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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が朝鮮を強制占領した後, 百済と係った大部分の日本地名が他の名前に変わった. 先立ってよく見たところのように ‘百済’が地名で残っている所が2ケ所に過ぎないこともこのためだ. この二所の地名もいつまでつながるか分かるあてがない.

“韓国と血続きがいます”

日本の百済(百済) 仏教文化は 6世紀草葉(538), 日本私だと飛鳥(飛鳥) 地域に位置づいていた百済係王室で華やかになり始めた. ‘日本書紀’は “百済第26代盛旺(聖王・523‾554 在位)が日本に百済仏教を伝えた”と記録している. 盛旺は第27代威徳王(554‾598 在位)に王位を越してから後には初めから飛鳥に渡ってギンメイワング(欽明・539‾571 在位)で君臨した. 盛旺は知られたように 554年新羅君との戦闘で死亡したのではなく, 長男に王位を譲って日本王室に渡った. 盛旺はもう 539年センカワング(宣化王・536〜539 在位)が逝去した時から百済と日本を出入りして倭王を兼任したことと見える. 日本史学者小林Yasukoも “百済盛旺は天皇陛下を兼任した”と言う研究論を広げた.

盛旺の先大人武寧王とトンソン王(479‾501 在位)も皆百済王で上がる前にはどうして王室に住んだ. ‘三国史記’ のような私たち歴史書にはこのような記録がないが, ‘日本書紀’には ‘トンソン王と武寧王がそれぞれ日本で帰国して順次百済王で上がった’と言う内容がある. だからお爺さんとお父さんが百済係どうして王室で住んで帰国して百済王になったと言う事実だけでも盛旺がどんなに倭王を兼任することができたのか納得するに値する.

もう一つ明らかにしておこうとすると 794年, 日本王室では新しい王道になった京都に盛旺の日本王室祠堂であるHiranoジェントルマン(平野神社)を雄大壮厳に立てたし, 現在までよく保存している. 日本古代王室でHiranoジェントルマンに祭祀を差し上げて来た事実は 10世紀初制定された王室法道 ‘延喜式(延喜式)’にも積まれている. Hiranoジェントルマンは日本第50代桓武天皇(桓武・781‾806 在位)の勅命で平安京(今の京都の時) 新しい王宮の北に立てられた.

2001年, 明仁(明仁・1989‾ 在位) 現天皇は桓武天皇が百済人の子孫なのを認めた事がある.

“第50代ガンム天皇の生母は百済武寧王の王子スンタテザの直系子孫であるファシンリブ(和新笠) 皇太后です. この事実は日本王室歴史書 ‘ソックイルボンギ’に積まれています. だから私も韓国と血続きがいます.”

68回誕生日を迎え記者会見を開いた当時言った言葉だ. 天皇のこのような発言に皇居(王宮)を管掌する宮内庁高官たちが非常に荒てたという裏話だ. そのためか日本言論はこの日記者会見内容を報道しながら日王が言及した韓国との血縁関係書き入れ時はぐいっと漏らした. 唯一に ‘朝日新聞’が日王の発言を記事化した.

盛旺の息子と娘

<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パラリと化も’は数百年戦, 日本大阪地域が ‘グダラス(百済洲)’という地名と呼ばれたことを見せてくれる. </CAPTION>

‘シンチァンソングシロック’が百済王族だと銘記したビタスワング(572‾585 在位)は百済盛旺の第2王子だ. 盛旺の第1王子は百済第27代威徳王だ. ビタスワングはギンメイワング(百済盛旺)が逝去すると王位を受け継いだ. 彼と同時に最高代わりで 20歳の百済人貴族小家僕牛馬して(蘇我馬子)を登用した. 京都府立大学史学科がドワキところであって教授は小家僕牛馬して代わりが百済第21代開路王(455‾475 在位)の神さました ‘百済祖神首ほど(木満致)の 5代孫’と明らかにした.

ビタスワングは 576年 3月, 18歳のがシキは公州を王后に当たった. がシキは公州は外でない王の異腹同生, だから盛旺の第2公州だった. 近親結婚をしたわけだ. がシキは公州はビタスワングとの間に 2男5女を置いたし, 西紀 592年に日本最初の女王で上がった. 第33代天皇陛下であるスイコ女王(推古・592‾628 在位)で 36年間, お父さんが布教した百済仏教文化を眩しく花を咲かせた. この時期は日本歴史で ‘飛鳥文化時代’(592‾645)で高く評価を受ける.

14世紀初に被せられた日本仏教王朝社である ‘ブサングリャックギ(扶桑略記)’には次のような内容がある.

