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는 패전 사흘 뒤인 1945년 8월 18일, 일본 전범의 재판과 관련해 일어날지도 모를 재일 한국인
들의 폭동을 우려하여 한국인 노동자를 부산으로 송환하라는 명령을 일본 해군을 통해 예하부대에
내렸다. 이러한 명령에 따라 강제 징용되었던 7,000여 명의 한국인을 태운 4,740t급 일본 해군 군함
우키시마호는 8월 21일, 일본 북동쪽에 있는 아오모리현[靑森縣]의 오미나토항[大溱港]을 떠났다.
그러나 부산항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는 24일, 돌연 방향을 돌려 일본 중부 동해 연안에 있는 마이
즈루항[舞鶴港]으로 들어갔는데, 이 때 갑자기 폭음과 함께 배가 폭발, 두 동강이 나면서 침몰하고
말았다.
사고의 원인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만내(灣內)에 부설한 미군의 기뢰와 충돌해 우연히
침몰했다는 일본측의 주장과, 함께 탄 일본 해군장교들이 부산에 도착했을 때 있을지도 모를 보복
이 두려워 일부러 폭파시켰다는 자폭설 등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지만, 현재로서는 자폭설이 유력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당국은 배가 방향을 바꾼 것은 미국 점령군의 정선(停船) 명령에 따른 것이며, 배가 침몰한 것
은 미군이 부설한 기뢰 때문이라고 지금까지도 주장하고 있다. 또 조선인 승선자 3,725명, 사망자
524명, 실종자 수천여 명으로 발표하였으나, 당시 현장을 목격한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사망자만도
1,000명이 넘으며, 배에 탔던 한국인도 생존자의 말을 빌리면 7,000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총 1만 명이 넘는 조선인이 이 배에 승선하였고, 최소한 5,000명이 사망하였다는 자료도 있
다.
이들 대부분은 홋카이도[北海道]·아오모리현 등 일본 도호쿠[東北]지방으로 끌려가 일제의 강제
노역으로 노예처럼 연명하던 노동자와 그 가족들로서, 광복의 기쁨과 귀향의 즐거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폭파직전 일본 승무원들이 한국인들을 선내로 모두 들어 가라고 지시하고 자신들은 구조선으로 탈출한 바로직후에 배가 폭팔하고 침몰됨..
너희들의 미치광이 같은 야비함과 잔인함과 날조는 세계 최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