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약속으로, 몇년만에 대학로에 갔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옛 추억의 장소, 좋아하던 장소를 찾아다녔어요. 큰 도로의 맞은편은 마로니에 공원과 연극 공연 무대, 재즈 클럽이나 세련된 가게들이 많은 장소이지만, 그쪽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 식당의 경우 맛은 인테리어의 화려함과 가격에 정확히 반비례하는 법칙.
자주 다니던 장소는 주로 이 쪽에 몰려 있어요.
화려하고 세련된 상점이 있는 대로의 사이 사이,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길은 아직도 옛날 그대로. 단골의 가게들도 여전히 남았지만, 역시 사라진 가게들도 많네요. 일하다가 틈틈이 스트레스를 풀러 철권이나 biohazard, 복싱, DDR 게임을 하러 가던 대형 오락실(게임 아케이드)도, 좋아하던 베트남 식당도 사라진.
오랜만에 그 식당에서 베트남 음식을 먹으려고 했는데...
결국 또 다른 예전의 단골 가게로 갔습니다.
감자탕, 순대 국밥, 해장국을 파는 곳으로 정확히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최소한 20년 이상인 것은 확실합니다. 3차, 4차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이곳에서 반드시 해장을 해야만 하는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질질 끌려 오던 곳. 저는 원래 술에 약합니다만, 여자라거나 술에 약하다거나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 무리들과 한동안 생활해야 했습니다. "너에게는 두가지 option이 있어. 마시다가 장렬히 멋지게 죽을래, 아니면 그냥 죽을래? "
친숙한 가게를 발견하니 왠지 마음이 놓인다고 할까. 예전과 달라진 것은 크게 없는 것 같네요. 어째서인가 쓸데없이 영어와 일본어 메뉴 설명이 붙어있는 정도만 다를까.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구조로, 창 밖에서 보이는 그대로의 크기.
두사람이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크기의 밥상 8개도 그대로. 두사람이 들어서면 이미 포화 상태의 주방이 바로 들여다보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대중 목욕탕에서나 보이던 의자가 있는 것인가...
내부는 변한 것이 전혀 없지만 한가지 다른 점이라면 6,7년 전에 보이던 할머니 한분이 보이지 않는 것. 그대신 동남아 출신인 듯한 아주머니가 대신 일하고 있는 것.
당시에는 60대의 할머니와 거의 80대의 할머니 두분이 일하고 계셨어요. 허리가 새우 등처럼 굽은 백발의 할머니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반찬 그릇을 들고 위태롭게 휘청거리면서 다가오면, 보는 손님들도 모두 불안하다고 할까, 가만히 앉아서 밥상을 받기가 너무나 민망해서 주춤 주춤 일어서던 기억들. 그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연세를 생각하면 역시나 일까?
메뉴판.
1인용 감자탕, 해장국, 순대국, 술 국. 그외 도토리 묵, 두부, 순대, 감자탕 냄비. 눌린 돼지의 머리 고기. 공기밥. 끝.
어쨌든 순대 국밥을 주문. 깍두기와 겉절이, 생 고추, 된장, 물.
주문한지 5분만에 나왔습니다. 순대 국밥.
순대가 가득, 그리고 돼지의 폐, 간, 귀 부위가 들어있어요.
아... 예전과 똑같은 맛. 정말 맛있다. 이곳의 순대 국밥에는 뭔가 특별한 중독성이 있어요.
옛날, 언제나처럼 순대 국밥을 먹고 있는데, 맛집의 취재를 하러다니는 기자가 할머니에게 기사를 싣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면 "아이고, 가게도 코 딱지처럼 작은데 기사까지 나가서 손님이 많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려고! 귀찮아~!!!" 그런 대화가 들려오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w
1명이 오든, 2명이 오든, 언제나 3개가 나오는 고추도 그대로.
이곳의 고추가 얼마나 매웠는지 그만 기억하지 못하고 한입 먹었다가, 순대국밥을 먹으면서 거의 5분 이상 눈물만 주룩 주룩 흘렸습니다. 나중에 들어온 다른 손님들이 보고 놀랐을 것 같네요. "도대체 순대 국밥이 얼마나 맛있으면, 저 여자는 혼자 밥을 먹으면서 저렇게 눈물을 흘리는거야?"
고작 한입만 먹었을 뿐인데, 어째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인지... TT
밥을 다 먹고 계산하면서, 결국 궁금증을 누르지 못하고 예전에 계시던 할머니에게 여쭤봤습니다. "옛날에 계시던 할머니는 어떻게...?" "사실은 내 큰 언니인데, 얼마 전에 죽었어. 거동도 못하고 허약해져서, 게다가 며느리 구박까지 심해져서 죽었지 뭐야? 내가 언니만 생각하면 억울해서 잠이 안와"
TT
죽은 언니를 아직까지 기억해준 것이 기쁘셨는지, 식당을 나오는데 갑자기 밤 3개를 손에 쥐어 주시더군요. ^ ^;
순대 국밥을 먹은 뒤에는 역시 단골이었던 "학림(Hakrim)"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1956년부터 그 자리에서 영업을 계속해온 클래식 음악 전문의 다방입니다만, 이제는 다방이라는 표현이 더이상 사용되지 않는 것 같네요.
낡은 나무 계단도 그대로.
내부도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네요.
에... 어째서인가 여기도 일본어 메뉴 설명이 붙어있다!
게다가 가게에서 만든 크림 치즈 케이크는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인데...
커피의 메뉴는 바뀐 것이 없지만 와인 메뉴가 늘어난 것이 다를까...
내부는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네요. 의자도, 목재도,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것도 여전히.
주문한 커피.


변화가 꽤 격렬한 대학로지만, 옛 가게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고 할까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입니다. 10년, 20년 후에도 이 모습 그대로 이곳에 있어주었으면.
그런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