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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の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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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方政権の殺戮と侵奪で見られる日本の歴史が誇らしいですか?

あなたたち頭の中には捏造史家たちの残在があまりにもひどいです.

19世紀初まで日本人が満洲の野蛮人より低いもてなしを受けた事実が分からないですか?(笑い)

19世紀以前まで日本が持っている科学器機と制度そして門跡文化は何ですか?

もとてもだ堂々に殺戮の日本近現代史を誇る日本人たち,

驚くべきです. ドイツとは違うように, 軍国主義的思考が残っている結果ですね.

そしてそれの仕事をした国民が奴隷のように住む理由でもあります.^0^;

にも時代までの日本人認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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ヒョンジョンお坊さんの ¥"イルボンピョヘロック¥" 初めて翻訳, 出刊
(ソウル=連合ニュース) 権栄転記者

全南和順にある双峰社のファワンスング(画員僧)だったプングギェ(楓渓) ヒョンジョン(賢正)お坊さんが書いたこの本は題目で分かるように日本に漂流して 7ヵ月あまりを過ごした記録を盛ったのだ.

ヒョンジョンお坊さんは 1817年末に海南大屯社の要請で競走に千ドル(千仏)を造成しようと仏像 768位を積んで行った途中に風浪に会って日本で漂流するようになった.

彼はこの本で当時日本人たちの風習と朝鮮人たちに対する考えと態度などを詳らかに記録したが今見てもおもしろい部分が少なくない.

たとえば当時日本では女性たちが朝鮮人の子供を生めば国でお金をくれるという内容や, 日本人たちが朝鮮を ¥"仏様の国¥"で思って中国人たちよりもっと手厚くもてなしたという内容が載せられている.

倭女が我が国の人と情を通じて子供を生めばその国で極めて貴重に思うから倭女たちが必ず私的に情を通じようとする. その人々はこのためにもしも我が国の人々と情を通じればその女が自ら官府に行って言う. 官府は国王に報告して出産するダルスを計算して子供を生めば管でお金をくれる.(54ページ)

また話し合う時 ¥"日本¥"と言えば好きで ¥"倭(倭)¥"と言えば嫌やがったという話もおもしろい.

ヒョンジョンお坊さんは対馬島を通して帰国したが, この書き入れ時で大麻道人たちが私たちも朝鮮人だと言ったという証言が出る.

彼が対馬島に到着すると大麻道人たちが歓迎して私たちも朝鮮人だと言ったし彼が見るのに実際に彼らは大部分朝鮮語が上手かったし一度も日本を ¥"本国¥"と言ったことがなかったと言ったというのだ.

1818年 1月朝鮮人漂流民に会った記憶を手探りして描いたという日本画家ウキだイッケイ(浮田一〓)の絵 ¥"朝鮮表客も¥"が日本に伝わっていてヒョンジョンお坊さんのこの文の信頼性を加えると研究所は明らかにした

原文を見る

일본의 역사

지방 정권의 살육과 침탈로 볼 수 있는 일본의 역사가 자랑스럽습니까?

당신들 머릿속에는 날조 역사가들의 잔재가 너무나 심합니다.

19세기 초까지 일본인이 만주의 야만인보다 낮은 대접을 받은 사실을 모릅니까?(웃음)

19세기 이전까지 일본이 가지고 있는 과학기기와 제도 그리고 문적 문화는 무엇입니까?

또한 너무다 당당하게 살육의 일본 근현대사를 자랑하는 일본인들,

놀랍습니다. 독일과는 다르게, 군국주의적 사고가 남아있는 결과이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일본 국민들이 노예처럼 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0^;

에도 시대 까지의 일본인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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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스님의 "일본표해록" 처음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전남 화순에 있는 쌍봉사의 화원승(畵員僧)이었던 풍계(楓溪) 현정(賢正)스님이 쓴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에 표류해 7개월여를 지냈던 기록을 담은 것이다.

현정 스님은 1817년 말에 해남 대둔사의 요청으로 경주에 천불(千佛)을 조성하려고 불상 768위를 싣고 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 일본으로 표류하게 됐다.

그는 이 책에서 당시 일본인들의 풍습과 조선인들에 대한 생각과 태도 등을 자세히 기록했는데 지금 봐도 흥미로운 부분이 적지 않다.

가령 당시 일본에서는 여성들이 조선인의 아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돈을 준다는 내용이나, 일본인들이 조선을 "부처님의 나라"로 여기고 중국인들보다 더 극진하게 대접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왜녀가 우리나라 사람과 정을 통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나라에서 지극히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왜녀들이 반드시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자 한다. 그 사람들은 이 때문에 혹시라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정을 통하면 그 여자가 스스로 관부에 가서 말한다. 관부는 국왕에게 보고하고 출산할 달수를 계산하여 아이를 낳으면 관에서 돈을 준다."(54쪽)

또 대화할 때 "일본"이라고 말하면 좋아하고 "왜(倭)"라고 말하면 싫어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현정스님은 대마도를 거쳐 귀국했는데, 이 대목에서 대마도인들이 "우리도 조선인"이라고 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그가 대마도에 도착하자 대마도인들이 환영하며 "우리도 조선인"이라고 말했으며 그가 보기에 실제로 그들은 대부분 조선어가 능했으며 한번도 일본을 "본국"이라 말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1818년 1월 조선인 표류민을 만났던 기억을 더듬어 그렸다는 일본 화가 우키다 잇케이(浮田一蕙)의 그림 "조선표객도"가 일본에 전해지고 있어 현정스님의 이 글의 신뢰성을 더한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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