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KJCLUB 한일 문화교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일본군의 구타에 대해

조회수 : 175
KO 0 kijimi 2,811,753
굳이 따지자면 구타 자체는 일본군만의 특이한 전유물은 아니다. 20세기 이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구타가 드물지 않았고, 어느 정도 잦아든 20세기 와서도 있긴 했을 것이다. 유럽만 해도 전열보병의 시대에는 병사들에게 구타로 심한 압박을 줘서 "전열에서 이탈해서 맞아죽느니 그냥 싸우지"라고 생각하도록 세뇌할 지경이었다. 물론 이게 잘한건 아니라서 인권의식이 높아진 19세기 중반이 되면 채찍질과 같은 체벌은 공식적으로는 폐지된다.
  게다가 유럽군대에서 체벌은 어디까지나 지휘관들의 입회 하에서 집행하는 군법회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해군 같은 경우 이미 18세기부터 각종 위반사항에 대해 채찍질 회수를 법으로 정해놨고 심지어 채찍 규격도 정해져 있었다. 또 시행시간대도 보통 정해져있고 다른 승조원들도 모두 모여 채찍질을 지켜보아야 했다.
일본군의 진짜 문제는 총의 개선과 상비군 제도로 인한 병사 사기 향상 등의 이유로 이미 저런 행위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여전히 구타를 자행한 것과, 그나마도 명시된 조항에 따른 체벌이 아닌, 상급자의 개인적인 목적에 따라 일정한 규정 없이 마구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일본군은 단기간 안에 병사들의 충성심을 고양하고, 통제한다는 명목을 대면서 구타를 묵인했다. 장교는 상급 장교에게 맞고, 맞은 장교는 부사관들을 때리며, 부사관들이 병사들 때리고, 상급병이 하급병을 때리는 구타의 쉴새없는 고리가 군 생활을 지배했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 군대뿐만 아니라 일본 조직 문화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형이다. 1990년대 일본에 용병으로 왔던 미국 여자 농구 선수가 자신은 맞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체 구타나 체벌에 항의하여 계약기간도 채우지 않고 돌아가서 일본의 체육계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일본의 학원 스포츠 만화를 보면 최근까지도 선후배간 사제지간의 구타가 가끔씩 묘사되는걸로 봐서는 현재도 근절되지는 않은듯. 문제는 한국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용인대학교의 경우는 아주 유명하고...
게다가 "강한 군기"를 핑계로 병사들에겐 폭력을 당하고도 불만이나 하소연을 할 권리조차 박탈됐다. 구타 정도도 못 견디는 약골이 실전 상황은 어떻게 견뎌내겠느냐는 바보같은 논리 아래, 구타를 피하거나 고통을 호소하면 하극상으로 취급하여 더한 폭력이 가해졌다.   복장, 내무생활, 군기, 기타 모든 핑계가 폭력을 정당화 했으며, 수많은 암기사항을 강요하고 암기를 하지 못하면 때리는 식으로, 폭력의 방식이 연구되었다. 심지어 소총에 새겨진 국화 문장이 더러우면 더럽다고, 너무 열심히 닦아 흐릿해지면 흐릿해졌다고 패는 황당한 트집까지 잡았다. 해군은 아예 정신주입봉이라는 구타의 상징과 같은 구타 전용 몽둥이까지 애용했다.   때문에 하급병들은 차라리 부대가 전투에 투입되기를 간절히 바랬다고 한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쟁터에 나가면 적어도 구타는 후방에 있을 때보다 좀 잦아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뺨을 때리도록 시키기도 했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에, 자기가 초등학교 때 담임이었던 선생이 이 비슷한 벌을 자주 줬다는 나온다. 일제 시대에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니 일본 군국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보아도 틀린 해석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은 모두 군인 출신으로 일본군부의 영향이 유독 강한 지역이었다.   아니, 이것도 일본군에서 하던 원조 뺨때리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순화된 거다! 원조는 병사들끼리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봐주려고 하면 바로 고참이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주먹으로 죽빵을 날리거나 슬리퍼로(!)얼굴을 사정없이 갈겨대기에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걸 면하려면 서로 죽기살기로 때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폭력의 결과로 병사들은 판단능력과 이성을 상실했고, 겉보기에는 상부에서 내리는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정신건강에 크나큰 악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난 군기와 정신력을 보이지만, 실상은 가혹행위로 인하여 정신병적인 기질을 보유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일본 점령지에서 자행된 민간인이나 포로 학살, 가혹행위 등을 살펴보면 그 정도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인종차별에 눈이 먼 독일군이나, 그들의 잔인한 행각에 대한 복수를 부르짖은 소련군이 벌인 유럽의 동부전선보다도 훨씬 더 심했을 정도이다.
오죽하면, 전쟁 중의 점령지라기보다는 식민지긴 하지만 오키나와에 진주한 미국 해병대중 일부가 민간인에 대한 강간이나 살해 등을 자행했다는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의 주민들이 대체적으로 미군은 일본군보다는 훨씬 더 주민들에게 잘 대해 줬다고 평가했을 지경이다.   당장 미군이 주민들을 학살할 것이라고 세뇌시켜 오키나와 전투중 많은 주민들이 미군을 피해 동굴등지로 숨었지만 전투후 주민들을 구호하는 미군들에게 놀랐다는 증언도 있다. 이 증언자는 물과 식량도 없이 며칠을 동굴속에 숨어 있다가 미군들에게 구조되었는데 한 미군이 수통을 건네주면서 자기가 먼저 한모금 마신후 건네주어서 독이 없다고 안심하고 받아 마셨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군들이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허위로 세뇌했다는 것.   그리고 이 증언중엔 일본군의 만행도 나오는데 동굴속에 숨어 있는동안 아기가 울어대자 조용히 시키라고 다그치던 일본장교가 아기를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주한미군의 범죄사례나, 위에서 나왔듯이 오키나와에서의 미군의 민간인에 대한 범죄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미군이 종교와 인종이 다른 현지인들과 그리 잘 지내는 군대가 아님에도 이러한 평가가 나왔다. 대체 일본군이 얼마나 맛이 갔으면 저런 반응이 나왔을까?
게다가, 자발성이 없는 이러한 외형적인 군기는 결국 병사들의 무단 이탈, 탈영, 명령 불복종, 심지어 상관폭행 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심지어는 부사관이나 장교까지 처벌을 두려워해 탈영해서 마적단이 된 사례도 있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내무생활에 대한 불만해소 차원에서 일본군은 술을 이용했는데, 심한 음주로 벌어지는 각종 사고도 큰 문제였다.
이런 구타는 사병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고급장교들 사이에서도 일반적이었다. 가령 일본군 최고의 맹장으로 오키나와 전투를 지휘한 조 이사무(長勇) 중장은 연대장이나 여단장급(영관급) 장교들까지도 전부대원이 보는 앞에서 직접 주먹뺨을 갈겼다.

