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까지 조선에 구걸한 왜인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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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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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SAM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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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년 세종 초년 제3차 대마도 정벌 이후 대마도주 사다모 리(종정성)는 단절된 조선과의 정상적 교역을 누차 청하여 왔기 때문에 조정에서도 그들에 대한 유화책의 하나로 3포 를 세종 8년 개항했다. 그래서 웅천(熊川, 현재의 진해)의 내 이포(乃而浦, 제포[薺浦]라고도 함), 동래(현재의 부산)의 부 산포(富山浦), 울산의 염포(鹽浦) 등 3포를 열어 무역할 것을 허락하였다. 3포에는 각각 왜관을 두어 왜인 60명에 대하여 거주를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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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近まで朝鮮に物乞いした倭人のくせに
418年世宗初年第3次対馬島征伐以後大麻逃走サダモ里(宗正性)は断絶された朝鮮との正常交易を再三請じて来たから調整でも彼らに対する柔和策の一つで 3砲を世宗 8年開港した. それで熊川(熊川, 現在の鎭海)の私のイポ(乃而浦, ゼポ[薺浦]ともいう), 東莱(現在の釜山)の部山砲(富山浦), 蔚山の塩漬けの干し肉(塩浦) など 3砲を開いて貿易することを承諾した. 3ジャーキーにはそれぞれ倭館を置いて倭人 60人に対して居住を承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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