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8일 오후 5시 45분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 옥상.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약 1.4km 떨어진 한국형 발사체(로켓) 75톤 엔진 지상 연소시험 설비를 응시했다. 잠시 후 한국형발사체의 핵심 추진로켓인 75톤 엔진 지상 연소시험 설비는 흰 연기와 함께 불꽃을 뿜기 시작했다. 75톤 엔진 연소 장면이 외부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나로호 발사 때보다 엔진 연소 소리가 더 큰것 같습니다. 추력 75톤급 엔진 한 기가(1개) 내는 소음이 추력 170톤인 나로호의 엔진 소리 보다 큽니다.” 연소 시험을 바라보던 김진한 항우연 한국형 발사체(로켓) 개발사업본부 발사체(로켓)엔진 개발단장이 말했다. 소리 크기가 다르다는 건 독자 기술이라는 의미다. 나로호 엔진은 러시아산이었다.
한국형발사체 75톤 엔진 75초 연소시험. 점화와 동시에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발생한다./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김 단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굉음과 수증기가 폭발적으로 분출하기 시작하더니 발사 통제동 옥상 난간의 철제 구조물에 진동이 느껴졌다. 1.4km나 떨어진 발사 통제동까지 진동이 전해질 정도의 폭발력이었다.
이날 진행된 시험은 75톤 엔진을 75초 동안 연소하는 것이었다. 시험은 성공적이었다. 지난달 18일 항우연은 75톤 엔진을 30초 동안 연소하는 데 성공했다. 불과 3주 만에 연소 시간을 두배 이상 늘리는 연소시험을 진행한 것이다. 시험에 돌입한 75톤 엔진은 정확히 75초 동안 화염을 내뿜는 데 성공했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에 이정표가 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일주일에 한번씩 위험 무릅쓰는 연구원들…’점화 시퀀스’ 1초만에 이뤄져
“이 라인을 넘어서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연소 시험이 진행되기에 앞서 연소 설비를 둘러보는 자리에서 김진한 단장이 말했다. 엔진 점화를 준비하는 ‘가스발생기’를 작동하기 위한 고체로 된 화약이 가스발생기 옆에 장착돼 있어 자칫하면 사고가 날수(발생) 있기 때문이었다.
김 단장은 “작은 정전기에도 고체 화약이 터져버릴수 있으니 허용된 구역 외에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된다”며 “연구원들이 매주 위험을 무릅쓰고 연소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곳 연구원들은 월·화요일 연소시험 준비, 수요일 연소 시험, 목·금요일 데이터 분석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75초 연소시험 직전의 75톤 엔진. 아래 종처럼 생긴 모양이 연소기이며 왼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가스발생기, 연소기 위쪽이 터보펌프다. 엔진에 붙어 있는 케이블들은 엔진 작동시 압력이나 진동, 온도 데이터를 얻기 위해 부착한 장비와 연결된다. 위쪽으로는 엔진의 추력을 측정할 수 있는 철제 프레임이 연결돼 있다./김민수 기자
한국형 발사체(로켓) 프로젝트는 1.5톤 무게의 실용위성을 지구 저궤도(고도 600~800km)에 띄울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하는 게 골자로 2021년 3월까지 약 1조 9572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75톤급 액체엔진 4기를 묶어서 1단 엔진(총 추진력 300톤)으로 만들고, 그 위에 75톤급 엔진 1기로 구성된 2단 엔진과 7톤급 엔진 1기로 구성된 3단 엔진을 얹는다. 75톤급 엔진의 추진력(수직방향의 힘)은 약 1.1톤의 경차 70대를 쏘아올릴 수 있는 힘과 같으며, 출력(수평방향의 힘)은 최고 출력이 245마력인 소나타 2.0 터보 모델 19대를 합쳐놓은 4750마력이다.