당연히 폐해가 너무 심각하다보니 그리 맛이 간 일본군마저도 구타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었고, 결국은 너무 폐해가 심해서 일본군도 1944년에 대본영의 명령으로 구타나 영내폭력을 금지시키는 발표를 하는 등 내무생활에서 구타와 폭력을 추방하려 했으나, 이미 때리고 맞는게 너무 일상화가 되어 있어서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종전 이후 일본군 해산으로 더 이상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게다가, 전투중에도 이러한 폭력과 가혹행위로 병사들을 통솔할 수는 없었기에 전투중에는 잠깐 폭력의 고리가 느슨해졌는데, 이때에는 병사들에 대한 통제력도 느슨해진다는 큰 문제가 존재한다. 실제로, 감시의 눈길이 없어진 일본 병사들은 자발적으로 적과 싸우지 않고, 그야말로 뿔뿔이 흩어져 전투력이 형체도 없이 소멸하는 경우도 일어났다.
그보다도 더 무서운 점은 이러한 폭력의 고리를 대한민국 국군 및 한국 사회가 그대로 물려 받았다는 것. 일단 국군의 창설기에 구 일본군 장교가 대량으로 유입되기도 했으며, 20세기 후반까지 군대에서는 이러한 구타와 가혹행위가 계속되었으나 몇 년간의 노력 끝에 21세기가 넘어갈 때 쯤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해병대와 전의경 부대에서는 여전히 구타가 남아 있다.
반면에, 오히려 일본 자위대는 육상자위대의 경우, 해상자위대가 구 일본 해군 출신이 상당수 참여한 것과 달리 경찰예비대를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며 아예 구 일본 육군 소속 인물을 배제하기도 했고, 모병제라서 여러가지 처우 개선을 하다 보니 구타 사례가 없다고 한때 자랑하였으나, 현실은.... 일본군 시절보다 덜 할 뿐이지 구타는 여전히 남아있다.   더 충격적인건 일본 자위대 내의 연평균 자살자수가 한국군보다도 많다! 물론 자살원인을 구타로만 국한시킬 수는 없겠지만, 모병제인 데다가 한국군보다 숫자도 적으면서 자살자수가 한국군보다 많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번역문보기

