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향락을 누리는 곳 "한국"
일본인 관광 한국의 실상
1973. 7. 13 [동아일보] 5면
72년 일본교통공사가 발행한 관광안내서에 "한국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는 나라"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관광회사들도 "한국에선 하루 30달러만 쓰면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향락을 누리는 곳, 한국 유객작전을 폈다. 관광단 모집 명칭부터 아예 "기생파티 관광단 모집"이라고 한 곳이 많았다. 흥청망청 밤마다 섹스 파티를 벌인다는 노골적 표현만 안 했을 뿐 한국만 가면 바로 기생을 끼고 놀 수 있으며 매매춘도 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6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도쿄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른 일본은 일찌감치 자국민 해외여행을 자유화시켰다. 일본 관광단이 해외로 쏟아져 나오며 그 유별난 행태가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40-50명 대부대가 "깃발" 든 인솔자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단체로 매매춘에 나서는 모습도 보도됐다. "돈만 아는 "경제 동물"이 돈을 좀 벌자 "섹스 동물"이 되었다"는 비난이 높아졌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침공피해를 입은 나라들은 그들의 새로운 "섹스 침공"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던 1972년. 일본은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대만은 그동안 일본인들의 은밀한 섹스 여행지 노릇을 해왔던 곳. 지리적으로 가깝고 비용면에서도 별 부담이 없던 관광지 한 곳을 잃자 일본 여행사들은 그 대안으로 바로 한국을 점찍었다. 일본인들이 선망하는 "게이샤" 즉 기생을 한국관광 핵심 포인트로 잡아 선전을 시작했다. 5만 엔 정도를 들고 2박3일 한국여행에 나서는 일본 중년남자가 속속 모였다. 72년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의 80%는 아내나 가족동반이 아닌 나 홀로 중년남성들이었다.
일본의 한국 기생관광 러시는 많은 이의 분노를 자아냈다. 식민지배의 한이 가시지 않은데다 한일국교정상화마저 석연치 않게 이뤄졌다고 믿는 이들이 특히 분노했다. 언론도 비판에 앞장섰다. 관광수입이 주요 외화 획득원이 된 데에는 박수를 치면서도 "아무리 관광을 보이지 않는 무역이요, 달러 획득의 지름길이라 한들 일본인에게 우리 여인의 정조를 상품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관광망국의 우"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미풍한국 흐리는 외빈접대
1971. 11. 25 [동아일보] 7면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47&contents_id=3929
일제강점기 일본남성들에게 매춘하던 위안부.. 그 습성을 현대까지 못버리는 한국여자들
위 기사는 1970년대 얼마나 많은 한국여성들이 일본인들에게 매춘을했는지 잘 알수있다
기사의 일부를 보면알수있듯이 이당시 일본인들에게 매춘을하다 돈때문에 남편과 아이를 버리는등 비참한 한국여성들이 비일비재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