75톤 엔진의 핵심 구성품은 가스발생기, 터보펌프, 연소기다. 연소 준비 단계에서 고체 화약을 터뜨려 가스 발생기를 작동하면 그 때 발생한 가스가 터보펌프의 터빈을 돌린다. 터빈이 연료인 케로신(등유)과 극저온(-180도) 상태의 산화제 액체산소를 고압 상태로 연소기에 공급하면 높은 압력에 의해 점화된다. 점화된 상태의 연소기 내부 온도는 3000도에 달한다.
김진한 단장은 “연소기에 점화되기까지 모든 과정(점화 시퀀스)이 1초 이내에 완료 되는데 모든 부품이 순차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바로 폭발할수 있다”며 “예상보다 빨리 75초 동안 연소 시험을 진행한 것은 연소 시퀀스 노하우가 쌓였고 연소기 내부의 불안정연소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5부 능선 넘은 한국형 발사체 개발...예상보다 빨리 간다
육안으로 75초 동안 연소시험 장면을 지켜본 뒤 연구원들과 회의실에 모여 시험 장면을 동영상으로 확인했다. 근접 촬영한 동영상에는 연소기에 불꽃이 일기 전 엄청난 양의 냉각수가 쏟아지는 장면이 있었다.
조광래 항우연 원장은 “초당 1200리터의 물이 연소기를 냉각하기 위해 쏟아지는데 75초 동안 연소하려면 9만 리터의 냉각수가 필요하다”며 “터보펌프를 통해 공급되는 연료와 액체산소는 초당 각각 79kg, 176kg에 달한다”고 말했다.
75톤 무게의 물체를 쏘아올릴 수 있는 추력을 어떻게 측정하느냐고 묻자 고정환 한국형 발사체(로켓) 개발사업본부장은 “엔진 위에 철제 프레임이 있는데 여기에 추력을 측정하는 장비가 설치됐다”고 밝혔다.
연소시험 중인 엔진은 언제라도 폭발할 위험성이 있다. 이곳 연구원들은 폭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해 놓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한 연소 시험에서 정상 작동될 때 측정한 연소기 내부 압력과 진동 데이터를 토대로 정상 범위에서 데이터가 벗어날 때 연료 및 산화제 밸브를 잠그는 것이다. 중앙관제센터가 이 모든 작업을 통제한다.
75초 동안 연소시험 중인 75톤 엔진. 전면부에서 특수 무인카메라로 촬영했다./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한국형 발사체(로켓) 를 쏘아올릴 때 75톤 엔진은 140초 동안 점화하도록 설계됐다. 결국 75초 연소시험을 넘어 140초 동안 정상적으로 연소시험을 진행하는 게 연구원들의 1차 목표다. 이날 연소시험은 75톤 엔진 ‘시제품 1호기(1G)’로 수행됐다. 항우연은 1G로 10여 차례 연소시험을 했고, 140초 연소시험의 경우 1G의 업그레이드 버전 ‘시제품 2호기(2G)’로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2G의 조립은 이 달중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75초 연소시험을 함께 지켜본 조광래 원장은 “1G 엔진의 하드웨어 손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140초 연소시험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며 “점화 시퀀스와 연소불안정 문제가 해결된 이후 예상보다 빠르게 개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형 발사체(로켓) 프로젝트는 목표치인 140초 연소의 절반인 75초 연소시험에 성공하면서 5부 능선은 넘은 셈이다.
항우연은 1G 수명이 다하면 재조립한 뒤 고공 연소실험을 진행할 계획을 하고 있다. 대기권을 벗어나 0기압에 가까운 진공 상태에서 점화해야 하는 2단 엔진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조광래 원장은 “매주 진행하는 연소시험이지만 시험 때마다 초조한 것은 마찬가지”라며 “아직 실험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발사체 개발에 성공했다고 선언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소시험 220여회, 누적 연소시간 약 2만 초의 목표를 갖고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조금씩 노하우가 쌓이고 있어 당초 시험 횟수 목표를 보수적으로 잡은 측면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고흥=김민수 기자 rebor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