニュンをマシダマダです. その方も朝鮮人ではないですか.” この女史が示した ‘その方’は昭和日王だ. 一日本学者(呉なまぐさい大学 神田秀一 教授)は “全斗換大統領訪日(訪日) の時の晩さん会で昭和日王も自分の先祖が百済人だと発言した”と明らかにした事がある.

筆者は 2002年 7月10日直接日本東京の皇居に入って行って天皇弓衣王室祭祀を進行する祭祀担当官Abe須恵マーサさんから今の明仁 天皇陛下が毎年 11月23日夜にバックゼシン(韓神)のための祭祀祝文をナングチァング(朗唱)して身の上制(新嘗祭)を執り行なうという事実が分かった. このような事実はその年 EBS 光復節特集放送に放映された. UedaMasaki博士はその翌年 1月に筆者に送った書信で “ビタスワングの子孫である隊員陣である(大原真人)は百済王族や椅子王の血管を引き継いだ”と認めた.

現日本王室の浅香乃美なの王子は 2004年 8月武寧王の祭祀の面倒を見るために自ら忠南公州を尋ねた事がある. 王子は直接持って来た 1300年前日本王室で作った王室祭祀用香炉(香炉)と貴重な香(香)を武寧王陵(武寧王陵) 中で立てて済州(祭酒)と祭祀用お菓子などお供えを珍説して武寧王の栄転に頭下げて参拜した. しかし日本のどんな媒体でも浅香乃美なの王子の武寧王陵参拜を報道しなかった.

百済盛旺に対して記述している歴史教科書を部分改正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 6世紀頃百済を三国最高の文明国で中興させて日本に仏教文化を伝えた盛旺(523‾554 在位). その間歴史学界は <日本書紀> 中欽命天皇 15ニョンゾ内容と <三国有史> 中盛旺 32ニョンゾに記録された ‘盛旺はジェジチォン(今の忠南オクチョンまたは恩返し)で新羅の伏兵に殺された’という内容を定説で思って来た.

しかしその間の定説を覆す ‘百済盛旺は日本王までも兼任した’と言う内容の研究論文を韓国外国語大学校教養学部日本文化担当ホン・ユンギ教授が発表して学界の関心が集められている.

紅教授がこのように主張する考証的根拠は <大硝子>わ <声誉初> そして日本学者たちが発表した研究論文などだ.

日本史学者フジワラノ−キヨスケの著書 <大硝子,1156‾1158>は古代日本王室と貴族たちが楽しんで歌った日本定型詩が ‘和歌’ 集めで日本現価研究の重要な古典に評価される資料だ.

が古文書の内容の中で ‘コウニンチォンファング(770‾781 在位)の御者(カンムチォンファング)の口調される祖父は言葉でヒラノ−シン(百済盛旺)の曽孫子井野だと’という書き入れ時が紅教授が主張する ‘百済盛旺が日本王を兼ねた’と言う主張と一致する部分だ.

ボブリュングサ秘密古文書である声誉初は百済盛旺が天皇陛下を兼ねたという内容を記している.

日本ボブリュングサに対するすべての情報と秘史を記録している <声誉初, 1394‾1427>の内容も紅教授の主張を裏付けるための考証資料で信憑性を加えている. この文書は ‘百済盛旺の電信は今の成徳太子だ. したがってこの救世観音像は百済威徳王がお父さん盛旺を追慕するために作った’と記録されている.

また国大学Nakagawaトモヨシ(中川友義) 教授の論文 <日本に渡来した神々>では ‘第1神殿は盛旺, 第2神殿は構図王(温祖), 第3神殿は故改新(非類王と近肖古王)が仕えられている所’と明らかにしている.

この以外にも日本の著名な史学者小林Yasuko(小林恵子)が 1991年著わした <二つの顔の大王>で ‘百済盛旺は日本に渡って来て欽命天王になった’と記述しているし, 京都産業大史学科Inoueミツオ(井上満郎) 教授の論文 <平安の風景, 1994>で ‘Hiranoジェントルマンに仕えられたゼシンは百済から渡って来たグムレシン(今来神)だ’と主張している.

日本帽帯学が所蔵している大硝子.

日本京都に素材したHiranoジェントルマン(平野神社)は西紀 794年カンムチォンワングが首都を京都に遷都した記念で立てた祠堂でグムレシンまたは欽命天王, ヒラノ−シンと言う(のは)名称はもう日本史学者たちによって百済盛旺で判明された部分だ.

これに対して日本京都台史学科ウエダマサアキ(上田正昭) 名誉教授は “‘百済盛旺は日本王を兼ねた’という内容が込められた紅教授の研究論文は日本古文書と論文を土台に考証した信憑性ある資料に評価されてこの書き入れ時においては日本史学者たちも相当部分認めている”と “この部分の真偽可否は両国の歴史教科書を修正するほどに重要な書き入れ時のだけに韓・日仏教史学者たちの十分な研究と検証が成り立たなければならない”と明らかに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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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참배한 일본 왕자

