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같은 말레이계 민족이고 문화적으로 공통되는 부분도 많은데 갈등도 많다.
각각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배를 겪다 2차 대전 후 독립하였는데, 인도네시아는 무장투쟁으로 네덜란드와 일본에 맞서 공화국으로 독립을 쟁취한 반면, 말레이시아는 별 다른 저항 없이 평화적으로 영연방의 일원으로서 독립을 달성하였다. 독립 후 두 나라는 서로 말레이 민족과 문화의 정통 후계자로서 서로 대립하였다
1962년 당시 인도네시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수카르노(Soekarno)는 말레이시아가 차지하고 있던 보르네오(Borneo) 섬의 북부 지방이 인도네시아 영토임을 주장하였다. 같은 해 인도네시아 군이 말레이시아를 무력침공함으로서 두 나라 사이에 영토 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 초반에는 인도네시아군이 우세하였으나, 말레이시아의 요청으로 영국이 군 병력을 파견한 이후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같은 영연방 소속 국가들 역시 말레이시아에 대해 대대적인 원조에 들어가면서 인도네시아는 점차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전쟁이 장기화되었다가 1966년 말레이시아군이 승리했다. 이후에도 분쟁이 계속되었는데, 말레이시아가 1979년 지도를 발간하면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보르네오섬 동쪽 해역의 암발라트(Ambalat) 광구를 자국 영토로 표기하면서 촉발되었다. 인도네시아는 1982년 유엔해양법헌장에서 이 지역을 자국 영토를 표기한 점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02년 암발라트 광구 북쪽 2개 섬에 대한 영유권이 말레이시아에 있다고 판결했지만 이 일대 해상국경은 여전히 모호하여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갈등 사례 2)
말레이시아는 1975년 인도네시아에 강제 합병된 동티모르에 무기를 팔아 동티모르의 독립 운동을 지원하였다.
갈등 사례 3)
2009년 9월에는 말레이시아가 인도네시아 발리의 전통춤인 `펜뎃(Pendet)"을 이용해 관광홍보 동영상을 만든 것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문화갈등을 빚었다.
갈등 사례 4)
말레이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의 처우 문제를 놓고도 대립해 왔다. 아시아의 최대 인력 수입국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는 주로 인도네시아 가정부들에 의존해왔다.그러나 인도네시아 가정부들에 대한 고문과 구타 등 인권유린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인도네시아는 2009년 6월부터 말레이시아에 대한 가정부 인력 송출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