日本軍の殴りに対して

敢えて計算しようとすると殴り自体は日本軍だけの珍しい専有物ではない. 20世紀以前には全世界的に殴りが珍しくなかったし, どの位だんだん無くなった 20世紀来てもあったりしたはずだ. ヨーロッパだけでも戦列歩兵の時代には兵士らに殴りでひどい圧迫を与えて ¥"戦列で離脱して叩かれて死ぬよりそのまま争うの¥"と思うように洗脳しそうだった. もちろんこれがよくしたのないので人権意識が高くなった 19世紀中盤になればむち打ちのような体罰は公式的には廃止される.
  それにヨーロッパ軍隊で体罰はあくまでも指揮官たちの立ち会い下で執行する 軍法会議の一種と見られる. イギリス海軍みたいな場合もう 18世紀から各種違反事項に対してむち打ち回収を法で定めておいたし甚だしくは鞭規格も決まっていた. また施行時間帯も普通決まっていて他の乗務補助員たちも皆集まってむち打ちを見守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日本軍の本当の問題は総意改善と常駐軍制度による兵士詐欺向上などの理由で もうあんな行為をする必要がないことにも 相変らず殴りをほしいままにしたことと, それさえもも明示された条項による体罰ではない, 上級者の個人的な目的によって決まった規定なしにでたらめに施行されたという点だ.
日本軍は短期間の内に兵士らの忠誠心を高揚して, 統制するという名目をつけながら殴りを見逃した. 将校は上級将校にあって, あった将校は副詞官たちを殴って, 副詞官たちが兵士ら殴って, 上級病が下級病を殴る 殴りのスィルセオブヌン掛けがねが軍生活を支配したと言う.
これは実は軍隊だけではなく日本組職文化の問題でもあった. そして 現在型だ. 1990年代日本に用兵で来たアメリカ女バスケットボール選手が自分は当たらなかったにもかかわらず団体殴りや体罰に抗議して契約期間も満たさないで帰って日本の体育界を責める記者会見をしたりした. 日本の学院スポーツマンガを見れば最近までも先後輩間師弟之間の殴りが時たま描写されることで見ては現在も根絶されるのはアンウンドッ. 問題は韓国もこんな問題で自由ではない. 竜仁大学の場合はとても有名で...
蟹に ¥"強い軍旗¥"を言い訳で兵士らには暴力にあってからも不満や哀訴をする権利さえ剥奪された. 殴り位も耐える事ができない弱骨が実戦状況はどんなに耐えるのかはあほらしい論理の下, 殴りを避けるとか苦痛を訴えれば下克上に扱って加えた暴力が加えられた.   服装, 内務生活, 軍旗, その他すべての言い訳が暴力を正当化したし, 幾多の暗記事項を強要して暗記ができなければ殴る式で, 暴力の方式が研究された. 甚だしくは小銃に刻まれた菊文章が汚ければ汚いと, あまり熱心に磨いて薄暗くなれば薄暗くなったとぶんなぐる荒唐な言い掛かりまで取った. 海軍はてんから精神注入峰という殴りの象徴のような 殴り専用棒まで愛用した.   のため下級病たちはかえって部隊が戦闘に投入されるのを切に見送ったと言う. 命が行ったり来たりする戦地に出れば少なくとも殴りは後方にある時よりちょっとだんだん無くなるからだった.
