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타오 前 베트남 역사 연구 원장…
일본군 식량징발로 200만명 餓死
주말 중앙대에서 열리는 학술회의 참석차 방한한 "반 타오"(75) 전 베트남역사연구원 원장은 17일
일본군이 진주한 1944년말부터 1945년초 6개월만에 북베트남에서만 20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며 ,일본군의 진출이 동남아국가가 서구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하는 계기가 됐다는 일부 일본 교과서의 기술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어떻게 해서 200만명의 아사자가 나왔나?.
44년말부터 일본은 전쟁물자 공급을 위해 수백만톤의 식량을 징발해갔다.
일본의 식량수탈은 월맹 주요 거점이던 베트남 중부 이북지역에 집중됐다. 저항의 싹을 없애버린다
는 목적도 있었다.
-200만명이란 수치는 어떻게 확인했나?
북베트남 23개 지역을 현장조사했다. 지역마다 1~2달씩 머물며 유족과 관계자들을 1000명
이상을 인터뷰했다.
원래 식구는 몇명이고, 살아남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일일히 확인했다.
한 지역에서 적게는 주민의 66%부터 많게는 79%까지 몰살했다. 하노이 교외에만 수만명의
아사자가 묻힌 공동묘지가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베트남에선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서울에 오기 직전, 베트남 인민일보에 일본의 역사왜곡은 막아야한다는 칼럼을 썼다.
1983년과 1992년 일본이나 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한국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만나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다뤄야한다고 생각하나?
일본이 베트남의 상처를 감싸안으려면 당연히 정부차원에서 다시
배상해야한다.
학자 입장에선 우선 사실을 먼저 밝히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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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왜인의 학살 만행은
베트남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