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몇십 년 만의 혹한이라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건 마음의 추위였다.
쉰이 되기까지 비교적 평온했던 삶이 잠깐 사이 무섭게 흔들렸다. 남편이 일하던 조그만 회사가 갑자기 기우뚱 하는 바람에
가계도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나는 성숙하고 차분하게 난관을 헤쳐나갈 방도를 찾기는커녕 낯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힘에 부쳤다.그저 놀라고 화나고 서러웠다.쉰이라는 나이도, 장성한 세아이의 어머니라는 자리도,위축된 남편을 떠받쳐 주어야
할 아내의 과제도 잊어버린 채 허우적대기만 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건 유일한 재산인 집이 날아간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실패자,요즘 말로 루저로 보고 값싼 동정을 베풀 거라는 두려움이었다.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실패자 대접받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꼭꼭 숨었다.일과 연결된 사람들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만났지만 개인적으로는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갈수록 점점 더 피했다.어쩌다 마주치면 상처만 입고 돌아섰다.그들은 내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지만 난 그들이 건네는 말속에 숨겨진 비수를 찾아내 스스로를 찔러댔다.
"돈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까."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돈 따위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위로가 공허하게 들렸지만 그나마 무해무익한 편에 속했다.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건강이 제일이에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거에요."에 이르면 매우 치명적이었다.사람이 절망에 빠졌을 땐 대게 몸도 안 좋기 마련. 당시 내 몸 역시 최악의 상황이었으니 그야말로 돈도 건강도 잃은 완벽한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힌 듯한 기분이었다.
어떤 위로는 심술궂게 들리기까지 했다."세상은 참 공평한 것 같아요.당신네 일이 잘 풀리면 다른 사람들은 무슨 낙으로 살겠어요."
내가 돈 말고도 가진게 많으니 맘 편히 먹으라고는 위로인 줄 이해하지만 한편으론 여태까지 너 때문에 배가 아팠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위로해도 해석은 듣는 사람 마음에 달렸다.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내 속은 꼬일대로 꼬였기 때문에 어떤 위로도 고깝게 들렸다.그래서 위로의 어려움을 잘 아는 이들은 아주 가까운 사이인데도 모른 척하기를 택한다.
하루를 멀다고 전화를 걸던 친구가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을 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런 선택은 약간 먼 사이에서는 위로의 한 방법일 수 있지만 가까운 사이에선 오히려 반대다.사정이 어려워지니까
멀리하나 싶어 원망이 앞선다.나역시 가장 가깝다고 믿은 친구가 모른척하자 너무 야속해서 펑펑 운 적이 있다.
아무튼 모든 위로를 거부한 채 고치처럼 웅크리고 지내던 날이었다.전화벨이 울렸다.받을까 말까 한참 망설인 끝에 수화기를
들었더니 귀에 익숙치 않은 목소리였다.
"밥 먹자."
서로 호감을 갖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그렇다고 자주 만나지도 않는 선배였다.
내 상황을 누구에게 들었을까? 경계심을 드러내는 내게 선배는 친동생 대하듯 허물없이 굴었다.
"야, 고민해도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냐. 맛있는 거 사 줄께 당장 나와."
무언가에 홀린 듯 입던 옷 그대로 뛰쳐 나간 나를 태우고 그는 맛있다고 소문난 만두집으로 차를 몰았다.
만두국을 앞에 놓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힘들지? 다 지나갈 거야."
눈물 콧물로 간을 맞춘 뜨거운 만두국을 퍼먹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마음 속 얼음 기둥은 봄 눈처럼 녹아내렸다.
나는 그날 타인을 위로하는 가장 좋은 말을 알았다.백 마디 위로도 다 헛 것이다.마음의 굶주림을 치유하는 말은 한마디로
족하다.순식간에 온몸을 따뜻하게 채워 주는 말. "밥 먹자."
또 한 해가 기울어 가는 가을,마음이 추운 이웃에게 이 말을 자주 들려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