甚だしくは自分たちどうし頬を殴るようにさせたりした. パク・ワンソのその多かったシングアは誰がすべてモックオッウルカという本に, 自分が小学校の時の受け持ちだった先生がこの似ている着をよく与えたという出る. 日帝時代に学校で開いた事だから日本ミリタリズムの影響を受けたことだから見ても違った解釈ではないだろう. そして日帝強制占領期間当時朝鮮総督は皆軍人出身で日本軍部の影響が特に強い地域だった.   いや, これも日本軍でした援助ピァムテリギに比べればおびただしく 順化になったのだ! 援助は兵士らどうし少しでも妄説や見てくれようと思えばまさに古手が示範を見せてくれると拳でズックパンを飛ばすとかスリッパで(!)顔を事情なしにガルギョデギにいくら親しい関係でもそれを兔れようとすればお互いに死に物狂いで殴るしかなかった.
このような暴力の結果で兵士らは判断能力と理性を喪失したし, 見掛には上部で降りる命令に無条件的に従うことのように見えたが実際では精神健康に大きい悪影響を及ぼしたことを否定することができない.
結局表で見るにはおびただしい軍旗と精神力を見せるものの, 実際は苛酷行為によって精神病的な気質を保有するしかなかった. 実際に日本占領地で恣行された民間人や虜虐殺, 苛酷行為などをよく見ればそれ位が違う国で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ない地境だ. 人種差別に目がくらんだドイツ君や, 彼らの残忍な行為に対する復讐を唱えたソ連軍がしたヨーロッパの東部戦線よりも ずっと ひどかった位だ.
どんなにせっぱつまれば, 戦争中の占領地と言うよりは植民地だと言うが沖繩に進駐したアメリカ海兵大衆一部が民間人に対する強姦や殺害などをほしいままにしたという話があるにもかかわらず沖繩の住民たちが 大体的に米軍は日本軍よりはずっと住民たちによくもてなしてくれたと評価したはめに陷る.   今すぐ米軍が住民たちを虐殺すると洗脳させて沖繩戦闘中多い住民たちが米軍を避けて洞窟等地で隠れたが戦闘の後住民たちを救護する米軍たちに驚いたという証言もある. この証言者は水と食糧もなしに何日を洞窟の中に隠れている途中米軍たちに救われたが一米軍が水筒を渡してくれながら自分が先に一服飲んだ後渡してくれて毒がないと安心して受けて飲んだと言う. あれほど日本軍たちが住民たちを統制するために虚偽に洗脳したということ.   そしてこの証言中には日本軍の蛮行も出るのに洞窟の中に隠れている間赤んぼうがウルオデザ静かにさせなさいと急き立てた日本将校が赤んぼうを殺したりしたと言う.
在韓米軍の犯罪事例や, の上で出たように沖繩での米軍の民間人に対する犯罪事例を見れば分かるが米軍が宗教と人種が他の現地人たちとあまりうまく行く軍隊ではないことにもこのような評価が出た. 一体日本軍が いくらいたんだら あんな反応が出ただろうか?
蟹に, 自発性がないこのような外形的な軍旗は結局兵士らの無断離脱, 脱営, 命令不服従, 甚だしくは上官暴行などにつながったりした. はなはだしくは 副詞官や将校まで 処罰を恐れて脱営して馬賊団になった事例もある. 暴力的で抑圧的な内務生活に対する不満解消次元で日本軍はお酒を利用したが, ひどい飲酒で起る各種買ってからも大きい問題だった.
こんな殴りは兵たちにだけ適用されるのではなく高級将校たちの間でも一般的だった. たとえば日本軍最高の盲膓で沖繩戦闘を指揮した組李事務(長勇) 中将は連隊長や旅団長級(領官級) 将校たちまでも全部隊員が見る前で直接ズモックピァムをぶんなぐった.

