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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はフランスにいちごロイヤルティ支給したんです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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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生いちご… ヨーロッパ渡って来て果物で

このごろいちごが盛んでいる. 私たちに慣れた果物であるだけにいちごを地元果物でここは人も多い. しかし私たちがいちごを食べた歴史は短い. 我が国には 20世紀初盤に伝わったから熱帯果物であるバナナを除けば一番遅れるように入って来た果物だ.

いちごは西洋で栽培を始めた果物だがヨーロッパでもいちごを食べ始めたことはわずか 200年余りだ. フランス革命直後品種改良を通じて今のいちごが普及されたからだ.

もちろん昔にもいちごはあった. ただ我が国の山いちご, むしろいちごみたいな地域固有の野生種が世界あちこちで育っていただけだから今食べるいちごとは非常に違う. 今のいちごは自然的に伸びた地元いちごではなく人工交配を通じて作り出した園芸用いちごだ. 南米チリの野生いちごと北米バージニアの地元いちごを交配して品種改良で得た種子だ.

ところで今のいちごの作われた背景がおもしろい. ヨーロッパ列強が勢力争いをするところ生じた副産物でフランスのスパイが本然のスパイ任務ではない ‘別のこと’をしたから得られた結果物だ.

1711年フランス国王であるルイ 14世が陸軍情報局所属のエンジニア兼数学者だったプレ誌語中佐を当時スペイン植民地だったチリとペルーに派遣する. 現地駐屯軍の守備態勢点検を含んだ軍事情報を収集するためだ.

ルイ 14世が南米にあるスペイン植民地までスパイを派遣したことはスペイン国王だったペリペ 5世が彼の内孫だったからだ. 孫の王権を保護することで孫を通じてスペインに対するフランスの影響力を維持しようと莫大な資金を入れてスペインと係わる軍事情報を収集したのだ. まさかの時無力介入をするためだ.

スパイでチリに派遣されたプレ誌語中佐は海岸この頃を中心に兵力数, 大砲, 丙站などのような軍事情報と総督動向, 原住民動態などすべての情報を収集する. それとともに正体を隠そうとする目的だったか片手間に海岸に自生しているチリ野生いちごを観察してスケッチするなどいちご研究に抜ける. そして 1714年帰国する時チリ野生いちご種子何株を収集して帰って来た.

本然の任務であるスパイ活動結果に対する報告を終わらせたプレ誌語中佐は以後から無茶にチリで観察して収集した現地野生いちごに関する本を出版するなどチリいちご普及に出る. ところでチリ現地では赤くて卵大きさの欲をそそる程見事な実を結んだチリいちごがヨーロッパでは結実を見られないのだった.

以後ヨーロッパの肉腫学者の間ではチリいちごと違う野生いちごを種付けして実を結ぶようにしようとする多様な試みが成り立つのにイギリスの植物学者フィリップミラーが遂に北米バージニア地元いちごと種付けして新しい品種のいちごを得ることに成功する. これがちょうど今私たちが食べるいちごの援助だ.

この時が 1764年だ. 新品種の中でも優秀な苗を選別していちごの大量栽培が成り立ち始めたことは 1806年前後だ. だから私たちの食べるいちごが普及され始めたことは 19世紀初にわずか 200年しかならなかった.

以前まではヨーロッパでいちごは食用ではない観賞用で栽培をしたなんてもしフランススパイが別のことをしなかったら今私たちはいちごを食べる代わりに植木鉢に盛って花草で鑑賞しているかも知れない.

泥棒が作物のロイヤルティを要求したの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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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프랑스에 딸기 로열티 지급 했습니까

야생딸기… 유럽 건너와 과일로

요즘 딸기가 한창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인 만큼 딸기를 토종과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딸기를 먹은 역사는 짧다. 우리나라에는 20세기 초반에 전해졌으니 열대과일인 바나나를 제외하면 가장 늦게 들어온 과일이다.

딸기는 서양에서 재배를 시작한 과일이지만 유럽에서도 딸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년 남짓이다. 프랑스혁명 직후 품종개량을 통해 지금의 딸기가 보급됐기 때문이다.

물론 옛날에도 딸기는 있었다. 다만 우리나라의 산딸기, 멍석딸기 같은 지역 고유의 야생종이 세계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을 뿐이니 지금 먹는 딸기와는 많이 다르다. 지금의 딸기는 자연적으로 자란 토종딸기가 아니라 인공 교배를 통해 만들어낸 원예용 딸기다. 남미 칠레의 야생딸기와 북미 버지니아의 토종딸기를 교배해 품종개량으로 얻은 종자다.

그런데 지금의 딸기가 만들어진 배경이 흥미롭다. 유럽 열강이 세력다툼을 하는 와중 생긴 부산물로 프랑스의 스파이가 본연의 간첩임무가 아닌 ‘딴짓’을 했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물이다.

1711년 프랑스 국왕인 루이 14세가 육군 정보국 소속의 엔지니어 겸 수학자였던 프레지어 중령을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칠레와 페루에 파견한다. 현지 주둔군의 수비태세 점검을 포함한 군사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루이 14세가 남미에 있는 스페인 식민지까지 스파이를 파견한 것은 스페인 국왕이었던 펠리페 5세가 그의 친손자였기 때문이다. 손자의 왕권을 보호함으로써 손자를 통해 스페인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스페인과 관련된 군사정보를 수집했던 것이다. 여차하면 무력개입을 하기 위해서다.

간첩으로 칠레에 파견된 프레지어 중령은 해안가 요새를 중심으로 병력 수, 대포, 병참 등과 같은 군사정보와 총독 동향, 원주민 동태 등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그러면서 정체를 감추려는 목적이었는지 틈틈이 해안가에 자생하고 있는 칠레 야생딸기를 관찰하고 스케치하는 등 딸기 연구에 빠진다. 그리고 1714년 귀국할 때 칠레 야생딸기 종자 몇 포기를 수집해 돌아왔다.

본연의 임무인 스파이 활동 결과에 대한 보고를 끝낸 프레지어 중령은 이후부터 엉뚱하게 칠레에서 관찰하고 수집한 현지 야생딸기에 관한 책을 출판하는 등 칠레 딸기 보급에 나선다. 그런데 칠레 현지에서는 빨갛고 계란 크기의 탐스러운 열매를 맺던 칠레 딸기가 유럽에서는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후 유럽의 육종학자들 사이에서는 칠레 딸기와 다른 야생딸기를 교배시켜 열매를 맺도록 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는데 영국의 식물학자 필립 밀러가 마침내 북미 버지니아 토종딸기와 교배시켜 새로운 품종의 딸기를 얻는 데 성공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먹는 딸기의 원조다.

이때가 1764년이다. 신품종 중에서도 우수한 모종을 선별해 딸기의 대량 재배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1806년 전후다. 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딸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로 불과 200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유럽에서 딸기는 식용이 아닌 관상용으로 재배를 했다니 만약 프랑스 스파이가 딴짓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딸기를 먹는 대신 화분에 담아 화초로 감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둑이 작물의 로열티를 요구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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