“推古天皇元年正月, 蘇我大臣馬子宿. 依合戦願, 於飛鳥地建法興寺,

立刹柱日 島大臣竝百余人 皆着百済服, 観者悉悦, 以仏舍利, 篭置刹柱礎中.”

588年, 百済王室から渡って来た建築家テリャングミテ(太良未太), 門際古字(文賈古子) などによって日本最初の七堂伽藍が飛鳥に着工された. 上の書き入れ時は, スイコ女王が上がった直後の 593年 1月に小家僕牛馬して代わりと満朝百官が ‘バックゼオッ’を入庫, 見物する人々が喜ぶ中に百済から送った仏様舍利箱をチァルズの基礎の中に安置したという内容だ. ‘満朝百官が ‘百制服’を着た’と言うのはスイコ女王の飛鳥王室が百済係王家なのを言ってくれる. しかし当時に関する ‘日本書紀’ 記録では ‘百制服を着た’と言う ‘ブサングリャックギ’の書き入れ時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ない.

ニントク王室に渡って来たバックゼシン(百済神)

それでは今, 時代をさかのぼって百済人王家が形成された酸っぱいことに推定される 4‾5世紀, ‘難波(大阪)’の ‘グダラス(百済洲)’ 時代をよく見よう. 百済が日本を最初に支配したことは誤診(応神)超時からというのが通説だ. この事実を考証する資料中の一つの誤診天皇電信肖像画を見れば, 塗布を着た天皇が頭にナムバイを使っている. ナムバイは皮をつけた長たらしい帽子で, 私たちのご先祖が冬季部屋ハン某で着して来た.

当代の誤診王と彼の第4王子ニントク(仁徳)王が百済人だったのを日本史学者たちの研究を通じて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 先に ‘日本書紀’は百済の学者王人が誤診王の招請を受けてどうして王室に渡って来たと記録している. 王人は誤診王の第4王子五事詐欺王子に文を教えた. 誤診王が逝去した後 3年目になった日には王人が五事詐欺王子をニントクワング地位に乗せた. このような事実は 805年に被せられた古代文献に記録されている. “王人がオデに和歌(和歌) ‘ナニワスノ−ウタ(難波津歌)’を作ってニントク天皇を王位に薦挙こんにちはだった.”(紀貫之 ‘古今集’) 大阪の高麗大学渡し場名前である ‘ナニワス’は王人が至恩和歌で由来した. この地名は現大阪中心の繁華街である ‘ナニと(難波)’にそのままつながっている.

また注目することは “ニントク天皇が母国百済からバックゼシン(百済神)の子株を王室に連れられた”(‘風土記’ 8‾10C 編纂)は点だ. “百済信義子株を連れられた”と言うのは氏神を崇敬する宗廟辞職信仰行為だと見ても無理がないだろうし, これはすなわちニントクワングが百済人なのを立証する. ニントクワングと彼の父王誤診王が百済人だと主張した史学者は一つや二つではない.

早稲田大史学科みずのユ教授はかつて “誤診天皇と彼の息子ニントク天皇は百済国(百済国) 王家から渡って来て日本征服王朝を成した”(1978)で断定した事がある. 東京大学史学科Inoueミスサだ教授もこれより先に進んで “百済使臣から打つかも(七支刀)を伝えて受けた倭王来るは天皇は百済(百済) 王族であり, 天皇氏(天皇氏) 自体が朝鮮から渡って来た日本移住者だった”(1960)で明らかにした.

日本古代史学者イシワタリShinichiへの著書 ‘百済から渡って来た誤診天皇’(2001) また日本史学係の耳目を集中させた. 著者はこの本で大阪府ホビーKinoshiにいる “オジンルング(応神陵)に売場された死体は 5世紀後半に渡って来た百済の紅王子(昆支王子)だ. 彼は 5世紀末に日本で百済係王朝(百済系王朝)を樹立した”と主張した. ‘三国史記’によれば紅王子は百済第21代開路王(455‾475 在位)の第2王子だ. このように韓日古代史をまじめに研究してその結果を良心的に明らかにした日本史学者たちは反韓国(反韓) 勢力から精神的迫害を受けているから切ない事だ.

バックゼシン祠堂に参拜する日本人

<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日本最初のバックゼシン祠堂で由緒のある大阪の ‘未シマ加茂ジェントルマン(三島鴨神社). </CAPTION>

バックゼシンを王室に連れられたニントクワングは王道に祠堂を作りもした. 去年 10月29日, 筆者は古代日本最初のバックゼシン祠堂で遺書が深い大阪の ‘未シマ加茂ジェントルマン(三島鴨神社)’を尋ねた. こちらの松井ゆり厚謝(松井位幾) 弓師は “こちらではニントク(仁徳) オデの時, 百済から日本王室に渡って来た百済代わり(百済大神) オヤマスミノ−カミ(大山積神) 子株の祭祀を仕えています”と言った. バックゼシンが日本王室に渡って来たことは今から 1600年前の 5世紀だ.

