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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の米(美) テギョ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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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文献に現われたテッキョンの異称にはテックグォン, テッキョン, 卓見(卓見), すいか(手搏, 手拍), 脚戯(脚戯), 拳法(拳法), 時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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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美) 태견

어원

문헌에 나타난 택견의 이칭에는 택권, 태껸, 탁견(卓見), 수박(手搏, 手拍), 각희(脚戱), 권법(拳法), 시박(厮撲), 변(卞)이 있다

고대

고구려 무용총(舞踊塚) 벽화, 삼실총(三室塚) 벽화에는 택견의 견주기 동작 그림

(후한서)에 “순제 영화 원년(永和元年, AD 136) 부여왕이 내조(來朝)했을 때, 각저희(脚抵戱)를 하게 했다.”기록
(일본서기)에는 “백제 사신과 일본 무사들이 상박(相撲)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고려사)에는 수박 또는 수박희가 자주 보인다.

“이의민(李義旼)은 수박을 잘하여 의종이 그를 대정(隊正)에서 별장(別將)으로 승진시켰다.”,
“의종이 무신에게 명하여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戱)를 하게 했다.”,
“장사들에게 수박희를 시켜서 이긴 자에게는 상으로 벼슬을 올려주었다.”,
“왕이 상춘정(賞春亭)에 나가 수박희를 구경했다.”,
“왕이 화비궁(和妃宮)에서 수박희를 구경했다.”라는 등의 기록들은
당시 고려사회에서 맨손무예가 왕이나 귀족들이 즐겨하였고 민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전파되고 있었음을 확인해 준다

조선
택견이라는 고유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문헌에서부터이다. 재물보(才物譜), 해동죽지(海東竹技), 청구영언(靑丘永言)의 기록
정조(正祖) 때 간행된 (재물보 才物譜)에는 각종 문헌에 나타나는 “변(卞)”·수박(手搏).·각력(角力)·무(武) 등의 한자 용어가 곧
“택견”이라고 밝히는 한글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수박(手搏)’ 또는 ‘수박희(手搏戱)의 기록

근대

(오가집 五歌全集) (1935, 李善有), 택견(조선무사영웅전) (1919, 안자산),
덕견 (조선상고사) (1946, 申采浩), 탁견희 (해동죽지) 등의 표기가 있다.

18세기의 유숙(劉淑)의 (대쾌도 大快圖)와 김준근(金俊根)의 (풍속도 風俗圖)에는 같은 화면에 씨름과
택견이 함께 그려져 있어서 당시 택견이 대중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1921년 최영년 (해동죽기 海東竹枝)의 탁견희(托肩戱)와 (코리언 게임스 Korean Games, 1895 Stewart Culin)의
(택견하기(HTAIK-KYEN-HA-KI))의 기록은 택견경기 방법을 간략하지만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택견은 경기이면서 놀이 성격도 가지고 있는 태견

때로는 몸을 보호하는 호신술(護身術)이 되고 태견

공격을 하면 무예(武藝)가 될 수도 있는 태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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