当然弊害があまり深刻してみたらあまりいたんだ日本軍さえ殴りの深刻性に対してはどの位認知をしていたし, 結局はとても廃海歌ひどくて日本軍も 1944年に大本営の命令で殴りや領内暴力を禁止させる発表をするなど内務生活で殴りと暴力を放逐しようと思ったが, もう殴って当たるのがあまり日常化になっていて易しく直らなかった. そうするうちに終戦以後日本軍解散でこれ以上の改革が成り立つことができなかった.
蟹に, 戦闘中にもこのような暴力と苛酷行為で兵士らを統率する事はなかったので戦闘中にはちょっと暴力の掛けがねが緩んで行ったが, この時には兵士らに対する押しも緩んで行くという大きい問題が存在する. 実際で, 監視の雪道が消えた日本兵士らは自発的に敵と争わないで, まさにちりじり散らばって戦闘力が形体もなく 消滅する場合も起きた.
それよりももっと恐ろしい点はこのような暴力の掛けがねを 大韓民国国軍及び韓国社会がそのまま受け継いだということ. 一応国軍の創設期に句日本軍将校が大量に流入されたりしたし, 20世紀後半まで軍隊ではこのような殴りと苛酷行為が続いたが何年間の努力あげく 21世紀が移る時くらいほとんど消えた. しかし海兵隊と戦意頃部隊では相変らず殴りが残っている.
一方に, むしろ日本自衛隊は陸上自衛隊の場合, 海自が旧日本海軍出身がかなり多い数参加したことと違って警察予備台を土台に設立されたし初めから旧日本陸軍所属人物を排除したりしたし, 募兵制なのでさまざまな処遇改善をして見たら殴り事例がないとひととき誇ったが, 現実は.... 日本軍時代より減るだけであって 殴りは相変らず残っている.   もっと衝撃的なのは日本自衛隊内の年平均自殺自首が韓国軍よりも多い! もちろん自殺原因を殴りにだけ局限させることはできないが, 募兵制であるうえで韓国軍より数字も少ないのに自殺自首が韓国軍より多いというのは どうしても問題があるという話だ.

좋아요·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댓글 ( 3 )

게시물 목록

2,811,753

  1. KO 255 Member_52968
  2. 조회수 : 200
    KO 255 Member_55569
  3. KO 255 dreadnought4
  4. JA 255 kagerou先輩
  5. KO 255 organia
  6. 조회수 : 292
    KO 255 aranai
  7. JA 255 yuuki0801
  8. JA 0 震電改
  9. 조회수 : 225
    JA 255 Member_63760
  10. 조회수 : 545
    JA 0 goldwindow
  11. 조회수 : 302
    KO 255 GGGDragon
  12. KO 255 BoATHELIVE1
  13. KO 255 organia
  14. 조회수 : 266
    KO 255 soribada
  15. KO 255 Member_52968
  16. JA 0 震電改
  17. JA 255 kagerou先輩
  18. KO 255 태양꽃
  19. JA 255 朝鮮研究家
  20. 조회수 : 261
    JA 255 Member_63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