서두에 인용한 대로 2001년 12월23일 아키히토 일왕이 “간무 천황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공언한 내용은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까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조선왕조 말기의 영친왕비(英親王妃)였던 고(故) 이방자(李方子) 여사는 생전에 “일본 왕실에서도 숭늉을 마신다”고 말했다. “지금의 천황께서도 숭늉을 마시다마다요. 그분도 조선 사람이 아닙니까.” 이 여사가 가리킨 ‘그분’은 쇼와 일왕이다. 한 일본 학자(오비린대학 神田秀一 교수)는 “전두환 대통령 방일(訪日) 때 만찬회에서 쇼와 일왕도 자신의 조상이 백제인이라고 발언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필자는 2002년 7월10일 직접 일본 도쿄의 황거에 들어가 천황궁의 왕실 제사를 진행하는 제사 담당관 아베 스에마사씨로부터 지금의 아키히토 일본왕이 매년 11월23일 밤에 백제신(韓神)을 위한 제사 축문을 낭창(朗唱)하며 신상제(新嘗祭)를 지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같은 사실은 그해 EBS 광복절 특집 방송으로 방영됐다. 우에다 마사키 박사는 그 이듬해 1월에 필자에게 보낸 서신에서 “비타쓰왕의 후손인 대원진인(大原眞人)은 백제 왕족이며 의자왕의 핏줄을 이었다”고 인정했다.

현 일본 왕실의 아사카노미야 왕자는 2004년 8월 무령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몸소 충남 공주를 찾은 바 있다. 왕자는 직접 가져온 1300년 전 일본 왕실에서 만든 왕실 제사용 향로(香爐)와 귀중한 향(香)을 무령왕릉(武寧王陵) 안에서 피우며 제주(祭酒)와 제사용 과자 등 제물을 진설하고 무령왕의 영전에 머리 숙여 참배했다. 그러나 일본의 어떤 매체에서도 아사카노미야 왕자의 무령왕릉 참배를 보도하지 않았다.

백제 성왕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역사 교과서를 부분 개정해야 할까? 6세기 무렵 백제를 삼국 최고의 문명국으로 중흥시키고 일본에 불교문화를 전파한 성왕(523~554 재위). 그동안 역사학계는 <일본서기> 중 흠명천황 15년조 내용과 <삼국유사> 중 성왕 32년조에 기록된 ‘성왕은 죄지촌(지금의 충남 옥천 또는 보은)에서 신라의 복병에게 죽임을 당했다’라는 내용을 정설로 여겨왔다.

하지만 그동안의 정설을 뒤엎는 ‘백제 성왕은 일본 왕까지도 겸임했다’는 내용의 연구논문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양학부 일본문화담당 홍윤기 교수가 발표해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홍 교수가 이 같이 주장하는 고증적 근거는 <대초자>와 <성예초> 그리고 일본학자들이 발표한 연구논문 등이다.

일본사학자 후지와라노 키요스케의 저서 <대초자,1156~1158>는 고대 일본 왕실과 귀족들이 즐겨 부르던 일본 정형시가 ‘와카’ 모음집으로 일본 시가 연구의 중요한 고전으로 평가되는 자료다.

이 고문서의 내용 중 ‘코우닌천황(770~781 재위)의 어자(칸무천황)의 어조되시는 조부야 말로 히라노신(백제 성왕)의 증손자이노라’라는 대목이 홍 교수가 주장하는 ‘백제 성왕이 일본 왕을 겸했다’는 주장과 일치되는 부분이다.

법륭사 비밀고문서인 성예초는 백제 성왕이 일본왕을 겸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법륭사에 대한 모든 정보와 비사를 기록하고 있는 <성예초, 1394~1427>의 내용도 홍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고증자료로 신빙성을 더 하고 있다. 이 문서는 ‘백제 성왕의 전신은 지금의 성덕태자이시다. 따라서 이 구세관음상은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또 나라대학 나카가와 토모요시(中川友義) 교수의 논문 <일본에 도래한 신들>에서는 ‘제1신전은 성왕, 제2신전은 구도왕(온조), 제3신전은 고개신(비류왕과 근초고왕)이 모셔져 있는 곳’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밖에도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 고바야시 야스코(小林惠子)가 1991년 저술한 <두 개의 얼굴의 대왕>에서 ‘백제 성왕은 일본에 건너와 흠명천왕이 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고, 교토산업대 역사학과 이노우에 미쯔오(井上滿郞) 교수의 논문 <헤이안의 풍경, 1994>에서 ‘히라노신사에 모셔진 제신은 백제에서 건너 온 금래신(今來神)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모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대초자.

일본 교토에 소재한 히라노신사(平野神社)는 서기 794년 칸무천왕이 수도를 교토로 천도한 기념으로 세운 사당이며 금래신 또는 흠명천왕, 히라노신이란 명칭은 이미 일본사학자들에 의해 백제 성왕으로 판명된 부분이다.

이에 대해 일본 교토대 사학과 우에다마 사아끼(上田正昭) 명예교수는 “‘백제 성왕은 일본 왕을 겸했다’라는 내용이 담긴 홍 교수의 연구논문은 일본 고문서와 논문을 바탕으로 고증한 신빙성 있는 자료로 평가되며 이 대목에 있어서는 일본사학자들도 상당부분 인정하고 있다”며 “이 부분의 진위여부는 양국의 역사 교과서를 수정할 정도로 중요한 대목인 만큼 한ㆍ일 불교사학자들의 충분한 연구와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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