先祖代代にバックゼシン祭祀を連れられたという松井ゆり厚謝弓師はこの地元大阪淀川(淀川) 上流東で祠堂を守って来た百済人子孫李拘置アキオ(伊口明生) など十六家門代表たちと一緒に 5年の努力あげく 2006年死当たり歴史に関する本を発行した. この本 ‘三島鴨神社史’の書き始めに次のような内容が載せられている.

“ニントク天皇は仮ワッチ(河内・大阪昔の地名)に ‘巻くクンゼバング’を積む同時に淀川川辺基盤を守ってくださる神さま(神)として百済からオヤマスミノ−カミをこの地元押すよ(御島・三島の吏読式漢字語のような意味)で仕えました. 王道難波(難波)を守ってくださる守護神としてこのジェントルマンを続いて連れられました.”

松井ゆり厚謝弓師に筆者は “古代日本最初のバックゼシン祠堂に韓国でもたまに参拜客が来るのか”と問った. 松井ゆり厚謝弓師は “韓国ではよく分からないようだ”と返事した. 松井ゆり厚謝弓師に “日本人はこちらが日本王室に渡って来た百済代わりの祠堂というのが分かっているのか”とまた問った.

“みんなよく分かっています. 熱心に参拜する信者が多くて, 個中には (2007年) 10月忠南付与で開かれた ‘百済文化祭’に行って来た方々もいます. 毎年先祖の故国バックゼタング付与, 公州などを尋ねる方々がいます.”

松井ゆり厚謝弓師はこの祠堂を尋ねる参拜客に無料で配る案内書 ‘未シマ加茂ジェントルマンユソリャックギ’を筆者に渡してくれた. その始めて列に “立つ 400年代にニントク天皇が創建して百済から渡って来たバックゼシンオヤマスミノ−カミ子株祭祀の面倒を見る祠堂”と被せ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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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조선을 강제 점령한 후, 백제와 관계된 대부분의 일본 지명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백제’가 지명으로 남아 있는 곳이 두 군데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두 곳의 지명 또한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길이 없다.

“한국과 혈연이 있습니다”

일본의 구다라(백제) 불교문화는 6세기 초엽(538), 일본 나라 아스카(飛鳥)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백제계 왕실에서 꽃피기 시작했다. ‘일본서기’는 “백제 제26대 성왕(聖王·523~554 재위)이 일본에 백제 불교를 전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왕은 제27대 위덕왕(554~598 재위)에게 왕위를 넘기고 난 다음에는 아예 아스카로 건너가 긴메이왕(欽明·539~571 재위)으로 군림했다. 성왕은 알려진 것처럼 554년 신라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장남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일본 왕실로 건너갔다. 성왕은 이미 539년 센카왕(宣化王·536∼539 재위)이 서거했을 때부터 백제와 일본을 넘나들며 왜왕을 겸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사학자 고바야시 야스코도 “백제 성왕은 일본왕을 겸임했다”는 연구론을 펼쳤다.

성왕의 선대인 무령왕과 동성왕(479~501 재위)도 모두 백제왕으로 등극하기 전엔 왜 왕실에 살았다. ‘삼국사기’ 같은 우리 역사서엔 이 같은 기록이 없지만, ‘일본서기’에는 ‘동성왕과 무령왕이 각기 일본에서 귀국해 차례차례 백제왕으로 등극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백제계 왜 왕실에서 살다 귀국해 백제왕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왕이 어떻게 왜왕을 겸임할 수 있었는지 납득할 만하다.

한 가지 더 밝혀두자면 794년, 일본 왕실에서는 새 왕도가 된 교토에 성왕의 일본왕실사당인 히라노신사(平野神社)를 웅장하게 세웠으며, 현재까지 잘 보존하고 있다. 일본 고대 왕실에서 히라노신사에 제사를 드려온 사실은 10세기 초 제정된 왕실 법도 ‘연희식(延喜式)’에도 실려 있다. 히라노신사는 일본 제50대 간무왕(桓武·781~806 재위)의 칙명으로 헤이안경(지금의 교토시) 새 왕궁의 북쪽에 세워졌다.

2001년, 아키히토(明仁·1989~ 재위) 현 일왕은 간무왕이 백제인의 후손임을 인정한 바 있다.

