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도래인의 일본 열도 3차 인구 이동
1차 시기
3세기 전후 일본 열도는 죠몽인이 10만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 도래계 즉 야요인이 등장하면서 급격하게 인구 50만명의 인구가 되었다
2차 시기
5세기 전후 2차 이동은 한반도의 삼국이 대립되면서 많은 숫자의 도래인이 열도에 상륙했다
아스카 시대를 이끈 백제계 도래인 소가씨, 헤이안 천도에서 중요 역할을 한 교토의 하타씨와
아사카씨가 이때 건너간 일족들이다
3차 시기
세 번째 이동은 7세기 이뤄졌다. 당시 동북아 대전(大戰) 과정에서 백제와 고구려 유민 중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들 역시 야마토 정권이 강력한 국가 체제를 갖추는데 기여했다.


(1) B.C. 2~3세기 (야요이 문화 시작 무렵): 10만명 정도 - 고고학적으로 대단히 작았다
(2) A.D. 7세기 (백제와 고구려 멸망 직후) : 5~6백만명 정도 - 1천년동안 약 50배의 증가,
인구 증가율이 당시 아시아 최고를 기록
인류학 권위자인 일본 국립 민속학박물관의 고야마슈조 교수는
1984년 일본인류학회에 보고한 내용
"죠몬시대의 인구"라는 논문에서 "죠몬말기(기원전 약 3세기) 일본 총인구는 극심한 추위 등의
영향으로 겨우 7만5천8백명에 불과했고,
그후 야요이시대에 접어들자 59만4천9백명으로 급격히 늘었으며,하지키(김해 토기)를 사용한
나라시대(710~784)에는 무려 5백39만9천8백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인류학자 중 세리자와 죠수케씨는 죠몬말기의 인구를 약 12만명,
야마우치 세이오씨는 약 15만명으로 추계했다.
이로 미뤄 야요이시대 초기에 일본 인구가 급증한 것은 고대 한국인이 한반도에서 대거 진출,
벼농사로 식량이 풍부해졌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대학 유전학자 마이클 해머교수는 "기원전 4세기께 한국에서 건너간
야요이인들이 조몬인과 아이누족을 물리치고 일본의 주인이 됐다"고 발표했다.
메이지시대의 인류학 및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씨는 "현대 일본인은 조선반도에서
야요이문화와 함께 도래해 선주민인 아이누족을 축출,고유 일본인으로 파생하였고
선주민은 현대 일본인 선조와는 연고가 없다"고 설파했다.
일본왕족 만다친왕은 815년 저술한 "신찬성씨록"에 신별(신령씨족),황별(천황가문),
제번(도래인)을 분류하고 한국인이 3분의 2를 점했다고 기록해놓았다.
간략하게 간추려 설명하면
50만년전~3만년전 한국: 구석기시대(수천~수만명),,,,일본: 거주자 없음(아직 발견안됨)
3만년전~4천년전 한국: 신석기시대(15만명),,,,,일본: 중석기시대(죠몽인: 7~10만명)
4천년전~2천4백년전 한국: 청동기시대(수십만명),,,,일본: 중석기or신석기시대(죠몽인: 7~10만명)
한반도등으로 부터 이주가 본격화되고 2천년전 부터 일본의 인구는 폭등한다,
2천4백년전~2천년전 한국: 철기시대, 삼한시대(수십만명~100만명),,,,일본: 야요이시대(8만~60만)
서기 5~700년 : 한국: 삼국시대(or통일신라시대: 3~500만명),,,일본: 고분~나라시대(4~5백만명)
10만명 수준의 죠몽인이 살았던 열도에
40만명의 한반도 도래계 야요인이 등장으로 50만명의 인구가 되었던
그럼 지금 일본인 5명중에 1명 정도만 진짜 섬주민 일본인이라는 결론
그 학설을 증명한
일본인 뿌리는 한반도계" 日, DNA 분석
교도통신에 따르면 2012년 11월 1일 일본의 종합연구대학원(가나가와현) 등이 포함된 연구팀은
연구결과를 일본 인류학회가 편집한 국제전문지(저널 오브 휴먼 제네틱스) 인터넷판에 발표했다.
도쿄대학과 종합연구대학원대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이 같은 연구결과를 종합해 발표했다
모두 일본의 발표입니다 kkk