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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太祖と青太組は新羅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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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太祖アゴ−ルタ
 新羅の後裔だった!
金太祖 アゴ−ルタ
中原で最初で漢族を押し出した金太祖アゴ−ルタ, 彼の詩調は驚くべきことに新羅である函蘖だった. これは伝説や外史に出るのではなく金国の情事である <金紗>わ金建国時宋の国で被せられた <ソングマックギムン>に明確に出ている.
“金是鳥の 名前は 函蘖なのに 初めに 高麗から 来た 身分だ”
                        (金紗本紀第 1冊, 世紀)

“搖り返しの 酋長は 新羅人で ワンアンシは 中国語 王の ようだ”(ソングマックギムン)
金紗 ソングマックギムン
高麗から来た身分や新羅人である金是鳥. アゴ−ルタの生まれ年度を考慮して計算して見れば金詩調 函蘖が搖り返しに入って来た時期は新羅言葉, 高麗超だ. 当時新羅と高麗の王権交代期だった韓半島の事情を思えば二人の死では同じものを言っている. アゴ−ルタの先祖函蘖, 彼は果して誰だろう?

 

函蘖, 彼はだれか? 金皇室 系譜も
<同明解写録>に 函蘖の 9代孫アゴ−ルタに 対する 話が 伝える.
金部(敬順王敬順王)がたとえ降伏して高麗王が合併したが金部の外孫ワンアンアゴ−ルタはすなわち権行の後裔として充分に中国を割って治めて百年の間代を引き継いだから... (同明解写録 1636年) 朝鮮の 儒者 金細簾は 搖り返し族の アゴ−ルタを 敬順王の 外孫で 朝鮮最高家門 権行の 後裔と 言って ある.ところが 権行の 本来 聖恩 金(のり)さんだった.金Haingの 息子で 敬順王の 外孫である 錦衣 詩調. 当時 族内婚を した 新羅 王室の 慣習を 考慮すれば,彼の 性が 金(ドッマル:金)で 新羅の 後裔である ことは 確かで 見える.<同明解写録>義 金 詩調と <金紗>義 函蘖は 果たして 同一人か? 

 

新羅後裔である王族と
 渤海子孫の王妃族が立てた国, 金
函蘖を詩調に置いた金皇室は渤海人を王妃に当たる. 金国の成群世宗のお母さん, 4台皇帝ヘルングワングのお母さんは皆渤海女人だった. またアゴ−ルタは渤海人を信頼して渤海流民張号を新しい首都北京建設責任者に登用する. 渤海は 大帝国を 経営して見た 経験が あった.グムナという こういう 渤海の 経験を 利用して 国家体制を 確張して 出た ことだ.

 

清皇室の氏姓島
 金さんだった
青太組 ヌルハチ 金滅亡後 1606年, 搖り返しはまた中原を掌握した. すぐ中国の最後の王朝清だ. ところが 清皇帝聖恩児であるズォロであった. 児である(愛新)と言う(のは)金(金), ズォロ(覚羅)と言う(のは)同胞(族)不足さんなどを意味する. 結局金 不足, 金さんたちでありなさいという意味だ.

新羅王族である競走金さん, 彼の後裔である金皇室, 請い皇室まで彼らは皆金を意味するついで(金)さんたちだった ことだ.

 

満洲歴史は中国の歴史ではない 古朝鮮, 付与, 高句麗, 渤海, 金国, 清で つながる 満洲の 歴史は 私たちの 民族と 深い 連関性を 持って ある.漢族の領土,中原を満洲大陸に合併して今日の中国を完成した搖り返し族, 彼ら先祖が新羅人という事実に 注目することはナショナリズム的優越感を主張しようというのではない. 中国の反歴史的な東北公正論理に正面から対応して国史を守り出して今後 東アジアと韓半島地域に 平和の論理的根拠を再確認しようという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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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조와 청태조는 신라인

금태조 아골타
 신라의 후예였다!
금태조 아골타
중원에서 최초로 한족을 밀어낸 금태조 아골타, 그의 시조는 놀랍게도 신라인 함보였다. 이것은 전설이나 야사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와 금 건국 시 송나라에서 씌어진 <송막기문>에 명확히 나오고 있다.
“금시조의 이름은 함보인데 처음에 고려에서 온 신분이다”
                       (금사본기 제 1권, 세기)

“여진의 추장은 신라인이고 완안씨는 중국말 왕과 같다”(송막기문)
금사 송막기문
고려에서 온 신분이며 신라인인 금시조. 아골타의 출생년도를 고려해 계산해보면 금 시조 함보가 여진에 들어온 시기는 신라 말, 고려 초다. 당시 신라와 고려의 왕권교체기였던 한반도의 사정을 생각하면 두 사서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아골타의 조상 함보, 그는 과연 누구일까?

 

함보, 그는 누구인가? 금황실 계보도
<동명해사록>에 함보의 9대손 아골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김부(경순왕敬順王)가 비록 항복하여 고려왕이 합병하였으나 김부의 외손 완안아골타는 곧 권행의 후예로서 능히 중국을 갈라 다스려 백년동안 대를 이었으니... (동명해사록 1636년) 조선의 유학자 김세렴은 여진족의 아골타를 경순왕의 외손이며 조선최고가문 권행의 후예라고 하고 있다.그런데 권행의 본래 성은 金(김)씨였다.김행의 아들이며 경순왕의 외손인 금의 시조. 당시 족내혼을 했던 신라 왕실의 관습을 고려하면,그의 성이 金(덧말:김)이며 신라의 후예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동명해사록>의 금 시조와 <금사>의 함보는 과연 동일인인가? 

 

신라 후예인 왕족과
 발해 후손의 왕비족이 세운 나라, 금
함보를 시조로 둔 금 황실은 발해인을 왕비로 맞는다. 금나라의 성군 세종의 어머니, 4대 황제 해릉왕의 어머니는 모두 발해 여인이었다. 또한 아골타는 발해인을 신뢰하여 발해유민 장호를 새로운 수도 북경 건설 책임자로 등용한다. 발해는 대제국을 경영해본 경험이 있었다.금나라는 이런 발해의 경험을 이용하여 국가체제를 확장해 나갔던 것이다.

 

청 황실의 성씨도
 김씨였다
청태조 누루하치 금 멸망 후 1606년, 여진은 다시 중원을 장악했다. 바로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이다. 그런데 청나라 황제 성은 아이신 줘러 였다. 아이신(愛新)이란 금(金), 줘러(覺羅)란 겨레(族)부족 씨 등을 뜻한다. 결국 금 부족, 김씨들 이라는 뜻이다.

신라 왕족인 경주 김씨, 그의 후예인 금 황실, 청 황실까지 그들은 모두 금을 뜻하는 김(金)씨들이었던 것이다.

 

만주역사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금나라, 청나라로 이어지는 만주의 역사는 우리 민족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한족의 영토,중원을 만주대륙에 합병하여 오늘의 중국을 완성한 여진족, 그들 선조가 신라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은 국수주의적 우월감을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반역사적인 동북공정 논리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우리 역사를 지켜내어 향후 동아시아와 한반도 지역에 평화의 논리적 근거를 재확인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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