“제50대 간무 천황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의 왕자 순타태자의 직계 후손인 화신립(和新笠) 황태후입니다. 이 사실은 일본 왕실 역사책 ‘속일본기’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한국과 혈연이 있습니다.”

68회 생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을 당시 한 말이다. 천황의 이 같은 발언에 황거(왕궁)를 관장하는 궁내청 고관들이 매우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그 때문인지 일본 언론은 이날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하면서 일왕이 언급한 한국과의 혈연관계 대목은 쏙 빼놓았다. 유일하게 ‘아사히신문’이 일왕의 발언을 기사화했다.

성왕의 아들과 딸

<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팔랑화도’는 수백년 전, 일본 오사카 지역이 ‘구다라스(百濟洲)’라는 지명으로 불렸음을 보여준다. </CAPTION>

‘신찬성씨록’이 백제왕족이라고 명기한 비타쓰왕(572~585 재위)은 백제 성왕의 제2왕자다. 성왕의 제1왕자는 백제 제27대 위덕왕이다. 비타쓰왕은 긴메이왕(백제 성왕)이 서거하자 왕위를 계승했다. 그와 동시에 최고대신으로 20세의 백제인 귀족 소가노우마코(蘇我馬子)를 등용했다. 교토부립대학 사학과 가도와키 데이지 교수는 소가노우마코 대신이 백제 제21대 개로왕(455~475 재위)의 신하였던 ‘백제조신 목만치(木滿致)의 5대손’이라고 밝혔다.

비타쓰왕은 576년 3월, 18세의 가시키야 공주를 왕후로 맞았다. 가시키야 공주는 다름 아닌 왕의 이복동생, 그러니까 성왕의 제2공주였다. 근친결혼을 한 셈이다. 가시키야 공주는 비타쓰왕과의 사이에 2남5녀를 뒀으며, 서기 592년에 일본 최초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제33대 일본왕인 스이코 여왕(推古·592~628 재위)으로 36년간, 아버지가 포교한 백제 불교문화를 눈부시게 꽃피웠다. 이 시기는 일본 역사에서 ‘아스카 문화 시대’(592~645)로 높이 평가받는다.

14세기 초에 씌어진 일본 불교 왕조사인 ‘부상략기(扶桑略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推古天皇元年正月, 蘇我大臣馬子宿. 依合戰願, 於飛鳥地建法興寺,

立刹柱日 島大臣竝百餘人 皆着百濟服, 觀者悉悅, 以佛舍利, 籠置刹柱礎中.”

588년, 백제 왕실에서 건너온 건축가 태량미태(太良未太), 문가고자(文賈古子) 등에 의해 일본 최초의 칠당 가람이 아스카에 착공됐다. 위 대목은, 스이코 여왕이 등극한 직후인 593년 1월에 소가노우마코 대신과 만조백관이 ‘백제옷’을 입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백제에서 보내온 부처님 사리함을 찰주의 기초 속에 안치했다는 내용이다. ‘만조백관이 ‘백제복’을 입었다’는 것은 스이코 여왕의 아스카 왕실이 백제계 왕가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당시에 관한 ‘일본서기’ 기록에서는 ‘백제복을 입었다’는 ‘부상략기’의 대목을 발견할 수 없다.

닌토쿠 왕실로 건너온 백제신(百濟神)

그러면 이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백제인 왕가가 형성된 시기로 추정되는 4~5세기, ‘난바(오사카)’의 ‘구다라스(百濟洲)’ 시대를 살펴보자. 백제가 일본을 최초로 지배한 것은 오진(應神)왕 때부터라는 게 통설이다. 이 사실을 고증하는 자료 중 하나인 오진천황 전신 초상화를 보면, 도포를 입은 천황이 머리에 남바위를 쓰고 있다. 남바위는 가죽을 댄 기다란 모자로, 우리 조상들이 겨울철 방한모로 착용해왔다.

당대의 오진왕과 그의 제4왕자 닌토쿠(仁德)왕이 백제인이었음을 일본 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일본서기’는 백제의 학자 왕인이 오진왕의 초청을 받고 왜 왕실로 건너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인은 오진왕의 제4왕자 오사사기 왕자에게 글을 가르쳤다. 오진왕이 서거한 뒤 3년째 되던 해에는 왕인이 오사사기 왕자를 닌토쿠왕 지위에 올려놓았다. 이 같은 사실은 805년에 씌어진 고대 문헌에 기록돼 있다. “왕인이 어대에 와카(和歌) ‘나니와쓰노우타(難波津歌)’를 지어 닌토쿠 천황을 왕위에 천거하였다.”(紀貫之 ‘古今集’) 오사카의 고대 나루터 이름인 ‘나니와쓰’는 왕인이 지은 와카에서 유래했다. 이 지명은 현 오사카 중심의 번화가인 ‘나니와(難波)’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또 주목할 것은 “닌토쿠 천황이 모국 백제로부터 백제신(百濟神)의 신주를 왕실로 모셔왔다”(‘風土記’ 8~10C 편찬)는 점이다. “백제신의 신주를 모셔왔다”는 것은 조상신을 숭경하는 종묘사직 신앙행위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며, 이는 곧 닌토쿠왕이 백제인임을 입증한다. 닌토쿠왕과 그의 부왕 오진왕이 백제인이라고 주장한 사학자는 한둘이 아니다.

와세다대 사학과 미즈노 유 교수는 일찍이 “오진 천황과 그의 아들 닌토쿠 천황은 구다라국(백제국) 왕가로부터 건너와 일본 정복왕조를 이루었다”(1978)고 단정한 바 있다. 도쿄대 사학과 이노우에 미쓰사다 교수도 이보다 앞서 “백제 사신으로부터 칠지도(七支刀)를 전해 받은 왜왕 오진 천황은 구다라(백제) 왕족이며, 천황씨(天皇氏) 자체가 조선으로부터 건너온 일본 이주자였다”(1960)고 밝혔다.

일본 고대사학자 이시와타리 신이치로의 저서 ‘구다라에서 건너온 오진 천황’(2001) 또한 일본 사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사카부 하비키노시에 있는 “오진릉(應神陵)에 매장된 시신은 5세기 후반에 건너온 구다라의 곤지왕자(昆支王子)이다. 그는 5세기말에 일본에서 구다라계 왕조(百濟系王朝)를 수립했다”고 주장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곤지왕자는 백제 제21대 개로왕(455~475 재위)의 제2왕자다. 이처럼 한일 고대사를 성실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를 양심적으로 밝힌 일본 사학자들은 반한(反韓) 세력으로부터 정신적 박해를 받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백제신 사당에 참배하는 일본인

<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일본 최초의 백제신 사당으로 유서 깊은 오사카의 ‘미시마카모신사(三島鴨神社). </CAPTION>

백제신을 왕실로 모셔온 닌토쿠왕은 왕도에 사당을 짓기도 했다. 지난해 10월29일, 필자는 고대 일본 최초의 백제신 사당으로 유서가 깊은 오사카의 ‘미시마카모신사(三島鴨神社)’를 찾아갔다. 이곳의 마쓰이 나리후사(松井位幾) 궁사는 “이곳에서는 닌토쿠(仁德) 어대 때, 백제에서 일본 왕실로 건너오신 백제대신(百濟大神) 오야마쓰미노카미(大山積神) 신주의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백제신이 일본 왕실로 건너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인 5세기다.

조상 대대로 백제신 제사를 모셔왔다는 마쓰이 나리후사 궁사는 이 고장 오사카 요도가와(淀川) 상류 동쪽에서 사당을 지켜온 백제인 후손 이구치 아키오(伊口明生) 등 열여섯 가문 대표들과 함께 5년의 노력 끝에 2006년 사당 역사에 관한 책을 펴냈다. 이 책 ‘三島鴨神社史’의 서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닌토쿠 천황은 가와치(河內·오사카 옛 지명)에 ‘만다 큰제방’을 쌓으시는 동시에 요도가와 강변 터전을 지켜주시는 신(神)으로서 백제로부터 오야마쓰미노카미를 이 고장 미시마(御島·三島의 이두식 한자어와 같은 의미)로 모셨습니다. 왕도 난바(難波)를 지켜주시는 수호신으로서 이 신사를 계속해서 모셔왔습니다.”

마쓰이 나리후사 궁사에게 필자는 “고대 일본 최초의 백제신 사당에 한국에서도 더러 참배객이 오느냐”고 물었다. 마쓰이 나리후사 궁사는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답했다. 마쓰이 나리후사 궁사에게 “일본인은 이곳이 일본 왕실로 건너온 백제대신의 사당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참배하는 신자가 많으며, 개중엔 (2007년) 10월 충남 부여에서 열린 ‘백제문화제’에 다녀온 분들도 있습니다. 해마다 조상의 고국 백제땅 부여, 공주 등을 찾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쓰이 나리후사 궁사는 이 사당을 찾는 참배객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안내서 ‘미시마카모신사 유서략기’를 필자에게 건네주었다. 그 첫 줄에 “서기 400년대에 닌토쿠 천황이 창건해 백제로부터 건너오신 백제신 오야마쓰미노카미 신주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라고 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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